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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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

성서본문 ; 역대기상 29,10~15
10 그래서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주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길이길이 찬양을 받아 주십시오! 11 주님, 위대함과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존귀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의 머리 되신 분으로 높임을 받아 주십시오! 12 부와 존귀가 주님께로부터 나오고, 주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니, 사람이 위대하고 강하게 되는 것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13 우리 하나님, 우리가 지금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14 제가 무엇이며, 저의 백성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이렇듯이 기쁜 마음으로 바칠 힘을 주셨습니까?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셨으므로, 우리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님께 바쳤을 뿐입니다. 15 주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조상처럼, 나그네와 임시 거주민에 불과하며, 우리가 세상에 사는 날이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들어가며 : 한 변호사가 병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을 때인데 지인이 이 변호사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변호사는 정신 없이 성경을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자네 뭘 하고 있는 건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나 찾고 있는 중이라다네.” 하고 대답하더랍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하는 노래처럼 노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젊고 건강하고 정신 똑바를 때 열심히 하나님 믿고 하나님 말씀 따라 사셔서 때늦은 후회가 없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하나님게 감사의 마음을 안고 나와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게 임하시고 더 많은 감사의 거리들이 눈에 띄는 복을 받으시기를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성어버이,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며칠 전에 한국기독교연구소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2월에 진행하는 목회세미나 계획을 세우는 자리였는데 순서를 맡기는 문제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이번 세미나 주제가 ‘예수의 길을 가는 기쁨’인데 주제강연 순서를 맡는 일 때문입니다. 제법 생각 있다고 하는 목사들 사이에서는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 설교가이신 한 목사님이 ‘요즘 별로 기쁘게 목회하고 있지도 못한데 이걸 어떻게 내가 맡는가, 어떻게 무슨 핑계를 대고 목회를 그만할까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이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목사님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시는 분이신걸 알기에 농담으로 하신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진담도 섞여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조용하게 묵상하고 산책하고 등산하고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맡겨진 일이 너무 많아서 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을 그 마음을 느꼈습니다.
요즘은 솔직히 말하면 감사하면서 살기에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저도 불평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 바빠서 몸과 마음이 멍한 상태로 살고 있어서 감사할 틈을 못 찾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뉴스를 보니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가 되는데 미래에 대해 낙관보다는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더군요. 그 말은 단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 대한 것을 반영한 것이겠지요. 실업문제, 물가상승, 소득감소에다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짱돌을 들어 청와대를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서 산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용기와 신앙심이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도 별로 감사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함께 어떻게 하면 용기와 신앙심을 가지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귀한 가르침을 나누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성서본문은 아마도 성전건축할 때 목사들이 건축헌금 독려할 때 많이 설교하는 본문일 것입니다. 다윗이 왕위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면서 그 아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리고는 성전건축을 위해 예물을 바칠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예물을 엄청나게 가져와 바쳤습니다. 그렇게 기부된 예물을 보고 다윗 왕이 흡족하여 시를 지어 찬양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도 건축비가 부채로 있기는 하지만 건축헌금 내라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고백을 통해 감사할 조건을 발견하자는 뜻으로 생각하시고 이 말씀을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말씀은 힘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힘이 있다면 기꺼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쁜 마음으로 바칠 힘’을 주신 것에 감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 그 에너지는 우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에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탄생의 모습을 표현할 때 종종 적신이라고 합니다. 시뻘건 몸뚱아리라는 뜻인데 말그대로 시뻘건 몸뚱아리만 갖고 태어났을 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는 자연적인 인간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무엇을 소유하였습니까? 저는 옷장을 열어보면 깜짝 놀랍니다. 평생 사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옷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걸 죽을 때도 싸가지고 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소유한 것이 본래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빌려 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는 나그네와 임시거주민에 불과하고 세상에 사는 날이 마치 그림자와 같습니다’라는 구절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가 자신이 열심히 일하여 얻은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나누기에 인색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열심히 일하여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로 열심히 살지 않아도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우리 노력에 의하여 얻은 것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즐거워할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부자라는 H그룸과 S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들은 마땅히 내야 할 세금도 내기가 아까워서 편법으로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구속되고 휠체어를 타고 풀려나면서 1조원을 사회에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해놓고서는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깜깜 무소식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는데 왜 남에게 그냥 퍼주냐’는 생각에 아까운 것이겠지요. 반면 우리가 잘 아는 가수 김장훈은 자신은 셋방살이를 하면서 공연 등을 통해 버는 족족 이웃을 위해 쓰는 일에 흔쾌히 내놓습니다. 영화배우 문근영도 기부를 많이 하는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아가씨입니다. 천안의 한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는 1999년에도 1천600만원 어치의 쌀을 구입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주라며 시에 기탁한 적이 있고 2000년과 2001년에는 3개월 동안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해 번 돈 100여만 원을 훌쩍 내놓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한다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얼마만큼의 돈을 쓰면서 삽니까? 그 중 나 자신을 위한 것은 얼마이고 이웃이나 좋은 일, 선한 사업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한 해 동안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는 기쁨 마음으로 바칠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500원 동전과 1000원을 주면서 “1000원은 헌금하고 500원은 아이스크림 사먹어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돌아온 아들은 1000원을 그냥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1000원을 헌금하지 않았니?” 라고 아버지가 묻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하나님께서는 기분 좋게 내는 헌금을 더 기뻐하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500원만 헌금했어요. 저는 1000원보다는 500원을 헌금 할 때가 더 기분이 좋거든요!” 하고 말했답니다.
어린 아이의 재치가 참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악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통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결코 어른들, 성인이 된 신앙인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하게 헌금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가며 :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끼리’입니다. 뭐든지 자기들끼리 기뻐하고 자기들끼리 행복해하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추수감사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끼리 헌금하고 자기들끼리 교회 비품 들여놓고 건축하고 그걸로 끝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추수감사의 깊은 의미와 맞을 수 있겠습니까! 추수감사주일의 원조인 미국에서는 Thanksgiving day에 커다란 칠면조를 구워서ㅏ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지내는 것으로 추수감사주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다는 고백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고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내년부터 우리도 한 사람이 한 구좌씩 이웃을 돕고 NGO를 도울 수 있는 운동을 해보고자 합니다. 항상 신년에는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우리도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자신들끼리만 기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귀한 말씀을 통해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쁜 절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바칠 힘을 얻고 그것으로 어려운 이웃,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지원하고 도울 수 있는 참된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살리는 귀한 일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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