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의 가족으로 회복되십시오.
성서본문 : 마가복음 3:31-35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어 예수를 불렀다. 32 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3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34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들어가며 : 정초에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된장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면 고추장은요? 그러면 간장은요? 예, 그러면 문제 나갑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들다가 잘못 만든 것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젠장’입니다. 우리 민족이 대대로 쇠 오던 설날을 맞았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오늘이 진짜 시작인 셈입니다. 여러분들 한 해 살면서 어느 누구도 하나 ‘젠장’ 맞는 일 없이 모두 행복하고 원하시는 일들을 성취하시면서 사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명절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들뜨게 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기간도 짧고 눈도 많이 왔다고 하고 경기도 아직 풀리지 않았고 해서인지 썩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없는 이들에게는 명절이 더욱 외로울텐데 가난해서, 아파서, 돌아갈 고향이 없어서, 갇혀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명절을 쓸쓸하게 보내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누리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명절 하면 무엇보다도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기뻐하고 헤어져 있는 동안에 느꼈던 외로움을 달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명절이라면 설날과 추석이 대표적이고 가장 큰 명절입니다. 설날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고 추석은 한 해의 결실로 즐거워하는 날입니다만 역시 함께 수고하고 함께 준비한 가족이 그 기쁨과 기원을 나눕니다. 그걸 보면 명절은 가장 가까운 이들, 피와 살을 나눈 이들이 함께 지내는 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의 현주소를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참된 가족으로 회복되고 거듭나라는 명령을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사시면서 집을 떠나 여행을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곳을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면서 사람들은 온갖 억측을 하였지요. 어떤 이는 예수님이 엘리야, 선지자 중 하나라고도 하였지만 어떤 사람은 실성했다고도 하였습니다. 한 집안의 맞아들이었던 예수님이 실성했다는 소리까지 듣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예수님의 가족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불러 들여오기로 작정을 하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혈육을 보면서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주위에 둘러 앉은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 곧 당신들이 내 형제요, 자매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유교사상에서 보면 참 싸가지 없고 애비 에미도 몰라보는 망동한 일일 것입니다만 우리는 유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전혀 새롭고 전혀 다른 가족의 상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가족의 상입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참된 가족으로 회복되는 길은 예수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과 자비, 진리와 정의, 생명과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보다는 세상의 뜻,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것에 더욱 열심입니다. 바로 탐욕과 거짓, 경쟁과 다툼, 무자비와 당파의 길입니다. 오늘날 가족 간에 가장 많이 하는 말 혹은 대화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거의 대부분이 돈, 돈에 얽힌 이야기, 돈을 버는 이야기,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2008년 6월 7일에는 20대 아들이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40대 친어머니를 살해한 안양 관양동 존속 살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입니다. 1994년에 일어났던, 약사인 부모의 백억대 재산을 노려 계획적으로 범행하여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1월 26일에는 1만원을 빌려 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친딸을 살해한 40대 아버지의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달에서 몇 건씩 벌어지고 있습니다. 돈 이야기만 들으면서 자란 가족의 당연한 귀결이라면 너무 과장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빨리 승진하고, 잘 먹고 잘 살라는 말일 것입니다. 신앙이 좋고 더 많이 배운 부모일수록 자녀들을 다그치며 그것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이라고 훈계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효험하신 능력이 함께 하기를 기원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압박과 스트레스에 길들여지고 생명과 평화보다는 경쟁과 술수를 더 빨리 배우게 됩니다. 그걸 보고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애가 이제야 철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 자녀들에게 진리에 따라 정의롭게 살고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충고하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걱정은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직 ‘그 나라와 그의 의, 옳음을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채워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제 명절에 가족이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를 바꿔 참된 가족으로 거듭나고 회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가족의 참된 회복은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집 밖에 나가면 대부분 온순해지고 너그러워지며 또 친절해집니다. 반면 가족들에게는 함부로 하고 해오던 대로 해오며 쉽게 또 심하게 분노합니다. 사회적 관계는 대부분 계약적인 관계 혹은 자발적으로 맺은 관계이다 보니 계약이 깨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가족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비자발적으로 맺어졌으며 가족 간의 위계가 뚜렷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서부터 맺어진 관계이다 보니 익숙하여 특별한 노력 없이도 가족이라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반면 부정적으로 보았을 때는 위계가 고정적이고 특별한 변화 없이도 유지되다 보니 일상적이 되고 순응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족의 존재에 대해 특별하게 감사한다거나 가족 구성원들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 5,22에서 형제나 자매에게 성을 내는 사람, 자기 형제자매, 가족에게 얼간이,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공의회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고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따져보시지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화를 막 내거나 바보, 얼간이, 병신이라고 욕을 해대는 경우가 있습니까? 아무리 상대방이 실수를 해서 내가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대놓고 욕을 하거나 바보, 병신이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정중하게 혹은 예의를 갖추어서 나무라거나 사과를 요구하지 바보라고, 얼간이라고 하면서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대부분 조폭, 깡패이거나 술에 취한 상태이거나 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가족 내에서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형제가 형제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13일에는 잔소리 하는 부모를 살해한 30대 남자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1월 22일에는 자식이 “화장실 문을 왜 잠갔느냐”며 아버지(66)와 말다툼을 벌이다 아버지의 목 등을 20 여분간 때려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보이는 부모에게 혹은 자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예수님의 가족은 혈연을 뛰어 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은 분명히 혈연적 관계입니다만 예수님은 너무나도 당연한 혈연적인 관계는 부정하고 오히려 피한 방울 섞인 적 없는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참된 가족은 혈연에 매이지 않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실은 혈연으로 맺어진 민족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노예와 용병, 최하층을 합비루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이 모여서 임의적으로 맺어진 족속을 히브리 민족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혈연을 떠나서 모든 함께 하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호칭합니다. 성서에서 나오는 형제, 자매는 엄밀하게 보면 혈연적 관계가 아니라 동포라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혈연적 울타리 안의 개인들만이 아니라 더 넓게 동포들까지도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부와 고아, 나그네를 억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행위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동포들도 가족으로 이해하면서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에도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사람임을 명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나가며 :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단순하게 한민족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이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가족에게 친절하고 동포들도 가족으로 생각하는 성도들로 거듭나는 복된 체험이 이 귀하고 즐거운 명절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