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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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교사로 세움 받는다는 것은!

 
성서본문 : 에베소서 4:11-15

11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12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14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들어가며 : 오늘은 교회학교 교사 임명예배로 드립니다. 한동안은 교회학교 교사도 임명하고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이쪽으로 이사하고 난 후부터는 따로 교사들을 임명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시 교사를 임명하고 격려하며 당부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무척 감개무량합니다. 먼저 교회학교 선생님들에게 임명장을 전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교사로 임명된 사랑하는 교사들과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와 진리로 교육을 받게 될 어린이와 학생들, 그리고 축하와 격려의 마음으로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어버이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저는 좀 불량하게 청소년 시절을 지냈는지 교사, 선생이라면 별로 정이 안 갑니다. 초등학교 때에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에도 선생이라면 이를 갈게 될 몇몇 아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만은 아니겠지요. 교회에서도 그저 그랬습니다. 교회가 학교처럼 악랄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것은 어린 시절에 교회학교에서 보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으로 성장했다면 더 좋지 않았겠나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학교 선생은 무섭기라도 하지만 교회 선생은 별로 힘도 없고 함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아서 좀 가볍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시간이 적었거나 너무 오냐오냐만 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좋은만남교회 교회학교의 교사로 임명된 분들과 함께 하시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교육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은혜와 가르침을 나누겠습니다. 꼭 교사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니 지혜의 눈과 귀로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11절에서 ‘그분이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목사와 교사가 같은 레벨입니다. 레벨 레벨 하니까 좀 이상하지만 이런 경우 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목사와 교사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레벨에서 비슷한 사역을 감당하는 존재입니다. 즉 이 말을 교사도 목사와 마찬가지로 귀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상하게 위계질서가 생겨서 목사가 무슨 회장이나 사장이 되고 장로가 이사가 되고 교사나 총무는 말단직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도 목회자의 한 갈래입니다. 목사가 교회의 목회를 한다면 교사는 반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전반적인 교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면 교사는 피교육자, 학생, 어린이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교사들이 이런 정체성이 없다면 아마도 여러분들에게 교육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저처럼 교회 선생님들은 그저 그렇다고 회상할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구세주이기 전에 먼저 선생이었고 스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 선생님,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교사된 여러분들은 이제 목회적 사명을 받고 예수님의 길을 걷는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우리교회 교회학교는 감동을 주는 예배를 어린이들과 함께 드릴 수 있는 교회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말이 쉽지 어린이들을 감동시키는 예배를 디자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통해 교회 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이어받는 체험이 없다면 우리 교회학교 예배는 그저 수많은 어린이, 교회학교 예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인관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너무 미워서 그 사람을 저주하는 생각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계속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고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에 예수살기 전국총회 때에 그 사람도 온 것입니다. 더 불타는 분노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풀어지고 미움을 가지고 예배에 참여하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더군다나 예수살기를 한다는 사람이 미움에 감정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 옳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많이 차분해고 분노도 조금은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과 어떻게 했을까요? 네, 결국 화해는 안하고 그냥 얼굴도 안 보고 돌아서 나와버렸습니다만 그래도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내 마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면할 수 있게 하는 예배였습니다. 더 진도를 나갔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날의 그 감정만으로도 저는 감사합니다.

이런 예배, 어린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게 되고 자기 감정에 충실해지는 가운데 성숙하는 체험을 하는 예배가 마련되고 함께 드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회자로써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교회학교 예배가 너무 땜빵식이고 최소한의 형식만 갖췄고 고민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무슨 예배학적, 신학적 요건을 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시간에 눈 뜨는 어린이들이 없게, 찬송 부를 때 악쓰는 애들이 없게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배에 교사들의 고심의 흔적이 보이고 그 흔적으로 어린이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분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드리는 것 같고 쉽지 않은 주문인 것은 압니다만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하면서 마음을 모아 본다면 성령의 지혜가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는 당부는 좋은 선생님이 되시라는 것입니다. 아까 드린 말씀이지만 전 선생이라면 신물이 납니다. 물론 참 좋은, 지금도 아련하게 기억하는 좋은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이가 갈리게 하는 선생들이 더 많아서 좋은 선생님들을 기억할 겨를이 없습니다. 제가 좋은 선생님이 되라는 것은 최소한 상식적이고 인간적이길 바란다는 말입니다. 제 멋대로, 제 기준에 따라서 학생들을 재단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학생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 사이에 폭력행위가 많아서 사회적으로 문제입니다. 그건 애들이 갖는 성향도 있겠지만 여전히 교사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군대문화를 강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이라는 권력으로 학생들에게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행하면 학생들 사이에서도 나이로 학년으로 선배가 후배를 억압하고 폭력적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문화에 길들여졌으니 성장하면서 삶이 자연스럽게 폭력의 메커니즘에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사람들이 모여서 전쟁을 부추기고 어린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군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폐쇄적인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어렵게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바로 이와 같은 부조리에 맞서 싸우고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깨뜨리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 하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10년을 지내면서 여러분들의 삶이 조금씩 바뀌었을 것입니다. 제 아내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부분을 바꿔내지는 못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인 하나를 바꾸기 위해서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이 답답한 세상을 바꿔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 어린 시절부터 건전하고 상식적이며 평화와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 안에서 자라났다면 그들이 자라나서 이룬 세상은 어떻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청소년을 교육하는 것은 미래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들을 바꿔내는데 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진솔하게 친구처럼 사랑을 갖고 대해준다면 그 안에서 교감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먼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그 마음 속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아야 합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위험한 일인가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사들은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건 좋은만남교회 방현섭 목사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12-15절의 말씀입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사가 되는 길임을 여러분 마음 속에 확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생을 심하게 때린 교사를 해임시키라며 시위를 하였습니다. 학교측은 당연히 거절했고 강경하게 대응하였습니다. 급기야는 학생들의 분노가 폭력적으로 분출되어 학생들이 몽둥이를 들고 교무실에 난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사들이 다 자리를 피했는데 주임교사인 김선생은 교무실에 앉아 있다가 난동을 부리는 학생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네 이놈들!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와 난동이냐! 어찌 교무실까지 함부로 들어와 행패냐! 어서 썩 나가거라!” 이 말에 학생들이 잠시 움찔했으나 곧 김 선생에게 달려들어 마구 구타를 하였습니다. 그 순간 김 선생님은 얼른 두 손으로 자기의 눈을 가렸습니다. 한참을 맞고 학생들이 몰려간 후에 어깨를 흔들어대는 학생들의 손짓에도 김 선생님은 눈에서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 뒤 학교는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김 선생을 구태한 학생들은 자기들의 불경한 죄 때문에 고민하다가 교무실로 김 선생님을 찾아가 사죄했습니다. 김 선생는 “됐다, 됐어. 스스로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이 세상엔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김 선생님은 도리어 학생들을 칭찬하는 듯한 말로 아이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 왜 그렇게 한사코 눈을 가리고 계셨습니까?” “아, 그때. 나는 수양이 좀 부족한 사람이야. 만약 때리는 너희들의 얼굴을 본다면 내가 그 너희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될까봐. 너희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가린 거지.”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나가며 : 교육이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교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교사 사이의 불신도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학원이 학교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교육이 돈지랄로 변질되었고 교사와 학교 부모 사이에 끼어 이래저래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입니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아마도 지옥일 것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좋은만남교회의 교사로 임명된 여러분은 지옥을 천국으로 만드는 고귀하고 놀라우며 기적적인 사역을 위해 부름 받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는 여러분들의 사역과, 여러분들을 응원하시는 모든 교우들의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복되고 귀한 미래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기쁨으로 바라보는 복이 충만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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