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0.03.06 15:44

[깨어나십시오]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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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존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모든 신비가들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온 말입니다. 조건화된 자기가 때로는 통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런식으로 조건화되어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러고 보면 우리가 과연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을 만큼 전적으로 홀로 사는 삶을 산다는 것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모두가 온갖 일들로 서로 의존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도살자, 빵 굽는 이, 촛대장이 등에 의존해 살죠. 상호의존, 좋지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회를 이루어 모든 사람의 복리를 위해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기능을 맡기고, 그렇게 해서 기능을 더 잘 발휘하고 더 효율적으로 살고자 합니다. 적어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한다는 것 - 정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것 - 그것은 무얼 의미할까요? 그것은 내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면 그 다음에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은, 깨닫고 있든 그렇지 않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행복에 기여하기를 요구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 다음 단계는 두려움일 테죠. 상실의 두려움, 소외의 두려움, 거부의 두려움, 상호 견제.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요구가 없고, 기대가 없으며, 의존이 없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내 행복이 너에게 있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떠나려 해도 나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겁니다. 너와 함께 있기를 한없이 즐기지만 너에게 달라붙지는 않는 겁니다.  
내가 집착이 없는 바탕 위에서 그것을 즐기는 겁니다. 내가 진실로 즐기는 것은 네가 아닙니다. 너와 나 둘 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죠. 내가 발견한 어떤 것, 일종의 교향곡, 네가 있는 데서 한 선율을 연주하지만 네가 떠난다 해도 연주를 멈추지는 않는 그런 일종의 교향곡이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또 다른 곡을 연주하고 그 또한 매우 흥겨운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일 때도 연주를 계속하는 겁니다. 훌륭한 레퍼토리가 있고 결코 멈추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깨어남입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최면되어 있고 세뇌되어 있으며 잠들어 있다는 판단의 근거입니다. 묻기 끔찍해 보이지만, 네가 나에게 매달리고 나를 보내주지 않는데도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를 나대로 놓아주지 않는데도? 너의 행복을 위해 내가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필요하다면서도? 너의 행복을 위해 내가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필요하다면서도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성서, 모든 종교, 모든 신비가들의 보편적인 가르침에서 정면으로 벗어나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처럼 오랜 세월 그걸 모르고 살았을까?" 나는 거듭 자문합니다. "내가 그걸 몰랐다니 어찌 된 일일까?" 성서에서 그런 철저히 근본적인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의아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이 미쳤나? 그러나 잠시 후에는 다른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지 않고는, 가진 것을 버리지 않고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물리적인 포기가 아니라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쉬운 일입니다. 환상을 버릴 때 마침내 현실과 접촉하게 되고, 다시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다시는. 고독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써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과 접촉함으로써 치유됩니다. 오, 이에 대해 나는 말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현실과 접촉함, 환상을 떨쳐 버림. 무엇이라고 하든 이름은 없습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떨쳐 버림으로써 그걸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집착을 떨쳐 버릴 때, 의존을 떨쳐 버릴 때 고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향한 첫 단계는 그것을 바람직한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근처의 어디엔들 도달하겠어요?
여러분이 겪은 고독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고독이 사라집디까? 기분 전환에나 도움이 될 뿐이죠. 그 내면에는 공허가 있지 않아요? 그 공허가 표출될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달아나죠. 텔레비젼을 켜고ㅡ 라디오를 켜고, 책을 읽고, ;다른 동반자를 찾고, 오락이나 기분 전환거리를 찾죠. 모드들 그렇게 합니다. 오늘날 큰 사업, 한 조직화된 산업이 되어 있는 게 우리의 기분을 전환시키고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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