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성서본문 : 마가복음 3:1-6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들어가며 : 봄이 되면 생명을 푸르게 하고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피조문, 그리고 이 자리에 모여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나신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한없는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광주민중항쟁 30주년기념 연합예배에 동참하기 위해 전남 광주의 민주묘역에 다녀왔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다녀오셨는데 새벽 한 시쯤 돼서 귀가한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고 제가 괜한 고집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좀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불평 안 하시고 오히려 저에게 운전하느라고 고생했다고 해주시니 참 감사했습니다. 이 마음 영원히 변치 마십시오. 일산 동녘교회는 그 전날 내려가서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는데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광주에서 열리는 추모음악회까지 보고 와서 새벽 세 시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도 건강한 체력을 주시기를 구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여자가 늙었을 때 없어서 안 될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건강과 돈, 그리고 딸이랍니다. 남자가 늙었을 때에도 꼭 필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마누라, 둘째는 아내, 셋째는 와이프랍니다. 남자가 늙으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보이는 것이 아내라는데 동감이 갑니다. 아내에 대한 감정이 한 해 한 해가 다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게 사랑이라기보다는 공포, 두려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점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내이기도 하지만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도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 지위, 학력, 박사학위, 명예, 정의감 등등 여러 가지가 떠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옛날에는 돈을 장판 밑에 감추어 두었는데 집에 불이라도 나면 돈 찾아오려는 욕심에 불길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돈이 아무리 많은 들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경험이 늘어가며 많은 이들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건강해야 돈도 쓸 수 있고 여행도 다니고 자식들에게 부담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건강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 목숨입니다. 목에 숨이 붙어 있어야 건강도 누리고 돈도 씁니다. 아무리 명예가 높다고 해도 생명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16,26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고 하십니다. 누가복음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고 전합니다. 바로 자기 생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돈은 잃어버리면 다시 벌면 되고 건강은 잃으면 회복하기 위해 약도 먹고 운동도 할 수 있다지만 생명은 한 번 잃게 되면 결코 다시 회복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귀중함에 대해 구약은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명시하며 규정합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는데 그중에 특별히 피에 관한 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피를 먹지 말라고 하면서 17,14에서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어떤 생물의 피도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피는 곧 그 생물의 생명이니, 누구든지 피를 먹으면, 나의 백성에게서 끊어진다.’고 전합니다. 이와 유사한 말씀이 구약에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 규정이 명령하는 것은 단순히 피를 먹지 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사실은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니 함부로 살생하지 말고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라는 보다 근본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구하고 큰 뜻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것인 생명은 우리가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절실하면서도 또한 그 신앙적, 철학적 의미로 볼 때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생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귀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결코 다른 이에게 양도되거나 의존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상이나 성별, 빈부, 종교적 조건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은 어느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고 어느 누구의 생명이건간에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의 생명은 소중하지만 어느 누구의 것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4.19 혁명에서 경찰의 발포로 183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5.16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철권통치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다가 가두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5.18 광주민중항쟁에서는 공식적으로는 606명이 사망하고 65명이 실종, 376명이 상이 후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증언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그 숫자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최근에는 천안함이라는 해군 초계함에서 애꿎은 46명의 청년들이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지만 우리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5월만이 아닙니다.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생명이 파리목숨처럼 취급되는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 이처럼 유린되고 파괴되고 상처 받는 일이 없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니 한쪽 손이 오그라 든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손을 고쳐주시면서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한쪽 손이 오그라들었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습니다. 한쪽 손이 오그라든 것을 고친다고 해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한쪽 손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면서 살고 죽는 생명의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우리 코에 숨이 붙어 있는 것만이 살아있고 죽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숨을 쉬고 안 쉬고도 생명이 있고 없고의 기준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여건들이 어떠냐에 따라서 우리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거나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거나 하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밥 못 먹어 굶어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으로 내몰리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한쪽 손만 오그라 들어도 그 사람의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우리 몸 전체가 오그라드는 것 같은 일과 사건, 상황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는 돈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여건입니다. 삶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공급받으려면 최소한의 현찰이 있어야 합니다. 거주를 위해, 이동을 위해, 물을 한 컵 마시려고 해도 돈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많이 가진다는 것은 더 풍성한 생명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고 생명에 대한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한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가진 사람은 더욱 많이 가지고 없는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져 빼앗겨서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방지하고 돈이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라는 이름으로 이것을 장려하고 한쪽 부류의 사람에게 모아주려는 시도들이 있으니 이는 현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몸에 걸칠 수 있는 옷(의), 먹고 마시는 음식(식), 거주할 수 있는 처소(주)입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인간생존을 위해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음식을 사람에게 먹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택을 구입하는 비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데도 이를 막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건설사와 결탁을 하고 수십년 터를 닦고 살던 사람을 그 자리에서 쫓아냅니다. 교육과 의료는 결코 장사속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논리로 몰아갑니다. 돈이 없어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상업적 경쟁시쟁으로 끌어다 놓아 돈이 없으면 교육도 제대로 못 받게 해놓았습니다. 영원한 루저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적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의 생명 역시 하나님이 만드시고 귀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4대강은 지금 마구잡이로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강변에 터를 잡은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갔습니다. 신문에 나온 여주 부근 공사장에서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사진을 보고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습니다. 미물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은 또한 큰 생명체의 생명 또한 귀히 여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처럼 생명을 생명으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를 구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기독인의 의무일 것입니다.
나가며 :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 것인가 하는 것으로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이어진다 해도 살아 호흡하는 것은 희망이고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하나님께 선물 받았고 오늘까지 유지되도록 보호 받고 있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을 우리 삶의 기준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 모든 생명을 짓밟고 억압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력, 이게 바로 성서의 마귀인데 이런 세력에 대항하여 힘차게 싸우고 그들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사명일 것입니다. 오그라진 한쪽 손을 펴주심으로 생명을 참으로 누리게 하는 예수님의 능력이, 오늘날 오히려 온 몸과 영혼을 오그라들게 하는 악한 세력을 이겨 생명누리가 만들어지게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