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사고로 한반도가 시끄럽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초계함이 두 동강이 나서 침몰핬다니 시끄럽지 않을 수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어느 것 하나 군당국이 속 시원하게 공개하는 것이 없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 와중에 보수언론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느라고 혈안이 돼있다. 정확한 증거도 없이 이런 의혹을 부풀리는 것은 국제관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또 다른 도발이다.
어느 보수언론은 사설을 통해 만약 북한이 도발했다는 증거가 포착되면 그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통령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후 문맥을 따지지 않아도 이 말은 전쟁을 부추기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긴 한반도는 평화를 가장한 전시상태임이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장 타당한 규정이다. 남과 북, 엄밀하게 따져서 북과 미국을 위시한 유엔은 현재 정전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전쟁상태인데 전쟁을 부추긴다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것 같이만 보인다.
최근에는 미국의 개입설도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의 최초 설계자이자 분단 유지자의 역할을 하는 미국이 개입되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정확한 이유야 모르겠지만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말대로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가장 많이 가져온 주범이 미국이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국민은 상시적인 전쟁의 위기와 위협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제 좀 먹고 살만해졌는지, 아니면 미국산 무기를 많이 사다 쟁여놓아 자신감이 높아졌는지 전쟁을 쉽게 생각한다.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으로 국제 분쟁지역에 군대도 파견하고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서 군함도 아프리카에 보냈다. 세계에서 무기수입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 중 하나인지라 도무지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천안함 사태에 관한 보수언론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당장 전쟁을 벌여 북한놈들에게 뽄때를 보여주자는 댓글의 분위기가 월등하다. 전쟁의 피해를 60년간 고스란히 당했던 당사자들이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망각한 것인지 답답하다.
내가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는 전쟁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중한 개인적 역사,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의 개인적 역사를 한 순간에 무화(無化)시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수십 년을 사랑하며 살며 이룬 모든 업적과 삶의 궤적이 어느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 없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쉽게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역사라는 것이 무슨 거창하게 기록으로 남길만한 것만을 의미할 수는 없다. 기록되지 않고 후세에게 교육되지 않는 개인적 역사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당사자와 그와 관계 맺은 모든 이들에게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위대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지워버리는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고 믿는다.
이런 나의 신념을 잘 보여준 것이 지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오장군의 발톱’이다. 오장군의 발톱에는, 내 뇌리에 언제나 못된 교감선생님으로 남아 있는, 서울경기 예수살기 모임에 잘 참석하시는 권병길 선생이 출연한다. 그 인연으로 취미에 없는 연극을 보게 되었다. 오장군의 발톱은 극작가 박조열 씨의 대표작으로 1974년에 쓰여졌고 1988년에야 초연되었으며 백상예술대상 희곡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팜플렛에 보니 오장군의 발톱은 박조열 씨의 전쟁경험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그는 ‘오장군의 발톱을 쓰는 동안 줄곧, 그때 설악산의 상처투성이가 된 나무들과 은인인 전우들, 북한의 고향 마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외아들의 생존을 기원하셨을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희곡의 창작이 속죄와 위령의 행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장군의 발톱은 일견 전쟁, 군대와 자연, 인간의 상극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의도한 듯이 보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지극히 사적인 정념의 소산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연극이 여러분에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게 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연극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시골마을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네 처녀를 사랑하며 살고 있는 총각 오장군이 징집되어 군에 입대하고 전쟁터로 내몰리는데 그의 특유한 순박성으로 인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역정보공작임무에 투입되어 적군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끝내는 총살형을 당해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발톱은 군인이 전사하여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게 될 경우를 위해 머리카락과 손톱을 깎아 보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극중 오장군은 손톱과 더불어 발톱도 깎아 보관하였다.
연극은 내내 오장군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약혼자 꽃분이의 애절한 기다림과 그런 인간적인 정서를 무시로 일관하는 전쟁의 시스템을 때로는 코믹하게 또 때로는 절절하게 표현한다. 오장군의 아기를 배 배가 불룩한 꽃분이와 아들에 대한 기다림으로 점점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가는 어머니가 오장군의 발톱을 받아 안고 오열하는 것으로 연극은 끝이 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연극무대를 통해서 확인할 것을 권고한다(참고로 명동에 있는 H교회에서 왔다고 하면 입장료를 40% 할인해준다).
전쟁은 인간의 본연적인 감정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 감정마저도 전쟁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죽어가고 그저 그렇게 아파하도록 내팽개쳐질 뿐이다. 그것이 전쟁의 본성이다. 연극의 시대설정이 지금 오늘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감동이 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쟁으로 입게 되는 상처는 연극의 무대나 지금의 현실이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전쟁은 외형적으로는 이기고 지는 문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모두가 지는 것이다. 전쟁에 지는 경우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기는 경우라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실과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하면 동물의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이고 그때부터는 동물의 왕국의 논리만 남게 된다.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하는 좋은 연극이다.
오장군의 발톱은 4월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다. 천안함 사고로 떠들썩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발언들이 쉽게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시대에 꼭 한 번 봐야 할 연극으로 추천한다. 평화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