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감수하기
“누가 불타는 집에서 아이를 구할 수 있나요? 불길에 의해 상처 입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요. 누가 외로움과 절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나요? 자신의 마음에 비슷한 고통을 경험하는, 자신의 소중한 평화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요. 간단히 말해서 누가 고통에 빠지지 않고 아픔을 데려 갈 수 있습니까?”
-헨리 나우웬,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두란노, 2011
Taking the Risk
“Who can save a child from a burning house without taking the risk of being hurt by the flames? Who can listen to a story of loneliness and despair without taking the risk of experiencing similar pains in his own heart and even losing his precious peace of mind? In short: Who can take away suffering without entering it?”
-Henri J.M. Nouwen, The Wounded Healer: Ministry in Contemporary Society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책 제목처럼 치유를 위해서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애써 피하기도 합니다.
자주 선언하는 사랑을 봅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아픈 사람을 말하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더 자주 그 선언 속에 함께 하지는 않습니다. 그 선언은 자신의 도덕성을 들어내기 위한 수단일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또 어쩌면 이들은 착각하고 있을지도. 그렇게 자신은 말로써 충분히 다하고 있는 것이라.
세상의 아픔을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우웬의 충고처럼, 예수의 삶처럼 그것은 살아질 때 의미가 있고 그것을 통해 변화는 일어날 것입니다.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