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8일 오아시스 작성자: 두더지
세 번째 강의
세상의 미움을 받으신 예수
1. 1. 출생기
‘출생기’가 씌여지는 사람들은 무언가 기념비적인 인생을 살았거나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 그의 출생기는 가장 마지막에 씌여진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모두 알고 있는 이들이 그의 출생을 의미지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생기를 볼 때, 그것의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의미와 상징이 뜻하는 바 안에 출생과 인생이 축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 크리스찬들을 위해 씌여진 마태복음과 이방인 크리스찬들을 위해 써진 누가복음의 배경과 소재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출생을 어떻게 보느냐? 그의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와 연관되어 있기에 역사적 사실 여부보다 더욱 중요하다.
2. 사실과 진실
사실 fact과 진실 truth 의 사전적 차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사실이 있었던 일 그대로라고 하면 진실은 그 일이 가진 의미와 해석 역사적 맥락을 통칭하는 말이다. 실상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이 사실 자체로 기억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 아침 먹었던 소세지 반찬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소세지 반찬이 기억에 남지?에서부터 여러 질문과 기억과 그 때의 분위기에 의존한다. 객관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때부터 우리는 진실공방에 들어간다. 성서의 예수가 역사적인물일까? 진실로 역사적일 텐데, 사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신앙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사실보다는 진실에 가까운 것이 맞는 것 같다. 진실은 지금도 실재하니까.
3. 넘어지는 자, 일어서는 자
목이 곧은 자 넘어지리라, 넘어져 있는 자는 일어나리라. 이것이 바로 진정한 평등이요. 신앙의 원리이자, 다시 오실 분이 만들어 내는 천국의 본질 아닐까? 지금 시대의 이미 서있는 자는 누구인가? 넘어져 있는 자 누구일까?
4. 착한 부자?
착한 부자가 가능한가? 개인적인 차원의 성격적 착함만을 이야기 할 수 없는 복잡한 그물망의 세상 속에서 어느 누가 착할 수 있을까? 예저에 본 다큐에서 우리가 먹는 먹거리를 하나 하나 추적해 보니, 다른 누군가의 피땀과 피눈물이 스며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은 이 불의한 세상에서 당신이 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과연 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5. 편파적인 예수
예수는 편파적이다. 그 본질이 아니라 방법이. 당신은 어떠한가?
6. 십자가를 보지 말고 예수의 삶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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