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6.11.04 16:32

2016년 11월 6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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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립니다!  ■

1. 오늘은 왕국절 제11주일, 성령강림 후 제25주일 및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2. 공동식사 후 월동준비로 김장을 합니다. 많이 거들어 주십시오. 다음주일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3. 수요일에 성서대학이 가을학기 7강으로 열립니다.

4. 11월 넷째주일(27일)에 담임자 이취임과 관련된 인사구역회를 할 예정입니다. 일정 변경 시에는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5. 남기평, 이관택 목사님이 해외 회의참석을 마치고 돌아오셨고 임미화집사님도 해외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안주영 청년은 내일 돌아옵니다. 

6. 12월 18일(주일)에 안산분향소의 기도처를 방문하여 '세월호 기도회'를 우리교회 주관으로 할 예정입니다. 


[생일축하] 11월에 생일 맞으신 함희옥 집사님(4일, 음10/5), 최근규 청년(7일), 방정빈 학생(8일), 손주한 청년(14일), 김현수 어린이(16일), 장혁 청년(28일), 축하합니다!


■ 목회서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도덕, 윤리, 철학이 무시당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인간 생활과 관계의 기본이 되는 윤리와 도덕이 그런 처지가 되었을까요? 인간의 탐욕이 너무 과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돈(자본)이 최고인 세상에서 도덕이나 윤리 따위는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방해만 되기 때문에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아 버렸습니다.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 중에 '1:99'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대를 신자유주의시대라고 하는데 자유주의(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무슨 자유 평등 평화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시는 분이 많습니다만 사실은 자본주의, 보다 날카로워진 자본주의를 일컫는 말입니다)가 이익을 창출하는데 한계를 느끼면서 더욱 악랄한 착취도구들을 만들어 내면서 신자유주의시대에 접어들었고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상위 1%의 부자가 전체 자산의 99%를 소유하였다는 말이고 반대로는 하위 99%가 겨우 1%의 자산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성은 어디로 가고 동물의 왕국에서나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야만이 버젓이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어떤 존재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며 돈독이 오른 장사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억울한 면이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8-90년대 개발독재시대와 궤를 같이하면서 전투적 선교방식으로 성장한 것이 한국교회입니다. 이 과정에 기업에서 사용하는 마케팅 방식들이 많이 차용되었고 성장여부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증거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대형교회들은 거대한 건물을 배경으로 매주일 들어오는 헌금수입을 무기 삼아 여전히 기업적 마인드로 교회를 운영하고 부동산을 사들입니다.

그 교회들이 매주 설교하는 예수님은 지금의 모습을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에게 물질은 나눔을 위한 것이고 생존을 위한 도구입니다. 있는 대로 나누고 먹이셨습니다. 무슨 재단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사후에 쓸 기금을 마련하지도 않으셨습니다. 99%를 소유하고 있는 부귀와 재산을 가진 자들에게 경고하셨고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재물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을 위한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이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재물에 관한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가난이 덕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덕스럽지 못한 부의 확장과 재산의 배타적 소유 역시 칭찬 받을 일은 아닙니다. 부자가 도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올바른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

“삼총사, 독일에서 재회하다!”201061106_02.jpg

남기평 목사님이 총무로 일하시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주최, '독일 에큐메니컬 트레킹'에 참여하고자 안주영 청년, 이관택 목사님, 남기평 목사님이 각각 다른 나라를 경유해 독일로 출발하였는데 지난 주에 한 자리에 다 모이셨네요. 남 목사님은 바쁜 일정 소화하시고 어제 귀국하셨고 이 목사님도 뜻하지 않게 몸을 다쳐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셨습니다. 안주영 청년은 좀더 여행하시고 월요일에 돌아온답니다. 이번 행사는 통일 독일을 방문하여 평화의 감수성을 되새기고 종교개혁의 중심에서 루터의 정신을 통해 교회가 다시 한 번 부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교역자와 청년이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또 감사합니다. 


“작은교회 연합체육대회, 아쉽지만...”201061106_01.jpg

작년에 네 개의 작은교회가 만나서 즐겁게 체육대회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앰프 마이크를 사용한 걸로 나중에 장소 대여를 부탁하신 목사님이 좀 난처해지시긴 했습니다만 ㅋㅋㅋ 그랟 첫 모임으로 큰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도 매년 연합행사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연합체육대회를 해보자고 서로 연락을 하고 새로운 교회도 섭외하여 논의했습니다만 아쉽게도 일정이 맞지 안고 갑자기 추워진 관계로 결렬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의미있는 행사를  한 번 하고 중단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내년 5월 28일에 연합 야외예배로 추진하기로 우선 정하였습니다. 날 따뜻해지면 꼭 다시 만나기로 해요~


■ 교회와 사회  

오늘의 국정혼란사태, 교회는 책임 없나? | 방현섭 목사

201061106_04.jpg 온 나라가 최순실이라는 여자와 그 일가 때문에 시끄럽고 난리이다. 어쩌면 최순실이 모든 욕지거리를 혼자 듣는 것이 부당할지도 모르겠다. 이 일은 그의 부친 최태민으로부터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억울하다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독재자 박정희가 만든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그러나 이런 사태의 출발점에는 또다른 한 축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태민은 그동안 목사라고 불렸다. 개신교계는 최순실 사태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자 재빨리 최태민이 목사가 아니니 '목사' 호칭을 빼달라고 요청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가 대한예수교장로회(종합총희)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예장 종합총회 전기영 총회장이 최태민의 목사안수를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물론 최태민은 정식 신학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주술가였지만 당시 총회장이 권고하여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기사에는 "전 목사는 이어 

'종합총회는 교단법에 총회장이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며, '당시 총회가 가난해서 10만원 받고 목사 안수를 남발할 때였다'고 씁쓸한 미소를 내비쳤다"고 쓰여 있다. 한낱 박수무당에 지나지 않는 최태민에게 목사안수는 아마 무연고자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거나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았을 것이다. 

오늘의 사태에는 직간접적으로 개신교가 연루돼 있다. 독재자의 친미 개발정책과 궤를 같이 하며 예수의 길이 아닌 독재자의 길을 따른 개신교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개신교회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 그저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그동안 성장주의에 매몰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않고 다 찍어 먹고 그 속까지 다 썩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지 않는 한 개신교는 이 세대가 채 끝나기 전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개신교라면 차라리 사라지는 것이 세계평화를 위해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자조가 끝나기를 바란다.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아들의 책상 앞에 ‘미래의 택시기사 장세동’이라고 써 있다.

이것을 본 아빠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들이 대답했다.

“불친절한 택시 기사들이 많잖아요. 내가 나중에 진정한 서비스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줄 거에요.”

아빠는 웃으며 조용히 타일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옛날 김영삼 대통령은 중학교 때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었고,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니.

너도 이왕이면 큰 꿈을 가져 봐.”

며칠 뒤 아빠는 아들의 꿈이 크게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의 버스 기사 장세동’


아버지의 바람은 자리였지만 아들의 바람은 내용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통령의 자리에 앉았어도 대통령이 무엇을 위한 존재인가에 대한 이유를 모른다면 친절한 택시기사보다 못한 추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모르는 권력이 네 장래가 되어야 한다고 헛바람을 넣어준다면 그것은 자식을 망칠 뿐만 아니라 사회를 악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자식에게 다른 창문을 보여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행동합니다. 같이 길을 가더라도 농부는 논밭만 보이고, 신발장사는 지나가는 신발만 보이며, 목사는 건물에 십자가만 보입니다. 이 우주에 가득 찬 만물이 있지만 우리는 그 일부만 보고 살아갑니다. 

세상도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보입니다. 마음이 기쁘면 세상은 기쁘게 보이고, 슬프면 슬픈 만큼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슬픈 곳도, 괴로운 곳도 아닙니다.

고정된 창문으로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창문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고독이 밀려오고 슬픔이 문을 두드리며 절망이 내 영혼을 덮을 때 다른 창문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방법이 보이고 희망이 보일 것입니다.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죄와 함께 「자비를 자비를 구하는 외침」

오, 주님. 큰 스승 니느웨의 이사악이 말했습니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이 죽은 이를 일으키는 사람보다 훨씬 크다.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한 시간 울 수 있는 사람이 온 세상을 가르치는 사람보다 크다. 자신의 나약함을 아는 사람이 천사와 대면하는 사람보다 크다. 오, 주님.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저지른 범죄 행위에 갇혀 있는 것이 죄악으로 가득 한 제 진면목을 외면하는 수단이요, 죄악으로 가득 한 제 진면목을 외면하는 것은 당신 자비와 만남을 회피하는 수단임을 압니다. 당신 자비를 경험하지 못하면 저는 여전히 저의 죄에서 달아나는 것입니다.

오소서, 주님. 오시어 제 안의 불안과 근심, 두려움과 죄의식의 두꺼운 껍질을 부수어 저의 죄와 더불어 당신 자비를 보게 하소서.


집 옮기기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어떻게 하면 두려움과 증오와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 한복판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드리실 때 바로 이 물음에 답을 주셨다.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요한 17:15-16)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영성생활의 본질이다. 영성생활은 계속해 우리가 살 진짜 집은 증오와 폭력이 다스리는 두려움에 가득 찬 집이 아니라 하느님이 머무시는 사랑의 집임을 일깨운다.

불안과 두려움, 염려와 억지를 안팎으로 겪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세상이다. 어둠의 세력이 세상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우리는 도저히 그것을 피해 달아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 세력에 굴복하거나 머물지 않고 사랑의 집을 거처로 택할 수 있다. 이 선택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늘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 숨결로 숨 쉬고 살면서 수시로 해야 한다. 영성생활을 해나가면서 우리는 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 차츰 옮겨 간다.


손바닥 「열린 손으로」

겉모습을 아름답게 가꾸고 더럽거나 때 묻은 것은 어떻게든 감추고 조금이라도 단정해 보이는 길을 마련하여 그 길로 사랑하는 하느님을 모시고 싶어하는 자신을 자주 본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로 꾸민, 두려움으로 가득찬 응대 방식이다. 하느님을 그렇게 모시다가는 금방 지쳐 기도하는 것조차 귀찮아질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놓아버릴 때마다 팔을 뻗어 손을 펼치게 된다. 두 손을 활짝 펼쳐 하느님이 주시는 것을 취사선택하지 않고 모두 받을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 여행묵상 

혁명의 성지 모스크바 입성기(3) | 이관택 목사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이유는 세 가지였는데 첫째는 지긋지긋한 시차때문이요, 둘째는 내가 어제 갔던 아랫층바에서 새벽까지 심하고 찐하게 쿵짝였고(새벽5시까지... 이런!), 셋째는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 때문이었다. 영하를 밑도는 기온이라 바람이 매서웠는데 나는 왜 창문을 닫지 않았을까? 아마 이해 못할수 있다. 하지만 비오는 날 우산을 안가지고 집 밖에 나가면 잠시 당황은 할지라도 왠만해선 그냥 비 맞고 갈 길 가는 성향인지라. 

덕분에 일기도 쓰고 평화교회연구소 웹진글도 끄적일수 있어서 좋았다. 장시간 핸드폰에 글을 쓰려니 눈도 팔도 허리도 좀 아프지만. 


201061106_03.jpg 오늘 첫번째로 할일은 굼백화점에 가서 "모스크바패스"를 사는 것이다. 인터넷에도 블로깅이 거의 안된 걸로 봐서 아직 많이 안 알려진것 같은데 모스크바패스로는 시내의 모든 박물관과 성당이 무료인데다가 식당과 극장이 할인된다. 거기에 시티투어버스, 유람선까지 무료! 작년 파리여행때 뮤지엄패스를 요긴하게 썼던 기억이 있어서 무작정 사기로 했는데, 앞에도 언급했지만 많이 안 알려졌다는 건 재앙의 시작이었다. 요놈의 요망한 카드한장 때문에 오늘 멘붕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모른다. 


일단 가격부터 멘붕이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해보려고 시도하다 결제가 안 되어 포기. 발품 팔아 직접 굼백화점으로 사러간 것도 억울한데, 가서 보니 예상보다 비싼 것이었다. 모스크바패스 3일권이 인터넷가로는 할인 받아 54,000원이었고 여행책자에서도 정가가 78,000원으로 나와있는데 현지에선 84,600원을 받았다. 한국돈으로 하면 이게 뭐 그리 큰 차이라고 할련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긴 러시아. 계획에 없던 4,700루블이라는 거금을 요구받았고 얼마 없는 나의 현금이 다 털리는 상황이 아닌가. 더군다나 토요일 아침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야 하기에 당초 패스는 2일분만 필요한데, 3일권 밖에 없다고 해서 하루분의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사는 거란 말이다. 비록 우리 돈 7,000원 차이라지만 얼마나 속이 쓰렸겠는가. 이 돈에 대한 속쓰림은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 한켠을 짓눌렀고 머리까지 지끈하게 하였으며 급기야 저녁식사를 절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서러움) 

 하루 지나 돌아 보니 돈의 문제는 실제로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라기 보다 멘탈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서민들은 1억만 빚이 있어도 어떻게 갚을까 전전긍긍인데 천억대 빚이 있는 재벌들은 그 빚을 다 자기 재력인줄 안다고 하지 않나. 암튼 어제 저녁을 먹지 않아서인지 지금 계속 신호가 울려퍼진다. 꼬르륵 꼬르륵 


돈도 돈이었지만 가장 큰 멘붕은 씨티투어버스와 유람선에서 직원들이 이 패스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러시아가 처음이다 보니 당연히 안내하는 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있어 성경보다 더 믿고 싶은 진리의 말씀이었는데, 씨티투어버스의 직원은 "이 패스론 유람선을 못탄다. 이걸로는 버스도 한번밖에 못탄다."고 하고, 유람선 직원도 연신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 카드의 신통력을 의심하는 거다. 그때 알았다. 이 카드에 대한 정보가 왜 한국 블로그에 없었는 지를. 현지 가이드도, 제휴업체 직원들도 긴가민가하는 카드를 정가보다도 더 비싸게 주고 산것 같은 느낌적 느낌. 이 얼마나 불쾌하고 억울하고 불안했겠는가? 아마도 악동뮤지션의 음악이 없었다면 불쾌감은 상당시간 더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저러한 볼멘소리를 앞세웠지만 어제 하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멘붕의 실체를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알차게 보낸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시종일관 나의 멘탈을 지배했던 불쾌감과 불안감의 실체를 좀 더 자세히 추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하루 이틀에 되는 것도 아니고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할 질문과 고민이겠지만 아마도 이번 여행을 통해 작은 깨달음과 단초 몇개라도 얻을수 있기를.(계속)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자랑스럽던 조국이 한순간에 대통령이 무당에 놀아나고 외국의 비웃음을 사는 나라가 돼버려 국민들이 비통에 잠겼습니다. 무능한 대통령은 퇴진하고 주제 넘은 무당은 처벌받고 부정한 이익을 얻으려고 동조하였던 무리들은 패망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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