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1. 오늘은 부활절 제5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부활의 기적과 기쁨을 늘 체험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다음주일은 어린이주일로 지냅니다.
2. 오늘 오후에는 강화도 이필완 목사님 댁으로 농촌생태활동을 가겠습니다. 농작물 심기, 장작 패기를 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3. 다음주일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4. 이번주 수요성서대학은 휴강하겠습니다.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5. 사랑방의 전가족 심방표를 확인하시고 심방일정을 기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6. 5월 둘째 주일(13일)에 야외예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제안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는 역사적이고 사변적인 일이 한반도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나 다들 알아채셨겠지요. 바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그야말로 일촉즉발, 전쟁전야 같은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과 미국의 말폭탄 전쟁으로 정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머리에 지고 살아온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같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두 손을 꼭 맞잡고 또 부둥켜안으며 혈육의 정을 확인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습니다. 판문점이라는 제한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남한 땅을 밟은 것, 그것도 부부 함께! 게다가 남북의 통치자가 함께 나란히 서서 언론 발표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생방송으로 국민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두 정상이 처음 만나 악수하고 선을 넘나드는 모습을 본 국민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고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또한 판문점 선언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고위급 회담 개최, 민간교류와 협력 보장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 이산가족 상봉 행사, 서해 평화수역 보장, 불가침 합의 재확인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선물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된 올해 내에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입니다. 평화협정은 그동안 통일진영이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나 씨알도 안 먹히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풀린다는 사실에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 평화협정 이야기를 제외하면 2007년의 10.4 공동선언에 다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다 하기로 약속을 해놓은 것들이 왜 지켜지지 않았으며 11년이 지난 후에 다시 약속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수단체들은 집회를 열고 "남북정상회담은 위장 평화전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수정당의 대표는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 평화쇼에 불과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전쟁 위기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며 민족공영의 길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는 국민들이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흘린 눈물이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평화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우리 기독인들의 사명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위해 기도를 멈추지 말아 주십시오.
"안주영 청년의 앞길을 축복합니다”
안주영 청년이 지난 토요일에 김수연님과 혼례식을 하였습니다. 처음 하는 결혼이다 보니(^^) 좀 얼이 빠진 것 같았습니다만 턱시도를 차려 입은 모습은 참 멋졌습니다. 예식 중에 키스 타임에는 얼마나 찐~하게 하는지 다들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이 부부는 한달 가까이 유럽으로 신혼행여행을 다녀옵니다.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보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두 분의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윤성일 집사님 댁을 심방하였습니다”
광고한대로 올해에는 온가족 심방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는 윤성일 집사님 댁을 심방하였습니다. 윤성일 집사님과 박순용 집사님, 재민이와 박 집사님의 어머니 이정숙 권사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이정숙 권사님은 여든이 넘으신 연세인데 얼마전 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워낙 건강하시고 활달하신 분이라 회복도 빠르고 전혀 수술 받으신 분 같지 않아 놀랐습니다.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윤 집사님 퇴근시간 때문에 늦은 시간에 심방을 하게 되어 저녁식사를 따로 하고 가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권하셔서 저녁식사까지 잘 대접 받고 왔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윤 집사님 가정의 소원과 평안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아직 심방일정을 정하지 못하신 분이 많으신데 한 가정도 빠짐 없이 심방할 수 있도록 어서어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회성화를 위한 역사기억
1974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고 베트남 전쟁이 끝나다"
베트남 전쟁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 - 1954년) 이후 분단되었던 베트남에서 1955년 11월 1일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임과 동시에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 전쟁 양상을 띠었고,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는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캄보디아·라오스로 전선이 확대되어 국제전으로 치러졌다. 1964년 8월에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개입함으로써 국제전으로 확대되었고, 1965년에 미국, 대한민국 등이 지상군을 파병하였다. 이후 8년간의 전쟁 끝에 1973년 1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 그 해 3월 말까지 미군이 전부 철수하였고, 1975년 4월 30일에 사이공 함락으로 북베트남이 무력 통일을 이뤄 1976년에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 전쟁은 네이팜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고엽제 등 화학 무기 사용으로 대량의 민간인이 희생되어 미국 내 반전 운동을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제적 군사개입에 대한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세계대전 후 외세에 의해 분단된 대한민국은 베트남과 비슷한 전쟁을 1950년에 겪었으나 1953년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을 하여 여전히 전쟁 중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정전상태를 종식하고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기를 갈망한다. 좋
출처 : 위키피디아(https://ko.wikipedia.org)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다. 여행 중에 문제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래에 적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그들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다. 뺨을 맞았던 사람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다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 주었다.
늪에서 빠져 나왔을 때 이번에는 돌에 썼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 적었는데, 너를 구해준 후에는 왜 돌에다 적었지?”
친구는 대답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모래에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망각의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우리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꾸로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은혜는 물에 새겨 금방 잊어버리고, 마음에서 버려야 할 원수는 돌에 새겨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이지요. 은혜를 마음에 새기면 고마움이 남아 누구를 만나도 무슨 일을 만나도 즐겁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원수를 새기고 나면 그것은 괴로움의 뿌리를 내려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마음은 하나여서 은혜를 새기든 원수를 새기든 둘 중의 하나만 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돌아보고 마음 가득히 원수를 새기고 쓴 뿌리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은혜를 새기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지 돌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사는 동안에 마주할 수 있을 때 한 점의 부끄럼 없는 고운 인연으로 여운을 남길 줄 알고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제5장
예수 그리스도Ⅱ (3)
3. 예수 그리스도(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그리스도교의 정교한 대답은 가이샤라 빌립보 지역에서 베드로에 의하여 이루어진 고백이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마태복음 16:15-16) 예수님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시다. 말씀(Logos)으로서 선재(先在)하시다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다가 부활승천하심으로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시다.
세계화의 흐름으로 이 시대의 국가들은 단일민족 공동체에서 다민족 공동체로 변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도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주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이중문화 가정들이 늘어가면서 백의민족,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여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순수성보다는 다양성이 존중받고 있으며 순수성을 고집하는 것은 소수자들을 소외시킬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다문화 사회는 다종교의 상황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왔다. 이러한 신앙에 근거하여 다른 종교와 문화는 우상으로 규정하였으며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실제적으로 장로교 신학자인 박형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기독교의 이교에 대한 적정한 관계는 타협이 아니라 정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종교의 태도는 타협이 아니라 충돌이며 정복이다.” 더 나아가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것(정복)은 곧 기독교는 승리를 위하여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하려는 의도는 복음의 특징이다.”
박형룡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복음의 특징은 정복하려는 것이므로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와 문화를 예수의 이름으로 정복해야만 한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의 종교와 문화도 대화와 협력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정복의 대상임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1장)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진정한 한국 교회’를 3대 원칙 중의 하나로 규정하여 “한국 문화와 풍속에 조화되게 하고자” 노력하면서 한국 문화를 중시하는 신학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그러므로 한국 감리회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우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국 감리회의 ‘사회신경’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주임을 믿는다. 또한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하여 타 종교와 공동 노력한다.” 그러므로 감리교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자로서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고백하면서도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타 종교와 협력하면서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제6장
성령Ⅰ (1)
3.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완전하게 하시며 위안과 힘이 되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감리회 신앙고백 3조는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다. 성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고백되고,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신 분’으로 고백된다. 성령에 대한 이러한 고백은 성령 하나님의 독특성(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감리회의 교리적 선언도 3조에서 성령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지만, 감리회 신앙고백은 교리적 선언보다 웨슬리 신학적 요소를 추가하여 고백하고 있다. 즉,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완전하게 하시며”라는 고백이 교리적 선언에는 없는데 감리회 신앙고백은 추가하고 있다. 웨;슬리 신학에서 '거듭나게 하심'은 '신생'이며, '거룩하게 하심'은 '성화', '완전하게 하심'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리회 신앙고백 3조는 교리적 선언보다 웨슬리 신학적 요소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삽입하여 고백한다.(계속)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국민들의 기대 이상으로 화해와 상생의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시는 이 약속이 외면되거나 무시되는 일 없이 실현되어 평화로운 한반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정상회담을 발판으로 6월의 북미 정상회담도 성과 있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빕니다. 국민들이 흘린 감격의 눈물이 평화의 씨앗을 틔우게 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