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강의안
방현섭 목사(좋은만남교회)
Ⅰ. 개론
1. 야고보서의 성격
1) 불완전한 서신의 형식 : 1장 1절의 문안인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그러나 이 문구를 제외하고는 편지의 성격을 찾기 어렵다. 마지막에도 인사와 축복이 없다.
2) 윤리적인 교훈집 : 이인칭 명령형 동사
윤리적인 교훈집을 편지의 형태로 제시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체 108절 중 54개의 동사가 이인칭 명령형[너는(너희는) ~하라]이다. 윤리적 권고를 목적으로 한 문서이다.
3) 기독교적 설교라고 인정하기 어려움 : “지푸라기 서신”
기독교적인 복음의 선포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적 설교라고 하기도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오직 두 번(1:1, 2:1)만 사용되며 그나마도 중요하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원래 비기독교적인 문서였는데 나중에 에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삽입하여 기독교화시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런 비복음적 성격으로 인해 마틴 루터는 ‘지푸라기 서신’이락 혹평했다.
4) 유대교의 지혜문학과 유사 : 외경의 집회서와 지혜서
야고보서에 수록된 많고 다양한 교훈의 말씀이 이 서신의 가치이다. 교훈이나 도덕적 권면은 세계문학의 특징이다. 야고보서 저자는 공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 구약의 잠언, 그리스의 교훈 전승들의 유익한 교훈을 수집하여 기독교인의 생활을 지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서신이라기보다는 지혜문학에 더 가까우며 외경 가운에 집회서, 벤 사람의 지혜서와 비슷하고 평행본문도 많이 갖고 있다.
2. 저자
신약에 등장하는 야고보는 다섯 명이다. 세배대의 아들, 알패오의 아들, 주의 형제, 젊은 야고보, 유다의 아버지.
1) 주의 형제 야고보 설
① 전통적인 견해
②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③ 유대적 기독교의 대표
2) 익명의 기독교인 설
① 유창한 희랍어(그리이스어)
② 사도행전에 나타난 야고보와의 차이
③ 바울과 시간적으로 거리가 있는 신학
④ 정경화 과정에서의 반대
전통적으로는 주의 형제 야고보가 저자로 인식되었다. 이 야고보는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고 유대 기독교의 대표자였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만한 지위에 있었다. 그가 스테판 죽음 이후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향해 이 편지를 쓴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훌륭한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이 토종 유대인의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 사도행전에 나타난 엄격한 유대주의자 야고보의 모습과는 달리 자유의 율법을 말하는 등 일치하지 않는 점, 믿음과 행함의 논의는 바울의 시대로부터 시간적으로 상당히 떨어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주의 형제의 글임에도 서방교회에서 상당히 오랜 동안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되었던 점 등이 전통적인 견해를 반대한다. 만약 주의 형제 야고보의 글일 경우에는 저작시기가 40-60년 경이 된다.(야고보는 62년에 사망 추정)
3. 기록시기
1) 주의 형제 야고보 설 : 주후 40~60년경
2) 익명의 기독교인 : 1세기 말경
학자들은 익명의 기독교인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많음
4. 내용
야고보서는 잠언서 등 여타 지혜서와 마찬가지로 단편적인 윤리적 교훈들을 수집해 놓은 문서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몇 단락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편적인 교훈들의 수집입니다. 그럼에도 각 구절들은 독립적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전후의 문맥을 고려하여 편집되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말씀을 대할 때 은혜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1:1 인사
1:2-8 믿음과 지혜
1:9-11 낮은 형제, 부한 자
1:12-18 시험을 견뎌낸 자
1:19-27 말씀을 들음과 행함
2:1-13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14-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함으로이지 믿음으로만이 아니다. 바울의 ‘신앙의인(信仰義認)’ 교리에 대한 공격처럼 보임.
3:1-12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3:13-18 위로부터 난 지혜
4:1-10 세상과 벗하지 말라
4:11-12 서로 비방하지 말라
4:13-17 허탄한 생각을 경고하다
5:1-6 부한 자에게 주는 경고
5:7-20 인내와 기도
Ⅱ. 야고보서의 교훈
1. 믿음과 행함의 문제(2:14-26)
1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18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19 그대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20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23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24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25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내보내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6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
혹평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실천의 종교, 행함의 신앙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이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여러 교훈 중에서도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압도적이다. 하나님 앞에 흠없는 완전한 종교는 선행과 성결로 요약된다. 바울의 칭의 교리는 야고보의 행함의 교훈으로 보충된다. 마태복음 7:21의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는 구절과 비슷하다.
바울은 주로 이방인 독자들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야고보나 마태는 이미 예수를 믿는 신자들, 그것도 유대교에 익숙한 기독교 신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교회 안에서의 빈부의 문제(2:1-9, 5:1-6)
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2 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 하고 말하면, 4 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1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2 여러분의 재물은 썩고, 여러분의 옷들은 좀먹었습니다. 3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그 녹은 장차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될 것이요, 불과 같이 여러분의 살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습니다. 4 보십시오, 여러분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꾼들의 아우성소리가 전능하신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5 여러분은 이 땅 위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으며, 살육의 날에 마음을 살찌게 하였습니다. 6 여러분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기독교가 막스 베버의 청교도 윤리 해석에 따라 자본주의와 접목되면서 부를 복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것이 부끄러운 것, 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논리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그런 근대적인 자본주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이미 빈부에 따른 차별이 있었고 빈부에 의해 신앙의 수준도 평가되기 마련이었다. 예수의 사역이 빈민, 병으로 인한 빈곤층 등과 밀접하게 연계된 것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복음서에서 양과 염소로 구분하는 이야기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에 근거하고 있다(마 25:31-46).
유력자, 부자가 교회 안에서 돈을 많이 쓰고 헌금하며 또 그만한 존경과 지위를 얻는 것은 감사할 일이기는 하지만 정당한 일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모임이며 재산의 다소로 구분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신을 놓칠 때에 한국교회는 오류에 빠진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오류가 혼돈으로 나타난 시대이다. 야고보의 정신을 제대로 살려야 할 때이다.
3. 태만한 죄의 문제(4:15-17)
15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16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
야고보의 독특한 죄에 대한 정의이다. 예수의 큰 두 계명은 ‘하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은 명령형이다. 야고보는 단순히 범법죄만 아니라 태만죄도 강조하고 있으며 예수의 정신에 더 가깝다. 죄에 대한 이런 정의는 자연스럽게 행함에 대한 강조와 이어진다.
4. 참된 ‘성화(聖化)’로의 초대
참된 성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감리교회는 성화를 신앙의 완성으로 본다. 성스러운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 신앙의 최종목적으로 설정한다. 참된 성화라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답게 되는 것! 예수감동! 그것은 말과 삶이, 머리와 가슴이 동일하게 응답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만’으로는 부족하다. 행함이 따르는 믿음, 믿음에 의한 행함이 진정한 성화의 길이다. 감리교회, 웨슬리의 정신이 야고보의 정신과 매우 일치하는 점이 많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자유롭게 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기꺼이 하는 삶의 선택을 하는 것이 참된 성화의 첫발걸음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