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은 현재 ‘철거중’ : 폭력과 해방이 공존하는 공간
글: 이관택 전도사
혹시 당신이 “철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철거’는 매우 부정적인 느낌을 동반한다. 실상 단어 자체에 원래부터 내재해 있는 느낌이 있겠냐마는 나에게는 철거가 마치 휘발성 액체와 같이 구토감을 스멀거리게 하는 거북한 단어로 인식된다.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단어들이 한 두 개쯤은 있는 법. 나에게는 ‘철거’가 그렇다.
그 단어가 나의 삶 속에 뛰어 들어온 것은 아마도 1999년 즈음일 것이다.(그 이전으로 내려가면 상당히 추측에 의거한 부분이지만 어린 시절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지역인 지축동에서의 기억이 철거와 연결되기도 한다.) 대학 입학 후 봉천동에 있는 작은 공부방에서 자원교사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을 통해 나는 ‘철거’라는 단어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철거’가 곧 ‘새로운 것이 생김’을 의미하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나의 것이 사라짐’을 의미하였는데, 불행하게도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후자에 속하였다. 철거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림을 의미한다. 친구도, 가족도, 인간성도, 자존심도, 정의도, 도덕도, 사랑도, 평화도 ... 나에게 익숙한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짐을 의미한다. 특히나 가난하고 소외되고, 열악한 상황 속에 있는 이들에겐 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수십 군데에서 철거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철거공화국이다. 실상 1960년 이후 단 하루도 아파트 건설을 멈춘 적이 없는 한국사회에서 역으로 생각해 보면 철거 중이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발사업, 뉴타운, 토지개발, 택지개발, 신축아파트 건설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만큼의 ‘철거’과정을 동반할 터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철거공화국’이라는 별칭이 붙어있을 만큼 수없이 많은 철거가 이뤄지는 대한민국의 ‘철거기술’은 실상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건물을 신속히 부수는 기술은 그 동안 많이 늘었을지 모르지만, 철거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을 아우르는 기술은 진정 턱없이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이는 철거 과정 중에 발생되는 사회분열과 갈등현상에 속수무책일 뿐 아니라, 소비되는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며, 효율성도, 합리성도 그다지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들도 수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철거투쟁에 접근하는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실종’을 경험한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어떤 이(특히 세입자)들은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기본적인 사유 재산권 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이것은 철저히 정부의 무능력 탓인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무능력은 ‘철거’에 대한 편향된 시선과 부유한 이들(자본)과의 이권결탁 등 다양한 요인들이 그 핵심을 구성하는데, 아무튼 그 결과는 쫓아내는 이들과 쫒겨나는 이들의 참혹한 싸움으로 나타난다.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참사도 그러한 반민주적이고, 무능력한 정부 때문에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의 명동, ‘카페 마리 공간’을 중심으로 한 명동 제3구역 철거투쟁은 국가적 폭력과 정부의 무능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철거투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동안의 철거 투쟁이 생존권, 주거권 투쟁에 머물렀다면 “명동해방전선”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명동 마리를 중심으로 이뤄진 철거투쟁은 새로운 대안운동, 민주주의 운동, 문화운동, 생활운동, 학생운동 등이 결합된 공동체 성격의 운동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곳에서도 용역깡패들이 시시때때로 출몰하여 철거민들에게 폭력을 일삼아 상해를 입히고, 집기를 때려 부수는 사건은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랐다. 명동 마리에서는 거의 매일 철거민 뿐 아니라, 일반시민, 대학생, 특히 중고등학생들까지 모여 강연회를 열기도 하고, 음악제를 열기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철거투쟁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하여 언론에 알리기도 하였고, 어떤 이들은 영상제작으로 함께 하였다. 지난 여름 그 뜨거운 무더위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명동 마리를 다녀갔다. 그곳은 단지 ‘강제철거’의 부당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이 발전하는 현상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제 시민운동의 진화는 직접적인 폭력 앞에 굴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동의 철거투쟁을 통해 알 수 있다.
정부와 자본은 아직도 구태의연하고 무능력한 방식으로 ‘철거’를 진행 중이지만 그에 대항하는 민중들은 오히려 창의적이고, 더욱 진화된 방식으로 ‘철거’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명동해방전선의 투쟁은 지난 2009년 용산참사와 2010년 홍대 두리반 철거투쟁을 거치면서 점점 형성되어 온 것을 알 수있다. 죽음과 승리,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며, 국가와 자본의 절대적인 폭력 앞에서 쓰러지지 않는 법, 아니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폭력을 종결(철거) 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 지금 명동에서 진행 중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알고 있다. 구태의연한 무능력으로 똘똘 뭉친 국가와 자본은 철거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지난 2011년 9월 7일 명동 제3구역 철거민들은 시행사와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투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는 그 뜨거운 여름의 땀과 눈물들, 철거민들의 수고와 여러 함께 해준 모든 이들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끝난 것은 아니다. 명동 3구역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명동 2,4구역은 이제부터 새로운 철거투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3구역 타결과정에서 2,4구역 철거민들과의 갈등, 철거민과 연대하는 활동가들과의 소통부재가 작지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철거의 사전적인 뜻은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건축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누구의 ‘의도’인가일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명동의 철거투쟁은 폭력과 해방이 이상스럽게도 공존하고 있다. 폭력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 폭력에 대항하는 창조적인 투쟁이 새로운 해방공간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폭력으로 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삶의 지향점이 단숨에 바뀌어 버리는 ‘구원’과 같은 해방이다.
현재 강제철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민국과 같은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철거의 문제는 끝이 없는 길과 같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내가 내딛는 한 걸음이 중요할 것이다. 끝은 보이지 않지만 어디를 딛어야 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제퇴거금지법’ 등이 제정되어 구조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도 중요하고, 지금 직접적인 폭력 앞에 일촉즉발의 위기를 당하고 있는 명동 2,4구역 철거민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에 대한 기도제목을 놓치지 않고 항상 깨어 기도하며, 나의 선택을 훗날로 미뤄놓고나, 방관하지 않으며, 지금 당장 내딛는 나의 발걸음을 단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것이 해방을 이루는 길이며, 구원의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동행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