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자유'의 달]
인간에게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적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려 투쟁한 역사가 있으며 영혼의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잃어버린 참된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부활절 제2주일입니다. 부활의 희망과 믿음으로 매일을 새롭게 승리하는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우려하는 정부의 시책에 부응하여 주일예배를 예배당에서 드리지 않으니 가정에서 경건하게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3. 코로나19 감염 확진자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강력한 거리 두기 완화를 앞두고 있어 다음주일(26일)에는 시범적으로 예배당에 모일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확정된 내용은 주중에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4. 교회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건강상태나 특별히 기도할 일이 있으신 분은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 등으로 담임목사에게 꼭 알려주십시오.
목회서신
우리의 신앙은 진보하고 있습니까?
지난 한 주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목회자들이 그동안 한 달이 넘게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교우들 가정에 방문하였습니다. 다들 마음고생은 많으시겠지만 제가 찾았던 가정들은 특별한 어려움을 겪으시는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이 방문한 가정도 사정은 다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단지 지금 경제활동이 축소되고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자영업을 하거나 임시고용직에 종사하는 몇몇 가정, 학생들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기도로 응원하는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이 끝까지 잘 견디고 인내하게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또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우들은 정치적 관심도 많고 사회적 참여와 실천이 신앙과 중요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니 다들 투표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선거 결과가 매우 놀랍습니다. 중도개혁 성향으로 볼 수 있는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이라 할 수 있는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이 전체의 1/3이 넘는 183석을 차지하였습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의 한 가운데서 열린 선거였지만 투표율도 근 30년 만에 최고치인 66.2%로 높았습니다. 거대 양당이 의석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소수정당이 궤멸된 부정적 측면이 마음에 걸리지만 국민이 문재인 대통령의 안정적 후반기 집권을 옹위하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정치평론가들은 해석합니다. 민주당은 압승에 도취되어 오만했던 과거 열린우리당이 겪은 뼈아픈 실책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한껏 몸을 낮추고 코로나19 사태의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복기하면서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를 대혼란에 빠뜨리는 코로나19는 이전에도 여러 가지 모습과 여러 다른 이름으로 인류를 괴롭혔고 많은 사람을 비탄에 빠뜨렸습니다. 때로는 흑사병으로, 때로는 메르스로, 때로는 사스로 혹은 광우병으로. 또 어느 시대에는 정신적 바이러스가 전 인류를 광기어린 전쟁이나 대결로 떠밀었고요. 정치적 현상 역시 전 세계적으로 수구와 개혁의 갈등과 대결에서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였고 한국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처럼 개혁 세력의 압승 역시 처음 겪는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역사적 반복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였고 무엇을 배웠으며 미래에 또다시 닥칠 위기의 반복을 대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김없이 닥쳐오는 비슷비슷한 위협 앞에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면 인류에게 미래와 진보는 없을 것입니다. 점점 좁혀지는 주기로 인류에 다가오는 위협을 겪으면서 우리는 보다 효과적이고 보다 치밀하며 보다 나은 매뉴얼들을 만들어 왔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과연 어떨까요? 위기와 시련 앞에 당당히 마주 서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대안들을 만들고 새로운 시도들을 고민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역사 가운데서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고집한다면 교회는 도태되고 소멸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진보 없는 쳇바퀴에 지나지 않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쳇바퀴를 도는 것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퇴보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은 연수만큼 진보하고 성장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여전히 똑같은 신앙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변화하는 세계에 맞는 고백으로 내면을 확장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한 걸음이라도 뗄 용기가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회가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따라 정상화 되기 바랍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포함하여 총 300석 중 180석을 얻어 개헌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한 반면 미래통합당은 103석
(미래한국당 포함)을 얻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검찰총장의 거취를 언급하거나 국가보안법 철폐를 거론하여 야당의 원성을 샀고 통합당은 민심을 확인하고도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도 선거결과에 나타난 여론을 믿고 소신껏 권력행사할 것을 요구하거나 여당의 독주를 우려하는 의견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여당은 겸손하게 국민의 위임을 실행하되 묵은 악법을 효과적으로 청산하여야 할 것이고 야당은 국정 발목잡기를 중단하고 국가회복에 협력해야 합니다. 이제 국회는 여야를 떠나 국민이 바라는 국가를 만드는 과업에 충실히 임해야 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선거를 통해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민심이 드러났습니다. 여당은 오만하지 않으면서도 꼭 해야 할 적폐청산과 경제회복을 이행하고 야당은 선거에 승복하여 국정 발목잡기를 중단하기 바랍니다. 헛된 정쟁을 멈추고 국민이 주인되고 인권을 보장하는 올바른 국회의 모습이 회복되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는 오늘 또 다시 4월의 봄을 마주합니다. 당신께서 본래 우리에게 허락하신 봄은 부활의 봄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뚫고 움튼 생명의 신비를 기쁨으로 마주하는 창조의 봄입니다. 그렇습니다. 절망과 고통에 움츠렸던 이들이 다시 서는 봄이야말로 당신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은혜의 봄입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 우리가 마주한 것은 눈물의 봄이었습니다. 304명의 생명이 하릴없이 별이 되어버린 그 날. 비통함과 황망함으로 울부짖었던 통곡의 봄을 기억합니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맘몬만을 쫓으며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다는 자성의 마음이 이어진 것도 잠시, 대한민국은 이내 모든 진실을 은폐·왜곡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오히려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힐난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도 져버린 야만의 봄이었습니다. 그 야만의 대열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있었습니다. 목사와 성도들이 발 벗고 나서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힐난했던 봄. 기독교의 사랑이 이토록 가볍고 이기적이던가요. 참으로 부끄러운 봄이었습니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변한 게 없는 봄입니다.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공소시효가 끝나가는 시점이지만 진상규명은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가리워진 우리들의 눈도 마땅히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몸부림치는 동안 우리는 망각의 봄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6주기 추모주간을 앞두고 쏟아져 나온 막말을 듣고 있노라면, 난도질 되고 찢겨져나간 추모현수막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절망의 봄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그럼에도 우리는 당신이 보여주실 진정한 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지난 6년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우리의 걸음걸음마다, 어두운 길목이지만 희미한 불빛이나마 의지하며 서로의 손을 맞잡은 순간순간마다 당신이 함께하셨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작지만 꾸준히 이어져온 연대의 봄, 동행의 봄 가운데 언제나 함께 해주셨던 것처럼, 이 봄 당신께서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부활의 봄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얼어붙은 땅에 따스한 봄소식으로 불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보리여. 여래는 참말을 하는 자요 알찬 말을 하는 자요 한결같은 말을 하는 자요 속이는 말을 하지 않는 자요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다.
須菩提여. 如來는 是眞語者요 實語者요 如語者요 不誑語者요 不異語者니라.
----------------------------------------------
“참(眞)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고, 알참(實)은 허虛하지 않은 것이고, 같음(如)은 이치에 맞는 것이고, 속이지 않은(不誑)은 헛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르지 않은(不異)은 처음부터 나중까지 한결같은 것이다. 성인의 마음은 틀림이 없으니 그러므로 마땅히 그대로 수행할 일이다.”(謝靈運)
속에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 말이다. 그 말이 속생각과 느낌에 일치되면 참말(眞語)이다. 일치되지 않으면 속이는 말(誑語)이요 다른 말(異語)이다. 예수님이 그런 것은 그렇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라 하신 것은 참말을 하라는 말씀이시다. 그 밖의 말이 모두 악에서 나온 것인 까닭은 속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
수보리여. 여래가 법을 얻었으니 이 법은 차 있지도 않고 비어 있지도 않다.
須菩提여. 如來가 所得法이니 此法은 無實無虛니라.
----------------------------------------------
“차 있지 않다는 것은 법의 체體가 공적空寂하여 상相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덕性德이 있어서 그것을 쓰는 데 끝이 없다. 그래서 비어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六祖)
“차 있음(實)을 말하고자 하면 상相으로 얻을 수 없고, 그 비어 있음(虛)을 말하고자 하면 써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있으면서 있지 않고 없으면서 없지 않다. 말 가지고 미칠 수 없는 것이 다만 참된 지혜(眞智)로구나. 상相을 떠나서 수행하지 않으면 여기에 이를 수 없다.”(李文會)
진공묘유眞空妙有인데, 진공에서 묘유가 나오는 게 아니라 진공이 묘유요 묘유가 진공이라는 말이다. 사람 입이 두 개라면 동시에 한 입으로 진공을 말하고 다른 입으로 묘유를 말할 수 있을 터이나 입이 한 개라서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자기가 본 것은 본 대로 말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 환영받지 못하고 결국 무일푼이 되어 수도원에 가서 자신을 받아들라고 애원했다. 수도원장은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정직한 사람은 자신은 언제나 본 대로 말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수도원장은 그에게 말했다. “저런! 모든 사람들이 당신처럼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바로 당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 이 수도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원장은 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편, 수도원에는 쓸모가 없는 가축이 몇 마리 있었다. 수도원장은 가축을 처분해 버리고 싶었지만 아랫사람들이 가축 판돈을 써 버릴까 봐 팔지 못하고 있었다. 수도원장은 정직한 사람을 불러 당나귀 두 마리와 노새 한 마리를 주면서 시장에 가서 팔아오라고 시켰다.
정직한 사람은 가축을 끌고 시장에 가서 살 사람을 기다렸다. 이윽고 한 사람이 와서 물었다. “이 당나귀는 왜 꼬리가 짧습니까? 그리고 저 당나귀는 왜 털이 많이 빠졌지요?”
정직한 사람은 솔직하게 말했다. “꼬리가 잘린 당나귀는 무척 게을러서 흙탕물에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일꾼들이 흙탕물에 끌고 가서 꼬리를 끊어버렸답니다. 그리고 털이 빠진 이유는 하도 고집이 세서 끌다 보니 빠진 것이랍니다. 그리고 저 노새는 늙고 절룩거립니다.”
사러온 손님은 혀를 차며 물었다. “그렇다면 이 짐승들은 사도 일을 할 수 없으니 소용이 없겠군요?”
정직한 사람은 솔직하게 말했다. “만약 쓸모가 있다면 왜 수도원장이 이것을 팔려고 내 놓았겠어요”
이 말을 들은 손님들은 모두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결국 저녁 무렵이 되어 팔리지 않은 당나귀와 노새를 끌고 수도원을 돌아왔다.
수도원장이 가축이 팔리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정직한 사람이 대답했다. “많은 사람이 가축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축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기에 그저 사실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이 가축들이 좋다고 했다면 이미 팔렸겠지요.”
이 말을 들은 수도원장은 화를 내며 말했다. “사람들이 자네를 왜 내쫓는지 이제야 알겠구먼!”
결국 정직한 사람은 수도원에서마저 쫓겨나고 말았다.
어린 아이때부터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웁니다. 정직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 생활 속에는 정직보다는 거짓이 더 이익이 되는 것을 알아챕니다. 왜그렇습니까? 신뢰와 존경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회는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이익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정직보다는 자기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바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사는 일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까?
거짓뉴스가 판을 치는 정치판에서 진실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치가 거짓을 정직한 것으로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정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우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봄날에
김용택
바림 부는 풀밭을 보세요
나비가 날아요
강물이 소리쳐요
나를 믿어요
당신을 믿어요
굳게 디딘 땅을 믿어요
봄처럼 이겨요
봄처럼 함께 일어나요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아요
어제와 다른 오늘이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오세요
아침을 여는 저 물굽이 같이
먼동 트는 새벽 빛 그 고운 물살로
굽이치며 달려오세요
--------------------
봄은 신비하다
와서 잠자던 땅을 깨우더니
새싹을 내게 한다
마침내
나무를 간지럽혀 꽃을 피게 한다
봄이 오면
모든 것을 바꾼다
믿음을 현실로 지어간다
볼 것이 많은 봄이다
코로나 19로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고통은 늘 희망을 부른다
삶의 방식의 전환이다
자기다움을 갖고
우리를 지향하는 삶이다
인류 구원의 길도 여기에 있다
- 가재울에서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