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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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

성경 ; 열왕기상 19,15-18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16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출신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18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
 

들어가며 : 생명과 평화이신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실 줄로 믿으며 유혹과 위기를 이기는 큰 용기와 능력을 채워주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우리 안에 겨우내 묵었던 찌든 때와 찌꺼기들을 봄햇살과 함께 말끔하게 날려버리기 바랍니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감각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자극은 더욱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게 길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 이외에는 반응을 하지 못하고 무뎌지게 됩니다. 이것이 매너리즘입니다. 신앙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매너리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당연한 것으로 아는 것, 신앙적으로더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들만 좇아다니는 것,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 바로 신앙적 매너리즘입니다. 추위는 우리의 감각을 무뎌지게 하지만 따스한 햇살과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의 향기는 우리의 감각을 예민해지게 하고 감동스럽게 합니다. 이제 우리에도 신앙의 봄을 맞아 깨어나고 예민해지고 또 활기차게 되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구약성서에서 엘리야라고 하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선지자인지 마술사인지 모를 정도로 기적 같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점화를 할 때면 으레 ‘엘리야의 하나님’을 외치게 하는데 그러면 까만 밤하늘 사이로 불덩어리 솜뭉치가 내려와 장작더미를 순식간에 불기둥으로 만듭니다. 그만큼 엘리야는 성도들의 기억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남아있습니다.

엘리야하면 무엇보다도 갈멜산에서 바알 제사장 450명과 벌인 극적인 제사경연대회가 압권입니다. 바알 제사장들이 온갖 쌩쑈와 자해를 하면서 불을 내려달라고 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하나님께 불을 내려 달라고 하니 물을 부어 다 척척하게 젖은 장작더미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불이 붙어 타버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 자리에서 엘리야는 백성들과 함께 바알 제사장들을 살육하였습니다. 바야흐로 하나님의 선지자가 대승을 거두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이 납니다. 이 한 번의 놀랄만한 사건으로 전세가 역전돼 우상숭배의 풍속을 사라지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다시 회복될 것을 기대했고 엘리야가 신앙의 영웅으로 추앙될 줄 알았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아합의 왕비인 이세벨에게 협박을 받고는 무서워 떨며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는 초라한 신세가 됩니다. 그가 생각해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고 맥이 빠졌나봅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루 종일 헤매다가 ‘이젠 더 바랄 것도 없으니 나 좀 죽여주십시오’할 정도로 상심하였습니다.

의식이 왔다갔다하는 엘리야에게 한 천사가 나타나 그를 깨우며 과자와 물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우며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어나서 먹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40일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몇 가지를 지시하시고 장차 일어날 일을 알려주시면서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텐데 그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입을 맞추지도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항상 그 이후의 일을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성서를 아무리 찾아봐도 엘리야가 남겨진 칠천 명을 만나서 조직을 만들고 무슨 신앙개혁운동을 했다는 말은 없다. 그냥 단지 그런 사람이 칠천 명 있다는 애기일 뿐이고 그렇게 끝납니다. 엘리야의 이야기는 열왕기하로 넘어가서 초반에 승천하는 것으로 매듭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당시 칠천이면 적은 수가 아닙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바알숭배를 거부하고 버티고 있다는 것은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혼자가 아니라 동지가 있으며 그것도 칠천 명이나 있다는 말이니 말만으로도 각오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며칠 전 일이 있어서 오전에 버스를 타고 나올 때 있었던 일입니다. 책을 펴들고 읽고 있었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어떤 여자분의 음성이 들려왔고 방현섭 목사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습니다. 보나마나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겠지만 요즘 돈이 궁한지라 무슨 설명인지 들어보겠다고 했더니 00카드사에서 목회자를 위한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니 가입해 사용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성분은 이 카드가 주는 혜택에 대해서 구구절절 열거를 하는데 특히 항공사와 제휴해서 마일리지를 타사에 비해 많이 적립해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해외여행 자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카드가 이미 너무 많아 연회비 등이 부담돼서 새로운 카드는 쓸 일이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제 말을 듣고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을 들면서 하나님이 충만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지배하라고 했는데 목회자들도 너무 딱딱하게 살 필요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목회에 지친 몸과 마음을 해외여행을 하면서 사모와 함께 풀 수 있는 기회를 이제는 누리면서 살고 그렇게 목회를 하라는 충고까지 곁들여 하더군요. 솔직히 기가 찼는데 버스 안이라 일일이 말대꾸하면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도 없는지라 다시 거절하면서 목사가 청렴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게 살 능력도 없다고 다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일반 사람들 사는 수준 보다도 훨씬 못하게 살고 있지만 전혀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목회하면서 지낸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그 여자분이 잠시 말을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약간 울먹하는 목소리로 내 말을 듣고는 가슴이 찡하게 저려온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지금 신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생활이 전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생계를 위해서 창세기 말씀을 들면서 누리고 사시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자기 역시 목회자가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분은 이런 마케팅 일이 아니라 얘기를 하고 싶어서 나중에 다시 전화 하겠다며 전화를 끊을 때까지 계속 울먹거리면서 아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오후에 다시 그 여자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여전히 상기돼 있었습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오늘 저와 통화를 한 후에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속에 계속 저와 통화한 내용이 생각나 결국 집으로 돌아와 성경을 보려고 앉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우리가 읽은 열왕기상 19장 말씀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 말씀을 들려주려고 한참을 여기저기 뒤적거리면서 찾았다며, 목사 앞에서 성경구절을 드는 것이 건방져 보이지만 저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은 이 말씀을 저에게 들려주면서 ‘목사님, 힘내세요! 앞에서는 깨끗한 척하나 뒤에서는 물질로 다투고 좋지 못한 모습 보이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모습 보면서 눈물 많이 흘리며 기도했었는데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이 제게도 얼마나 큰 위로와 감사가 되는지 모릅니다. 꼭 한국교회의 큰 목회자가 돼주세요.’하고 말하였습니다. 좀 당황스러웠습니다만 아무튼 감사하고 큰 위로와 힘이 되었으며 당신 같은 분이 아직 있다는 사실에 저 자신도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하며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바른 신앙 지키고 그 신앙 따라 바르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모두가 다 대형교회, 성도 많은 교회 목사만 목사로 생각하고 그런 목회를 성공한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적 능력이 곧 영적 능력이라는 천박한 우상숭배, 바알숭배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풍조에 대해 비판하고 신앙을 회복하라고 외쳐보았자 오히려 ‘능력도 없어 쪼끄만 교회나 근근이 하는 실패한 운동권 목사’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저만이 아닙니다. 아마 좋은만남교회 다니는 성도들도 조그만 교회에 다니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정도로밖에 안 봐줄 것입니다. 초록가게니 지역사회 책읽기 사업이니 이웃 봉사니 뭐니 하는 것들도 다 구질구질한 일로밖에 안 봐줄 것입니다. 정말 맥 빠지죠. 그냥 눈 한번 질끈 감고 우리도 성령 받아라 찬양하고 은혜와 복 받아라, 복 주세요 하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기복적 신앙, 복을 빌고 은혜를 갈구하는 그런 목회하고 그런 교회가 된다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물질주의에 무릎 꿇지 않은, 기복적 신앙에 항복하지 않은 성도 칠천 명을 남겨 놓았다! 그러니 절망하지 말아라. 너와 같이 신앙의 정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칠천 명이나 남겨져 있다. 그들도 무릎 꿇지 않고 있다. 힘 내라!”

 

나가며 : 우리가 바르게 신앙하고 신앙대로 살려고 분투하며 무릎 꿇지 않을 때 우리의 모습이 어떤 이에게는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의 모습으로 비쳐 위로와 용기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지쳐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은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겁니다. 세상의 교회가 다 물량주의, 기복주의에 빠진다 해도 우리는 예수님 보여주신 신앙의 지조를 지키겠다는 분명한 고백으로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이 되고 또 칠천을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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