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갈라디아서 6,8-10
8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9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들어가며 : 겨울이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미 불어온 봄바람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봄바람도 우리의 마음으로 불어옵니다. 봄바람과 함께 성령의 바람, 성령의 호흡이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생명을 충만하게 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며칠 전 탤런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가에는 트롯 가수가 또 자살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성상납과 술접대에 대한 고민으로, 한 사람은 사업실패로 인한 자금압박으로 자살을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그처럼 허무하게 생명을 포기하는 일을 보니 무척 난감합니다. 어찌됐든 고인이 된 영혼이 안식하기를 바라고 그 가족이 위로를 받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생명을 포기하는 심령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이 나라가 사람 살만한 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들어가서 ; 오늘은 속회개강예배로 드립니다. 해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속회를 조직하고 출발해보지만 운영이 생각처럼 쉽지 않고 우리에게도 끈기가 별로 없습니다. 속회원도 별로 없고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하다 보니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에도 어김없이 새출발을 합니다. 매년하는 행사가 아니라 이번에는 꼭 속회의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되기를 희망하며 속회개강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1. 예배는 함께 해야 하며 속회는 가장 친밀한 예배가 가능합니다.
연전에 설교했던 내용인데 예배 본다, 드린다, 한다 중에서 어떤 것이 맞다고 했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하나님의 주도권, 인간의 참여가 잘 어우러진 예배를 잘 표현한 것이 바로 ‘예배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공동체적인 전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유선방송으로 앉아서 보는 것은 결코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은 물론 교우들과 함께 친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마칠 즈음에 반갑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친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백, 수천 명이 모여 드리는 대형교회 예배는 친교성이 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옆에 앉은 것이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이름도 잘 알지 못하면서 드리는 예배는 그런 의미에서 유선방송이나 인터넷으로 구경하는 예배와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예배의 예식에만 참여하는 것이지 깊은 의미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속회입니다. 요즘은 셀이니 순이니 밴드니 하면서 작은 규모의 소그룹으로 만나는 모임이 유행입니다. 형식적인 예배에 지친 이들이 함께 만나 말씀을 나누고 깊은 인간적이고 영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 그들은 말 그대로 신앙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속회는 여러분의 신앙성장이나 교회의 성숙을 위해 매우 중요한 모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속회를 통해 좋은 만남을 갖고 신앙의 동지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속회는 성령에다가 심는 사람의 예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그 관계는 대부분 어떤 이익과 목적을 갖고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라는 것이 대부분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입니다. 나쁘게는 이용가치가 있어서 만나는 관계나 혹은 육체적 정신적 쾌락을 위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성공을 위한 만남이나 혹은 위로받기 위한 만남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만남은 대부분 허무하게 끝납니다. 인간관계가 좋아봐야 십년 이십년입니다. 사랑도 식고, 성공의 끝에는 추락이 있고, 위로 받고 싶은 조건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대로 보면 썩을 것을 거두게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속회는 인간적인 관계도 쌓지만 진리를 놓고 그 안에서 나누는 교제이기 때문에 영생을 거두는 모임인 것입니다. 세속의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비,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교제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그 열매는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가치가 바로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속회를 통해 성령에다가 영생을 심고 거두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속회는 위로와 격려는 주는 예배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겁니다’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서로 이런 말로 격려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믿는 일처럼 선한 일이 없고 예수님 따르는 일처럼 낙심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날개가 있는 것은 추락하기 마련이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이 일상사이라지만 예수님 따르는 일은 반드시 때가 되어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로와 격려가 나누어지는 모임이 바로 속회입니다.
또 속회는 서로에게 진심어린 비판과 충고를 통해 새 힘을 얻게 하는 예배입니다. 초기 감리교회 시절에는 속회에 직고라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이 순서에는 자신이 한 주간 지냈던 일을 숨김 없이 다 고백하면서 충고와 격려를 구하였습니다. 사람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비판과 충고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자기에게 불이익이 오게 될까봐 절대 충고나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충고와 비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되더군요. 우리의 속회도 이런 진심과 사랑, 자비와 정직이 있는 속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속회를 통해 큰 위로와 격려를 얻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4. 믿음의 식구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기회를 얻는 속회가 되십시오.
바울은 말씀을 맺으면서 기회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요즘은 선한 일을 좀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와서 손이 심하게 다쳐 치료도 못 받았으니 돈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돈을 줄 수는 없습니다. 돈 몇 푼 주는 것이 속 편하지만 술을 사 마신다거나 건강에 좋지 않은 일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옷 두어 벌을 주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어떤 구걸하는 부부를 보았는데 플랫폼에서 돈을 세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서있고 남편은 고무튜브에 하반신을 끼고 바닥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지하철에 나서 보니 남편이 심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뒤틀면서 앞으로 나아가며 구걸하였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에 솔직히 웃음이 픽하고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선뜻 동전 한 닢이라도 그 앞에 내밀지는 못하겠더군요. 왠지 사기 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수입이 나보다도 더 많겠더군요. 몇 푼 아까워서 하는 제 핑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선한 일, 작은 자선을 베푸는 일도 쉽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믿음의 식구들에게도 선한 일을 하고 진심으로 대접을 하고 섬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간에 왕래도 별로 없고 교회에서 형식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다인 듯합니다. 속회는 믿음의 식구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 대접을 하고 섬기는 기회입니다.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여 대접하고, 좋은 선물을 나누고, 아름다운 말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속회를 통해 믿음의 식구들을 섬기고 그 섬김으로 또한 이웃을 섬기는 귀한 기회를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나가며 : 속회는 예배입니다. 형식은 기도회이지만 그 내용은 예배입니다. 단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우들을 만나려고 할 때 말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믿음의 식구들을 배려할 때 위로와 격려를 얻게 될 것이고 영원히 썩지 않는 귀한 가치들, 영생의 가치들을 누리게 될 것이고, 선한 일로 섬기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2009년에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속회가 진정 작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친교와 영성수련의 장이 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