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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아들 예수, 나와 우리 

성서본문(1) : 마가복음 14,36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  

성서본문(2) : 신명기 32,6

6 어리석은 백성아, 이 미련한 민족아,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께 이처럼 갚느냐? 그는 너희를 지으신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희를 만드시고 일으키신 분이 아니시냐?
 

들어가며 :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항상 기쁨의 잔치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남녀노소, 왼갖 잡놈들까지 모두 그 주위에 모여 함께 먹고 마시며 떠들며 이야기하고 눈물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잔치 자리는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희망을 품고 새 힘을 얻어 떠나는 새 삶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거지새끼라고 놀림 받던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은 천국의 주인이며 배부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자에서 일어났으며 거짓말 못해서 항상 당하기만 하면서 살던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잔치자리를 떠났습니다. 싸움을 싫어해서 항상 손해보고 항상 매를 맞던 사람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임을 확신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신 잔치의 기쁨이요 능력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 잔치를 즐기기 위해 어제부터 이 자리에 나와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잔치를 파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우리 한 가운데 계시며 이천 년 전의 그 잔치판이 바로 이 자리에서 벌어졌다고 말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과 보여주신 삶으로, 그리고 그런 갈망을 갖고 이 자리에 나와 함께 잔치를 즐겼던 사랑하는 교우들로 인해, 우리도 새 힘을 얻고 새 삶을 사는 출발점이 되는 기쁨의 잔치를 다 누리셨기를 바랍니다. 기쁨의 잔치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에게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무지개꿈!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좋은만남교회의 여름 수련회 주제입니다. 원래는 오늘 어떤 교회에서 북한 어린이 우유보내기 협약행사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안해도 됐었는데 갑자기 취소가 되었고 내 설교 순서가 된 바람에 설교 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 주 동안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준비를 하는데 이 전도사님이 이번 수련회 주제가 무지개꿈이며 주일설교는 폐회예배나 다름없으니 그와 관련된 주제로 설교를 준비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무지개꿈에 대해서 뭔가 설명을 해주는데 솔직히 머리에 쏙 들어오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그걸로 설교까지 하라니, 머리가 아팠습니다. 무지개꿈인지, 무지 개꿈인지가 나를 힘들게 했네요. 한 여름밤의 무지 개꿈이라고 하면 딱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지 개꿈을 꾸게 하기 위해 여러 모로 애쓰시고 준비하신 분들께 박수를 드립시다. 이제 예배를 마치면 1박2일의 모든 순서가 다 끝나게 되는 여러분들은 무지 개꿈이 아니라 무지개 꿈을 품고 돌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약성서학자들은 마가복음이 복음서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여럿 있는데 여기서 그걸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마가복음이 예수님 사후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실제적인 기억, 현실적 추억들이 그나마 가장 많이 남아있을 것,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교리화가 가장 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떠나시고 40년이나 뒤에 쓰여졌으니까 기억이 남아있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이겠지만 그래도 다른 책들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관심 있게 읽어보았습니다. 그래도 다른 책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과장이나 교리화가 비교적 덜 된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언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가졌다고 증언하는가, 초기의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언제부터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하는 관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초기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도들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장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는데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증언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시점에 분명하게 예수님이 아들이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반응은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아들로 삼아주셨다면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나를 아들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했을 텐데 마가복음은 의외의 증언을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진작에 선언하셨고, 귀신들도 예수님만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떠들어대는데 정작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상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것은 8,38에 가서야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면서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라고 겨우 나옵니다. 그나마도 자신을 애매모호한 표현인 인자로 부르면서 적당히 어색하게 아버지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나마라도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아버지-아들 관계가 인정된 것이 기쁘셨는지 하나님은 다시 변화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선포를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이상하지요?

그리고 그 이후에 딱 한 번 더 나오는데 그것이 오늘 읽은 본문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서는 하나님을 ‘아빠(아바), 아버지’라고 비로소 마주 부르면서 고난의 잔을 거두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제대로 부른 것이 딱 한 번 나옵니다. 참 이상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달달 외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알고 있는데 초기 기독교 역사에선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참으로 어려워했다, 꺼렸다, 조심했다, 아꼈다 등등,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건 잘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지 숙제로 내드릴 테니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그럴듯한 대답을 찾아보세요.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하시는 분께 상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홍길동이 비록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지만 자기 아버지임을 알았고 또 자기는 그의 아들임을 분명히 알았던 것처럼, 예수님 자신도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주 부르지 않았고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색한 아들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예수님 자신은 그에 대해서는 분명했습니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왔고 그 능력으로 병든 이들, 아픈 이들을 고쳤으며 그 명령으로 십자가에 기꺼이 오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도 오늘날 확신 갖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을 읽다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보다 먼저 사람들을, 주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먼저 형제, 자매,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3,31 이하를 보면 예수님을 찾으러 온 가족들을 냉대하면서 오히려 함께 앉아 말씀을 나누고 위로해 주시고 또 그 말씀에 위로와 격려를 받던 그 사람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전에 먼저 이웃, 따르던 이들, 민중,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이들을 형제 자매로 불렀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아버지-아들 관계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자매의 관계가 제대로 서야 하는 것을 의미하면서 또한 예수님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 제자들, 따르는 이들, 바로 나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예수님과 형제 자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버지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한국의 요지경 출생비밀 드라마를 질문하는 것 아니니 쉽게 말씀해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요.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이들, 삶의 힘겨운 투쟁으로 지친 이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받아들임으로 그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입니까, 여기에 계신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입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으로부터 생명 받은 이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이들입니까! 이 복음의 선포를 마음에 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무지개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나가며 : 무지개 꿈은 나 하나 잘 났다는 생각이 아니라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피조물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꾸어지는 꿈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서로 간의 인정과 용납이 있을 때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각자의 색깔을 빛내며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나만 잘 났고 나만 잘 되면 되고 나만 소중하고 나만 특별하고 나만 옳다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경쟁하고 서로를 짖밟지 못해서 안달을 합니다. 무지 개꿈을 꾸고 그 꿈을 안 꾸면 큰일 나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경제규모나 교육수준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진 삶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지개가 아니라 태양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드러내는 삶의 방식을 따라 살 때 마녀로 정죄하고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흑백논리가 판치며 분열과 분단이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세계가 다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사회를 회복하고 인간사회를 바로 세우는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 예수님이 그렇게도 아끼고 형제, 자매가 되기를 원하셨던 존재라는 자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것을 깨닫고 우리가 그런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지개 꿈을 꾸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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