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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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617일 성령강림절후 제3주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희망의 상자

이관택

 

본문: 로마서 5:1-5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4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판도라의 상자 그리고 희망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기 판도라의 상자가 있습니다. 과연 이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이 판도라의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조금 익숙 하실텐데,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 그 영화에서 가리키는 프로메테우스가 바로 그리스 신화의 신입니다. 이 두 형제는 그리스 신인데, 형인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신의 영역에 있었던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전해 줍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월등한 능력을 갖게 됩니다.

제우스 신은 이것이 진짜 못마땅했습니다. 이 후 제우스 신은 여자를 만드는데, 그 여인의 이름이 판도라였습니다. 판도라는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신들은 그 여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온갖 선물을 주었습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선물로 주었고, 아테나는 방직기술을 주었고, 헤르메스는 말솜씨, 아폴론은 음악적 능력을 판도라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우스 신은 판도라에게 어떤 능력이 아니라, ‘상자를 하나 주었습니다. 이 상자를 판도라에게 주면서 제우스는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아예 주지 말던가, 주면서 열어보지 말라니요! 이것이 바로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어봤을까요? 안 열어봤을까요? 그 후에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 신과 결혼하여 아주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이 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결국 판도라는 상자를 열고 맙니다. 그 때 상자 안에는 온갖 욕심, 질투, 시기 등 갖가지 재앙과 악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상자를 빠져나와 평화로웠던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절망스럽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겁이 난 판도라는 후회하면서 급하게 상자를 닫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상자를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지금도 희망을 간직한 채 굳게 닫혀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흔히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절망의 세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불안해합니다. 현재 유럽에서는 여러 나라들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고 있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의 소식은 끊이질 않고 오히려 더해만 갑니다. 지난 주간에도 한 아름다운 젊은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뿐입니까? 노동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일가족들이 벌써 22명이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생떼 같은 목숨을 잃고 있는데, 벌써 50명 넘게 난치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심지어 이들의 죽음은 산업재해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비리와 반목, 죽음과 살인, 경쟁과 거짓이 우리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일상 가운데 희망의 빛줄기가 보입니까?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안한 삶 가운데, 너무나 절망적이고, 무력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때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면서 열등감에 빠지고, 때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힘들어하면서, 그들을 비난하고, 또 다시 좌절하게 됩니다. 도무지 희망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자화상입니다.

 

하지만 좀 전에 살펴본 그리스 신화는 우리에게 희망은 각 자가 가지고 있는 상자 속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모두다 그 상자를 열어보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데, 분명히 희망은 가장 확실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렸어도 희망만큼은 확실히 각 자의 상자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망이 바로 희망입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희망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과 제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여지고, 이를 바탕으로 희망의 근거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옆 사람 보시면서 인사합니다.

당신이 희망입니다.”

    

 

바울이 이야기 하는 희망 

 

오늘의 말씀을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의 말씀 자체가 하나의 설교이기 때문에 말씀의 의미들을 생각하시면서 들으시길 바랍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4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대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울의 살해위협을 피해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다윗처럼, 지금 바울은 너무나 초연하게 로마의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서,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다. 당시 온갖 종교와 정치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감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은혜가운데,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로마교인들에겐 평화가 아닌데, 바울은 그것이 평화라는 겁니다. 지금 앉아있는 그 자리가 바로 은혜의 자리입니다. 바울은 지금 고난의 자리를 은혜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가치로 어떻게 판단되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지금 조금 고생스럽고, 힘겨워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여지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는 길이 다릅니다. 넓은 길, 죽음의 길, 탐욕의 길로 가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좁은 길, 생명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과 부귀영화를 소망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 또한 소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이 소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합니다.

 

당시의 로마는 로마제국의 심장부 아닙니까? 로마라는 엄청난 도시에서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희망은 무엇입니까? 힘으로 더 많은 나라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물질을 모으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잔인한 검투사 경기가 성행하고, 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것들이 그들의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자랑하는 이 희망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나의 문제로 받아 안는 것입니다. 당시의 로마와 지금의 서울은 어찌보면 너무나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이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까? 자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환난도 자랑합니다

                      

바울은 한술 더 떠서 더욱 놀라운 말을 합니다. 3절에 보니까 우리의 희망을 자랑하는 것을 넘어서 환난까지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당하는 환란과 시련은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지난주에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첫 번째 속성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오래 참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 바로 사랑은 인내에서 시작됩니다. 결국 사랑은 환난 가운데 생겨납니다.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비바람을 맞지 않은 열매가 어디에 있으며, 고난이 없는 십자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진정한 사랑은 바로 시련을 먹고 자랍니다. 오래 참는다. 시련이 주는 인내력입니다. 인내력은 곧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갈대와 같은 인스턴트식 사랑이 창궐한 지금, 서로를 참아주는 것이 없는 관계의 사랑은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니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도, 가족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참아주지 못하면서 서로를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 서로를 참아주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합니까? 환난은 우리에게 더욱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꾸준하게, 줄기차게 말입니다.

바울은 두 번째로 환난 가운데 생겨난 인내력은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킨다고 합니다. 인격이 단련된다는 것은 인격이 성숙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한다는 말입니다. 성숙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유연해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난과 시련에 참는 것을 넘어서서 유연해지는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적과의 싸움에서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고, 해학적으로 무마시켜 버립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말은 바로 융통성과 유연함이 없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전 예전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여름 장마비에 모기들이 왜 안 죽을까? 신기해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무게의 몇 배나 되는 빗방울이 물대포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데, 어떻게 날라 다닐까 궁금했는데, 비결은 바로 중국 태극권의 원리라더군요. 태극권이 내 힘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 안고 그 힘을 그대로 튕겨내는 것이라 하는데, 모기는 빗방울에 맞으면 빗방울과 함께 그대로 땅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빗방울에서 다른 빗방울로 옮겨 다닌다고 합니다. 빗방울에 저항하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빗방울을 의지하여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희망은 바로 이런 단계를 거쳐 나타납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는 것이 희망입니다. 한줌도 안 되는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에게 당시 전 세계를 호령햇던 로마제국이 무너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환난을 자랑으로 여기는 자세, 오래 참고, 신앙을 성숙시켜 결국 희망을 만들었던 그들의 신앙여정 앞에 그 거대한 로마제국도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바울은 쐐기를 박는 말씀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5절에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다른 희망들은 우리를 실망시킬지라도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마음 한 가운데,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를 부여잡고 가는 희망은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로마서 824절에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희망이 안보여! 라고 절망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고 바라는 일입니다. 마땅히 구하는 행복이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구하지 않은 행복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손길을 희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부디 우리가 갖고 있는 희망의 상자를 여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것으로만 이 상자는 열수 있습니다. 이 상자 안에 분명한 희망이 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일까? 기대하면서 오늘도 신실하게 참고, 성숙하고,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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