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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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서, 역사, 일상과 자연


본문 : 마태복음 16:1-4
1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자기들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녁 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겠구나' 하고, 3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남겨 두고 떠나가셨다.


들어가며 : 때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 우리가 어리석어 미처 깨닫지 못할 때에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베푸시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크신 은혜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행한 사고로 한국의 고3 학생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천국과 지옥 앞에 있는 문지기 앞에 도착했는데, 문지기가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야, 너는 평가가 애매한데, 지금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가고 싶어?” 그러자 고3 학생이 뭐라고 얘기 했을까요? “어디가 미달인데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이 이처럼 힘겨운 일이라는 현실입니다.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의 삶이 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는 이게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천국과 지옥 앞에서, 근본적으로는 우리 삶의 바름에 대해 자신이 없어 눈치를 봐야 하는 신앙이 되지 않도록 우리 지금 이 자리에서 보다 열심히 보다 예수님을 닮는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것입니다. 훗날 꼭 거기서 만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들어가서 : 목회를 시작하면서 제가 무척 의기소침했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드렸지요? 성령 받고 뭔가 체험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세미나에도 다니고 했었다고요. 세미나와 함께 제가 당시에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도제목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뭔가 색다르다고 느끼는 체험을 하고는 곧바로 하나님께 내 삶을 바치겠다, 목사가 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때늦은 반 년 동안의 시험공부, 첫해에 맛본 실패, 그리고 다시 시작한 한 해 동안의 공부와 입학 후에 달려간 4년의 학부와 2년의 대학원 등등 정말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공부하는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사람이 무려 7년 반을 쉬지 않고 공부했네요. 대학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장학금도 받고 대학원은 수석으로 입학하기도 했고 책도 많이 보았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마음에 확신이 넘치지는 않았습니다.
살면서 뭔가 큰 어려움을 겪고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경우에는 뭔가 확실한 것이 있다지만 모태신앙인 저의 경우에는 당연하지만 뭔가 2% 부족한 것이 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더군요. 아버지가 목사인 친구 목사도 역시 그런 뭔가 부족한 2%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자신의 목회가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놓고 기도하느냐 물었더니 역시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하더군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우리 삶이 뭔가 분명하게 달라질 계기가 되고 또 흔들림 없이 꼭 붙잡고 앞으로 나아갈 근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삶에 큰 고비를 넘기면서 은혜를 체험하는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고 또 확신의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달라고 뜨겁게 기도했던 제가, 그리고 제 친구 목사가 과연 응답을 받았을까요, 못 받았을까요?
저는 목회하면서 또 요즘 신경증적으로 많이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갖고 있는 함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사회적 병리상태이다 보니 어떤 소리를 듣는 이들이 많습니다. 환청이라고 하죠. 또 뭔가에 대해서 골똘하게 몰입하다보면 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또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무의식의 강렬한 욕망이 만들어내는 작용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깨닫게 됩니다.
솔직히 신경 쓰고 몰두하면 들립니다. 아니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던 전화가 있을 때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요즘처럼 휴대전화를 많이 사용하는 때에는 내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환청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자신의 탐욕, 알 수 없고 근거 없는 확신 등을 어떤 신적인 현상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환청이 들리는 상황에 신경이 예민한 경우에는 환상까지 더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특별한 작업으로써 환상이나 음성을 무조건 부인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신비로운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적은 빈도로 그런 신비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내가 신비를 경험하는 경우는 로또에 맞을 확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은혜와 신비의 체험이 로또의 확률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또 그것이 신앙을 지탱해주는 근거나 혹은 확신의 근거가 된다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독특한 것이 되고 얼마나 독특한 사람들만이 믿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돼버릴까 하는 두려운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계시에 관한 것입니다. 계시라는 단어를 교회는, 특히 신비적인 신앙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참으로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계시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적인 어떤 것을 보게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입신이나 환상, 이상 같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는 사실 그런 것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시를 표시하는 영어 revealation은 ‘드러내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종종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계시에서 중요한 것이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어떤 존재로부터 음성을 듣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그 음성이 하는 말의 내용이겠습니까! 음성이 들렸다 하더라도 그 음성의 내용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간 사회를 깨뜨리고 불화를 조성하고 평화를 훼손하는 공포스러운 것이라면 그 음성이 들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음성이 직접 들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러 방법을 통해서 세상을 사랑 넘치는 곳으로, 정의가 세워지는 곳으로 평화가 나누어 지는 곳으로 만드는 가르침을 얻도록 한다면 그것이 계시가 아니어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2천년 교회역사는 계시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어떤 특별한 체험에 국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역시 성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하나님이 손수 그 섭리와 원칙에 따라 만드신 자연의 법칙 또한 하나님의 계시 중 하나로 자연계시라고 인정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하면서 철야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이미 분명하게 보여주신 계시인 성서를 열심히 읽고 깊이 묵상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을 보면서, 또 자연 안에 깃든 생명력을 보면서 하나님의 오묘한 뜻,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배워야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건 하나님을 믿건 믿지 않건 또 얼마나 깊이 믿건 간에 그저 생명에 대한 경외감만 있다면 어느 누구도 깨달아 알 수 있는 가르침이니 그 얼마나 감사하고 또 쉬우며 또 폭넓습니까!
여기에 더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삶의 궤적, 즉 역사입니다. 역사란 우연처럼 보이지만 매 순간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단과 섭리가 녹아서 오늘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의 흐름에는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성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습니다.
요즘 감리교회 사태가 좀 진정되는가 싶더니만 다시 복잡해졌습니다. 감독회장을 일단 뽑자고 선거준비를 시작했는데 일각에서는(저와 가까운 분들이고 제가 동의하는 분들입니다) ‘4년 동안의 혼란이 전혀 정리되지 않았고 4년 전에 문제가 발생한 것도 완전히 똑같은 상황인데 그저 선거만 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선거중지가처분 신청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정황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왜 세상법정에 송사하냐,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한다,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내려놓고 그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야 맞는 것 같지만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그냥 땅에 뚝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매번 하나님을 기꺼이 따르는 이들의 결단과 헌신이 동력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관철시키게 됩니다. 일일이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글로 쓰여진 계시인 성서를 조금만 펼쳐보십시오!
요즘 가장 심각한 증세가 우울증입니다만 우울증, 조울증으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긴다고 어느 날 갑자기 기쁨이 넘치고 행복해지고 하며 호르몬이 저절로 적당히 막 분비돼서 치료가 됩니까? 암에 걸렸는데 그냥 병원치료 포기하고 기도원 들어가 기도만 하면 회복이 됩니까?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극소수, 로또 확률정도입니다. 간증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바로 그 로또 맞은 사람들이지요. 하도 많이 간증을 다니니까 무척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글쎄요, 가만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몇 년 전에 왔던 그 사람입니다. 로또 1, 2등 나왔다고 현수막 걸고 로또, 복권 파는 집이 하도 많으니까 이게 나도 되는거 아닌가 착각하지만요, ‘글쎄올씨다’입니다.
역사라는 큰 물줄기를 통해 그 역사를 이끄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끄심을 현실에 이루고자 헌신했던 이들의 실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와 자유,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의 가치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은 크게는 역사, 작게는 우리가 사는 매일매일의 일상 가운데서 작은 일부터 실천하고 하나님의 뜻을 관철시키고 하나님의 진리와 자유,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을 세우려는, 우리 자신들에 의해서 성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나가며 : 우리는 매주일 ‘성서와 역사, 일상과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좋은만남교회는 부름 받았다’고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여기서 성서와 역사, 일상과 자연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한다면 계시는 받는 정도가 돼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성서를 열심히 보시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통찰력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우리가 사는 일상이 바로 그 거대한 하나님의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개울이고 시내라는 것을 깨닫고 그 큰 뜻을 향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품고 사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 있으실 줄로 믿으며 축원합니다.


육신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단함으로 힘들어 하는 교우들, 군대와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 새학기 시작하는 학생들, 혼기를 맞은 자녀들 위해 기도하는 교우들, 그리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우, 교회가 다시 시작하는(토마토, 초록가게, 성서대학) 후반기가 은혜로 인도 되도록, 한여름밤의 꿈 수련회, 교회가 좀더 자라나고 영적 순례에 지친 이들의 정착지 휴식지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도록,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신앙의 마음 갖도록, 예수처럼 느끼고 예수처럼 사는 교회공동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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