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시작한 고난이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인권운동의 폭을 넓혀 활동해왔습니다.
즉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감옥에 갇혀 있는 양심수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출옥하는 양심수들에 의해 감옥에 20-30년동안 계속해서 복역중인 장기수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무슨 죄를 지어서 그토록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있나 했더니 소위 '빨갱이'라고 부르고 '간첩'이라고 낙인 찍힌 이들이었습니다.
빨갱이나 간첩은 분단된 민족에게 있는 외면할 수 없는 상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고난은 이들, 비전향 장기수들을 주목하였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소외당한 이들을 돌보는 단체들은 많습니다만 소위 빨갱이들의 인권을 돌아보고 그들을 동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빨갱이나 간첩은 이 나라에서는 철저하게 '적'으로 간주되었고 일말의 동정심도 가질 필요가 없는 존재로 합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가운데 청춘, 장년기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가장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이는 김선명님입니다. 이분은 45년을 감옥에서 보내시다가 출소하셨습니다. 청년기에 투옥되어 백발의 노년이 되어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이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김선명님은 만델라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것입니다. 기네스북에 가장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으로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고난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들, 장기수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고난에 의해 적극적으로 비전향장기수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비전향 장기수는 말그대로 북한을 추종하고 북한을 이롭게 한 행위를 하거나 북한으로부터 남한으로 정치공작을 목적으로 파견된 이들로 남한의 회유와 협박, 고문에도 불구하고 전향하지 않아 오랜 기간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을 말합니다. 물론 전향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강제적으로 전향이 이뤄지거나 혹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전향자로 분류되는 일이 있기도 하답니다. 이제는 점차 희매해져가는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이들이다 보니 대략 나이가 60을 훌쩍 넘어 90을 넘긴 이도 있습니다.
이들은 해방 이후 혼란한 시기 혹은 한국전쟁 시기에 지리산 일대에서 빨찌산(장기수 본인들은 빨치산이 아닌 빨찌산으로 발음한다고 합니다) 활동을 하다가 도벌대에 의해 체포되거나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남한으로 파견된 정치공작원, 즉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어떤 이는 남한에서 영관급 장교생활을 하다가 남한당국이 통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알고 월북하였다가 귀환하여 체포된 후 졸지에 장기수가 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런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머리에 뿔이 나거나 몸이 빨갛거나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입산을 하였고 자신의 선택으로 빨찌산이 되니, 어찌 보면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임을 제대로 알고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이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김대중 정권 때인 2000년 9월에 63명이 북한을초 송환되기도 하였습니다만 기회를 놓쳐 송환되지 못하여 2차 송환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빨찌산 같은 경우에는 고향이 남한이기 때문에 그냥 머물러 살고 있으며 조국의 통일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동안 세뇌되고 교육받은 것처럼 간첩질(?)을 하기 위해 남은 것이라기 보다는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과업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남은 여생을 남한에서 일하며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고난은 올해로 17년 동안 비전향 혹은 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효도 나들이'를 진행해왔습니다. 북에 있다면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며 잘 살았을텐데 민족의 분단으로 험한 인생을 살고 자녀들과도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연례 이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효도나들이는 진행되었습니다. 효도나들이는 장기수들에게 있어 기다려지는 즐거운 시간인듯하였습니다.
9월 29일 오전 8시! 고난의 효도 나들이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장기수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약속한 시간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말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써야겠네요.
다음에 이어서 쓰는 부분에서는 '장기수'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존경의 마음을 조금 담아 '선생님'이라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분단상황에서 적국을 이롭게 한 이들에 대해 그런 정중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떤 인간에 대해 존경심을 갖거나 존대하고 싶은 것은 개인적인 자유이며 양심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의견이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