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거지만 제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처녀 목회지에서 10년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마지 못해 갈 곳 없어 10년 버틴 것이 아니라 그래도 꾸준히 뭔가 하면서 있었으니 아주 쬐끔은 대견합니다.
저에게 10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와 우리교회가 일종의 약속 혹은 계약을 한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서 있으니 이 계약을 종료할 것인지 갱신할 것인지에 대해서 서로 간에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물론 이 계약은 채무자, 채권자, 갑, 을 하는 식의 계약이 아니라 10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앙동지, 좋은만남 가족 간의 다짐 혹은 약속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지요.
저에게도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리하지만 안식년 휴가를 교회에 요청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받아주셔서 벌써부터 이 한 달의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고 의미있게 사용해야 할까 설레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라는 존재가 가진 기능적 역할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걱정이 많습니다.
당장 주보작성, 파워포인트, 예배당 청소, 예배진행, 하다못해 예배당 프로젝터, 컴퓨터, 전등 켜고 끄는 것까지도 잘 진행될지가 걱정입니다. 나름대로의 순서가 있어서 그 순서에 맞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런 걱정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우선 '그동안 교회 일을 너무 나 혼자만 독점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배당 불 켜고 끄는 것조차도 나 혼자만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제가 교우들을 믿지 못했거나 교우들이 이런 것에 무관심했거나 둘 중에 한 경우일 것입니다.
'교우들이 바쁘니까 내가 해야지'하고 생각했을 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점이 돼버린 것입니다.
독점은 필연적으로 독불장군을 낳게 되는데 이미 알게 모르게 그 단계까지 나간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생각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들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교육 과정까지 거쳤는데 기껏 전등 켜고 끄는 것, 프로젝터를 먼저 끄냐 컴퓨터를 먼저 끄냐 하는 것을 교우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교만이고 인격모독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이미 저도 '나'라는 틀 안에 갇혀서 저만의 방식을 고집하고 거기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교우들이 할 기회가 없었기에 잘 모르는 것이지 능력이 없다거나 창의적이지 않다거나 하는 문제는 전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제가 했던 방식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기발하며 효과적이며 진솔한 방법들이 나올 수 있었던 기회를 제가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듭니다.
그래서 그냥 맡겨보기로 하였습니다.
이관택 전도사님과 협의는 하겠지만 전반적인 것은 교우들에게 마음 편하게 맡겨놓으려고 합니다.
잘 되건 못 되건, 하긴 잘 되는건 뭐고 못 되는건 또 뭡니까!
교회의 일을 나누어 역할을 분담하고 역할 바꾸기도 해보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 공동체가 참으로 하나되는 체험일 것이라고 믿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틀 혹은 과정을 상정해놓고 그 계획되로 되지 않는다고 마음 졸이며 시름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부질 없는 짓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계획하더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이고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 사람에게는 지혜로운 것이라는 성서구절도 있습니다.
무책임한 무계획으로 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인위적인 틀 안에서 허둥대는 것도 별로 은혜롭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모두가 함께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아무튼 마음 편하게 휴가를 보내고 오겠습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믿는 마음으로 다녀올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내 마음에 있는 교만과 어리석음, 불신과 독선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씻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