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고현교회를 찾아가는 길에 한려수도의 비경을 만끽하고자 일부러 돌아가기로 하였다. 사천대교, 창선대교를 건너 남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하는 코스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오토바이로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바다와 그 사이사이 떠있는 섬들은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세상, 낙원에 와 있는 기분이다.
돌아가는 길이라 생각보다 늦게 남해고현교회에 도착했다. 동광양교회 오현일 목사도 와 있었다. 오현일 목사는 남해고현교회 염희선 목사와 절친한 친구이자 동역자이다. 남해고현교회는 전임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유명한 교회이다. 남해군 고현면 면소재지 귀퉁이 산자락에 위치한 고현교회는 생각보다는 허름하고 찾아가기가 좀 어려웠다. 마을회관을 끼고 돌아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좁다란 골목을 따라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있었던 명성에 비해서는 좀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껍데기보다 알맹이가 중요하다고 염희선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많이 놀랐다.
염희선 목사는 올해 1월에 수련목 과정을 마치고 부임하였다. 이제 겨우 8개월 남짓 여기에 머물렀다지만 그동안 많은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마을에서 고현감리교회를 바라보는 호의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마을회의에 참석하였더니 고현교회 목회자를 내빈으로 모시고 축사까지 부탁하였단다. 감리교회라면 다들 반색을 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전임자들이 마을에서 얻은 존경과 사랑이 고스란히 염희선 목사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만큼 탑동마을이라는 공동체에서 고현교회가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하다.
그동안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알뜸을 떠드렸더니 이것이 좋은 반응을 불러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승합차를 구입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마늘을 도시교회와 연결하여 팔아주고 교회도 적당한 수익금을 얻었는데 이 일로 주민들이 너무 고마워하면서 쌀도 갖다주고 하였단다. 어찌 보면 무슨 큰 도움이나 이익을 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마을 주민들이 교회에 대해 갖고 있는 호의가 대단하다보니 이런 칭찬과 감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목사 안수 받고 실제로는 단독 목회를 처음 시작하는 염 목사에게 남해고현교회는 감사의 자리이다. 어떤 곳에서는 감리교회가 이단소리를 들으면 같은 교회에게 핍박을 받는 상황인데 여기는 오히려 감리교회만 쳐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여러 모로 감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현실은 또 현실이다. 사실 말이 좋아서 그렇지 남녘의 끝자락, 작은 면소재지에 산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 성도들도 몇 안 돼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한참 일할 나이의 젊은 목회자에게 좋은 자리는 아니다. 혈기 왕성한 사람이 시골에 처박혀(?)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일 것이다.
염 목사에게도 그런 갈등은 있었다. 성품이 좋아 그를 아끼는 지인들이 그가 여기서 썩는(?) 것이 안타까워 도시로, 교인이 좀 더 많은 교회로 보내주려고 애를 썼단다. 그때 염 목사는 많이 흔들린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했단다. 일단 오자마자 떠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다.
이제 염 목사는 이 마을에서 교회가 교회로써가 아니라 마을의 일원으로써 자리매김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 노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교회가 종교단체인 교회로써가 아니라 마을의 일원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중이다. 아직 마을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천천히 호흡하면서 주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발견하기로 하였다. 어느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염 목사의 성품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감리교회에서 젊은 목회자가 겪어야 하는 다양한 상황 중의 한 모습이 바로 염 목사의 상황일 것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시골, 농촌에서의 목회를 잠시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염 목사는 얼마나 여기에 머무르던지 있는 동안은 교회를 너머 마을의 일원으로써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틀을 남해고현교회에 머무르면서 보리암도 올라가보고 바닷가에서 낚시도 했다. 염희선 목사 부부와의 개인적인 교분은 이런 경험들을 더욱 소중하게 하였고 잠시나마 편하고 감사하게 쉬며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서울에서는 멀어도 너무 멀다. 그러나 마음 속의 추억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우리를 항상 함께 해주리라고 믿는다. 이제 막 고현교회의 생활을 시작하는 염희선 목사와 김지현 사모의 선전을 기다리며 좋은 소식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 취재하는 것처럼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영 어색해 매번 예배당 건물과 구조 사진만 담아오게 됩니다. 교회는 사람의 모임인데 건물만 찍어 올리게 돼서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