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8.08.25 18:41

2018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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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절 제1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14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정의의 주권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우리 가운데 성취되도록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다음 주일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3. 가을학기 수요성서대학은 9월 12일에 개강하겠습니다. 강의 내용은 지난 학기에 하던 '성서의 어려운 구절 이해'로 계속 이어서 하겠습니다.

4. 무더운 여름과 휴가철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주일예배 출석에 좀더 분발해주시고 신앙의 성숙을 위해 마음 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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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감리교회에 꼭 필요한 것은?

 

지난 주일에 제2차 임시서울연회를 하였습니다. 지난 4월에 열렸던 서울연회에서 중요한 결의 절차를 빼먹어 7월에 임시연회를 개최하였지만 이마저도 회의 구성 요선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지적을 받아 이번에 다시 한 것입니다. 빼먹었다는 중요한 절차는 다름 아닌 감독・감독회장 선거권자 확인 결의였습니다. 감리교회의 무슨 중요한 선교정책이나 긴급한 구호・구제, 신학적 교리 문제가 아니라 교권을 놓고 벌이는 선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임시연회는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의 9개 연회와 미국에 있는 2개 연회도 개최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감리교회에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감독회장이 선거권자 문제로 사회법에서 선거 무효 판결을 받아 물러나게 되어 총회실행위원회에서 감독회장 직무대행을 선출하였지만, 물러난 감독회장과 직무대행 간에 힘겨루기가 가관입니다. 재판위원회는 직무대행 교회의 지역경계에 따른 자격 시비로 직무대행 선출 무효를 판결하였고, 직무대행도 재판위원의 자격을 문제 삼아 위원장과 위원을 해촉하고 임의로 자기 쪽 사람을 위원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결국 재판위원회는 두 개가 됐고 이 모든 과정에서 감리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을 각각 제 입맛에 맞게 해석하면서 서로를 불법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직무대리는 자신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위원회는 총회에서 임명된 것이기 때문에 감독회장 직권으로 해촉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직무대행은 물러난 감독회장이 임명한 교단지 기독교타임즈의 사장과 편집국장서리를 해고하였고 신문사 이사회는 자신들이 결의하지 않은 해고는 무효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단의 출발점은 감독・감독회장이라는 교권 때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2년 혹은 4년마다 돌아오는 감독・감독회장 선거철에는 불법선거, 금권선거 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고 선거가 끝나도 교단법과 사회버에 각종 고소・고발을 합니다.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는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고 교인 수는 감소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교권에 집착하는 이들이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니 교회의 미래가 암담합니다. 감리교회에 곡 필요한 것이 감독・감독회장일까요? 감독회장이 없으면 무슨 큰일이 날까요? 삼척동자도 아는 것을 왜 교계 어른이라는 그들은 모르는지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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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쌍용자동차를 좋아하고... 싶다. - 방현섭 목사

 

출근길 버스에서 페이스북을 보다가 쌍용자동차 광고글을 보았습니다. 나의 페친들이 이 페이지를 좋아한다고 클릭해서 나에게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농성중입니다. 지난 6월 27일, 쌍용차 김주중 해고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해고 이후 생활고와 우울감을 견디지 못했다고 합니다. 벌써 서른 명째입니다. 열이 스물이 되고 스물이 어느새 서른이 되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2009년에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646명이 정리해고를 당했고 그해 8월,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되었던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시위진압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생지옥의 한 복판에 있던 분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김주중 열사도 바로 그 분들 중 하나였습니다. 

노사협의를 통해 2017년에 해고노동자들을 전원복직시키기로 합의하였지만 아직 완전하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복직되지 못한 노동자가 200명이었는데 김주중 열사의 죽음으로 119명이 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한분 두분 돌아가실까 걱정입니다. 

9월 6일 대한문 앞에서 감리교시국대책위가 주관하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목요 촛불기도회'가 열리는데 제가 이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의 설교는 항상 힘듭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들의 현장에서 내가 과연 무슨 설교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그저 미안하다, 힘내시라는 말밖에... 

코란도! 쌍용차의 이미지 브랜드입니다.

Korea Can Do!

이 말에서 쌍용차의 대표 브랜드인 KORANDO라는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한국이 강제해고, 정리해고, 토동자 탄압... 뭐 이런 것을 잘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길 바랍니다. 제발 노동자 존중, 인간답게 일하는 노동현장을 만들고 생존권을 보장하는 그런 일을 잘하는 쌍용자동차,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쌍용차를 좋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차마 '좋아요'를 누르지는 못하겠습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좋아서 '좋아요'를 클릭할 수 있는 날, 해고 노동자들이 웃으며 일터로 돌아가게 될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 사회성화를 위한 역사기억

1789년 8월 26일    "프랑스혁명으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채택"

1789년 프랑스 국민들은 국왕군의 무력에 맞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여 기적적으로 승리하였고 루이 16세는 항복하였습니다. 이 봉기로 국민의회 해산을 막고 봉건제의 폐지, 가톨릭 교회의 십일조, 관직의 매수, 재정적 특권제 폐지를 포고하였으며 새로운 헌법을 작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새로운 헌법의 정신과 방향을 담은 기본 원리를 공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자연법 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평등, 종교, 출판, 결사의 자유 등 인간의 천부적 권리는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임을 선언하였고 종교, 출판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을 억압하던 로마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한 구체제의 억압은 종언을 고했습니다. 이 선언의 제3조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대한 조항, 제16조는 권력 분립의 원칙에 관한 조항을 담고 있습니다. 즉,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헌법이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각국의 성문 헌법은 이 선언을 따라 권리의 보장을 선언한 권리장전과 국가권력 체계를 규정한 국가법의 두 가지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이 민주주의의를 소중히 가꾸고 자라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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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난 나른한 오후, 학회실에서 학생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때 한 교수가 들어와서 학회장을 찾았다. 그러다 어느 학생을 발견한 교수가 화가 난 목소리로 꾸중을 했다. 

“어이, 학생! 자네 머리 모양이 그게 뭔가?” 

지적을 받은 사람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네?” 

화가 난 교수가 그를 다그쳤다. 

“자네가 폭주족이야, 연예인이야? 말 좀 해봐.” 

그는 뭐라고 변명하려고 했다. 

“저기….” 

교수는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몰아붙였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하고 다녀야지, 안 그런가? 어느 과 이름이 뭔가?” 

그러자 지적질당한 ‘학생’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릇 찾으러 왔는데요.”

 

지적질을 하는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사는 것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지적질을 합니다. 

지적질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지적하지 말고 지도해야 합니다. 

지적질에 찌든 구성원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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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성경II (4)

4.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도리와 신앙생활의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습니다.

 

2. 신앙생활의 표준(2)

     우리는... 성경이... 구신앙생활에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찾아온 첫 번째 시험은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유혹이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복음 4:4)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선택하시는 논리는 양자택일의 논리도 아니고 양자모두선택의 논리도 아닌 우선순위의 논리이다. 사람에게는 떡과 말씀이 모두 중요하지만 말씀이 떡보다 우선적이라는 말씀이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3)는 말씀도 우선순위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믿음이냐, 행함이냐라는 물음 앞에서 요구되는 논리는 양자모두선택의 논리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성경으로부터 신앙생활의 표준을 찾는 시도를 하는 데 있어서 성경의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읽어가고, 하나의 논리만이 아니라 다양한 논리를 적용시켜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고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몸과 정신과 영을 아우르는 참다운 진리는 성경에 있음을 감리교인은 믿고 고백해야 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과 숙제는 구원의 문제이며, 이 구원에 대한 길을 성경이 제시하여 주고 있으므로 감리교인은 삶의 궁극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혼동이 오거나 선택의 어려움에 처랗 때마다 성셩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양한 시대와 상황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부분으로 읽어가지 말고 전체(통전)적으로 읽어가야 한다. 결국 감리교인은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신앙생활에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고 고백해야 한다.

 

제10장 

하나님의 은혜 I (1)

5.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음을 믿습니다.

 

감리회 신앙고백 5조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책임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함을 고백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감리교인은 침묵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해야 함을 고백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관계는 많은 생각과 질문을 가져 온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 가는 데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가? 아니면 인간의 믿음만으로 가능한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으면 구원이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사람의 의지와 결단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정론을 근거로 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창세전에 자신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목적과 그리고 그 뜻의 은밀한 계획과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서 오직 그의 거저 주시는 값없는 은혜와 사랑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셨으며(에베소서 1:4, 9, 11; 디모데후서 1:9; 데살로니가전서 5:9), 그리고 모두 그의 영광스런 은혜를 찬미케 하셨다(에베소서 1:6, 12; 전도서 3:14). 그러나 이러한 것은 믿음, 또는 선한 행위, 또는 그들 안에 있는 인내, 또는 피조물들 안에 있는 어떤 다른 것들은 하나님을 감동시켜 저희들을 선택하게 하는 조건들이나 원인이 아니다.(로마서 9:11, 13, 16; 에베소서 1:4, 9)(계속)

 

 

종교는 인민의 아편?

 

1. 우리의 아편

 

“목사님 좀 그만 괴롭혀라.”

옆 자리 선생님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는 한 아이가 있다. 하루에도 두서너 번씩 찾아와 종교에 대해 두서없이 묻는다. 물음의 이유는 이렇다. 같은 반 친구 가운데 종교에 대해 적대적인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반박할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가 무슨 뜻이에요?”

“아무래도 너 또 낚인 것 같다.”

 

아이에게 어려운 질문이 떨어졌습니다. 정확하게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그간의 답들이 너무 딱딱해서 어렵습니다. 얼핏얼핏 듣고 살피지 않고 답이 되어 강요하는 것들. 세상의 지식이 네트워크로 공유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식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는 여전히 게으르고 딱딱하고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마르크스·엥켈스, 

『공산당선언』(백산서당, 1989), 155쪽)와 함께 마르크스하면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종교를 부정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구절로 마르크스를 부정합니다. 종교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현실에 대한 일시적인 안정을 주어 현실의 고통을 감수하게 하고 개혁할 의지를 마비시킨 합니다. 반면에 마르크스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따르던 이들에게 받은 종교 탄압의 역사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금 오해가 있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란 구절의 해석이, 읽는 사람의 자리를 우선하여 마르크스의 자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2. 마르크스의 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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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선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을 들여야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와 그의 책 『기독교의 본질』(한길사, 2008)입니다. 종교에 대한 그의 이해를 거칠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신은 인간을 구원하는 원리이며, 인간의 좋은 성질과 행위를 가지며, 그 결과로 인간의 선한 원리와 본성을 지닌다. 종교는 인간 의식의 투사이다. 다시 말해 신은 인간이 만들었으며 따라서 인간이 신을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보기에 포이어바흐의 종교 이해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신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사람들이 왜 신을 갈망하고 만들고 있는지 그 사회적 원인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그저 신만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종교적 비참함은 현실적인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적 불행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정신을 상실한 상황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Krik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강유원 옮김 (이론과 실천, 2011), 8쪽. 필자 재번역.

 

마르크스가 보기에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고단한 삶의 현실 때문입니다. 그 현실은 탄식이 넘치고 몰인정하며 정신을 상실했습니다. 그 현실에서 종교가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아편인 그의 설명을 들으면, 그것을 비판할 이유도 또 거부할 이유도 없습니다. 종교는 현실의 진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선언한 그는 포이어바흐를 극복하여 이 진통제 곧 종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 진통제가 필요한 세상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3. 아편을 넘어서

 

“정문으로 똑바로 갈까요, 아니면 군대를 피해 돌아서 갈까요?” 누가 물었다. 나는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돼요! 똑바로 갑니다. 용감하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군중이 호응하여 소리쳤다.(중략)

갑자기 코사크 기병대가 칼을 뽑아들고 우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결국 학살로 나온단 말인가! 생각을 할 시간도, 계획을 세울 시간도, 명령을 내릴 시간도 없었다. 기병들이 덮치자 놀란 외침소리가 일어났다. 우리 전위(前衛)는 기병들 앞에 무너져 양쪽으로 갈라지고, 기병들은 열린 길을 따라 내달리며 오른쪽 왼쪽을 마구 후려쳤다. 칼을 치켜들었다가 내려치는 것, 남자, 여자, 아이들이 나무토막처럼 땅에 쓰러지는 것이 보였고, 신음, 욕설, 고함소리가 하늘을 메웠다.

가폰 신부,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의 일요일 1905.1.22.」, 존 캐리 엮음, 『역사의 원전』[The faberbook of reportage], 김기협 해설·옮김 (바다출판사, 2006), 546~5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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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노동자들은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니콜라이 2세에게 탄원을 위해 겨울 궁전을 향합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억눌린 민중들은 황제의 초상화, 기독교의 성화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청원서를 들고 평화로운 행진을 합니다. 그러자 정부는 근위대를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진압에 나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후 역사학자들은 ‘피의 일요일’ 행진을 러시아 1905년 혁명의 시작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핵심적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이 행진의 주동자는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이자 혁명가인 게오르기 가폰 신부였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종교는 당시의 부패하고 타락한 현실 종교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는 현실에 대한 수많은 저항과 개혁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에 대항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여 체코 종교개혁을 시도한 얀 후스(Jan Hus, 1372~1415)와 후스파, 독일 봉건 압제자 그리고 그들의 편에선 마틴 루터에 대항하여, 민중을 위한 신정 정치를 추구한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 1489?~1525)의 저항, 그리고 현대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우리나라의 민중신학까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과 실천이 있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는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14~17)

 

“물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지. 하지만 소망이기도 하고. 그리고 난 소망은 우리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단다.”

“가폰 신부님처럼요?” 아이의 손이 가폰 신부의 글에 올랐다.

“이제 너랑 나랑 같이 하자.” 아이의 눈이 야고보서에 앉았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데 보수야당은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수십 년 지속된 재벌중심의 경제정책과 서민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저임금 정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더 인내하고 기다리며 노동자 서민이 잘사는 세상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게 도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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