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조회 수 68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

 

성서 : 누가복음 7,33-35

33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34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35 그러나 지혜의 자녀들이 결국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냈다."

 

들어가며 :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또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이 크신 은혜가 우리와 우리교회, 우리 가정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 우스갯소리를 한 자락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스운 소리인지 아니면 썰렁한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를 위해서도 하나를 준비했었는데, 그만 그 사이 일본에 강진 및 쓰나미 사태가 발생했네요. 엄청난 대재앙에 생명을 잃은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있는데 농담이나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설교문을 고쳤습니다. 아마 어떤 목사는 오늘 설교하면서 일본이 우상숭배하는 나라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런 재앙을 겪고 있다고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한번 택하신 백성을 끝까지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신 하나님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참혹한 재앙이나 내리는 분이시라면 과연 우리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덤덤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함부로 입을 놀려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재앙을 당한 이들의 더욱 힘들게 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잠시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희생된 분들을 생각하면서 묵념을 제안합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행복해 보이고 평안해 보이는 기반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하고 연약한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우리 인생이 80정도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제한적이고 또 유보적입니다. 이런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저 우리 삶이 매일매일 축제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축제를 만드셨고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너무 틀에 박힌 도덕적 의무감과 종교적 교리와 고행에 얽매이지 말고 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도 매우 중요하리라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며 스스로에게 좀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기쁨과 감사, 즐거움이 넘치도록 살아가시기를 또 그런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오늘은 임원취임예배로 드립니다. 임원취임예배를 꽤 오랜만에 드립니다. 고남곤 집사님, 임미화 집사님 취임하고 나서 처음인 것 같지요? 2011년에 김성희 집사님과 김경수 집사님이 새롭게 추천되고 피택되어 집사 직분을 맡으시게 되었는데 부디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하시고 우리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해주시는 집사님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생각이 나십니까? 예를 들어 고교 혹은 대학 졸업 때 담임교사나 교장선생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나십니까? 혹은 결혼식 때 주례자가 해준 주례사가 생각이 나십니까? 어떤 교회에 출석하기로 마음 먹었던 때 설교자가 했던 설교 내용이 생각이 나던가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그때 주어진 말씀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태반이 아닌가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혹은 기억에 남을 만한 말씀을 하지 않아서? 아무튼 우리는 중요한 일임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세례 받은 날, 신학대학교에 입학했던 날, 졸업식을 하는 날, 목회에 나온 첫날, 안수를 받던 날 등등. 이런 중요한 날들을 기억하면서 목회를 했다면 아마도 더 큰 사명감으로 맡겨진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이 두 분,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서 평생을 꼭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갈만한 말씀을 준비해 설교하고 싶은 부담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권고는 기본기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좋은 집사, 권사 등 임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가장 좋은 성도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역시 떠오르는 것은 역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좋은 집사, 가장 좋은 임원, 가장 좋은 성도의 모습은 결국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임원, 좋은 성도가 닮아야 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선 유쾌함입니다. 종교는 인간을 진지해지게 하죠. 그리고 뭔가 무거운 느낌, 엄숙한 느낌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경우는 더합니다. 고난, 금욕, 절제, 희생, 죽음, 겟세마네의 기도그래서 종교생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렵고 무겁고 엄중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서 율법주의가 나오는 것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수도원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는 책을 보면서 수도사들이 웃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원장의 소행이더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유쾌한 웃음이 교회 안에서는 왠지 억압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거운 느낌으로 말씀을 대해서 그렇지 사실은 매우 유쾌하신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가는 곳마다 잔치가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먹거리가 넘쳐나고 술잔이 돌고 얼큰하게 취하면 재미있는 비유를 한 자락씩 이야기하시는 분, 그래서 함께 자리를 했던 사람은 그의 인격과 유쾌함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마구 먹어대는 자, 포두주를 마시는 자라며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먹고 마시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은 그렇게 가시는 곳마다 잔치를 벌이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모두 잔치를 만드는 사람, 시끌벅적하고 신나는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는 뭔가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나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생의 문제, 삶의 고비 앞에서 뭔가 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벽기도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간구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의 짐을 지고 교회를 찾았는데 교회가 엄숙하고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라면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흥에 겹고 신나고 즐거운 교제와 잔치가 있다면 어려움을 갖고 온 사람도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다보면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요, 해결의 능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세요!

목회를 하면서 보니 작은 교회에는 부자들이 오지 않습니다. 하긴 부자가 뭣하러 작은 교회에 오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분들이 많은 편이지요. 한 마디로 가난한 교회는 교인들도 가난합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목회하면 삶에 지치고 어깨가 무거운 이들이 편히 와서 쉬고 잠시나마 웃고 갈 수 있는 교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는 목회, 그런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아닐까 합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집사가 됐으니 모든 공적예배에 절대로 빠지면 안 된다.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헌금생활도 더욱 철저하게 해야 한다. 전도도 해라, 뭣도 해라,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라는 말보다는 유쾌한 사람이 되라. 예수님처럼 유쾌한 사람, 잔치꾼 같은 임원이 되라, 성도가 되라고 말씀드립니다. 신앙 안에서 그렇게 즐겁고 유쾌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나가며 : 많은 목회자들이 신앙생활을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세를 확장하고 신도수를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 모으고, 사람 많이 모으면 돈도 모이고, 그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목적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는 전도가 목적이라고 합디다만 저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교회의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어머니로 고백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행복한 것을 가장 바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행복하고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이겠지요.

일본의 대지진을 보면서 인생이란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유보적인 이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합니다. 물론 내 몸뚱아리 하나 잘 먹고 잘 살고 호의호식하는데 바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기쁨과 감사가 있을 때 우리 삶이 유쾌해지고 이웃에게도 그 유쾌함이 전달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 삶이 의미 있는 유쾌함으로 가득 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천 집사님들, 어디서나 예수님의 유쾌함으로 잔치를 만드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7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3/27) 좋은만남 2011.03.29 569
476 [깨어나십시오] - 구체화 7 좋은만남 2011.03.29 585
475 '그래도 이 세상에 너의 최선을 주어라' /마태복음 5:43-48 - 이관택 전도사 좋은만남 2011.03.29 957
»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 / 누가복음 7,33-35 방현섭 목사 방현섭 2011.04.02 684
473 세속적 성공 VS 가치 있는 삶 / 빌립보서 3:5-10 - 방현섭 목사 방현섭 2011.04.11 818
472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4/3) 좋은만남 2011.04.13 548
471 [깨어나십시오] - 구체화 8 좋은만남 2011.04.13 541
470 '달라져 간다' - 사도행전 2:37-42 / 이관택 전도사 좋은만남 2011.04.13 855
469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4/10) 좋은만남 2011.04.13 584
468 [깨어나십시오] - 그런 게 아니다 1 좋은만남 2011.04.13 566
467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4/17) 좋은만남 2011.04.29 471
466 [깨어나십시오] - 그런 게 아니다 2 좋은만남 2011.04.29 562
465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4/24) 좋은만남 2011.04.29 499
464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 시편 2,7-9 방현섭 목사 방현섭 2011.05.14 702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 56 Next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