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성서 : 시편 2,7-9
7 "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8 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너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9 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 하셨다."
들어가며 : 내가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두 아들을 사랑한다고도 합니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고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또 목사로써 교우들을 사랑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지만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내가 정말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도 확신이 없습니다. 그 질문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도 던져보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정말 사랑을 알고 또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가요?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하나님이 나와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저와 여러분에게 큰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격려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나이 사 십줄 들어서면서 세상을 보니 참으로 부조리가 많습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 뭔가에 미쳐 돌아가고 있고 그 와중에 정작 인간 자신은 소외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가만히 묵상해보니 결국 인간의 인간 자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갖지 않고 다른 어떤 것들에 예를 들어 돈이나 명예에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게 되다보니 인간 자신의 가치는 그만큼 하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살률도 높고 살인률도 높습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한 남자가 괜히 욱하는 감정이 치밀어서 경찰서로 들어가 경찰에게 칼을 휘두르는 사건에 대한 보도가 나오더군요. 참 기가 막힌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생명과 인격에 대해 이처럼 무자비하고 또 무가치하게 여긴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믿고 행해야 할 바를 살펴보고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샴푸 광고를 보니 ‘나는 소중하니까!’라는 것이 있더군요. 나는, 내 머리카락은 소중하니까 그 샴푸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샴푸를 쓰는 것이 좋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중합니다. 아멘입니까?
구약성서에 보면 사울이라는 왕이 나옵니다. 사울왕이야말로 자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여 괴로움을 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준수한 청년이었기에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중한 사람으로써 소중한 가치를 지키면서 살지를 못했지요.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그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신약에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몰랐던 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름은 삭개오입니다. 그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기에 자학하고 사람들에게 욕먹는 삶을 살았지요. 그 안에는 자포자기에 복수심만이 가득 찼습니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았기에 타인도 존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소중하니까!’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자신에게 하신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죠. 그 자신도 구원을 받는 존귀한 존재가 되었고 삭개오의 이웃들도 그동안의 보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원칙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신앙의 위기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위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세상 최고의 가치 혹은 존재로써 고백합니다. 아울러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런데 기독교는 그런 하나님께서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제물로 희생시켰고 그 핏값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혹은 어머니고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뻔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기본적인 교리입니까? 그런데도 이 교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 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를 때 자기비하를 하고, 자학을 합니다. 자괴감을 갖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고 심하게는 우울증 단계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과의 참다운 관계에 들어가지 못한 비극적 존재라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시편 2,7-9의 말씀을 통해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하십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아멘!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신 분들은 세상 그 무엇,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귀하신 존재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낳은, 그래서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라고 말씀하시는 이가 또 누구입니까? 우선은 자기 자신이요, 더 나아가서는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교우들, 교회 담벼락을 넘으면 우리 이웃,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이 낳으신 존재들,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이 낳으신 존재,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셔야 합니다.
벽에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고서 뭐 저따위 그림이 있느냐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럼 그 욕은 그림에게 한 것입니까,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화가에게 하는 욕이겠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 이웃을 향해 욕을 하고 그들을 비난한다면 그것이 결국은 누구를 욕하고 누구를 비난하는 것인가라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비난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2는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얼마나 자주 바보, 병신, 또라이, 멍청한 놈 등등의 말을 하고 또 그렇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의 창조실력을 비난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지옥 불 속에 던져질만한 죄를 짓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반면 마태복음 7,12은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라고 합니다. 또 빌립보서 2,3은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는 못할망정 바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 이웃에게 바보, 병신 등등의 욕을 하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세워 놓은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에 그렇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게 옳은데 저 사람은 그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자기는 잘났지만 타인은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웃을 욕하고 이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완벽한 존재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우리도 실수할 때가 많고 문제를 일으키는 적도 많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교만에서부터 하나님을 비난하는 죄를 짓고 지옥 불에 떨어질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이웃과 동포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존중하고 동포를 귀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참된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나가며 : 사람이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다면 그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같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독교는 불교처럼 윤회를 믿지 않기 때문에 길지 않은 인생이고 딱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내 인생이 소중한 것처럼 우리 이웃의 인생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면 우리 자신의 인생은 물론 세상의 모든 인생이 다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모두에게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너는 내 아들, 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자기를 귀히 여기고 이웃, 인류를 귀히 여길 때 하나님 나라가 바로 우리 안에 세워진다는 것을 깨닫고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