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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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821일 성령강림절 제10주 및 평화통일공동기도주간/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사자가 풀을 먹는 날

이관택

 

본문: 이사야 11:1-9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2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3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는다. 4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5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 6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7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갇힌 낙타같이 살고 있다!

 

어린 낙타와 엄마 낙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린 낙타가 엄마 낙타에게 질문을 합니다. “엄마! 왜 우리는 눈썹이 길어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사막을 가는 데, 먼지가 많으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 눈썹이 긴거야!” 어린 낙타가 또 묻습니다. “엄마 그러면 왜 우리는 발이 이렇게 뭉툭해요?” 엄마 낙타가 대답합니다. “모래 위를 걷는데, 뭉툭해야지 빼죽하거나 하면 미끄러워서 못 걸으니까 그렇지!” “그러면 엄마! 왜 우리 낙타는 등에 커다란 두 개의 봉우리가 있어요?” 엄마 낙타는 정성을 다해서 대답합니다. “그건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몇 날 몇 일 걸아갈 떄 영양분을 저장하기 위해서 있는 거야!” 그러자 어린 낙타가 엄마 낙타에게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엄마 왜 우리는 동물원에 있어요?”

동물원에 있는 낙타에게 긴 눈썹이 필요한가요? 뭉툭한 발이 필요한가요? 등 뒤의 두 개의 봉우리(그걸 육봉이라고 합니다.)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낙타에게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낙타를 창조하셨건만, 동물원에 갇힌 낙타에게는 실상 이런 기능들은 있으나 마나한 것들입니다. 동물원에 갇힌 낙타라. 정상적인, 아주 자연스런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대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옆 사람의 얼굴을 보세요.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느껴집니까? 우리는 사랑하기 위한 존재, 사랑받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서에서는 매번 사랑타령입니다. 인간의 가장 숭고한 가치는 바로 사랑입니다. 지난 주 공동휴가를 갔는데, 경주의 그 아름다운 문화재며, 자연경관이며 그것을 보면서 흠뻑 사랑에 빠져버린 저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합니다. 가만보니 강경숙집사님 아들 형준이는 개구리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어딜가나 개구리 타령입니다. 그러한 자연환경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 이 세상 살아가면서 사랑할 수 있는 그 기능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습니까? 정 많고 사람 좋으면 어렸을 때부터 바보, 천치소리를 듣습니다. 저래서 세상 어떻게 버티니? 어른들께 이런 핀잔을 듣기 일수죠. 동물원 낙타에게 이젠 등의 봉우리나, 긴 눈썹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옆의 낙타들보다 사육사가 주는 먹이를 얼마나 더 빨리 받아먹을 수 있도록, 누가 더 눈치가 빠른가, 아님 옆의 낙타를 어깨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관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눈엔 동물원에 있는 낙타가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동물원 말고 낙타를 보신 적이 있으신 분 계신가요? 진짜 이상한 것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기 쉬운 세상입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다 이렇게 사니까~ 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 김성희 집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있는데 어떤 꼬마가 사과를 먹으면서 타더랍니다. 그래서 인사를 하셨데요. “안녕 어디가니?” 그러자 꼬마가 지금은 피아노 학원가는데, 끝나고, 방과 후 학교 가야 되구요. 그 다음은 영어학원 수학학원 갔다가 집에 들어가요.”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는 듯이 막힘없이 대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꼬마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학원을 몇 개씩이나 다녀야 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것이 사실 자연스러운 풍경입니까?

 

우리는 우리 존재가 어떻게 지음 받았는지,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린 낙타가 엄마 낙타에게 묻는 것처럼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왜 그것이 갖고 싶을까요?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마치 동물원에 사는 낙타같이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냐구요? 사실 그것이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천국은 진짜 를 찾는 것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창조된 그 모습 그대로 살았던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바로 아담의 시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았습니다. 여러분 혹시 아담을 한 개인의 이름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담은 히브리말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MAN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 말씀은 천국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그 때에는이란 말이 나오죠. 바로 그 날이 온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면, 그 때엔 이렇게 될 것이란 소리입니다. 읽을 때마다 너무나 감동적인 세상입니다. 암소와 곰이 서로 친구가 되고,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고 합니다. 웬 사자 풀 뜯어먹는 소린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지만 이것이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그 천국의 모습이 에덴동산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 하나님과 어울리고, 동물과 식물과 어울려 살건 그 때, 에덴동산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원래 지음 받는 진짜 의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천국이란 소립니다.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의 지금의 모습으로 살게 하시는가? 아니 나는 원래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신다면 천국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바꾸는 15

 

요즘 cbs에서 하는 세상을 바꾸는 15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이 화제입니다. 각 분야의 명사들이 나와서 15분간 짧은 강의를 합니다. 주제는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입니다. 마켓팅 전문가는 마켓팅을 통해서, 정치가는 정치를 통해서, 목사님은 목회를 통해 저마다 새로운 세상,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근데 하나같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두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지금 세상에 대한 분석과 바뀔 세상에 대한 비전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향한 꿈을 보여주십니다. 이사야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때바로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비전입니다. 천국의 구체적인 모습이며, 우리가 가져야 할 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는 일이죠. 우리가 동물원에 있는지, 들판에 있는 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지 살펴 볼일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15분 강의 중에 높은뜻 교회연합의 김동호 목사님 강의도 있었습니다. 평소 그 목사님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강의 내용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십니까? 김동호 목사님은 맹세컨대, 하나님은 공평하시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의 손녀 사진을 보여주십니다. 아주 귀엽고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하십니다. 저는 그 이야기에 동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그런데 그다음은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 궁금했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세상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바로 흐름의 원리라는 이야기엿습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바로 흐름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피가 흐르고, 공기가 움직이고, 물이 흐르는 것이 바로 이 흐름의 원리이며, 생명을 유지하고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원리입니다. 물이 흐리지 않으면 썩어버리죠. 피가 흐리지 않으면 사람이 살 없는 것 아닙니까? 물질과 돈도 이 같은 맥락에서 흐름의 원리가 있는데,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평함 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혼자 사는 것 보다 함께 살기 위한 원리가 바로 이 흐름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이 흐름이 깨어져렸다는 것입니다. 돈을 흐르게 하는 것이 경제 아닙니까? 돈이 필요한 곳으로 잘 흘러 가게하는 것이 경제의 역할일 텐데요, 문제는 원래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돈의 흐름이 적은 곳에서 많은 곳으로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새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질서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죠. 기후변화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거꾸로 흐르는 세상도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물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거꾸로 된 질서를 다시 하나님의 질서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동영상 지식채널 e "공짜밥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9381173

 

 

사자가 풀을 먹는 세상

 

이번 주 수요일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하게 됩니다. 문자가 한통 왔더라구요. 무상급식하면 세금폭탄 떨어지니까 투표 꼭 하시라고! 이사야에서 천국을 뭐라고 설명합니까? 7절 보시면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아이들이 함께 누울 수 있는 세상은, 바로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잣집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들과 상관없이 함께 누울 수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것이 작은 천국이 되겠지요. 신앙인들은 이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암소와 곰이 서로 친구가 되는 세상 절대 친해질 수 없는 존재들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입니다. 바로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는 세상!

지난 주 화요일 윷놀이를 했습니다. 거기서 당당히 꼴등을 하였습니다. 각 등부마다 미션이 있었는데, 우리 팀은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하루 단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24시간동안 온전히 단식을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항 수 있었습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는 것이 작게는 이런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해보는 것입니다. 동감해보는 것이구요, 약하고,, 소외된 이들의 입장을 다 알 순 없지만, 알기위해 노력해보는 것입니다.

사자가 풀을 먹는다는 것은 그저 서로를 배려하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소보고 고기를 먹으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가 사장이 노동자를 이해하듯이, 노동자들도 사장을 이해하라라고 지금의 세상은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듯이 가난한 사람도 부자의 입장을 이해해달라? 그것도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흐름의 원리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풀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 달라, 잰 소야 난 사자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친구 할 수 있는 품을 넓혀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은 분명히 그러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원하시면서 많은 약속을 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대로 산다고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의 꿈을 꾸고, 그 천국을 이뤄가는 삶을 산다고 하면,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56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당신들이 많은 민족에게 돈을 꾸어 주기는 하겠지만 꾸지는 않겠고, 또 당신들이 많은 민족을 다스리기는 하겠지만 다스림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함께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교차로와 같습니다. 무작정 머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차로는 신호대기입니다. 그 때 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좀 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야도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교차로는 잠시 후에 또 다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차선을 미리미리 바꿔놓는 것이겠죠. 다음 교차로에 대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회전입닊? 좌회전입니까? 여러분의 선택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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