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8일 주현절후 제1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예수처럼 느끼고 예수처럼 산다면
이관택
본문: 이사야 58:11-12
11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12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 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를 것이다.
2012년 새해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2012년의 첫 번째 한 주간 어떠하셨습니까?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특별할 것이 있겠는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신비한지 모릅니다. 온 지구가 여러분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는 누구를 중심으로 뜨고 집니까? 바로 내가 중심입니다. 시간은 누구를 중심으로 흘러갑니까? 바로 나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세상의 중심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심으로 세워주신 새날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매일매일 감동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올해 좋은만남교회의 주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예수처럼 느끼고, 예수처럼 사는 공동체”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셨을까요? 사람들을 만날 때, 목수 일을 하실 때, 밥을 먹을 때, 길거리를 걸을 때, 구체적으로 그 생활 가운데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느끼고, 사셨을까요? 참 궁금합니다. 올해 제가 33살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더도 말고 딱 예수님처럼만 살자 그럼 충분하겠다. 그 운명의 33살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하여간 그렇기 때문에 요즘 더 예수님처럼 느끼고 싶고, 예수님처럼 살고자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생각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무술영화를 보십시오. 제자들은 항상 멍청합니다. 뭔가 부족하지요. 스승님의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부족한 제자일지라도, 하루하루 스승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수련에 수련을 거듭합니다. 무술 영화에서는 그러던 와중에 항상 사부님이 적의 손에 의해 돌아가십니다. 무능력이 제자는 그 현장에 있지만 사부님을 도울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됩니까? 어느새 그 동안 배우고 익힌 스승님의 무술이 자신 안에 체화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새 스승님처럼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예수님처럼 느끼고, 살고자 한다고 해서 바로 바로 베드로처럼 3000명씩 회개시킬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지금 20명밖에 모이지 않는데, 갑자기 200명이 모이게 되는 것이 아니죠. 또 마더테레사처럼, 성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화내고, 아 내가 뭐 그렇지 하는 자괴감도 드는 인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꿔주시겠지요. 2012년 한해도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살기를 소원하고, 또 삶의 현장에서 더욱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살기를 마음먹은 우리에게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1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12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 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사야서 전반기에서 이사야는 무섭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우상을 섬기는 너희들의 악행이 결국 너희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절규합니다. 회개하라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소리친 세례요한과 예수님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와서는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 같은 곳에서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안 되는 것 같고,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영적인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영적인 미용실을 다니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육적인 미용실도 안가는데, 영적인 미용실은 무슨 말인가 했어요. 우리의 외모에 신경을 쓰는 만큼 과연 영적인 일에 신경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되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는지 말입니다.
또한 우리의 뼈마디마디에다가 원기를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육체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힘내라고 구체적으로 나를 응원해주시고, 내 육신의 건강과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물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된다고 합니다. 그 광야와 같은 사막으로 넘쳐나는 고대근동 지방에서 물댄 동산이란 표현은 마치 에덴동산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그토록 아름답게 만드셨던 에덴동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처럼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래 밖에 없는 사막에서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즉 마르지 않는 샘은 생명을 뜻합니다. 영생을 뜻합니다. 하지만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고 잘되는 영생이 아닙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그 주변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 짐승, 동식물을 먹여살리는 샘입니다. 결국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신 말씀은 내가 너와 함께 동행하고 너를 인도 할 거야! 그리하면 너의 영혼 너의 육신은 물론이고, 너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의 삶은 오늘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영혼의 충만함과 육신의 강건함을 바탕으로 내 주변의 마르지 않는 샘, 즉 오아시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2절에 말씀하고 있는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다는 표현은 무엇이냐면 이제 바벨론에 나라가 멸망하고 유대라는 나라는 완전히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다시 없어진 그 나라를 재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민족의 정체성이 없어지고, 신앙공동체가 다 파괴되어버린 그 상황에서 대대손손 후손들이 다시금 믿음의 기초를 쌓을 거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개인적인 삶의 바운더리 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말씀입니다. 더 암담한 현실이죠. 빛이 보이지 않고, 우리민족이고 뭐고, 그저 나만 잘살아야지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노예의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아니야!라고 선언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민족 이, 이 백성이 다시 한 번 일어난다. 그런데 그 때 너가 무슨 역할을 할 것이냐면 사람들이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이라고 할 거야.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이라는 말은 다른 누구를 가르키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지목하여 말씀하고 있는 호칭이예요. 이 부분의 다른 번역성서들을 살펴봤는데, 왕이라고 표현된 성서는 새번역밖에 없습니다. 다른 성서들에는 그냥 사람 또는 벽을 수선한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왕은 주체입니다. 지금의 엉망으로 변해버린 사람들과의 관계, 서로분쟁하고, 탓하고, 깨어져 버린 사회분위기, 남한과 북한의 갈등, 부자와 서민들간의 대결구도, 학교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평화가 깨어져 버린 이 상황! 이 엉망으로 변해버린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누구라고요? 바로 우리 한사람 한사람입니다. 우리가 왕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의 변화를 위해 세워주신 왕이라는 것입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갈라진 벽을 고친 왕이 될 것입니다.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이 될 것이예요. 분명히 우리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갈라진 관계, 전쟁같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저와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더럽고 망가져버린 이 세상,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바꿔서 사람이 살만한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저와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2012년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짧게 세 가지만 당부를 드리고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첫째, 계기판을 주시하면 살기를 부탁드립니다. 제트기 조종사가 비행을 할 때, 그는 그의 감각과 시선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로지 계기판을 주목합니다. 엄청난 빠르기의 제트기에서 우리의 감각은 그다지 신뢰할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2012년 여러분도 계기판을 주시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인들의 계기판은 말씀이며, 기도입니다. 혹시 지금 불안하십니까? 절망스럽습니까?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까? 그 감각을 쫒아가다가는 우리가 제트기 조종사라면 추락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감각은 너무 단편적입니다. 나의 생각은 전적인 나침반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나의 신앙의 계기판을 잘 점검하시고, 그것을 주시하시고, 의지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둘째, 관계를 건강하게 세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동산나무 밑에 숨은 아담과 화와가 나옵니다.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가 원래 어떠했습니까? 세상 그 누구보다도 친밀하고, 사랑하는 관계 아닙니까? 그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한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동산나무 밑이 가장 편한 자리였는데, 지금 아담에게 그 자리는 너무 숨고 싶고, 죽고 싶은 자리이지요. 신앙생활 하다보면 종이 한 장 차이로, 관계가 그르쳐질 때가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장소가 가장 불편한 장소로 변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라도 회복될 수 있는 관계다.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셋째,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더욱 민감해 지시길 부탁드립니다. 간디는 7대악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원칙없는 정치, 도덕성 없는 상거래 행위, 노동이 결여된 부, 개성을 존중치 않는 교육, 인간성이 사라진 과학, 양심이 없는 쾌락, 희생이 없는 신앙, 2012년이 시작되는 현재의 한국사회에 이 7대악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사는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부분을 함께 묵상하면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7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9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10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이 말씀 붙잡고 2012년 진정으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