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
성서 : 마태복음 8:13-16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들어가며 :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편만하게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통치하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왕국절에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좋은만남의 성도들에게 크신 은혜와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엊그제 한국기독교연구소 분들과 회의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전과 다르게 이야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이야기의 소재가 달라졌기 때문인데 그 소재는 바로 박원순 시장으로 인해 달라진 사회분위기였습니다. 사람 하나 바뀌었다고 사회 분위기가 이처럼 역동적이고 또 그에 대한 이야기꺼리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지만 그처럼 국민들, 백성들의 열망이 간절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인간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고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지키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그냥 앉아 있으면 결코 이뤄지지 않습니다. 골방에서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성취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심지어 예수를 통하여 그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2011년 한국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영적인 것을 썩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번 선거에서도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셨다고 믿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시고 자녀들이 건전하게 성장 성숙하는 모습을 보시기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이런 세상을 이루는 것이 바로 왕국절기의 기도제목인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나라의 통치, 하나님 뜻의 통치,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리며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또 많이 들어서 외우기까지 하는 구절입니다. 하도 많이 설교를 들어서 베드로가 했던 이 신앙고백이 가장 완벽한 신앙고백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학적으로 확고한 증언이라고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수석제자인 베드로는 그 분의 정체에 대해서 한 치의 틀림도 없이 가장 정확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제자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예수님이 이 질문을 제자들에게 한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가 아닙니다. 이 질문의 목적은 세간의 정보를 파악하고자 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의 고백을 듣고자 함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너 자신은, 너희들 자신은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자신의 느낌과 고백을 스스로 하는 것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가 어떻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하는 것을 듣고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알게 되고 느끼게 된 고백을 듣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아주 대답을 잘 했지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질문과 대답에 문제꺼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앞에 선 제자 자신, 즉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 자신의 고백을 듣기 원하셨던 질문보다 베드로의 모범답안이 더 큰 의미가 되었고 이제는 모두가 다 베드로의 고백을 그저 자기의 고백으로 달달달 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이야기의 목적은 지금 이 본문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은 어떻게 예수님을 고백할 것이냐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깊이에 따라 고백을 하면 됩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의 고백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참 많이 사용하지만 그리스도가 무슨 뜻인지 혹시 아십니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가 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제대로 알고나 계시는지, 뭘 아시고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을 하시는지요? 미안하게도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목소리보다는 성서가 전해주는 하나의 예시나 교회에서 목사가 강단에서 전해주는 교리들을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자신의 고백으로 차용해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뭔지 모르고 하는 고백이기 때문에 그 고백은 위기의 상황에서 힘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연속극에서 하는 대로 ‘사랑합니다’를 따라하는 사랑은 위기 앞에서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무슨 거창한 미사여구와 수사학적 기법이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친구라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그 친구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 사랑의 마음을 담아 바로 우리 자신의 단어와 어휘로 고백하면 됩니다. 법조인은 법률적인 단어로 하겠고 장사꾼은 상업적인 단어를 사용하겠지요. 아줌마는 아줌마의 언어로, 초딩은 초딩의 언어로 고백하면 됩니다. 바로 나의 언어로 예수님을 고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우리 좋은만남교회는 공동체적인 신앙고백문을 만들어 주일마다 함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을 믿어야 하고 따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우리교회 공동체의 특성에 맞게 우리의 마음을 모아서 담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문에서는 예수님을 ‘가장 완전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삶으로 살아내신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며 스승이 되심을 믿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좀 더 신학적이고 교회적인 고백,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부활 승천하신 분...’이라는 거창한 언사나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교리적 상징보다는 우리 삶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 그리고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부터 예수님을 만나고 고백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누구의 죗값을 대신 치른다든지, 생명 있는 제물을 바쳐서 죗값을 치른다든지, 세상 만민의 죄를 대신 지고 가는 어린 양의 상징도 딱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요.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에게 쏙 들어오거나 쉽게 동의되는 설정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일생을 통해 그 자신이 포기할 수 없었던 가치인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올곧게 걸어왔던 삶의 궤적이 더욱 깊은 존경심을 갖게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믿으려고 애쓴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동의하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예수님의 공생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교리적이거나 상징적인 것, 단순히 믿기만 하면 공짜로 주어지는 구원이라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역사 가운데 매우 구체적으로 들어나고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그 몸으로 삶으로 심지어는 죽음으로 살아낸 동적인 현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완전한 신이면서 또한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기꺼이 걸어가신 그 길이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 역시 그 길을 기꺼이 따를 것이며 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스승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스승이 없는 세대, 스승을 만나기 어려운 세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온 인류의 참된 스승이며 그것을 학식이나 지식, 가르침으로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그 삶으로 그 길을 보여주신 스승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스승은 가장 위대한 제자를 길러내는 분이겠지요. 우리가 가장 위대한 제자가 됨으로 가장 위대한 스승이 바로 예수님을 증명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구원자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구원자일까요? 물론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우리에게 시급히 요청되는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너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물질에 길들여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을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저 삶에 쫓기듯이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톱니바퀴마냥 살아가는 것에 급급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주신 생의 환희라는 원초적인 기쁨이 실종되었습니다. 게다가 물질에 길들여진 우리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노예적이고 비참하며 또 비굴합니까! 생명이 죽어가고 죽음의 노예가 되는 시대, 성서의 말씀처럼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구원을 갈망하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삶의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구속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되고 놓여나는 길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고 또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이런 해방자, 구원자로써의 예수님을 고백하고 도우심을 간구하고 인도하심을 소망하는 것이 바로 우리교회 신앙고백의 핵심임을 깨달아 아시고 참된 자신의 내면적 고백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부탁합니다.
나가며 : 예수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고백을 만들어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교회 공동체가 고백하는 ‘가장 완전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삶으로 살아내신’, ‘우리의 구원자이며 스승이 되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시는 중에 귀한 만남의 사건이 일어나고 삶의 방향을 확신하고 삶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