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평화를 전하는 사람
성서 : 에베소서 2,14-18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17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18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들어가며 :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마음에 받는 성도들에게 또 오늘 좋은만남교회에서 귀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세상을 향해 파송하는 임수현 선교사에게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임수현 선교사를 우리 교회에서 파송하며 파송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어 매우 감사합니다. 원래 선교사 파송예배는 감독급이 하는 건데 제가 이런 귀한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신 임 선교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감독급으로 여겨줘서 매우 영광입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아시다시피 임수현 선교사님이 이제 곧 스위스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본부로 가셔서 맡은바 사명을 감당하게 될 텐데 그 전에 우리 교회에서 파송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셔서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선교사를 물질로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책임을 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대신 임 선교사님께 우리가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런 귀한 일을 위임해주셔서 우리가 얻게 되는 자부심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우리가 더욱 자라나야 겠다는 결단을 하게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임수현 선교사님이나 우리들 자신에게 매우 큰 도전과 감동, 결단의 시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선교사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위해 어떤 설교를 전해야 할까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은 선교사라는 단어도 생소합니다. 의미로는 전도사나 선교사나 비슷하겠지요. 아무튼 선교사라고 하면 세상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없는 곳에 가서 예수님의 삶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선교사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닮고 따르는 일을 열심히 하라면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전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도 선교사로 몇몇이 나가있습니다.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직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낯선 상황에서 열심히 사역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선교사라는 직분이 여러 종교들이 경합하는 경연장 한 가운데 뛰어들어 다른 그 어떤 종교보다도 기독교가, 개신교가, 혹은 한국의 특정교단이 월등하다는 것을 선전하고 홍보하여 고객과 같은 신도를 불러 모으는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미안하지만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다른 종교와의 충돌이 생기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참 착하고 잘 어울리던 후배가 이슬람권 지역에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슬람교에 대하여 매우 격앙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밀한 부분을 보니 여러 가지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고 불합리하게 여기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솔직히 마음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전 세계가 종교 간의 갈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개신교와 이슬람교가 갈 데까지 가보자고 목숨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적 배경이 있는 국가들이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부를 채우기 위해서 약하고 저개발상태에 있는 국가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외국에 선교사 한 명을 더 파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단본부에서는 실적이니까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 그러실 것 같습니다.
선교사들은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열정이 있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선교사가 매우 고집스럽고 선교대상국의 국민들을 업신여기는 사례들을 우리 역사를 통해서 많이 봤습니다. 구한말에 한반도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매우 고맙고 헌신적이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우리 민족을 어리석고 불쌍하고 고집스러운 백성들로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고압적이고 시혜적인 자세로 선교를 해왔습니다. 거기에는 서양의 문물들이 미끼처럼 얹혀져 들어왔고요. 그리고 그런 선교사들에게 배운 한국교회의 교인들 역시 타종교인이나 불신자들을 불쌍하게 보고 어리석게 보게 된 것이지요.
저는 기독교인이, 선교사가 이런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열정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특히 해외로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이런 열정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열정, 예수님이 품으셨던 평화의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단순하게 개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개종하고 세례를 받게 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것이 선교일까요? 어제까지는 절에 다니던 사람이 오늘부터 교회당에 나오면 그게 선교의 성공일까요? 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닙니다. 이제는 화평케 하는 일, 평화를 이루는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부르십니다. 종교 간에 평화, 사람 간에 평화, 인종 간에 평화, 성별 간에 평화, 그리고 생태계와의 평화!
교회에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평화를 이루고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을까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만 가는 곳곳마다 부딪히고 다투고 상처를 남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있을까요? 매우 어렵고 복잡한 질문입니다. 자칫하면 이단시비를 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시고 평화를 이루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으며 예수님이 평화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셨을 때에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불교인은, 이슬람교인은, 힌두교인은?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정죄한 통일교인들은? 우리 입장에서는 참 불쾌할 수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자녀는 이쁘고 착하고 똑똑해서 부모 마음에 꼭 들지만 또 어떤 자녀는 말썽만 부리고 사고만 치고 순종하지 않아서 부모에게 걱정꺼리입니다만 둘 다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식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편애하지 않으며 자기의 자녀들이 형제자매 간에 화목하고 화평하게 지내는 것을 가장 기뻐합니다. 우리가 우주 만물의 창조주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그 어느 누구와도, 심지어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와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어야 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임 선교사님이 가게 될 세계기독교교회협희회는 MIssio Dei(하나님의 선교)라는 선교개념을 지향합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사람 사는 곳이면(오이쿠메네, 에큐메니컬) 어디에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새삼스럽게 기독교인 한두 명 더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과 정의 평화를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받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만드신 평화라고 고백합니다. 이방인, 유대인이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로 막힌 담이 헐리고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 구절에서 유대인은 누구이며 이방인은 누구일까요? 교회는 교인이 유대인,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이방인은 불신자라고 해석하며 유대인, 신자들의 우월성을 정당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담을 허무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막힌 담을 헐고 하나로 만드신 예수님이 우리와 이방인 혹은 이교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개종해라, 교회에 등록해라, 기독교인이라고 입으로 시인해라는 것일까요?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평화를 자처하신 것일까요?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용납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 외에는 대결, 다툼밖에 없습니다. 폭력으로 무릎을 꿇리는 방식 외에 어느 누가 스스로 무릎을 꿇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폭력적인 방식들이 그동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독교, 개신교가 해왔던 일입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종교, 교단을 위한 교인, 선교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예수인,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가며 : 오늘 이 자리에서 사랑하는 좋은만남교회 성도들과 임수현 선교사에게 감히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평화를 이루는 일을 위해 헌신하십시오. 선교가 등록교인 하나 더 늘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타종교인을 회유와 협박으로 개종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타종교를 믿는 문화적으로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것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형제자매가 화목하고 화평하고 세계가 평화롭게 교류하며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께 마땅히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 바로 선교이고 전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임수현 선교사님의 삶에 예수님의 평화가 충만하며 가는 곳마다 평화를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