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풍습이야기_세번째
로마 군인들은 왜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않았을까?
요한복음 19장 23-24절
주전 2세기에 기록된 유대인의 지혜서인 <시락>은 인생의 필수품으로서 ‘빵, 물, 옷’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의, 식, 주에서 집에 해당하는 주가 빠지고 대신 물이 들어간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광야의 환경인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유대인들이 사고는 ‘빵과 물과 옷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태복음 6장 25절
유대인들의 사상에서 옷감 짜는 기술은 그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꿈과 계시를 통해 태초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성막 기술자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막의 천을 짜는 기술을 포함해 성막의 기명을 다루는 기술을 하나님의 신이 충만한 가운데 받게 되었다.
출애굽기 35장 30-35절
고대 근동 지방에서 옷감 짜는 의식은 이교도들의 종교 예식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졌다. 이것은 ‘옷감 짜기’가 단순히 옷을 만드는 오늘날과 달리 신성한 종교 예식의 일부분으로 행해진 것임을 보여 준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 성전 안에 있던 남창의 집을 헐었는데, 그곳에서는 여신인 아세라를 위한 옷감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들을 우상의 형상에 입히고 이교도적 우상숭배를 행한 것이다.
열왕기하 23장 7절
예레미야는 사람이 만든 옷을 화려하게 입힌 우상들과 참된 하나님을 비교했다.
예레미야 10장 9-10절
이스라엘에서도 므깃도, 다아낙 같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도시에서는 이교도적인 종교 행사가 많이 행해졌는데, 종교 행사장 주변에서는 옷감을 짜는 베틀의 방추돌(옷감 짜는 베틀 뽑아낸 실을 이용해 옷감을 짜는 베틀은 B.C7000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수평형보다 수직형 베틀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수직형 베틀은 2개의 수직 막대기와 1개의 수평막대기로 구성되었는데, 수평막대기에 날줄을 줄줄이 매달고, 날줄을 탱탱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끝에 방추돌을 매달았습니다. 베틀 채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함으로써 날줄이 서로 엉키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에서 옷감 짜기가 신성한 종교 예식의 일부분으로 행해졌음을 잘 보여준다.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속옷
씨줄(수직의 실)과 날줄(수평의 실)로 부리는 두 줄의 사이 만나 옷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고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날줄’은 남성을 상징하고 ‘씨줄’은 여성을 상징하는데, 남녀가 연합해 새 생명을 잉태하듯이 날줄과 씨줄의 실이 서로 만나 옷감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고대인들의 생각이었다.
실잣기, 옷감 짜기, 염색 등으로 이어지는 옷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인생의 생로병사의 반복을 의미했다. 이렇게 탄생한 옷은 한 개인을 남과 연결해주고, 더 나아가 태초의 조상과 먼 미래에 탄생할 후손과도 연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일반적인 속옷은 씨줄과 날줄로 불리는 두 줄의 실로 짠 옷감으로 만들어졌는데, 두 개의 옷감을 붙여 끝에 솔기를 대어 꿰매면 완성되었다. 그런데 ‘호지 않고’(솔기를 대지 않고) 통으로 짠 예수님의 속옷은 분명 틀별한 옷이었다. 이것은 ‘날줄’로만 짜서 만든 한 개의 옷감으로 된 옷으로, 실밥을 뜯어서 계속 풀다 보면 기다란 한 개의 실로 풀렸을 것이다.
이처럼 씨줄이 없이 ‘끝없는 날줄’로만 만들어진 옷은 고대의 여러 문화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었다. 즉 창조주와 연결되는 족보, 연속성, 더 나아가 개인의 족보가 그러한 연속성 가운데 영원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옷이었다.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는 위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 더 나아가 하나님과 연결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대제사장의 속옷은 호지 않고 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끝없는 날실로 만들어진 옷을 강제로 찢는다는 것은 ‘신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고대인들의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옷’에 대한 개념으로 인해 로마 군인들도 함부로 이 옷을 찢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복음 19장 24절
심판처럼 급박한 때 농부는 왜 겉옷을 가지러 집에 들어갈까?
해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장마로 인해 수해를 입는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집이 떠내려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수해민들은 급히 집 안에 들어가 귀중한 물건 몇 가지를 챙겨 나오곤 한다. 혹시 장롱 깊숙이 숨겨 둔 물방물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있다면 일순위로 챙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서시대 농부들이 심판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집 안에 들어가 일순위로 챙겨 나오는 물건이 나오는 물건이 겉옷이었을까? 성서시대 겉옷이 가지는 의미를 모르는 현대인들로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얼른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18절
겉옷은 ‘입는 옷’이 아니라 ‘덮는 옷’
우리말 성경에 ‘겉옷’으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케쑤트, 씸라, 메일, 아데레트 등 다양한 단어로 등장한다. 역사적 자료가 빈약한 상황에서 이들 다양한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모두 ‘겉옷’이라고 번역해도 충분할 만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몸의 가장 바깥에 걸치고, 더 나아가 ‘덮는 옷’이라는 뜻이 있다. 옷을 ‘입는다’고 표현해야 하는데, 겉옷의 경우는 ‘덮는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린다.
집 근처에서 일을 하거나 가까운 곳으로 외출할 때에는 속옷만 입고 다녔지만, 멀리 여행할 경우에는 겉옷을 걸쳤다. 이 겉옷은 장기간의 여행에서 낮에는 더위와 비를 막아 주고, 밤에는 길거리 노숙을 위한 슬리핑 백 역할을 했다. 겉옷을 이불처럼 덮고 잠을 잤던 것이다.
포도주를 마시고 나체 바람으로 잠을 자던 노아의 아체를 두 아들 셈과 야벳이 옷으로 덮어주었는데, 이 옷이 겉옷인 ‘씸라’였다.
창세기 9장 23절
시어미니 나오미가 지시대로 룻은 보아스가 덮고 있는 겉옷 속으로 들어갔다. 자다가 함께 누워 있는 룻을 발견한 보아스는 화들짝 놀랐다. 이때 룻은 “나를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라고 간청했다.
룻 3장 9절
옷자락으로 덮는다‘는 것은 ’겉옷으로 덮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겉옷과 관련된 독특한 표현이다. 남자의 펼쳐진 겉옷 속으로 여인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 남자의 보호 아래 들어감을 의미한다. 즉 보아스와 결혼하기를 간구하는 롯의 완곡한 표현인 것이다. 집아니의 가장 겉옷을 펼치고 그의 보호 아래 들어온 가족을 모두 책임져야 했다.
현대 이스라엘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의 예배에 참석해 보면, 겉옷을 펼쳐서 가족을 보호하는 의미를 갖는 독특한 예식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배 도중에 ‘하잔’으로 불리는 ‘찬양 인도자’가 민수기 6장 24-26절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을 웅장하게 낭송한다.
이 때 예배에 참석한 집안의 가장들은 그들의 어깨에 걸친 기도 숄을 펼친다. 히브리어로 ‘탈릿’으로 불리는 기도 숄은 성서시대 겉옷이 현대화된 의상이다. 하잔이 제사장의 축복문을 낭송하는 사이 집안의 가장이 탈릿을 펼치면 아내는 그 탈릿 속으로 들어가 가장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의식을 갖는다.
성서시대 사람들은 모두 단벌신사?
겉옷은 세마포로 만드는 속옷과 달리 주로 양털로 만들었다. 소매가 긴 속옷과 달리 겉옷은 소매가 없거나 무척 짧았다. 성서시대 농부들은 대부분 겉옷이 한 벌 밖에 없었다. 오늘날 표현을 빌리자면 성서시대 사람들은 모두 ‘단벌 신사’였던 것이다.
성서시대 농부들에게 한 벌 뿐인 겉옷은 현대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최후의 수단으로 겉옷을 전당 잡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것은 겉옷 자체가 특별히 비싼 옷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겉옷은 네 귀퉁이에 달린 ‘술’ 때문에 생신 풍습이다. 히브리어로 ‘찌찌트’라 불리는 ‘술’은 ‘기다란 실’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겉옷의 옷단 귀에 술을 달아 하나님의 계명을 좇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냈다.
민수기 15장 38-40절
겉옷의 네 귀에 달린 술의 매듭은 사람마다 모두 달랐는데, 이 술의 매듭을 진흙 토판에 찍어서 자국을 남긴 후 돈과 양식을 빌릴 수 있었다. 오늘날 표현으로 한다면, 크레디트 카드나 인감 도장에 해당하는 것이다. 성서시대에는 단 한 벌의 겉옷으로 1회에 한정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했다.
율법은 겉옷을 전당 잡혔을 때라도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라고 명령하고 있다.
츨애굽기 22장 26-27절
신명기 24장 12-13절
가난한 자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급업을 하며 부를 축적한 사마리아의 부자들을 향해 아모스 선지자는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그들은 전당 잡은 겉옷을 가난한 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신이 덮고 잠을 잠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다.
아모스 2장 8절
곧 자신을 체포하러 들이닥칠 대제사장의 하속들과 로마 군인들로 인해 예수님은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이르신다.
누가복음 22장 26절
위기에 때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겉옷의 의미를 생각할 때, 심판의 급박한 상황에서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겉옷을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들에게 겉옷은 현대인들의 ‘물방울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더 소중한 마지막 보루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5장 40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왜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댔을까?
마태복음 9장 20-21절
유대인들에게 겉옷이 특별하고 소중한 이유는 겉옷의 네 귀에 달린 ‘술’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겉옷을 지을 때 술을 달라고 지시하셨는데, 이는 그 술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살아가는 ‘계명의 아들’임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민수기 15장 38-40절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열심과 경건성을 드러내려는 수단으로 옷단 술을 이용했다. 술을 길게 늘어뜨림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계명에 남다른 열심을 가지고 순종하고 있음을 보이려 한 것이다. ‘경문’은 기도할 때 이마에 차는 성구함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3장 5절
때로는 술을 너무 길게 늘어뜨려 땅에 질질 끌려서 뒤에 오는 사람에게 밟히는 경우도 있었다. 서기관들이 ‘긴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은 바로 이 옷단 술을 길게 늘어뜨리고 다닌다는 말이다.
누가복음 20장 46절
예수님이 기도할 때 ‘경문’을 차고 ‘옷단 술’을 착용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기 때문이다. 단지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은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드러내려는 수단으로 경문을 남보다 크게 하고 술을 길게 늘어뜨리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행동이었다.
요한복음 4장 9절
예수님의 행적을 다루는 영화나 기독교 성화를 보면 예수님의 겉옷에 달려 있어야 할 ‘술’과 기도할 때 이마에 차야 할 ‘경문’이 제대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만일 이 모습을 사마리아 여인이 보았다면 다번에 예수님이 유대인임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을 아무렇게나 만진 것이 아니다. 바로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린 ‘옷단 술’을 만진 것이다. 예수님 당시 1세기의 랍비 문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온전하지 않은 자가의 옷단 술에 손을 대면 온전해진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고 손을 대는 자마다 모두 나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6장 56절
겉옷에 달린 옷단 술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의미하는 영적인 상징물이다. 마치 오늘날 십자가가 마귀를 쫓는다고 믿는 것처럼 성서시대 유대인들은 겉옷의 옷단 술이 그런 영적인 에너지와 파워가 있다고 믿었다.
온전한 자는 하나님과 특별하고도 친밀한 영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 즉 하나님과 직접 통하는 사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장애가 없는 ‘의인’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1세기 이스라엘 땅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랍비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든 자를 살리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레위기 15장 19절, 26-27절
혈루증 여인이 무리에 둘러싸인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리를 뚫고 나와야 했고,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부정해야 했다. 간신히 무리를 밀치고 몰래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댔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온전하신 예수님도 여인 때문에 부정해질 수 있었다.
여인은 허락도 없이 함부로 옷단 술을 만짐으로써 예수님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1세기 당시의 라비 문헌은 남의 옷단 술을 함부로 만질 경우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옷단 술을 만지고도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옷단 술 소유자의 자녀들이었다.
마가복음 5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