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이야기_첫 번째
기독교 성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일 겁니다. 최후의 만찬으로 불리는 식사는 유월절 저녁에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해 자정 무렵에야 끝나는 유월절 저녁 식사를 말한다. 이 식사를 히브리어로 ‘쎄데르’라고 부른다.
전체 21장으로 이루어진 요한복음에서 13-17장, 무려 5장의 말씀이 유월절 쎄데르 자리르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쎄데르의 자리 배치와 식사 순서, 음식의 메뉴 등과 관련된 배경 지식 없이 이 말씀들을 제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의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인 ‘최후의 만찬’을 유대인들에게 보여 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도 유월절이 되면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 쎄데르가 집집마다 행해지는 이스라엘에 살면서 나는 수많은 기독교 성화들의 오류들을 발견했다. 많은 기독교 성화들은 유대인들의 문화와 풍습에 문화한인 유럽의 화가들이 유럽의 문화와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의 프리즘을 통해 투영해 그린 것들이다. ‘제 눈에 안경’이란 말이 있듯이, 잘못된 안경 그리고 잘못된 프리즘으로 사물을 투영할 경우, 그 실체가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최후의 만찬 방은 사랑방?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마가의 다락방은 어떤 용도로 사용된 곳일까? 성서시대의 집들은 ‘카탈루마’로 불리는 손님방이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손님들이 머무는 ‘사랑방’쯤 될 것이다. 이 카탈루마가 누가복음에는 ‘여관’으로 번역되어 있다.
누가복음 2:7
여관을 흔히 여인숙이나 모텔쯤으로 해석하는데, 이것 역시 성서시대 집들이 갖추고 있는 손님방일 뿐이다. 카탈루마는 모텔이나 호텔처럼 영업을 목적으로 손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 결코 아니다.
마가복음에도 동일한 헬라어 단어인 ‘카탈루마’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객실’로 번역되어 있다. 동일한 단어가 한 곳에서는 ‘여관’으로, 다른 곳에서는 ‘객실’로 번역되어 있다. 사실 이런 부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우리말 성경은 번역의 ‘일관성 작업’을 진지하게 거쳐야할 필요가 있다. 손님방을 의미하는 카탈루마의 의미를 볼 때, ‘객실’로 번역하는 것이 성서시대 문화에 맞는 적절한 번역이 될 것이다.
마가복음 14:14
원래 광야에서 목축을 하던 반유랑 민족인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와 농경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농경문화로 바뀌었음에도 목축문화의 소중한 유산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광야의 손님 접대인데, 집집마다 있는 ‘카탈루마’에서 나그네를 위한 접대가 이루어졌다. 지금도 브엘세바 광야에 거하며 양들을 치는 베두인들은 손님 접대를 최고의 가치와 명예로 여긴다
마가의 다락방은 2층 방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마가의 다락방에 대한 묘사는 누가복음이 가장 자세하다.
누가복음 22:12
첫째, 다락방이었다. 성서시대 대부분의 집들은 단층으로 이루어졌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2층으로 집을 올렸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의 제자인 마가는 동시대 사람들 중에 그럭저럭 재력을 갖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락방이라는 번역으로 인해 우리는 한국의 ‘다락’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2층에 있는 방을 가리킨다. 최후의 만찬 방은 2층에 있는 카탈루마였다.
둘째, 큰 방이었다. 이곳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히 큰 방이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 방에서 120명의 무리가 함께 기도 모임을 할 정도로 대단히 큰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13-15
셋째, 자리를 베푼 방이었다. 이것은 숙식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를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손님이 머무는 카탈루마에는 보통 매트리스나 쿠션이 구비되어 있었고, 손님들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테이블 모양이 ‘ㄷ’자 형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처럼 사각형의 테이블이 아니라, 한글 자음의 ‘ㄷ’자 모양의 3면 테이블이어야 한다. 이러한 3면 테이블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편입된 유대 땅에서도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ㄷ’자로 움푹 들어간 곳을 통해 종들이 음식 서빙을 자유롭게 했다.
둘째, 테이블에 앉는 좌석 배치가 잘못되었다. 3면 테이블에는 상석과 말석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상석은 왼쪽 날개 부분이고, 말석은 오른쪽 날개 부분이다.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서 상석은 당연히 그 식탁의 주빈이었던 예수님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좌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처럼 가운데가 아니라 왼쪽 날개의 중앙에 있어야 한다.
셋째, 테이블에 앉는 자세가 잘못되었다.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유월절 쎼데르 식사를 바닥에 앉은 자세에서 비스듬히 누워서 먹었다. 레오 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처럼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한 것이 아니다. 비스듬히 누워서 먹는 식사법은 주전 63년에 폼페이 장군에 의해 유대 땅이 로마제국으로 편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말씀처럼 출애굽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서서 급하게 식사를 했다.
출애굽기 12:11
그러나 로마의 문화에서 비추어 볼 때 서서 식사를 하는 것은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해 자유인이 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식사는 로마의 문화 속에서 변천되었다. 노예처럼 서서 식사하던 데서 점차 앉아서 식사하고 더 나아가 로마의 귀족처럼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변천된 것이다. 이로써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랍비 문헌은 유월절 식사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일 년 중 한 끼 식사, 즉 유월절 만찬만큼은 부자처럼 기대서 먹어야 한다.
기대서 식사를 할 때 머리는 테이블 쪽을 향하고 발은 뒤에 있는 벽을 향하게 되다. 이러한 식사 자세를 염두에 둘 때, 식탁에 있는 예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은 이야기도 새롭게 와 닿을 것이다.
누가복음 7:38
제자들이 상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로마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로마 사회는 가장 상위층의 원로원 멤버를 시작으로 귀족, 시민, 노예로 이어지는 사회 계급 구조가 매우 엄격했다. 공적인 모임에서도 신분에 따른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누가복음 14:8-10
3면 테이블의 경우 상석과 말석이 확실하게 구분되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계급 사회에 맞게 고안된 것이다. 3면 테이블이 갖추어진 최후의 만찬장에 들어갈 때 제자들의 주된 관심과 고민은 ‘과연 누가 상석에 앉느냐’하는 것이다. 만찬장에서 식사하던 중 서로 누가 크냐의 문제로 제자들 간에 실랑이가 일어난 것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누가복음 22:24
3면 테이블의 상석은 왼쪽 날개 부분에 있는데 일반적으로 세 명이 이곳에 앉는다. 중앙에 잔치의 주빈이 앉고 좌우에 주빈의 오른팔과 왼팔이 앉게 된다.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서는 당연히 왼쪽 날개의 중앙에 예수님이 주빈으로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좌우에 누가 앉을 것인가가 제자들 사이에서 매우 민감하고도 치열한 쟁점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의 치맛바람을 이용하면서까지 그 자리를 탐낸 것을 보면 상류층으로 올라가고 싶은 이들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마태복음 20:21
요한의 좌석 : 왼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 앉는 당시의 풍습을 통해 볼 때, 요한은 분명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아서 왼쪽으로 기대어 예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13:23
가룟유다의 좌석 : 주빈의 왼쪽 자리는 가룟 유다였을 거시다. 이것은 예수님이 떡을 찍어다가 유다의 입에 넣어 준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테이블은 3명이 한 조가 되어 겸상을 했는데, 오른 손으로 떡을 쩍어다가 자신의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의 입에 넣어 주었다.
요한복음 13:26
자신의 몸을 왼쪽 팔꿈치를 이용해 기대던 당시의 풍습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은 배반자 유다의 품에 안겨서 식사했음을 알 수 있다. 유다의 배반을 이미 알고 있던 예수님은 원수의 품에 안겨서 식사를 하심을 알 수 있다. 결국 버티다 못한 유다는 만찬장을 떠나게 된다.
베드로의 좌석
1) 베드로는 예수님의 좌우 상석에 당연히 요한과 자신이 앉을 것으로 기대했다. 베드로에게 2개밖에 남지 않은 상석의 경쟁자는 요한과 야고보였다. 평상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수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자리는 이미 요한이 차지했고 나머지 자리마저 의외의 인물인 가룟 유다가 차지하고 말았다. 상석을 차지하지 못한 베드로는 내친김에 가장 말석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유다는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인 제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유대 지방의 소도시인 가룟 출신이었다. 갈릴리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은 서로 철저하게 경멸하고 무시했다. 유대 사람들은 갈릴리 출신들에게 딸을 시집 보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짐슴과 같이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곧 갈릴리 사람들을 짐승에 비유했던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 지방 출신의 유다에게서 최대한 멀리 앉으러 했을 것이다.
2) 배반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베드로가 보여 준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무시무시한 예언 앞에 제자들은 저마다 ‘저는 아니죠?’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베드로는 요한에게 머릿짓을 해서 배반자가 과연 누군인지 예수님께 묻도록 신호를 보냈다. 베드로의 신호를 받고 예수님의 품에 안긴 요한이 “주여 누구오니이까?”라고 묻는다.
요한복음 13:24-25
3)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순서와 베드로의 엉뚱한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 자신의 옆에 앉은 제자들부터 발을 씻겨 주셨다. 민망하지만 제자들은 순순히 예수님께 자신의 발을 맡겼다. 드디어 말석에 앉아 있던 베드로 차례가 되었지만 그는 발을 내밀지 않고 버텼다.
요한복음 13:8
일반적으로 하인들이 옆에서 시중들며 발을 씻겨 주어야 하지만, 최후의 만찬은 당시 예수님을 체포하려던 종교 지도자들을 피해서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비밀스런 모임이었다. 하인이 없다면 당연히 가장 말석에 앉은 사람이 참석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베드로는 말석에 앉은 것도 서러운데, 다른 제자들의 더러운 발까지 씻어 줘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베드로가 끝까지 모른 척하며 버티자, 언제나 모범으로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일어나셨다.
최후의 만찬의 기본메뉴
유월절 만찬은 히브리어로 ‘쎄떼르’라고 부르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순서, 질서’라는 뜻이다. 이것은 명절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거나하게 한 끼를 먹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해가 지고 나서 시작해 자정 무렵까지 이어지는 유월절 만찬이 ‘순서’를 의미하는 ‘쎄떼르’로 부리는 것은, 만찬이 장시간 동안 복잡한 순서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무교병 : 마짜 / 출애굽 당시에 빵이 발효되는 것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급하게 탈출했던 출애굽의 긴박한 상황을 기억하는 독특한 식사였다.
출애굽기 12:39
어린양 : 문 입구의 인방과 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죽음의 신이 넘어간 것을 기념하는 식사였다. 성서시대 90%를 차지하는 가난한 소작농들은 결혼식과 유월절에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출애굽기 12:22-23
쓴나물 : 애굽에서의 쓰디쓴 노예 생활을 기억하는 식사
소소 : 히브리어로 하로셋이라 불리는 소스는 무화과, 대추야자, 건포도, 기타 견과류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 단맛이 나는 하로셋은 진흙 색깔을 띠는데, 이는 애굽의 노예 생활 중 진흙으로 벽돌 굽기를 하던 것을 기억하는 식사였다.
출애굽기 1:14
달걀 : 애굽에서 한 노예 생활의 고통을 기억하는 식사
포도주 : 기쁨을 상징하는 포두주는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해 자유와 해방을 맞게 된 기쁨을 상징하는 식사였다.
유월절 만찬은 네 잔의 포도주를 기준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출애굽 사건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속에서 재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유월절은 초에 불을 키면서 시작된다. 초를 밝히는 것은 거룩과 세속을 구분하는 의미가 있는데, 매주 안식일의 시작과 함께 촛불을 밝히는 것도 같은 의미가 있다. 거룩한 안식일의 시작에 촛불을 겸으로써 세속적인 6일과 거룩한 안식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불을 켜는 역할은 보통 어머니가 맡는데, 이는 가정에 빛과 따뜻함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1) 포도주 첫 번째: 전식
포도주의 첫 잔을 따르고 축복문을 낭송하면서 유월절 만찬이 시작된다. 첫 잔을 마시고 손을 씻는 예식이 거행되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것은 바로 이때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손을 씻는 것 외에도 발을 씻기신 것일까?
감람산 동쪽의 베다니에서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마가의 다락방으로 가려면 예루살렘 성의 아래 도시와 윗도시를 연결하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이 계단은 당시 대제사장이던 가야바의 집과 인접해 있었고, 종교 당국의 체포를 피해 제자들과 비밀스런 만찬을 원하셨던 예수님 일행은 이 길은 우회해서 힌놈 골짜기를 지나서 에세네 문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힌놈 골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각종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이다.
힌놈 골짜기를 히브리어로 게힌놈이라고 하는데, 이는 지옥을 의미한다. 예수님 일행은 아마도 부정한 힌놈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손뿐 아니라 발까지 씻는 정결 의식을 행했을 것이다.
정결 의식을 행한 후에는 쓴 나물을 소금물을 찍어서 먹고, 세 개의 마짜를 포개서 가운데 자른 후 접시에 올려놓는다. 여기까지가 유월절 만찬의 전식에 해당한다.
2) 두 번째 잔: 과거를 기억하며
만찬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자녀가 네 가지 질문을 한다. 이것은 출애굽의 역사를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명령이 네 번 반복되기 때문이다.
왜 이 밤에는 마짜를 먹는가?
왜 이 밤에는 쓴 나물을 먹는가?
왜 이 밤에는 쓴 나물을 소금물에 두 번 찍어서 먹는가?
왜 이 밤에는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하는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는 가장 연소자였던 요한이 이 질문들을 던졌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만찬의 인도자는 출애굽 사건을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어서 포도주 두 번째 잔이 준비되고 열 가지 재앙을 낭송할 때마다 입에 머금은 포도주를 접시에 뱉어 낸다. 이후 남아 있는 두 번째 포도주 잔을 마신다.
3) 포도주 세 번째 : 현재를 축복하며
유월절 마짜를 먹기 위해 축복문을 낭송된다. 이 후 쓴 나물을 마짜 사이에 넣은 ‘힐렐 샌드위치’를 만들어 하로셋 소스에 찍어서 먹는다. 가룟 유다는 메인 메뉴인 어린 양을 먹기 전에 만찬장을 빠져 나갔으므로 유월절 식사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양을 먹기 위한 축복문이 낭송되고 식사가 진행되다. 유대인의 가장에서는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이 숨겨진 마짜 조각인 아피코만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 아피코만을 찾은 아이는 돈으로 보상을 받고 아피코만을 잘게 부수어 모든 사람이 한 조각씩 먹는다.
세 번째 잔은 ‘구원의 잔’이라 부르는데, 식사를 마치고 세 번째 잔을 들고서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서 흘릴 자신의 ‘피’와 포도주를 연결시켰다.
4) 포도주 네 번째 잔 : 미래를 바라보며
유월절 식사 끝난 후 방의 문을 열어 놓고, ‘엘리야의 잔’으로 불리는 네 번째 포도주 잔을 가득 채운다. 이것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출현할 엘리야를 위한 잔이다.
말라기 4:5-6
유월절 만찬을 마치는 시간은 대략 자정 즈음이었다. 만찬을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 지붕에 올라가 감사의 찬송인 시편 113-118편(할렐 송)을 불렀다.
마태복음 2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