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희망이 충돌한다.
글: 이관택
김원영,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푸른숲, 2010.
태어날 때부터 ‘골형성부전증’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82년생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이다. 하지만 그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서의 특별한 삶을 살아왔다. 병원에 갇혀 어린 시절을 지내야했고,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할 수 있었으며, 중학교 과정은 재활원이라는 시설에서 보내야 했다. 그 이 후의 삶도 그리 평범하지도 평탄하지도 못했던 것은 당연했는데,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란 그 만큼 힘겹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력이 설명해주는 외형적 조건보다, 그의 심리와 내면적 세계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내면이 만나는 세상은 더욱 더 험난하고 심오했으며, 한편으론 오싹하기까지 했다. 그는 상처 입은 영혼이 아니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삶의 세밀한 지점과 오묘한 공기의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신체적인 활동과 정신적 활동의 분리로 인한 괴리감은 그가 매순간 느끼는 일상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처 충만한 감수성으로 우울한 세상에 대한 디테일한 접근법을 득도하듯 숨기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인간 김원영이다. (장애인 김원영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게 슈퍼장애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의 감수성과 고민,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며, 실현해내는 과정이 그러하다. 그가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건만 많은 이들은 ‘장애인 김원영’의 삶을 통해, 그의 바람과는 다른 종류의 희망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서울대에 가고, 자동차를 끌고 다니며. 연애도 하고, 음악도 하고, 사회운동도 하고 결국, 서울법대 로스쿨까지 들어간 ‘인간’에게 상처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본인이 그리도 거부한 스티븐 호킹이나 헬렌켈러가 되기에 충분한 발자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자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고 싶다. 그 번뇌와 선택의 연속 가운데 드러난 삶의 궤적은 보너스이다. 그의 선택은 마냥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그러한 판단이 이 책의 의도도 아니며, 그 옳고 그름의 결과론적인 인생항로를 구경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인간의 욕망과 희망의 충돌! 그 사이에 갖게 되는 보이지 않는 고민들을 좆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그리고 내 삶에서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그 욕망과 희망의 문제를 섬세하게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난 이 책 ‘차.희.뜨.욕’에서 단순한 휴먼스토리 안에 숨겨진 보석같은 성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한 인간의 성장기에는 전반적으로 팀버튼 감독의 영화들에 흐르는 우울한 향기가 풍긴다. 그것은 웃고, 신나고, 호들갑을 떨더라도(배트맨의 조커나 펭귄을 떠올려보시라), 또는 형형색색의 칼라파워(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보셨나요?)를 자랑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오싹함과 우울감인데, 그러한 냉소적인 눈빛이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삶의 여기저기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서늘한 그 빛이 결국 어둠을 이긴다니... 따뜻한 빛이 가질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희망이 있음은 분명하다.) 어딘가 비뚤어진 듯 한 시각,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싶어서 결국 자신을 부정하고 마는 불가촉천민의 감수성, 바로 가장 낮은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봐야하는 존재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그 상상력을 나는 만나게 된 것이다.
저자는 휠체어를 타고 멕베스라는 연극에 직접 출연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창조적 연출과 상상력의 힘에 대해 역설한다. 68혁명의 기치가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었는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상상력은 모두가 함께 연대하면서 함께 비를 맞으며, 무대와 객석이 뒤바뀌는 다이나믹하면서도 유쾌한 변화에 관한 상상력이다. 관계의 전복, 세상의 변화, 내 삶의 긍정은 상상력의 소산이다. 하지만 세상이 우울한 사람만이 세상의 변혁을 바라는 법이다. 특히나 목숨을 걸만큼 우울증이 나의 삶을 온전히 뒤덮는다면, 그가 소원하는 따뜻한 ‘희망’은 욕망보다 더욱 간절해질 것이다. 희망과 욕망의 충돌! 우리는 무엇을 희망하고 무엇을 욕망하는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갖고 있는 감수성의 한계는 결국 세상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낭만과 희망, 그 따스한 봄기운은 머릿속의 한낱 상상으로만 머물고 마는 것이다. 진정한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이다.
2003년 이후 진행된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투쟁은 그러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저 우주 언저리에 있을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이 아니라, 당장 너무나 절실한, 배고픔보다도, 더한, 욕망이란 말이다. 지난 월요일부터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는 중랑통합부모회가 “중랑구, 동대문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라”라는 요구를 하면서 일인시위를 진행 중이다. 당장 가장 절실한 요구이기에, 가장 합장한 분노이자, 욕망이기에 이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일인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 함께 생각해볼 문제
Q. 토마토학교를 하고 있는 나의 희망은 무엇인가? 따뜻한 시선인가? 차가운 시선인가? 차가운 희망인가? 뜨거운 욕망인가? 책의 제목에 대해 한번 논의 해 보자
Q. 저자가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자원활동가들과 당사자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실질적인 만남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실천적인 방안들은 무엇일까?
Q. 휠체어 위의 멕베스처럼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재구성을 바란다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이 희망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