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은 소중하게 지켜야할 것입니다.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는 생명의 끝이고 이 땅에서의 삶도 끝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생명을 지키는 사명도 있지만, 생명으르 돌보는 사명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생명을 돌보고 가꾸라는 명령도 주셨습니다.
생명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주 훌륭한 예로 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쉽지 않듯이 말이지요. 비단 아이를 돌보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잘, 그리고 정성껏 돌보는 일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천지창조를 할 때에 하나님의 수고와 부모님들의 수고와 땀, 또한 음식을 먹을 때 농부의 수고와 땀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비겐 구로얀은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위적이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위적인 것은 본디 생명을 돌볼 때에만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정원인지 공터인지 모를 지경에까지 되지요. 이를 고린도후서 2:15-16절에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녹색의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는 5월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경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낙원에서 쫓겨난 자들이기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된 관계,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단절된 관계, 사람과 나머지 피조물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일구고, 그것을 감사의 예물로 바치기를 원하신다.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때에 복을 내리고 싶어 하신다.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43쪽
모든 피조물이 우리 육신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들도 영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끌어올려지기 위해서다. 원예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으키신 놀라운 부활의 은유이자 거룩한 상싱이다. 낙원이 우리의 간절한 바람의 대지에서 자라나듯이, 불모의 십자가가 생명의 나무임을 드러내 보이신 분께서 지금도 모든 피조물에게 즐거운 노래를 요구하고 계신다.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52쪽
나는 우리 현대인들이 이 세상을 하나의 정원으로 여기고, 원예를 더 많이 했더라면, 다른 모든 피조물과 땅에서 자라는 것들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아름다움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원예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한결 아름답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하여금 우리를 변화시키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원을 바라는 우리의 간절한 갈망에서 원예가 싹틀 때,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울 것이다.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99쪽
정원을 일구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의 거룩한 상징들 한가운데 서 있는 것입니다. 자연이 주는 가르침은 상당히 단순합니다. 그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죽음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 살아 있는 것들의 신생을 위한 준비라는 것입니다.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