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은 보는 것 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일어나십니까? 아니면 보는 것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고백이 일어나십니까? 이 책의 저자 이현주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마다 당신이 보이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보는 것 마다 당신이라는 고백이 나오기 위해서 관찰하기도 해야 하고 골돌히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래야지 보는 것마다 당신이라는 고백이 나오지요. 이러한 고백이 나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우리의 인생에서 쉼입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 그리고 바쁜 삶의 템포 속에서 쉼을 중간에 끼어넣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도 이야기를 만들고 있고 인생의 이야기 안에서 이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현주 목사는 이에 대해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생이란 그것이 누구의 인생이든, 결국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서(태어남), 잠시 자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다가(삶), 언제 어떻게 끝날지 또는 아주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죽음)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짧은 이야기라도 의미가 담기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이야기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의 이야기는 더 좋은 인생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못된 놈들이 결국 불쌍한 인민을 속였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사람들은 저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걸까요?”
스승이 말했다.
“이런 우화가 있는데 들어보았나? 어느 날 나귀에 짐에 싣고 길을 가던 상인이 멀리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도적 떼를 보았지. 그래서 나귀에게 ‘빨리 가자. 놈에게 붙잡히겠다’ 하고 말하자 나귀가 묻기를. ‘놈들에게 붙잡히면 저들이 내 등에 지금 지고 가는 것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울까요?’ 그러자 나귀가 이렇게 말했다네. ‘어차피 무거운 짐을 질 바에야, 그게 누구의 짐인들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스승이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백성에게는 낡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세우는 것이 같은 주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런 경우가 흔한 법이라네.”
『보는 것마다 당신』, 31-32쪽
부지런한 꿀벌이 살았다. 그는 말벌이 꿀을 만들지 않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그래서 어떻게든 말벌에게 꿀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많고 지혜로운 꿀벌이 그의 계획을 알고 충고 했다.
“말벌은 꿀벌처럼 생겼지만 꿀벌이 아니라네. 자네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을 거야. 그들은 우리를 원수로 알고 있거든.”
젊은꿀벌이 말했다.
“한 때 꿀벌과 말벌이 원수였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그래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꿀벌은 말벌처럼 보이려고 노란 밀랍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마치 새로운 기술을 발견한 말벌인양, 말벌들 사는 곳에 나타나서 꿀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모두들 좋아하며 열심히 배웠다. 며칠 만에 말벌들도 꿀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햇볕이 뜨겁게 내려쬐어 꿀벌 몸을 감싸고 있던 밀랍이 모두 녹아내렸다. 그들은 지체 없이 덤벼들어 꿀벌에게 침을 쏘아댔고, 결국 그를 죽였다. 그러고는 여태 만들었던 꿀으 모두 없애버렸다.
『보는 것마다 당신』, 215-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