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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인생에 대한 이름 짓기

- '4천원 인생'을 읽고 -

 

글: 이관택 전도사

 

'4천원인생'은 지난 2010년 한겨레21에서 연재한 비정규직에 관한 기획기사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4명의 기자가 각기 위장취업의 방식으로 현장에서 한 달 정도 직접 노동을 하면서 써내려간 현장일기이다. 이 책에는 감자탕 집과 갈비집, 대형마트, 이주노동자, 컨베이어 조립공장 등에서의 노동자가 우리시대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어떻게 통용되고 취급되며,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관찰일지의 형식으로 가슴절절하게 말해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더러운 세상!" "더러운 새끼들!"이라는 말이 입가를 계속 맴돌게 되었는데, 내 어머니 인생의 절반이 식당 노동자였고, 내 아버지 역시 인쇄소, 주차장, 마을버스 등등을 전전하던 힘없는 날품팔이였으며, 나 역시 온갖 알바로 20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경험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내게 지난날의 힘겨운 일상을 끄집어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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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의 무서움

매일 지기만 하는 '비정규직'의 특징은 '현재'를 몽땅 저당 잡힌 채 살아가지만 정작 '현재'가 없고, 끊임없는 삶의 '경쟁'에 내몰리지만 정작 '경쟁'의 규칙도 그에 따른 성과와 보상도 없고, 감정노동으로 머리와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일하지만 정작 '감정'이 없는 인간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들에겐 정식 계약서도,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도, 직급도, 심지어는 이름도 없다. 그저 용역업체의 날품팔이, 판견직, 심지어 '불법'이라는 물건이나, 기계를 지칭하는 용어들이 난무한다. 인간임을 부정당하고, 차별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용인되며, 일정한 질서와 규칙도 없는 이 비정상적인 시스템은 ''라는 형용사가 붙여지며 의미지워 진다. 노예, 생체실험, 학살, 전쟁, 성매매가 가능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인간을 그저 인간의 껍데기를 한 '의사인간'으로 보지 않으다면 절대로 그 시스템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출입국사무소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을 그저 이 사회에 필요한 만큼 '남겨두는'(160p) 미온적 태도와 살인적 태도의 반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는 마치 길고양이들을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도 고양이(자기의 반려동물)를 좋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고양이(도둑고양이, 밤마다 애기울음 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증오하고, 고양이 청소를 단행해야 한다는 이중적 잣대는 결국 이 사회가 비정규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태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군대 제대 후 동일유통이라는 물류 회사에서 3개월정도 일한 경험이 있는데, 전국의 편의점에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매일같이 물건들을 분류하고, 옮기고 정리하는 일을 하는 물류창고였다. 컨베이어 벨트가 지나가면 쌓아놓은 물건에 숫자가 뜬다. 예를 들어 서울 상암동지점 것이 지나갈 때 숫자 '5'가 뜨면 음료수 5박스를 내려놓는 것이다. 일은 간단하다. 내가 맡은 10개 종류의 물건을 정신없이 깜빡거리는 숫자에 맞춰 내려놓는 것이다. 약 하루 10시간 동안! 쉬는 시간은 두 시간에 10분 휴식, 점심시간은 1시간, 야근도 밥 먹듯이 한다. 불량이 나오면 호되게 욕을 먹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남는 시간 짬짬이 박스 정리, 창고 청소를 한다. 그리고 한 달에 120만원 정도를 벌었다. 토요일도 5-6시까지 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에겐 '젊음'이 있었기 때문에, 또한 그저 알바였기 때문에 스스로 '절망'을 맛보지는 않았지만 '절망'하는 노동자들은 많이 만났던 것 같다. 부사장과 반장들의 횡포를 잊지 못한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자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비정규직의 일상이다. 내가 당시 그 아픔을 극복했던 방법은 친구들을 7명 정도 데려오는 일이었다. 어차피 할 거, 친구들이랑 놀면서 일했고, 쉬는 시간에 우리끼리 고기도 구워먹고, 축구도 하고, 야근 수당도 따냈다. 역시 머릿수가 중요하다.(서로 끈끈하게 대할 수 있는 공동 운명체 같은 이들이어야 그나마 숫자라도 중요해지지) 섬 같이 따로 떨어져서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그 혹독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견딘다는 것은(262p)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수록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주문만 더해 갈 뿐이며, 정작 본인자신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자존감 제로의 나날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이 시스템이 의도하는 부분이며, 결국 ''라는 말의 칼날은 처음에는 남을 향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이 망할 놈의 시스템이 그래 실제로 존재하지만 의미상 존재하지는 않는 거니까.

 

 

'미래'만을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노동의 유연화'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신자유주의 체제와 질서 가운데, 이 토할 것 같이 너무나도 유동적인 우리의 노동시장에서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한 치 앞의 '미래' 뿐이다. 아무리 달려 나가도 이 한치 앞의 미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므로 우리 삶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겐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시간이 그 날을 버티게 하는 실낱의 희망이며, 쥐꼬리만한 월급봉투는 한 달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직 소비할 때만이 인간으로 취급받는(123p) 노동자들에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단 한 순간은 '소비'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인간으로서 온당하게 받아주는 사회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소비'의 순간을 위해 현실을 통째로 저당 잡히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지금 이 순간' 카르페디엠을 외치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싸늘한 시선 뒤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파국의 미래를 겉 포장지로 쌓은 낙관론만이 무수한 세상에서, 기러기 아빠들이 하늘에서 춤을 추고, 버스정류소에는 '지금 잠이 오십니까?'라는 보험회사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현실에서, 과연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 전체가 미래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직이면서도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티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순간이 중요하다는 말이 오히려 이들에겐 고통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 무슨 중세시대 노예 노동의 현장이란 말인가! 이승의 삶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요. ‘저 천국으로 우린 함께 가겠네라고 설교하던 역겨운 백인 수사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미래'만을 이야기 하는 세상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왠지 기분 나쁜 진실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은 때론 매우 잔혹하다. 그것이 개인적인 관계나 애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어떤 당위적 목적을 지닌 채, 그 온당한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시도는 자칫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네 명의 기자가 투철한 저널리즘을 가지고 한 달씩이나 위장 취업하여, 비참한 노동현장을 온몸으로 폭로한 이 치열한 기록 속에서, 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을 발견한다. 또한 나의 사촌 여동생과 작은 어머니를 발견한다. 그러다 보니까. 이 진실의 기록에서 공감보다는 굉장한 괴리감을 느낀다. 실제 그러할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만, 위대한 삶의 여정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런 위대한 삶의 열정을 지닌 나의 어머니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새벽부터 오늘 하루의 행복을 위해 다짐하고, 미소로 잘 다녀올께를 이야기하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구조에 편입되려하지만 결국 인간이 되어 버린 실패자들의 기록들만이 즐비하다. 물론 비참한 현실에 대한 폭로는 누군가가 에이 설마?’하며 오바하지 말라고 얘기 할 때,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성폭력 생존자들은 실제 자신들이 겪었던 일에 비해 훨씬 축소하여 이야기 하는 경향도 있다. 아무도 믿지 않을까봐. 그런 부분 앎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편한 시선과 실제 답답한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 인간들을 바라보고, 취급한 담론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민중이 예수다!라는 낭만적 민중신학이 아직도 내게는 맞는 것인가? 에잇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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