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9.02.16 15:58

2019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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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주현 후 제6주일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우리에게 나타나신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절기가 되시기를 빕니다.

2. 다음주일은 졸업입학 축하주일로 지키겠습니다. 졸업과 진학, 입학하시는 분들은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오늘 오후 2시 30분, 신도중앙교회에서 은평동지방회가 열립니다. 지방회원은 목회자 네 분과 한효균 부장님, 임정희 집사님이십니다.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방현섭 목사가 내일부터 사흘간(18-20일) 합정동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교육관에서 열리는 한국기독교연구소 예수목회세미나에 참석합니다. 이번 세미나에서 우리교회 목회 사례를 나누고 발표합니다.

5. 이재원 고수정 성도님 부부가 교통사고로 입원중이십니다. 쾌유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6. 송윤혁 집사님의 쌍둥이 자녀 슬아와 한울의 돌잔치를 23일(토) 오전 11시 30분, 플래너 서울역점 지하2층 B파티룸에서 합니다. 많이 참석하셔서 축복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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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했습니다. 작년 6월에 싱가포르에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조성되는 것 같아 기뻤는데 미국이 중간선거를 마친 후 아무런 후속조치를 하지 않아 정치쑈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이달 말에 베트남에서 다시 만나 회담을 한다니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러나 최근 정세의 급변과 기대를 보며 솔직히 인간적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통일운동 세력이 심지어 극단적인 방법까지 써가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뛰어다녔어도 별 성과를 보지 못하였고, 저도 나름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대북 인도지원단체에서 일하였는데 되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미국 대통령이 결단하니 너무 쉽게 풀려가는 것을 보며 드는 회의감입니다. 그럼 도대체 그동안 평화통일 세력이 했던 노력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과 두 국가와 지역의 평화가 강대국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는 상황이 그저 허탈할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동안 시민사회 통일세력이 그런 노력을 했기에 오늘의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는데 제게는 그저 교과서적인 소리로밖에 안 들립니다.

그렇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요즘 요한복음을 읽다보니 '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자주 눈에 띕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거나 혹은 이제 때가 찼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의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에 맞는 적당한 일을 하십니다. 그 때를 알건 모르건, 이해하건 못 하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고 사명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반도에서 일하시는 '그 때'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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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성도님 부부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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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고수정 성도님 부부가 지난 10일 새벽에 음주운전 차량에 추돌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주일 새벽이라 미처 입원하지 못하다가 화요일이나 되어 하셨다고 합니다. 면허정지 수준의 음주운전자가 신호대기 중인 성도님 부부가 타신 차량을 세게 들이받아, 출고한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경승용차가 견적이 700만 원 이상 나오는 큰 사고가 난 것입니다. 이재원 성도님은 목과 허리에 통증을 많이 느끼시고 고수정 성도님은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을 당하셨습니다만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병원에 입원하시는 기간이 꽤 길어질 것으로 예상돼 생업도 걱정입니다. 부디 잘 치료 받으셔서 몸이 완쾌되고 생활에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며 어려운 일 중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교우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인터넷 교계언론 베리타스와 인터뷰하였습니다”

 

담임목사가 지난 12일(화)에 교계 인터넷 언론인 베리타스(http://veritas.kr)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베리타스 대표와 장효진 기자가 함께나누는세상 사무실로 찾아와 한반도 문제와 교회의 역할, 좋은만남교회와 목회를 주제로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인터뷰는 '젊은 인터뷰'라는 꼭지로 기획된 연재물인데 3월 중에 두 차례로 나누어서 실리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교회가 알려지는 좋은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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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모욕하는 세 국회의원을 규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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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18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이라고 하고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세금 먹는 괴물이라고 비하하는 등 망언을 하여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세 명의 의원들이 공동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 종북좌파들이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 5.18 문제에서만큼은 우파가 물러서선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었습니다. 이 발언들이 문제가 되었지만 나경원 원내대표, 김병준 비대위장 등 지도부는 "의견이 다양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우리 당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해 5.18 관련 단체의 강력  항의를 받고 고소와 고발을 당하게 되었으며 여야 4당은 '5.18 왜곡 금지법'을 발의하기로 하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 의원들을 제명하라는 요구에도 당헌과 당규를 들어 이종명 의원만 제명하기로 하고 김진태, 김순례 의원은 징계를 유보하기로 하여 국민적 비난에 직면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대표에 출마한 두 김 의원은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좋아하는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시킨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우습게보고 있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탐욕스러운 권력집단에 의해 수백 명이 살륙되고 유가족들이 오랜 세월동안 고통당한 5.18은 국민 모두의 상처이기도 합니다. 수차례에 걸쳐 진상을 규명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국민적 합의를 하였음에도 5.18을 정략적으로 악용하고자 망발을 일삼는 극우 악질 세력들이 국회에서 퇴출되게 하십시오. 

 

(11) 착한 학생이 되고 싶어요

 

1

학생: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이라는 건 존재합니까?

학생: 하지만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없으면 제가 지금 행하는 선행이 진짜 선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학생: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같은 것을 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절대적인 선 아닙니까?

 

방학 중 학생과 나눈 문자 메시지의 내용입니다. “삶에 기준이 될 만한 절대 선(goodness), 변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나 옳은 선이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선한 행동인지 악한 행동인지를 알았으면 하며, 그 기준을 따라 선한 행동을 하고 싶다는 순수하고 착한 학생의 생각입니다. 절대 선을 알고 있다면 그 기준에 맞추어 살면 되니까요. 이제 학생의 생각을 따라 명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절대선은 있다. 이 절대선에 따라 사는 것이 선한 삶이다.’ 

 

2

‘절대선은 무엇인가?’ ‘절대선은 신(God)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절대 선으로 불리는 신의 실제는 좀 생각해야 합니다. 중세의 신은 신의 대리자들을 또는 대리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리자들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는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곧 종교재판과 화형을 의미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생각에 절대 선의 권위를 부여한 실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지동설’과 교회와 다른 이야기를 한 여성 마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세를 중세(中世, Middle Ages)라고도 암흑기(暗黑期, Dark Ages)라고도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늘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어떤가요? 여전히 악으로 선언하고 있다면 오늘도 중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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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니까 그게 뭐에요?’ 그러니까요. 설명이 곤란합니다. ‘성경에 써 있네.’ 이건 대화하지 말자는 이야기구요. 그래서일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논리철학논고/철학탐구/반철학적 단장』,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11), 114.)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절대 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말을 하기로 했습니다. ‘튤립’이 무엇일까 생각하기보다는 마르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에 ‘분무기로 뿌린 물방울에 반짝이는 햇볕이 앉은 튤립’ 그리고 ‘한 잎 한 잎 사랑을 담아 고백한 튤립’에 관심하기입니다. 변하지 않는 튤립의 본질에 대한 물음보다 튤립이 어떻게 드러남이 먼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동의합니다. 튤립의 본질이 무엇인지 몰라도 예쁜 튤립을 볼 수 있으며, 사랑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수업 시간에 묻습니다. “선한 삶이란 무엇일까?” 많은 학생이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선함의 기준을 법에 두는 것입니다. 물론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하면 그 법의 주인이 누구일까? 인간은 구성된 존재입니다. 사회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구성하는 존재입니다. 그 사회 구조를 만든 것 역시도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학교에는 학교생활규정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학교생활규정을 준수하는 학생을 선한 학생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생활규정을 만드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조금 더 용감했으면 합니다. 그래도 됩니다.(물론 대학 입학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일부 선생님의 협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들들, 나는 너희들이 다른 이의 규칙에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함을 살고 그 규칙을 만드는 주인공들이 되길 바란다.” 꼰대의 향이 스물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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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설교가 은혜가 있어 그런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설교가 이쯤 되자 성도들이 “와”하고 웃어버렸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당황되고 얼굴도 화끈거렸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순간 재치를 발휘했다. “그때 삭개오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야, 그 자리는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재치란 ‘상황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그 상황에서 가장 친절하면서도 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재치 있는 사람은 심각한 상황을 부드럽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재치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tact)는 원래 촉감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예민한 손가락이 어떤 물건의 끈적거림이나 부드러움, 매끄러움, 뜨거움, 털이 있는지 등의 여부를 식별할 수 있는 것처럼, 재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감지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재치가 부족한 사람은 마치 정시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차를 세워 승객들을 태우는 일조차 하지 않는 버스 운전기사처럼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하거나 그것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소홀합니다. 재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황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아보는 넉넉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적절한 대답은 사람을 기쁘게 하니, 알맞은 말이 제때에 나오면 참 즐겁다.

(잠언 15:23)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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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에큐메니즘 II (2)

7. 우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나누고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형제됨을 믿습니다.

 

1. 만민에게 복음 전파(1)

우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나누고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믿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복음 전파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다. 감리회 신앙고백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라고 고백함으로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하는 대상은 모든 사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감리교는 인종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전술하였듯이 웨슬리는 칭의 이전에 ‘선행은총’을 강조하였음으로 감리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제한적 은총’이 아니라 ‘보편적 은총’을 믿는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감리교는 선행은총과 복음의 보편성을 전제로 인종과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우리들은 흔히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전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복음 전파는 거리전도나 방문전도와 같이 블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나 복음을 모르는 지인들에게 입/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복음 전파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근거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은 개인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도 지향한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파되어야 하고,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복음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이고,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해방이고,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에게 치유함을 가져다준다. 복음의 차원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경제적인 차원으로 확장되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을 넘어서 육체(몸)적인 차원을 포괄한다. 결국 복음의 전파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나누는 일이고,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일이므로 복음의 범주는 개인적 구원, 사회적 구원, 우주적 구원을 아우르는 통전적인 구원이다.

그러나 사회적 구원과 우주적 구원을 이루기 위한 우리들의 선교 활동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정치적 운동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클라이버(W. Lkaiber)와 마르쿠바르트(M. Marquardt)는 [감리교회 신학]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독교 봉사의 역사적이고 영적인 근원이 가난하고 병들고 갇힌 사람들을 위한 예수의 사역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무엇인가를 주어야 할 사람들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예수의 제자들이 되어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감리교인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갇힌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하지만 단순히 도와주는 것을 넘어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감리교의 선교활동은 사회 복지운동과 동일시될 수 없고, 일반적인 정의/평화 운동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감리교의 선교활동과 사회정치적 운동 사이에는 교집합이 존재하고 연대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선교활동인 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에 근거해야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과 그들을 예수의 제자들이 되도록 하는 측면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감리교의 선교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구조적 문제와 악에 대하여 저항하고 개혁을 시도함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환경운동과 생명운동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감리교의 선교는 복음적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향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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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22절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 역시 매우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NGO단체 활동과 목회를 병행한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바쁜 와중에 마음을 쏟는 일 중 하나가 감리교회 개혁을 위한 목회자 모임인 '새물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창립한 지 1년 반이 조금 넘은 이 단체는 의지는 높지만 여러 가지 내부적인 부족함이 많아 아직 든든히 서지 못하였고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선의에 의한 금전문제까지 생겨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며칠 전에 회의를 하는데도 '새물결'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탈퇴하겠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새물결'이 저 역시 마음에 쏙 들지는 않습니다. 맡은 일도 있다 보니 귀찮기도 하고요.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고 귀찮다는 이유로 하나둘씩 빠져나간다면 교회의 개혁과 미래를 위한 준비는 누가 하겠습니까! 개혁의 필요성은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그 일을 위해 나서서 함께 일하지 않는다면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 교단 문제에 대해 비판적 의식은 많지만 직접 나서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들 자신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뜨겁게 새겨집니다. 미력이나마 저라도 끝까지 견뎌 아름다운 결실을 함께 나누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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