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1. 오늘은 사순절 제3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기리고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육체적 즐거움을 멀리하고 경건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2. 다음주일에는 방정빈 청년이 공동설교를 해주시겠습니다.
3. 이번주 수요성서대학은 개인사정으로 출석이 어려운 분이 계셔서 휴강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주(4월 3일)에 [예수 성경 동성애]의 2~3장으로 공부할 예정이니 책을 읽고 준비해 오시기 바랍니다.
깨어나십시오.
지난 주일 예배당 대청소를 하고 치킨집에서 뒤풀이를 하던 중 세례에 화제가 모아지면서 교우들이 정백광 성도님께 세례를 받으시라고 적극적으로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나 정 성도님은 '그것만은 권하지 말라'시며 세례를 받으실 생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입장이 애매해졌습니다. 목사로서 적극적으로 세례를 받으시라고 권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 세례를 받고 싶지 않은 분의 신앙적 상태나 개인의 결단을 존중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세례를 강하게 권면하지 않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세례(洗禮)는 깨끗이 씻는 종교적 예식입니다. 죄에 물든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깨끗이 씻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는 의식이지요. 자기 의사 결정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의 경우 부모가 유아세례를 신청하여 받게 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 만 18세 이상이 되면 본인의 의지로 특정 교파의 교인이 되는 입교식을 하게 됩니다만 18세 이상의 성인은 세례와 더불어 자동적으로 입교까지 하게 되기 때문에 전적으로 자신의 결단과 의지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의 세례라는 것이 의미나 결단보다는 교회에 나온 지 좀 되면 자연스럽게 거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돼버렸는데 굳이 의지냐 결단이냐 하며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남자는 군대 가서 많이 받고 어떤 이들은 별생각 없이 두세 번씩 받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자기의식입니다. 매주일 예배에서 찬송 한 곡을 부르더라도 자기의식을 갖고 부르느냐, 입만 움직이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의식이 있다면 그 찬송은 마음으로 드리는 진정한 기도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라 해도 그냥 노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깨어 있어라"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역시 깨어있는 생활과 신앙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내 묵은 때를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지난겨울은 그리 혹독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창문 제대로 열고 먼지 좀 시원하게 털어내지는 못하였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대문 창문 모두 활짝 열어 놓고 예배당 대청소를 하였습니다. 예배실과 사랑방, 화장실, 입구의 화분과 게시판까지 대대적으로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사랑방 바닥의 데코타일에 때가 많이 껴서 윤성일 집사님 심기가 불편하셨는데 모두 달려들어 이번에 일일이 수세미로 닦아내었습니다.
날씨 추운 날에 화분을 제때 들여놓지 못해 나름 정성껏 가꾸었던 화분의 식물이 몇 개 얼어 죽어 화분도 분갈이 겸 해주었습니다. 정백광 성도님이 화분 흙과 화초를 사 와서 제대로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셨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또 대문 옆 게시판의 코르크판을 떼어내고 하얀색 시트지를 붙였는데 얼핏 보면 깨끗하고 좋은데 자세히 보면 가장자리가 찢어지고...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런대로 좋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해야겠습니다.
대청소를 마치고 열심히 일하신 교우들께 감사하는 차원에서 치킨 파티를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즐겁게 수다도 떨면서 진지한 이야기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요일 오후에는 깨끗이 청소해 놓은 사랑방 바닥에 코팅광택제를 발랐습니다. 붓을 이용해서 일일이 세 번이나 발랐더니 아주 새 집처럼 반짝거립니다. 집 청소도 해야 할 시기에 예배당 청소 먼저 해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곳곳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희롱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일부 남학생들이 남자 대면식 자리에서 여성 동기 및 후배들의 외모를 평가하며 성희롱하는 자료를 만들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런 악습은 여러 해 동안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대학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교내 긴급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 초등교육과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폭로하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초등교육과 여학생 109명 중 98명이 동의한 이 대자보에 따르면 "얜 성괴(성형괴물)잖아", "안 귀여우니까 술 마셔", "우리 학번 보다 못 났다" 등의 성희롱 발언이 있었으며 여학생들의 외모 순위 매기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서울교대의 폭로로 그치지 않고 경인교대와 대구교대로 이어졌습니다. 클럽 버닝썬 폭력 사건으로 촉발된 연예인 승리 씨와 정준영 씨 등의 성폭력, 성관계 동영상 몰래 촬영, 김학의 전 차관 일당의 성폭력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차별과 폭력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대학생은 장차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할 사람들이고 고위 공직자와 연예인 또한 자라나는 세대가 동경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인데 이런 비뚤어진 성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성별의 차이, 권력의 유무, 연령의 많고 적음으로 가해지는 성적 폭력과 희롱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저질러지는 희롱과 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에 상처를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행입니다. 이 땅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 받는 가치관이 확립되기를 기도합니다.
"서로가 있었기에 참 다행입니다"
마태복음 9:27-3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시는데, 눈 먼 사람 둘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면서 예수를 뒤따라 왔다.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그 눈 먼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다짐하셨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지역에 퍼뜨렸다. 마태복음 8:23~27(새번역)
지금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예수일행의 뒤를 조심스레 쫓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을 어떻게든 꼭 한번 만나보겠다는 일념으로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때론 격려하면서 겨우겨우 예수일행이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바로 지척에서 예수 일행으로 짐작이 가는 한 무리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두 명 중 한 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지만 그 소리가 미쳐 예수의 일행에게는 닿지 않았는지, 무리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은 무리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희미해져가는 것을 느끼며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맙니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다 허사가 되고 마는구나.’ 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며 길바닥에 자신의 등어리를 뉘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누워있는 동료에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으로서는 지금까지의 여정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우리를 거들떠나 보겠어?”
“그 사람에게 그럴 능력이 있기는 한 걸까?”
두 사람이 매일 밤 함께 나눈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삶을 온통 팽개치고 예수 일행의 뒤를 쫒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 여정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던 것입니다. 평생 동안을 눈 감은 채로 의지할 곳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생면부지 ‘예수’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 할 수밖에요. 하지만 그렇게 서로가 약해질 때마다, 한 사람은 자신보다 좀 더 힘이 빠져버린 동료에게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를 건넵니다. 또 그 희망의 소리를 들은 동료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꼭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자고 서로를 격려합니다. 하루가 지나 다음 날이 되면 어느새 그들의 역할은 바뀝니다. 어제 확신에 가득했던 사람이 나약해지는가하면, 어제 약한 소리를 했던 사람이 오늘은 상대방을 위로합니다. 그렇게 밤을 넘기며 예수의 일행을 쫓은 것이 벌써 십 수 일이 되었습니다.?
코앞에서 예수의 일행을 놓친 그날에도, 이들은 서로가 있었기에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예수의 일행이 머문 집까지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만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
두 시각장애인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 두 사람’의 믿음이,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함께 만들어온 그 소망이 결국 예수님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한 사람의 신앙적 결단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체험이자 고백입니다. 서로가 있었기에 참 다행입니다.
유정옥이 쓴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에 나오는 글이다.
친정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단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떠내려 오는 밥알이랑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 먹으며 살았지. 추운 겨울에 그것들을 더러운 물에서 건져 먹으려니 쥐의 털은 물에 젖어 꽁꽁 얼어붙었지. 그래도 그 쥐는 매일 달달달 떨면서 그곳에서만 살다가 죽었지. 다른 한 쥐는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는 냄새나는 똥통에서 똥 냄새를 풍기며 살았지. 또 다른 한 쥐는 쌀 곳간에 살았어. 사시사철 넘쳐나는 하얀 쌀을 마음껏 먹고 졸음이 오면 따뜻하고 깨끗한 쌀가마니 위에서 쿨쿨 늘어지게 잠을 잤단다. 얘야,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니?”
내가 말했다. “아니요.”
“그래. 하수구에 살던 쥐가 곳간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수구에 사는 쥐는 일 평생 그 하수구를 떠나지 못한단다. 더러운 물에 떠내려 오는 밥 알갱이를 주워 먹지 못하면 배고파 죽을까 봐 그곳을 못 떠나고 달달달 떨면서 살다가 죽는 거야. 똥 통에 있는 쥐도 마찬가지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지. 왜 못 떠나니?”
“그 쥐도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 봐 겁나서요.”
“그래.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도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떠나라. 깨끗한 길을 계속 찾아 살거라. 깨끗한 길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단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제16장
종말 I (3)
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 그리고 의의 최후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믿습니다.
웨슬리는 황천, 하늘나라, 지옥을 구분한다. ‘지옥’은 믿음에서 떠난 자들, 즉 저주받은 이들만이 거하는 곳이라면, ‘황천’은 지옥(Hell)과 하늘나라(Heaven)에 이르는 대기실로 믿음에서 떠난 자들과 의로운 영혼들이 함께 거하는 공간이다. 웨슬리는 황천을 낙원(Paradise)이라고도 불렀다. 이는 골고다 언덕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하신 말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에서의 낙원이다. 그러나 전자에 대하여 웨슬리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타르투스(Tarturus)’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사용하였다. 즉 웨슬리에 따르면,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죽지 않고 황천이라는 곳으로 향하며, 황천에는 낙원과 타르수스라는 두 공간이 있고, 믿음에서 떠난 자들은 타르투스라는 공간으로, 의로운 영혼들은 낙원으로 향한다. 황천은 우주의 어느 공간에 있는지에 대하여는 어떤 판단이나 추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의로운 영혼들은 황천, 즉 낙원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갈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거나 주의 일을 하면서 주를 기쁘시게 한다. 그들은 모든 천국의 동료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대화하는 동안 더욱더 성결해지고 전적인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다. 즉 낙원에 있는 자들, 아브라함의 품속에 있는 자들, 모두 태초로부터 오늘날까지 육에서 해방된 거룩한 영혼들은 천국을 향해 날로 성숙해지며, 마침내 태초로부터 예비된 왕국을 받기까지 끊임없이 더욱 거룩하고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황천의 비참한 곳(타르투스)에 남아 있는 악인들은 예비된 영원한 불에 던져지기까지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저주하며 위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라고 웨슬리는 보았다.
웨슬리의 이해에 따르면, 죽음 이후에 황천에 거하던 인간들은 ‘대심판’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늘나라’와 ‘지옥’으로 나누어진다. 그는 1758년에 쓰여진 ‘대심판’(The Great Assize)이라는 설교에서 마지막 심판에 대하여 세 부분(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있을 일들, 대심판, 대심판 후에 사건들)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우선 대심판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땅에 표징이 보일 것으로 본다. 이 세상 모든 곳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대기는 폭풍과 거센 바람으로 변할 것이며, 지축을 흔드는 우렛소리와 번개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소란은 땅 위에서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행성과 유성의 구별이 없을 것이고, 해는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달은 핏빛같이 되고, 별은 빛을 잃어버린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천사장의 소리에 따라 하나님의 강림을 선포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팔을 불어 땅속에서 잠자는 자를 깨울 것이다. 모든 무덤이 열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옛 몸으로 살아날 것인데 그 몸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되어,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으로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들을 이 땅에 보내어 그분의 택하신 자를 불러 모을 것이며, 주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좌정할 것이다. 주님은 그들을 분별하여 양, 즉 선한 사람은 그분의 오른편에, 염소, 즉 악한 사람은 왼편에 둘 것이다.(계속)
제1장 처음으로 동성애 연구하기
저자인 잭 로저스 박사는 많은 신학교에서 강의한 교수이자 미국장로교회 총회장을 역임한 신학자이자 목사입니다. 그는 이 책을 시작하는 첫 장에서 자신이 어떤 성장 배경을 가졌고 어떤 공부를 하였으며 어떤 계기로 동성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리교회 세례교인이었으나 미국연합장로교회(UPCNA)로 옮겨 안수를 하였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장로교회의 정통주의와 웨스트민스터 고백에 충실하며 성경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복음주의자이지만 성경무오, 문자주의를 따르는 근본주의자는 아니라고 자처합니다.
그가 속한 장로교회 총회는 이미 1976년에 동성애자들의 직분 안수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연구위원회는 스콜라신학, 신정통주의신학, 해방신학, 과정신학적 해법을 제안하였지만 소수가 지지하는 보수적 선택을 하였고 이후 1978년에는 다원주의에 관한 문제 제기에도 비슷한 입장을 보여 60여 개의 교회가 미국연합장로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1993년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성소수자들을 교회 직분에 임명하는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특별위원으로 임명되어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히며 무엇보다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특히 교회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이혼자와 재혼자에게 안수를 금지하였던 입장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자세히 검토하는 긴 시간을 통해 자신의 입장도 '크리스천 동성애자를 포함하여 모든 동성애자들이 교회와 사회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라고 변하게 되었음을 밝히며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다음의 내용들을 함께 읽어보고, 당신이 시작하기 전에 거부하는 대신에, 최소한 내가 전하는 내용들을 당신이 숙고해 보기 바란다."라고 권면하며 제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배울 때 자신들의 생각을 여러 차례 바꾸어야만 했는데 자신도 그래야만 했다고 첫 장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