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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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교회의 존재이유 

성경 : 사도행전 2:44-47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들어가며 : 정말 바쁘게 한 주간을 지냈습니다. 회의와 기자회견, 포럼에 범국민대회까지 그냥 정신이 멍해지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책임들이 주어지고 과업들이 맡겨지면서 요즘 참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복잡합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일이 버거워지고 힘들어질 때면 으레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좋은만남교회가 아닌가, 우리교회가 해야 하는 종교적인 역할들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좋은만남교회라는 교회공동체의 운영자나 책임자 혹은 경영자가 아닌데 왜 자꾸 나 자신을 좋은만남교회에 한정하려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나님 나라, 그 나라를 위해 예수님이 가신 길,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공동체라는 큰 구분에 따라 내 자리를 설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신과 정신이 힘이 듭니다. 일은 많아집니다. 결국 일신의 편안함을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교회라는 가장 작은 역할 안으로 숨어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해야 할 일 보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일을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하기에 힘이 들어도 기쁘게 이 길을 가야 하지 않나 하는 답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를 발견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교회의 주인이자 머리이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성도들에게 크신 은혜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우리 교회가 이제 20여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목회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저나 또 우리교회가 어디로 가야할까 하는 목적과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 상반기를 정리하면서 함께 고민과 그 고민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오늘 오후에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데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가 목적으로 삼는 것은 성장입니다. 무엇보다도 외형적 성장입니다. 그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입니다. 큰 건물, 많은 사람, 큰 집, 큰 차, 그리고 많은 소유가 삶의 목적, 존재의 목적이 돼버린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역시 외형적인 성장을 포기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교회가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가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지점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습니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가 왜 생겼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과연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을 하셨던가 하는 것입니다. 마 16,18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부르시면서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예수의 역사를 탐구하는 이들은 예수가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는 없다고 합니다. 후대에 교회라는 조직이 공적인 조직이 되면서 첨가된 내용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생긴 것일까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하나님 나라가 머지 않아 임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임시로 모여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초대교회입니다. 이미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사회에서 핍박을 받고 이단으로 미움을 샀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관습적인 모임에 끼워주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회당 모임에서도 거부하였습니다. 갈 곳이 없는 이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이들이 모인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예수님을 직접 모셨던 이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는데도 결국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초대교회가 공적인 조직으로 확대재편된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교회는 오나결된 조직이 아니라 임시적인 조직입니다.

무엇을 위한 임시조직일까요? 바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오시게 되기를 바라는 임시조직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착각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자신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가 작은 하나님 나라라고 하고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세속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직접 느끼는 시간과 공간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특히 오늘날을 보면 교회는 결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정결한 짐승과 더불어 부정한 짐승도 함께 탔습니다. 교회는 종종 노아의 방주에 비유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 자체로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부정함이 하나님 나라의 요소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도래를 바라는 이들의 임시적인 공동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교회는 필요 없게 되겠지요? 세상에 만약 남자만 있다면 남자 혹은 여자라는 단어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사람이 남자를 의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 불리지 않게 될 것이고 더 큰 의미인 하나님 나라로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고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모든 이들이 다 사람답게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본성을 회복하고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빈부, 성별, 인종, 성적 취향, 종교, 교육수준, 학력, 혈연의 조건 때문에 사람답지 못한 인생을 강요받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그런 나라가 우리 안에 들어오기를 바란다면 그 목적을 위해 일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헌신해야 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의 임시적인 조직인 교회가 마땅히 감당하고 일해야 하는 과제이며 또한 존재의 이유인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 유행하는 것이 세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위 성령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장풍을 일으키면 사람들이 픽픽 쓰려져서 몸을 덜덜덜 떱니다. 아말강 치아가 금이로 변한다고 하고 집회장소에 금가루, 보석가루가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넘어지는 것이 뭐가 어쨌다는 것입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자빠지면 하나님 나라가 옵니까? 이건 매우 신기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감정적이고 심리적이며 개인적인 차원입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랜드마크 포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 포럼에 참석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알고 보니 기독교계에 꽤 널리 퍼져있는 과정이더군요. 심리학, 철학, 처세술 등으로 인간의 능력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개인 간 관계를 회복하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이들이 호평하고 있습니다. 매우 긍정적이기는 합니다만 결국 개인적인 차원으로써의 인간만을 보는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감정이나 심리의 문제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커져버렸고 다원화되었습니다. 모두가 착한 마음, 파워풀한 가능성을 가지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요즘 교회 상황을 보면 교회가 이런 일만이라도 한다면 그것도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건물 없는 교회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건물도 없고 정식적인 교인도 없으며 모이는 인원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상의 한 복판에서 생명 평화 정의의 하나님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을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차원, 인간공동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그 큰 틀을 어떻게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교회라는 울타리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어쩌면 하나님 나라와 많이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가며 : 초대교회는 종교적인 공동체라고만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우선 유대교 사회는 종교와 생활이 나누어지지 않는 일상적인 종교적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특히 가진 자, 누리는 자, 유력한 자들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별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소시민적 존재들이 모인 공동체였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진 소유를 나누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결국 초대교회는 사회적 나눔을 위한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나누고 하나님 나라라는 평등과 평화, 생명 넘치는 공동체를 이상으로 하여 모인 모임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도 미래상을 그려봐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가 100주년이 되는 해에는 문을 닫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임시적인 교회조직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때가 되면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조직으로 옷을 바꿔 입는 것도 성서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성서와 하나님의 뜻, 보편적 인류의 상식과 정서에 따라 우리 교회공동체의 그림을 그리고 세;상 한 가운데서 교회의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교회로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매주 한 시간 그저 와서 종교행사만 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큰 꿈과 비전, 그리고 존재이유를 여러분의 삶의 목적과 기준으로 삼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를 고민하고 그 이유에 따라 교회가 설 수 있는 전환점으로 만들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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