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발적 선택인 믿음
성경 : 누가복음 10:38-42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들어가며 : 장맛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집중호우가 내려 적지 않은 이재민이 생겼는데 참 걱정입니다. 서민들의 작은 규모의 살림살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어려움 겪으신 분들, 속히 복구되고 위로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재민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호우피해로 4대강 정비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휩쓸릴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호우피해는 전적으로 자연생태계를 파괴한 결과입니다. 우리도 이제 생태계 파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을 상시적으로 겪는 지역이 되었다는 증거인데 오히려 더욱 생태계를 파괴하는 방법을 마치 환경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처럼 선전선동하고 있으니 걱정이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칙만 분명하면 됩니다. 먹고 살만한 수준인데도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해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창조세계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성도들의 삶의 태도가 아니라는 원칙!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의 삶의 원칙으로 삼는 성도들에게 크신 은혜와 지혜가 충만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노무현 대통령의 49재, 안장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추모하는 가운데 안장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추모정국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왜 이토록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이 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호감은 있지만 썩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 시절에도 실정이 적지는 않았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저와 비슷합니다. 탄핵파동 이후 국민이 전폭적인 힘을 실어 주었는데도 개혁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나도 마음이 슬플까 하는 것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1995년 부산시장 선거 유세 중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비록 그의 말년에는 비리의혹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원칙과 선택이 있었고 그 원칙과 선택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도전과 역경을 견뎌냈던 삶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의 죽음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추모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삶에도 이런 감동을 주는 원칙과 선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그런 하나의 길을 제시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라는 여인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할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였고 실제로 또 음식 준비를 하고 시중 채비를 하느라고 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여동생 마리아는 그저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마르다는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저 인정머리 없는 마리아년을 좀 꾸중해 주시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대접은 분명히 누군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만 한편 생각해보면 음식 준비를 좀 늦게 했다고 해서 예수님이 짜증을 내시거나 나무라실 것 같지도 않습니다. 조금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시장하면 그 때 같이 음식을 준비해 먹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서 들어도 되겠지요.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마지 못해, 불평하면서, 미움을 품고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가 되지 않을뿐더러 자기도 속상하고 듣는 이도 불쾌하게 되었으며 예수님도 답답해졌습니다. 차라리 한 끼를 굶으니 만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몫이고 그것을 선택한 이는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또한 이면에는 마지 못해서 할 바에는 하지 말라, 모두가 은혜가 안 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도 아니라는 가르침 역시 주고 계십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여지없이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어릴 적에 생각한 겁니다. 믿으면 천국간다는데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하나님 믿습니다’고 고백하면 천국에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닐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아마 그렇게 해도 봐주시고 용납하실 겁니다. 그게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 아닙니까? 교회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 나와 앉아 있는 경우처럼 안스러운 경우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모습이 바로 그랬습니다. 부모님 때문에 마지 못해서 억지로 교회에 왔습니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주일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화영화는 정말 보고 싶었지요. 예배시간 한 시간은 정말 지루했습니다. 부모님만 아니면 안 가고 싶었습니다.
믿음도 없고 믿음이 생길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와서 앉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취미생활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낮잠을 자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주방봉사를 많이들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면서 불평을 하고 왜 내가 이것을 하느냐는 생각을 한다면 그걸 뭣하러 합니까? 그냥 사먹고 말지, 아니면 예배 끝나고 배가 좀 고프겠지만 참고서 좀 늦은 점심을 먹는 셈 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 행사,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그냥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마지 못해서 하니까 이런 저런 불평이 나오고 오히려 안 하느니 만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마지 못해서 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다비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과 나누어 썼고 목회자들의 옷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슬퍼하며 그를 애도하였습니다. 그의 생전의 모습이 성도들의 눈에는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런 슬픔을 본 베드로는 다비다를 다시 살려줍니다. 반면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마지 못해 자신의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다 내놓으려니 아까웠습니다. 결국 일부를 감춰두었지요, 그들은 한 날 같은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억지로, 시키니까 마지 못해 하는 결과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어린 시절에 억지로 교회를 갔었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억지로, 직업이니까?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이제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 일은 정말 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진지해지고 성실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등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협박하거나 유혹해서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나라에서 나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동의하고 자기가 기쁨으로 나서서 하고 자기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면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리아의 선택입니다. 마리아는 스스로 좋은 것을 선택했기에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 즉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것, 심지어는 스스로에게조차 방해받지 않고, 즉 아무런 회의 없이 그 일을 즐기고 그 일에 기쁨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보장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그런 일입니다.
한국교회, 한국사회에는 마지 못해 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에게도 은혜가 되지 않고 보는 이들에게도 시험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의 대부분은 그리 급하지도 않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실제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상처 받고 하는 겁니다. 그런 거라면 ‘노’라고 얘기하세요.
그러나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입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헌신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빼앗기지도 않고 방해 받지도 않고 회의도 생기지 않게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장해주십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불의한 것에 저항하고 진리를 깨우치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야말로
나가며 : 하나님 믿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에 여러분들 자발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하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하시고 결정하셔서 소신껏 믿음을 갖는다면 그 어떤 누구도 여러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자발성입니다.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저도 억지로 등 떠밀 듯이 선동하는 것 별로 못하고 또 안 합니다. 여러분도 나이 먹을만큼 먹고서 그렇게 등 떠밀려서 마지못해 억지로 한다면 그것도 참 못할 일일 것입니다. 이제 급하지 않고 본질적이지 않고 꼭 해야 할 일 아닌 것에 목숨 걸지 말고 꼭 해야 할 일,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기쁨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며 믿는 바를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은혜와 감동을 이 말씀을 받으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이 계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