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조회 수 8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이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성경 : 누가복음 4:17-22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들어가며 : 사회각계각층에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놓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대운하, 비정규직, 미디어법, 집회와 결사의 자유, 서민경제, 도로마다 다 파헤쳐놓았고 사회적 복지수준은 후퇴하는 등 어느 하나 속 시원한 것이 없습니다. 이는 정부여당이 매도하듯이 좌파나 빨갱이의 선전선동이 아닙니다.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우려요, 요청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일반인이나 종교인을 가릴 것 없이 폭력으로 압제하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 개신교개혁진영이 향린교회에 모여서 시국기도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약 150여명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매우 진지하고 뜨거운 분위기였습니다. 기독교인구 천만 명 중에 150여명이 무슨 의미, 무슨 영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만 하나님의 일은 숫자에 있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정의와 생명 평화의 힘, 즉 하나님의 의지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2차대전 당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독일민족교회는 히틀러의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하였습니다만 1%도 안 되는 고백교회는 히틀러를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교회는 다수였던 독일민족교회가 아니라 고백교회의 전통을 따른다고 고백합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종교와 정치는 별개라고 말합니다. 장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정치적 중립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 묻고 싶습니다. 정치영역이 과연 하나님과 무관한, 하나님이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하시지도 않는 영역인가 하는 것입니다. 선거권을 가진 현대인이 정치와 무관할 수 있습니까? 종교인이 투표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인물과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옳지 않겠습니까? 정치적 역할은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거나 사탄의 능력에 기여하는 통로로 역할합니다. 기독교는 지난 역사 속에서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결여시키는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를 놓고 막스는 ‘종교는 아편’이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오명을 벗고 예수 중심의 기준을 우리 삶의 전반에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에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시대적 사명에 대해서도 깨닫고 감사하며 감당하기를 구하는 좋은만남교회와 성도들에게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자비와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이 글을 읽으실 줄 몰랐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어쨌거나 예수님은 회당장에게서 이사야서를 건네 받아 오늘날의 61,1-2을 읽으셨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희년, 주님의 은혜의 해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년과 희년을 정하셔서 매7년마다 안식년을 맞아 토지경작을 중지하여 토지가 쉬게 하라고 하셨고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다음해, 50년째 되는 해를 희년으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해에는 모든 종들이 풀려나고 팔았던 토지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인간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또한 물질적으로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는 해인 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희년은 지상낙원, 완전한 세계, 유토피아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소위 약자, 가진 것 없는 사람, 억눌리고 빚진 자, 불구자, 포로된 자에게는 그야 말로 해방의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실제로 희년이 지켜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지켜질 만한 때가 있기도 했었지만 희년이 다가올 즈음에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채무자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 희년이 되어도 적용을 받지 않을 것임을 명시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또 외국군이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식량이 떨어져 버리자 노예를 다 해방시켜 주었는데 군대가 철수하자 다시 잡아들였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아무튼 이 희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변변히 지켜진 적이 없는 그런 법이고 그런 이벤트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되지도 않는 희년법 규정을 읽으시면서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고 황당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써 유지되던 시절에도 변변히 지켜진 적도 없고 더군다나 이제는 이방인, 로마제국의 식민지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에 대고 ‘이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을 현장에서 들었다면 아마도 ‘제 정신 아닌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그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직 이뤄지지도 않았고 이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지만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신앙인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되었다고 믿는 것이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절망에 젖을 뿐입니다. 무슨 희망이 보이지도 않고 희망이 올 것 같지도 않은 절망적인 상황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이미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보고 그것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뜰 것이고 그것을 얻으려고 발 빠르게 움직일 것이며 그것을 누리고 싶은 열망으로 이미 기쁨에 충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기다리면서 누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습니다. 감탄하고 은혜로운 말씀이라며 놀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의 처지에 환멸을 느꼈고 속히 이 상황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던 사람들입니다. 아직 아무 것도 이뤄진 것이 없지만 이미 성취되었다는 이 말씀이 은혜를 갈망하는 자신들에게 정말 은혜로운 말씀으로 다가왔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미 희년의 기쁨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부류는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면서 여전히 믿고 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보지 못하고 현실적인 요셉의 아들만을 보았습니다. 목수였던 요셉의 아들, 함께 어린 시절 발가벗고 놀았던 조숙한 동향인 예수만을 보았을 뿐, 해방과 자유, 생명과 평화를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는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실만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성취된 희년, 말씀 안에 숨겨진 믿음의 원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이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믿었던 이들은 이미 희년을 경험하였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믿는 이들은 그 믿음대로 여전히 억눌린 식민지의 백성으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나가며 : 이 말씀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선포됩니다. 희년의 기쁨,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나님은 설교자의 입술을 통해 다시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제 믿거나 말거나 여러분의 몫입니다. 생명과 평화의 말씀이 이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면 이제부터 생명평화의 삶을 사시겠지만 믿지 않는다면 여전히 오늘을 불평하면서 막연한 그 날을 하엽없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어느 구두 판매원이 구두 판매 시장을 확대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그 부족 사람들이 모두 맨발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국내 본사에 이런 전문을 보냈습니다. “구두 주문 취소. 이 부족에게는 구두 시장 없음.” 후에 다른 판매원이 동일한 부족을 찾아갔다. 가자 마자 그는 즉시 본사에 이런 전문을 보냈습니다. “구두 주문 곱절로. 이 부족에는 구두 시장 무한함.” 한 판매원은 ‘아직’ 현상만 보았기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다른 판매원은 ‘이미’ 이루어진 비전을 보았기에 부족 사람들 모두가 구두를 신을 수 있다는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오늘 이루어졌다’는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살아있게 하는 믿음을 품은 이들에게 크신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