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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당뉴스에 실린 대북문제 전문가 정기열 교수의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관한 글 '북경에서 보는 천안함 침몰사고 비판소고 II: 주장, 분석, 의문제기' 중에서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그러나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정보로 추론한 부분만 퍼온 것입니다.
정부와 군이 발표한 것이 비상식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반면 이 추리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 보입니다.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동감하실텐데 그런 차원에서 이 글을 읽어보시면 조금씩 그림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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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발표된 보도자료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주로 인터넷매체 서프라이즈에 “독고탁”이라는 筆名으로 천안함 관련 기사를 계속 올리는 사람이 있다. 아래 요약은 주로 독 선생의 글을 많이 인용했음을 먼저 밝힌다:

1. 고 한주호 준위는 제3부표자리가 있던 바다 밑에서 나흘씩 무리하게 잠수작업을 하던 중 의식을 잃고 인근 미군함정으로 옮겨진 뒤 사망했다. 그런데 한 준위는 실은 침몰한 천안함 선체와 실종된 46명의 한국동료해군사병들을 구하려다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2. 당시 제3의 부표자리 바다에는 한 준위 등 한국UDT대원들과 함께 미군 USS대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수온과 빠른 조류 속에서 잠수 작업은 미친 짓이라며 절대로 그런 조건에서는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해 부득이 한 준위일행만 무리하게 나흘씩 잠수를 반복하게 됐다. 당시 한 준위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한 준위와 함께 제3 부표지점 바다 밑에 들어가 수중탐색작업을 진행한 한국UDT대원들의 증언은 어쩌면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핵심자료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들은 “수중[바다 밑]에는 대형구조물이 [가라앉아]있었고 해치를 열고 5m 이상 들어가 작업했는데 [내부에는] 소방호스 등이 매우 복잡하게 매달려있었다”며 당시 “들어가 본 [검은 구조 물체의] 내부구조는 잠수함과 유사했다”고 증언한 언론과의 대담기록이 있다;
4. 당시 미군은 한 준위 등 한국UDT대원들에게 제3부표 바다 밑에 침몰한 물체가 무엇인지 알아보라는 임무를 맡겼다. 미국은 자신들의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검은 구조의 물체”가 가라앉아 있는 사실을 한국UDT대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5. 당시 워싱턴 상원청문회 참석차 미국에 가있던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함정(혹은 잠수함?)이 아니라 한국함정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 직후 모든 것을 접고 급거 서울로 되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그런데 만약 당시 천안함 상황이 한국군 함정 만의 침몰상황이었다면 주한미군사령관이 단지 그 사건만으로 워싱턴에서의 모든 것을 접고 급히 한국으로 되돌아왔을까? 그럴 리가 없을 것 같다;
7. 더더욱 그는 급거 뒤 주한미국대사까지 동행해 직접 사건현장과 輕함모인 독도함에 나타나 희생된 “한주호 준위를 용감한 해군”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은 수색작업에 열심인 미군USS와 한국UDT 특수요원들에게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며 격려까지 하고 돌아갔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8. 만약 제3의 부표자리 밑에 한국함정 혹은 잠수함이 가라앉아 있던 것이라면 주로 미군함정들과 미군USS대원들이 한국대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인양작업과 구조를 위한 잠수활동을 계속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9. 특히 만약 가라앉아 있는 것이 한국함정이었다면 미국함정들이 제3의 부표자리 사고해역주위를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10. 또한 그곳 제3의 부표자리 바다 밑에 있는 것이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면 해역을 지키고 있던 미군함정들이 그곳에 한국어선들은 얼씬도 못하게 접근을 막았을 이유가 굳이 없었다는 것이다;
11. 당시 KBS뉴스는 “제3부표지점 바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가는 헬기는 미국해군이 운용하는 씨호크(Seahawk)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당시 한 준위가 희생되었던 “바다 속에서 끌어올린 것은 모양새로 보아 시신이 맞다”는 보도도 나갔다;
12. 무슨 이유에서건 4월 5일 언론보도가 나간 직후 국방부는 모든 언론매체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UDT대원들에게는 물론이었다. 이후 한국언론에서 제3부표지점에 대한 보도는 일체 차단됐다. 서프라이즈 같은 일부 인터넷매체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보수언론매체들에서 제3의 부표자리 이야기가 사라졌다;
13. 당시 이런 상황전개에 한 준위 동료들은 분노했다고 한다. 이후 주한미군사령관까지 직접 장례식장에까지 나타나 한 준위 가족들을 위로하고 성금을 전달했다는 일종의 사건이 발생했다;
14. 이를 “사건”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60년의 주한미군주둔역사에서 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미국대사가 한국군 병사가 하나가 죽었다고 조문을 가고 위로금을 직접 전달한 예는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15. 이 것은 미국이 한 준위의 죽음에 어떤 이유에서건 일종의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무슨 말 못할 상황/곡절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16. 그 뒤 한 준위의 동료들은 그의 위령제를 바로 제3부표지점에 가서 진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그것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간에;
17. 당시 미군은 제3부표자리 바다 밑에 가라앉은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검은 물체의 인양작업을 위해 씨호크 헬기 등을 동원하고 잠수부들을 계속 훈련시켰다고 한다. 미군은 제3부표지점에서 당시 인양작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18. 미군은 천안함 침몰사건 당시/초기 민간어선의 구조활동참여를 막았다고 한다. 무엇인가 대단히 중요한 무엇을 숨겨야 할 것이 없었다면 그랬을 리가 만무하다. 때문에 당시 한국에 의한 직접적인 구조작업은 거의 정지상태에 머물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할까;
19. 천안함의 함수 함미 위치가 명백히 밝혀지고 나서 제3부표지점에서의 미군탐색활동은 일단 한편으론 진상을 숨기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침몰한 자국 잠수함(?)의 위치확인이 한시가 급했던 것 같다. 아마도 바로 그 위치확인작업 끝난 후에야 침몰한 천안함의 구조활동도 비로소 본격화된 것 같다;
20. 침몰한 천안함의 위치를 찾고 실종자들을 구조하는 데서부터 두 조각난 선체의 실질적인 인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이유들에 의해 늦어졌던 이유도 아마 이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1. 천안함 함수와 함미 수색작업은 당시 바지선에 본부를 두고 있었는데 제3부표지점에서의 수색작업은 최신 輕항모인 독도함을 따로 본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제3의 부표지점 바다 밑에 어느 정도 중요한 물체가 가라앉아 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아닐 수 없다;
22. 그 지점에서 건져 올려 헬기로 실어간 미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하나의 결정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KBS TV는 씨호크 헬기가 제3부표지점 수중에서 줄로 끌어올린 물건을 싣고 가는 장면을 포착하여 언론에 소개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시신을 담가에 싼 모양으로 상체부위는 도톰하고 다리부위는 날씬했다”는 보도도 나갔다;
23. 당시 KBS와 대담한 한국UDT대원은 제3부표지점 바다 밑 “대형구조물에 들어가 보고 천안함과 달라서 당황했다”고 증언하면서, “들어가기 전까지는 천안함 함수부에서 떨어져 나온 무언가를 탐색하는 것으로 지시를 받았는데 들어가보니 대형구조물이었다”고 했다;
24. 천안함은 이제 인양작전이 끝났기 때문에 천안함 구조활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해서, 민간잠수부들이 인양작업을 대신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25. 제3부표자리에 아직도 미군USS와 한국UDT대원들이 합동으로 본격적인 수중작전을 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당시 그들은 무엇인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첨단잠수장비들을 동원하여 인양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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