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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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진술서

지금 여기 함께 하시는 한분 한분 모든 분들에게 한 몸 평화의 인사를 올립니다.
우리 우주에는 지구에 있는 모래알 수 보다 도 더 많은 별들이 있다하는데 바로여기,
백 년 전도 아니요, 천년후도 아닌 바로지금, 지금여기 이렇게 함께 살아 숨 쉬며 만나는 인연과 신비를 깊이 감사 할뿐입니다.

존경하는 김용대 재판장님 김용민 판사님 박판규 판사님
더는 이 신성한 법정이 본래의 근원적인 법정심과 양심에 따른 역사적인 법정이 되기를 희망하며 모두 진술을 드리고자 합니다. 비록 부족하고 서투르며 다소 길더라도 다만 저의 진정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말씀 올리오니 널리 양찰하시고 경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8월 18일 밤, 저는 잠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더욱 절절했습니다. 마침 이날이 어머니 생신이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남녘을 떠나오기 직전 어머니의 병원 최종 진단 결과가 당뇨병 후유증이 악화되어 더 이상 손을 써볼수도 없이 점점 실명 위기가 다가온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무거운 발걸음이었습니다. 일찍이 홀로 되시어 7남매를 기르시느라 헌신 해 오신 어머니에게 장남으로서 항상 죄송하였습니다.
그러나 “멀리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시는 주님의 소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신앙으로 잘 극복해 오신 어머니이기에 넉넉히 이기고도 남으시리라 믿으며 하나님께서 또한 공동체가 친히 돌보아 주시길 기도 드렸습니다. 평양의 아름다운 이 밤, 곰곰이 북녘 순례의 여정을 회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남녘 동포들에게 드리는 편지”를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내용 속에 저의  총체적인 진실이 들었다고 생각되기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남녘조국 남녘동포들에게 어느 한 사람 한상렬 목사가 드리는 편지
2010.8.20

사랑하는 남녘조국 남녘동포여러분!
오늘 저는 우리나라 북녘 땅에서 우리나라 남녘땅으로 갑니다.
판문점을 통과하며 갑니다.
문익환 목사님의 하얀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통일기를 들고 갑니다.
걸음걸음마다 “절 받으세요”, “저를 받으세요” 절을 올리며 “한 몸이니 한 몸으로 한 몸 되게 하옵소서” 기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통일 평화만세”, “온 인류 온 생명 한 몸 평화만세” 만세 부르며 이 두발로 우리 땅을 디딛으며 분단장벽을 뚫고 갑니다.

사랑하는 남녘동포여러분!
5.18 30주년을 맞이하여 저는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5.18묘역열사무덤현장에 작은 일인용 천막을 치고 11일간 단식철야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역사열사 앞에 회심하며 둘째, 당시 군사재판 중에 얻었던 고질병인 ‘분단병’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기원하며 셋째,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 진로를 여쭈어보고 응답받기 위하여 몸부림쳤습니다.
열사 한 분 한 분의 무덤을 돌며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에 용서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기도하는 가운데 어느 날 열사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대신 죽었으니 나대신 잘살아라”
바로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는 은총에 감격하며 ‘분단병’으로부터의 참해방이 온 몸에 임함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한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줄기 눈물’로 보여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몸이요, 5.18열사와 한 몸 됨의 감동감화로 찬양의 노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6.15를 살려라. 반드시 만나야 한다. 분단장벽을 뚫고 가라. 한 몸 평화, 통일평화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리하여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문 목사님의 옷을 입고 사랑하는 남녘조국 땅으로 왔습니다.
6.15 10년맞이 민족공동행사가 무산되는 것이 너무나 아팠기에 신앙양심, 민족양심으로 일편단심 6.15살리기 위하여 화해, 통일, 평화의 사절로 희망의 전령자로 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녘동포여러분!
과연 6.15야말로 우리 겨레의 분단, 불신, 암흑, 전쟁시대를 청산하고 통일, 신뢰, 광명, 평화시대를 여는 대역사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해 온대로 6.15 이후에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물론 사상과 이념, 체제와 제도가 이미 달라져 있는 남과 북의 현실에서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6.15정신을 살려 인내하며 잘 풀어왔습니다.
어느덧 평화가 정착되고 6.15민족공동선언과 이어 나온 10.4선언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우리 민족 통일평화시대로 더욱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장로가 들어선 이래로 점점 남북관계가 꼬여 오다가 결국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북교류협력이 전면적으로 차단되고 순전한 인도적 지원마저도 막혀버렸습니다.
지금은 전쟁위기까지 몰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5.18현장단식기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어 대전 현충원을 찾아 46인의 고귀한 희생생명들 앞에서 추모기도를 올렸습니다. 한 분 한 분 묘비 앞에서 기도드릴 때 어느 어린이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5살 어린대가 아빠에게 드리는 글이었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엄마 말씀 잘 들을게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아빠 없이 자라나가야 할 이 아이를 생각하니 솟구쳐 오르는 아픔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절절한 쓰라림 속에서 분쟁과 전쟁과 희생은 더 이상 안 된다. 목숨 걸고 평화를 지켜야겠다고 거듭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만 그대로 이행해나갔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0.4선언에는 구체적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두기로 명시했던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 진상은 밝혀져야 할 일이로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원천적인 도의적인 책임은 6.15와 10.4를 부정하고 긴장을 조성해 온 이명박 장로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명박님을 대통령 등 다른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장로라 호칭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종교인으로서 이 장로가 신앙양심, 민족양심으로 돌아와 잘되기를 기도하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이 장로의 행태를 사랑으로 비판하는 것이지 남녘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남녘동포 가운데 저의 견해에 반대하거나 입장을 달리하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비판을 잘 경청하여 저 자신을 계속 성찰하며 진정 제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충분히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할 열린 자세가 되어 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진실한가 오랜 세월 질문해 왔습니다.
진실 앞에 자기 변혁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왕이면 저에 대하여 깊이 알고 이야기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단어 몇 마디나 부분적인 것으로 저를 오해나 곡해하지 마시고 전체 흐름 속에 저의 진정성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이번 활동은 헌법전문에 나오고 있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이 정신을 살리는 일이었음을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6.25분단 상처 치유의 최대 명약이 6.15임을 깊이 자각하시고 함께 6.15통일평화행진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남녘동포여러분!
저는 이번 북녘방문기간에서의 경험을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먼저 저의 정체성입니다.
저는 일찍이 성령임의 감동감화로 예수님이야말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게 되고 아버지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사랑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어찌나 놀라웁고 신비스러운지요!
북녘 여러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저의 삶의 원천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오, 신앙고백이야말로 저의 생활임을 말하고 하였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 저는 날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 예비하시는 하나님(여화와이레)의 손길을 더욱 깊이 체험하며 하나님 찬양(할렐루야!)로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저는 명명백백하게 거듭 선포합니다. 죄인 한상렬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아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고백자임을! “나의 나”됨을!

둘째, 저는 우리나라, 우리 민중을 진실로 사랑합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보라면 38선 이남만 또는 이북만 그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남녘, 북녘 모두 우리의 조국입니다.
대한민국이라 불리우는 남녘 조국도 우리 조국이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불리우는 북녘 조국도 우리 조국입니다.
1945년 8.15 이전엔 북녘 조국, 남녘 조국이라 부르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하나의 조국이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 모든 구성원 공동의 역사적 사명은 바로 통일이요, 평화라 생각합니다.
저는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 제1항 “쌍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에 적극 동의하며 특히 6.15민족공동선언정신을 살리는 것이 통일평화의 지름길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6.15정신에 비추어 볼 때 저는 이번에 지극히 당연한 일, 작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셋째, 저는 이번 방문기간에 다시 한 번 북녘 조국의 현실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서 한 가지 사랑하는 남녘 동포 여러분들이 꼭 이해할 일은 북녘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절절하게 평화를 희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전에 북녘의 어는 분이 말하기를 “남녘이 북녘의 우리를 너무나 잘 모르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화통일을 할 의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계속 호전적 집단이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체제를 건드리면 결단코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원합니다. 핵 억제력도 남녘땅을 겨냥한 것이 결코 아니요, 간악한 미제에 대항하기 위한 평화적 자위방위체계일 뿐입니다. 비핵화야말로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으로 반드시 관철할 것이며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라 하였습니다.
저는 날이 갈수록 그 북녘 동포의 말이 북녘의 일반적 진실임을 알게 되었고 이번에도 전쟁위기감 속에서도 평화의지가 분명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평양에는 2012년 강성대국의 해를 준비하며 10만세대 살림집 건설이 한창임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쟁당사자들 양쪽 다 극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 뻔한데 어떻게 애써 건설되었던 모든 것이 파괴되는 걸 그 누가 원한단 말입니까?
저는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삼위일체하나님을 신앙고백하는 목사입니다.
누구의 사주를 받아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주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합니다.
앞으로도 오직 하나님 앞에 북녘의 진실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계속 찾고 질문할 것입니다.
어찌 잠깐 보고 북녘사회를 잘 알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만 저 자신 현재 직접 느낀 것 중 하나를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남녘 동포 여러분!
저는 북녘 가는 곳마다 만나는 동포마다 우리 함께 친남, 친북하자고 연남, 연북하며 연애하자고 호소해왔습니다.
“둘이 되면 못 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 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망합니다. 둘 다 서로 잘 되어야 합니다.
남북이 서로 힘을 합친다면, 일치성과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며 남북의 장점을 잘 살려 평화와 통일의 새 역사를 창출한다면 우리 민족은 세계인류를 새 하늘, 새 땅으로 안내하는 등불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남 과 북은 하루빨리 분단, 분열, 적대, 대결관념을 청산하고 치유하며 통일, 연합, 친선, 대동정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15를 다시 살려야 합니다.
오늘날 6.15살림이 애국이요, 6.15죽임이 매국입니다.
진정 우리 민족의 통일과 평화와 번영을 원한다면 거룩한 6.15역사대행진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저의 이번 북녘 방문이 일편단심 6.15 살리어 민족이 하나 되는 생명의 양식에 그저 작은 한 방울의 물, 한 톨의 곡식이라도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랑하는 남녘 동포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제 지금 저는 그리운 남녘으로 갑니다.
더욱 뜨겁게 함께 만납시다. 남녘 조국의 한 분 한 분 모든 분들, 저를 알고 이해하는 분들은 물론이요, 오해하는 분도 다 함께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미 한 몸입니다.

2010년 8월 20일 새 아침 어느 한 사람 한상렬 목사 올림

(추신)
그 동안 저는 우러나오는 마음 한 조각을 서투르나마 써 보곤 했습니다.
우선 3편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 6.15
지금여기  6.15  10년맞이  6.15아침
6시15분  잠깨여  대동강변  거니노라
태양과  주체탑과  대동강이  어우려져
빛나는  북녘조국  바라보고  바라본다
사무쳐오는  그리움  흐르는  눈물속뜻
반갑다고  노래하는  까치야  너는알지
북녘조국  북녘동포  평화통일 절절한데
남녘조국  남녘동포  현주소는 그어딘가
정반합   역사법칙  이제그만 넘고넘어
합합합  6.15법칙  하나되여  모아가자
대동강도  《대동》하나  한강도 《한》하나
하나하나로 흘러들어  통일바다  이루자
불신암흑  분단분쟁   6.15로  청산하고
신뢰광명  통일평화  새시대를  열어가자
우리민족  끼리기발  다시들고  전진하며
자주평화 민족대단결  통일조국  세워보자
우리민족  분단아픔  통일의꿈 경험살려
세계인류  평화열쇠  구원의  민족되자
날마다  6시15분  6.15를  생각하고
시간마다  6분15초  6.15를  생활하자
우리조국 이미하나  우리민족 이미한몸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나된 나를 맞이하라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꺼꾸로  먹고있나?
일백만살  백두처녀  부끄러움  빛나누나!
구름이불  꼭꼭덮어  숨기어져  있다가도
물안개  얇은옷속  은근살짝  수줍다가도
어느새  옷다벗고  온알몸을  드러내니
백두처녀  조화황홀  태고흥분  일어나네!
이내몸  그대앞에  오기까지  그얼마냐
너는 진정  백두오를  자격있나  물어왔지
낮아지고  작아지고  씻고놓고  또 비웠네
이제는  5.18열사와  한몸되어  왔사오니
그대는  기꺼이  나된나를  맞이하라!
그대의  자궁천지에  합방앞서  지성모아
《절받으세요》,  《저를받으세요》  세번큰절  올리옵고
온전히  몸을던져  그대속으로  들어간다!
남북열사  따로있나?  애국애족  모든열사
통일동이  태어나길  간절히  기다리니
영생인연  남북부부  쌍동이를  낳아놓고
그 이름을  《한몸평화》,  《통일평화》라  부르리라

6.15인생
시간이  흐르는가  역사가  흐르는가
대동강이  흐르는가  인생이  흐르는가
시간도  대동강도  항상여기  다있으니
흐르는건  인생이라  그대지금  어딜가나
6.25  피토하는  분단상처  치유해낼
용서화해  최고명약  6.15가  아니던가
6.25를  6.15로  씻어주며  청산하며
나는간다  6.15인생  통일평화  한바다로!


편지를 거듭 새겨보고 있다보니 어느덧 새벽이 되었습니다.
저는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 앞뜰로 나왔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별세개가 한줄로 빛나는 삼태성을 찾아 계속 바라보고 바라보며 한참동안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 별을 잘 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마음껏 하늘을 우러러 본 것입니다. 점점 여명이 밝아 왔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을 보았습니다. 밝은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는데 저 한쪽에 흘러가던 길고 긴 검은색 구름이 토막토막 끊어지더니 차츰차츰 사라져 버렸습니다.
직관적으로 오늘 통과할 판문점 3‧ 8선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날에도 간혹 구름을 통해 어떤 뜻을 보내 주시곤 하였는데 이번에도 그러시는것 같아 감사하며 기뻤습니다.
8월20일 저는 드디어 3‧ 8선 분단 장벽을 뚫고 사랑하는 북녘 조국에서 사랑하는 남녘 조국으로 왔습니다.
이날 밤 저는 우러나는 심정을 써 보았습니다.


통일평화 한몸평화!

5.18열사 묘역안에 작은천막 하나치고
11일간 죽기살기 단식철야 기도중에
“너대신 죽었으니 나대신 잘살아라”
열사소리 듣는순간 30년전 그당시에
고문과정 얻은지병 “분단병”이 치유되고
“한줄기의 눈물”로써 님의말씀 친히보여
“나의나됨” 축복중에 역사소명 주시었네!

“6.15를 살려내라 반드시꼭 만나야해
분단장벽 뚫고가라 통일평화 한몸평화
십자가를 등에지고 나와함께 갈길가자”
부름받아 나선이몸 님의인도 하심따라
님과한몸 열사한몸 막강저력 믿음으로
11번의 아슬아슬 고비고비 넘고넘어
화해통일 평화사절 희망의 전령자로
북녘조국 들어가서 북녘동포 상봉했지!

당연한일 작은일에 과분접대 감사하며
지금여기 ‘너와나’ 참만남을 이루오며
합합합 6.15정신 일편단심 살려내자
우리민족끼리 통일평화 기어이 성취하고
온인류 온생명 한몸평화 노래하자
분단분쟁 이제그만 화해하자 호소했지!

사람은 사랑으로 삶으로 사람이라
일백만살 백두처녀와 천지물로 연애하며
일생최고 지금여기 <너와나됨> 춤을추며
그리웁고 그리운 남녘으로 오는길은
사랑하는 북녘조국 우리나라 우리땅에서
사랑하는 남녘조국 우리나라 우리땅으로
문익환님 흰옷입고 통일기를 앞에들고
이두발로 당당하게 판문점을 통과하며

분단장벽 뚫고뚫고 분계선을 넘기직전
“우리 민족끼리 통일평화 만세!”
“온인류 온생명 한몸평화 만세!”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아차하면 쓰러질듯 온몸으로 절규하며
3.8선 바로위에 우뚝서서 절절하게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우리조국 이미하나 우리민족 이미한몸”
“통일평화 한몸평화! 기원하고 넘어왔지!”

이제는 통했으니 “넘어가고” “넘어오고”
이런말이 필요없네 한길통로 다열렸네
21년전 문목사님 북녘다녀 오시어서
“이젠통일 다됐어” 힘차게 말하셨지
2010년 어느한사람 북녘지금 다녀와서
“나의나됨” 빈맘으로 한마디 해보라면
“통일평화 한몸평화!” 기쁨으로 눈물로


이제 구속된지 오늘로 53일째가 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저의 심정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 누가 막을건가
               손에수갑  채우니    자연스레  두손모아
                기도하기  더욱좋고  포승줄로  꽁꽁묶어
                둘팔이    몸에붙어  일체되어  훨씬좋네
                두발은    안매놓나  깡충깡충  뛰놀면서
                찬양해도  좋겠는데  그누가날  구속했다
                가두었다  그러는가  난한번도  매인적이
                없는사람  자유사람  내가택한  나의길
                그누가    막을건가  이심장의  고동소리
                하나님의  뜻에따라  민족화해  통일평화
                한몸평화  사절로    다녀왔오  외쳤는데
                내입마저  아니아예  숨구멍을  차단해도
                죽어도    죽지않는  님안의    영생숨결
                그누가    막을건가  일편단심  이한길을!

8월23일 파주경찰서에서


여기가 내집이네

                돌아왔네   이년만에  서울구치소  감옥으로
                정든나무   옛추억도  다들안념    하셨나요
                촛불배후로 바로여기  청계산국립  수도원에서
                100일기도  끝머리엔  18일간     단식기도
                자기할아   용맹정진  바탕으로   출소하여
                계속고민   이어이어  이번5.18   현장기도
                나된나     이젠되어  어느한사람 돌아왔으니
                기꺼이     받으소서  주님뜻을   이루소서
                일백세     건강한몸  금강체를   만들리라
                령통도통   한몸통에  토일통을   다하리라
                지금여기   살리라    다짐하며   하늘보네
                감방에선   별잘못봐  삼태성을   찾았더니
                안보이네   안보여도  그어딘가   삼일하나
                온세상이   하나님을  노래하며   빛나리니
                나는야     행복하네  여기가    내집이네

8월27일 서울구치소 들어오는길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주님 말씀대로 저는 주님안에 자유합니다. 지금여기 있는 현장에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이렇게 구속될 이유가 전혀 없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는도 죄인임을 자백합니다. 그러나 이 법정에서는 아닙니다. 갇혀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무죄임을 표현하는 작은 상징으로 저는 오늘 변호인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문익환 목사님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저는 이번사건의 명칭을 “어느 한사람 한상렬 목사의 일편단심 6.15 살리기 북녘 순례사건”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먼저 ‘ 어느 한 사람 한상렬 목사’라 함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에서는 주로 저를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이라 지칭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직분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사건은 순전히 개인적 결단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 직책을 호칭 하면서 마치 이번 사건이 진보연대의 조직적 결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여겨 질수 있는 경향이 있기에 ‘어느 한 사람 한상렬’이라고 분명하게 하고 싶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이번사건은 5.18 묘역 현장기도중 ‘분단병’의 치유와 함께 소명결단으로 발생하게 된것입니다.


저는 5.18때 얻은 《분단병》으로 극심한 아픔을 겪어왔습니다.
 5.18당시 죽으면 죽으리라 용기가 치솟아올랐다가도 고문을 당할 때 한없이 비겁해지는 이중적인 모습, 자기 인격이 분열되고 바스러지는 처절한 고통속에서 용기와 비겁의 갈등이 내면화되어버린것입니다.
 우리 민족분단의 비극속에 암처럼 생겨난 반공, 안보논리와 전두환깡패일당들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5.18이 발생하였기에, 민족분단이 자기 분열로 체현화되었기에 저자신 《분단병》이라 불러왔습니다.
 《분단병》이란 일종의 정신질환일수 있습니다.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아니하려고 참으며 정신병약을 한번도 먹진 안했습니다만 아슬아슬 저자신으로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5.18때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자의 부끄러움, 비겁했던 경험이 발동하면 밥도 안먹히고 잠도 안오고 누굴 만나는걸 기피하고 방에만 누워 꼼지락거리는것조차 힘든 온전히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물론 늘 그러한건 아니고 열심히 활동하다가도 갑자기 5.18아픔이 밀려오면 바닥이 없는 수렁에 빠지는듯 온전히 밀폐된 방에 갇혀있는듯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5.18역사의 빚진 죄인으로 빚갚는다고 더욱 열심히 일하건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돌아가신 분에 비하면 부질없는짓, 역사와 열사이름 팔아먹으며 자기를 내세우는 위선자 아닌가? 지독히도 아팠습니다.
 저만 5.18분단병에 걸린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5.18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해왔습니다.
 김영철열사님이 떠오릅니다. 그는 5.18때 들불야학교장이었지요. 마지막까지 남은 시민군으로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그만 붙잡혔습니다. 친구 윤상원열사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지요. 김열사님을 체포한 저들은 저를 빨갱이로 몰려고 했듯이 그를 빨갱이로 몰아 5.18 숭고한 민중항쟁의 본질을 흐려놓고 훼손하고 엉뚱하게 북녘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했던것입니다.
 그는 죽을 결심을 하고 취조받던 책상모서리에 자기 이마를 꽉 찍었으나 그만 죽질 못하고 정신병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후 십수년간의 세월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그만 어느날 빵을 먹다가 목에 걸려 질식하여 숨졌습니다.
 그의 장례식날 전남도청 노제때에 한풀이춤을 추는 어느 여인이 환자복에다 깡통을 달고 나와 온몸으로 몸부림치다가 유가족을 껴앉고 환자의 고통을 표출하였습니다.
 이때 우리는 소리없는 통곡을 보았습니다. 한많은 세월과 남은자의 아픔이 오죽했으면…
 4명의 유가족모두 단한마디 울음소리도 없이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지는 그 모습에 거기 모여있던 우리모두다 펑펑 울었습니다.
 김열사님뿐아니라 많은 분들이 5.18상처를 안고 정신적이상을 일으켰습니다.
 그중에는 가해자였던 군인들도 들어있습니다.
 엄청나게 고통해온 분들에게 비하면 저의 경우는 약소할수 있습니다만 저개인적으로는 죽느냐 사느냐 심각한 상황에 빠지곤 했습니다.
 아파본자가 아픈자의 심정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분은 잘 모르실것입니다.
 이 깊은 심연, 이 절망을…
 아내인 이강실목사가 너무나 잘 알고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이러한 상황을 잘 몰랐습니다. 다만 열심히 사는 모습만 주로 보았습니다. 언젠부턴가는 사람들에게 저의 내면에 이런 아픔이 흐르고있다는것을 솔직히 고백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저의 위선을 또다시 보았습니다. 《분단병》에 걸려있다는것을 핑계로 자기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곤했습니다.
 자존심이 여지없이 파손된 그 당시 그 수치심을 만회해보려는 과정에서 명예욕이나 소영웅주의가 발동하고 역사와 열사 운운하면서 자기를 내세우는 이중인격자가 저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까지 팔아먹고 감히 수단화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는 저의 모순이 너무나 가증스러워 미쳐버릴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앞에 역사역사앞에 진실한가》 질문해왔습니다.
 아닙니다. 한번도 진실해본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진실할수 있음을 절감해왔습니다. 분단병의 아픔을 한번씩 겪을 때마다 《어린 왕자》라는 책의 술주정뱅이이야기가 생각나곤 했습니다. 어린 왕자가 여행하는 길에 어느 별에 갔더니 날마다 술만 마시고있는 사람을 만났지요. 왜 그렇게 술만 들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술먹는것이 부끄러워 술마신다는것이였지요. 저의 분단병도 또한 늘 그 모양으로 되풀이되곤 했지요.…
 여태까지 분단병의 아픔을 견디고 살아있는것이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총덕분입니다.
 곧 숨막혀 죽어가는 때마다 하나님이 건져주셨지요.
 이런 아픔을 겪을 때마다 한걸음씩 깨달음의 진보의 역사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때로는 제자리만 돌고있고 심지어 거꾸로 도는듯 하지만 돌면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듯이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 이 분단병의 뿌리를 뽑아버리고싶었습니다.
 물론 그동안에도 저스스로 많이 속았습니다. 이제는 다 됐다 분단병이 사라졌다고 착각한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느 계기점에 영락없이 또 찾아오는 이 분단병!
 이미 30여년의 세월입니다.
 이 《분단병》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더이상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5.18역사현장 철야단식기도》를 드렸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분한분 무덤을 돌며 기도를 드리며 살아남은 자로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죽기살기로 기도하는가운데 어느날 열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너대신 죽었으니 나대신 잘 살아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용납하시고 열사들이 위로해주심을 느끼며 분단병으로부터의 참해방이 온몸에서 일어나고있음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삼위일체하나님과 한몸이요, 5.18열사와 한몸됨의 감격속에 노래가 터져나왔습니다.

《나된나》를 삽니다
부활영생 빛으로 십자가를 봅니다
부활영생 빛으로 십자가를 봅니다
지시고 지시고 세상과 저에게 다 져주시고
지시고 지시고 세상과 저를 다 짊어지시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지시고 지시고 주예수 숨이 다 숨지시며
다 이루었다! …
하셨으니 이루셨네 다 이루셨네
한몸평화 만세만세 야하! 이루었네
절망의 끝 희망이요 희망의 끝 비움이요
비움의 끝 죽음이요 죽음의 끝 생명이라
생명으로 죽음보고 죽음으로 비움보고
비움으로 희망보고 희망으로 절망보네
부활령생 힘으로 지금 여기 삽니다
부활령생 힘으로 《한상렬》을 삽니다
《나된나》를 삽니다
《나의 나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덕분입니다.

‘분단병’ 치유와 함께 ‘나된나’ 되고 보니 아주 단순해졌습니다. 빈 마음에 하나님의 소명이 임했습니다.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고민이 다 사라졌습니다. 북녘에 다녀오는 일을 남녘 동포들은 어떻게 볼것이며 통일 운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자기를 드러내는 소영웅 주의적 발상에 다시 도진 것이 아닐까
하나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질문하며 몸부림 쳤는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어느 한사람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사건으로 신앙양심의 발현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애국애족애민 모든 열사님들의 정신을 계승한 민족양심의 실천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7.4 / 12.13 / 6.15 / 10.4 로 이어져온 통일의 맥을 따라 일편단심 6.15살리기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민족화해와 통일평화사절로, 희망의 전령자로 북녘곳곳마다 다니며 북녘동포와 함께한 통일염원 순례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사건명을 위와 같이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6.15 10년 맞이 민족공동행사가 서울이나 평양 어디더라도 남북해외 대표단이 소규모라도 모여 진행이 되었더라면 이번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분단병’ 치유는 참자유인이 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때달았기에 북녘에 가려 결단하였지만 그 진행과정에서서도 계속 디도하며 성령님보다 앞서지 않고자 했습니다. 안 갈수도 있고 갈수도 있습니다. 자유함 속에 11번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고 넘어 6월12일 드디어 북녘 땅에 도착하게 됨을 보며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명백히 공인 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까지 저는 이번사건에 대한 저의 총체적인 입장과 소감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저는 “공소사실”에 관하여 저의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공소장을 보면 크게 “모두사실”과 “범죄사실” 두 부분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두사실”의 첫항 “범죄전력”란에  “피고인은 1991년 12월20일 서울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위반죄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과연 당시 저는 전민련 공동의장, 국민연합소집책임자, ‘고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과 공안통치조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다가 구속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후 저는 그 사건의 일로 민주화운동유공자로 공식적으로 정부를 통해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언급하기로 한다면 범죄전력에 넣을 일이 아니요, 나라를 위한 공로 경력에 기록할 일이 아닐까요…….
또한 2008년 ‘촛불배후’로 구속되었던 사리도 언급했더군요. 이사건도 이미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이 위언으로 결정 난 이래 유야무야 되었고, 오히려 당시 배후에서 법원의 양심을 희롱한 신영철님 때문에 사법파동이 일어났던 것 아닌가요.
‘촛불총배후’라고 오종렬의장님과 저를 지목한 것은 영광이면서도 촛불국민을 모독하는 억울한 누명이었으며, 하물며 아직 법적인 절차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범죄전력이라 함은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범죄사실’ 둘째항 “활동상황”란에 보면, 전민련-전국연합-통일연대-진보연대로 이어 대표역할을 하며 각종 대책위 활동에 참여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무슨 이적단체 활동을 한것인냥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피토하는 역사현장속에 헌신하신 애국애족애민 열사님들의 맥을 계승하여 공공연히 당당하게 참역사운동을 전개해온 ‘이족단체’들이었음을 거듭 밝히는 바입니다.

“범죄사실”에 보면 1. 북한의 반국가 단체성 / 2. 2005.8 맥아더 동상 철거주장 관련 찬양 고무 선전 동조 / 3. 2006.4 방북관련 회합, 특수 잠입 / 4. 2010.6 밀입북관련 탈출등 4부분으로 되었더군요.
2항과 3항은 이미 4-5년 전에 공개적으로 일어났던 일, 다 아는 일, 이미 별 문제없이 지난갔던일이었는데 이제와서야 새삼스럽게 문제 삼는다는 것 공소권 남용으로 여겨집니다. 그 공소 내용을 전혀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이게 1항을 중점으로 다만 몇 가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북의 남침적하통일론입니다. 이것은 이미 물건너 갔는데도 여태까지 이렇게 탄압하는 빌미로 문제 삼아 왔습니다. 1998년 10월3일 북녘조국을 첫 방문했을 때 북녘동포들이
“....우리를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적화통일 할 의도가 없다....”라 하더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12여년의 세월동안 저는 그 진정성을 거듭 확인해 왔습니다.
북녘의 학자들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해왔더군요.
“...우리민족은 통일을 일일천추로 념원하고 있지만 민족의 화해와 화목을 깨고 전쟁참화를 가져올 수 있음 먹고 먹히는 식의 통일은 누구도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통일은 같은 민족끼리 모여서 평화롭게 잘 살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데 내전과 파괴 류혈을 가져오는 통일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통일 때문에 사회정치력 혼란이 오고 지역간 대립이 첨예화 되며 나아가 군사적 충돌과 같은 사태가 초래된다면 그러한 통일은 안하기보다 못할 것입니다…….”
(원동연님, ‘민족의 화합과 단결은 조국통일의 기본문제’)       
“...남쪽에서 <남침위협>이란 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초보적인 군사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단독으로 세계 유일 초대국으로 차자하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을 상대로 하며 전쟁을 먼저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장용해님, ‘긴장완화를 위한 실천적 대책’)

“...그때 북에서 그렇게 합의 했지만 속에 칼을 품고 한게 아니가...이렇게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만을 우리가 속에 칼을 품었다 하게 되면 1960년도에 남쪽에서 지금 북의 남침위협이 가장 높다는게...남이 혼란했을 때 주로 남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60년 4월19일 4.19인민 봉기때 우리가 그 좋은 기회에 남침했습니까? 안했지요. 남침 기회는 여러번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인민 항쟁도 있었고, 1987년 6월 민중항쟁도 있었고 남조선에서 혼란한 기회는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침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뭘 말하는가? 속에 칼을 품은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냐? 이것은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원동연님, 토론문)

누구보다도 먼저 일찍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논문에서 남북평화공존과 평화통일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였더군요.

“...우리 민족의 통일 문제를 놓고 동족끼리 서로 싸워야 할 근거가 없다. 북과 남 사이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의 차이도 무력행사의 조건으로 되지 않는다. 사상과 제도는 강요한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며 강압적 방법으로는 북과 남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없앨 수 없다.
... 우리 민족은 누구에게나 접수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하루 속히 조국통일을 이룩할 것을 바라고 있다.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제도가 세워진지도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 어느 한쪽의 제도에 의한 통일을 실현 하려고 한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재난을 가려오게 될 것이다....“

남녘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북의 입장에 대해 ‘대남적화전략불변론’ 과 ‘대란전략변화론’등 다양한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변화론을 살펴보면
“... 한반도에서 무력과 전쟁을 다시 선택하겠다는 생각은 6.25전쟁이후 남북한 국가 지도자들에게 공히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북한이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여 통일국가를 이루려는 대남전략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는 북한 경제의 붕괴등 북한 내부의 능력 저하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가져온 국제 환경의 악화로 인해 북한의 구체적인 대남전략은 통일보다는 북한체제의 생존을 기약하기 위한 남한과의 ‘평화공존’의 추구로 변하였다고 보면서 1990년대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 공격적 목적보다는 방어적 목적이라고 인정한다...
(백학순보, ‘북한의 대남전략’)

“...1960년대 ‘남조선 혁명론’에 기초한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전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뒤 북한은 당국 간 대화노선을 병행하면서 이 정책을 약화 시켰으며 오늘날 ;남조선 혁명론은 북한의 대남전력에서 허울 좋은 명분으로는 남아있으나 사실상 령해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중석님,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북녘의 변화를 인정하는 이러한 수정주의적 견해는 북의 대남전략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거나 객관적 조건이 불비하며 불가피하게 대남적화전략을 추구할 수 없어 포기한 것으로 보는 점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볼수 있기는 하나, 북녘이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거나 더 이상 이른바 대남적화통일전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진실을 일부 객관적으로 파악했다고 볼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북녘이 민족동질성과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확고한 자주적 의지로 적화통이론을 실제적으로 폐기 하였다고 이해합니다.
그 증거와 실천이 바로 남국간의 합의내용 이라 생각합니다.
(1991.12.13)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보면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제1조)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하고라 하였습니다. 특히 제2장 남북불가침항을 보면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하고 (제9조)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대결한다.
(제10조)....라고 합의 하였습니다.

(2000.6.15) 공동선언에서도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2007.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에 관한 선언 내용을 보아도 북녘은 일관되게 남녘의 사상과 체제를 인정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염원하며 남북 간의 정치 군사력 대치 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하고 나아가 통일을 희망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적화통이론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합의를 했으면서도 팔이 행이 되어 오지 못하고 때로는 심각한 분쟁이 야기되기도 했습니다. 사상과 체제가 달리 오랜 세월을 지내 왔는데 그렇게 쉽사리 진척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진정서로 인내하며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가며 평화가 정착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6.15-10.4 이길을 따라 계속 더욱 실천해 나가면 되는데 그만 이 정부 들어서고 부터는 파탄이 나기 시작했음을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긴장고조나 위기가 닥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화통일 주장의 근거가 될수는 없습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결국 우리민족은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북녘 동포들에게서 단 한번도 적화통일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일 남침적화무력통일의 낌새가 보이거나 시도하려 한다면 저부터 목숨 걸고 나설 것입니다. 흡수통일도 적화통일도 우리민족을 망하게 하는 짓이기에 결사반대합니다. 오직 일편단심 6.15를 살려 평화통일의 방향을 찾는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북녘 민화협의 정체성입니다.
공소장을 보면 “...북한 민화협은 통전부 산하 조직으로 민족화해 등을 명분으로 각종 남북교류 사업에 개입하여 민간내 친북정서를 주입시키는 한편 범민련등 남한 내 친북 조직들을 관리, 조종하여 남한 내 친북 활동의 지도 및 북한지지 세력의 확산 미군 축출활동의 조종업무등을 수행하는 곳으로서 대남 공략 사업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혁명전위대이다...”라고 되어 있더군요.
민화협에 혁명전위대라니요? 그동안 민화협 북녘동포들은 공식적으로 회담이나 행사 관계로 자주 만나왔거니와 단 한번도 혁명이나 공작적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회담주제 논의나 의례적인 상호 관심사 대화를 했을 뿐입니다. 그동안 민화협 관계자들을 만난 남녘동포들이 허다한데 모두다 혁명 전위대에게 놀아났다는 말입니까?
언론보도에 의하면 통일부가 5.24 조치 이후 첫 남북 주민 접촉승인을 하였는데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대표들이 중국선양에서 8월22일-23일 회합을 갖는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상대가 민화협이라고 명시되어 있더군요. 8월20일 제가 구속된 바로 그 후에 일어난 일인데 민화협 정체가 혁명전위대란는걸 통일부는 몰랐던 것인가요?, 아니면 알고도 승인했나요? 이런 경우 통일부는 무슨죄에 걸릴까요? 냉전적 대결관념적인 사고방식과 선입관을 하루 빨리 청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지령수수’ 문제입니다.
저는 자주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누구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래 사랑, 자유, 정의, 평화, 통일, 자주, 민주,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실천해 왔습니다.
공소장 14쪽에 보면 “ ... 피고인은 1988.1 전민련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이후 미국은 남북한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이고 남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하며 국가보안법을 폐지되어야 하고 북한의 체제는 옹호되어야 하며 통일도 북한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여왔다”고 되어있군요
전민련 상임집행위원장을 한적은 없습니다. 공동의장을 했습니다. 주목하여 볼일은 시간 날짜입니다.
1989년이라 했습니다. 그때는 북녘동포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시절입니다. 그러므로 훨씬 후인 2000년대 북녘동포와 만나 그 지령을 받아 활동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렇게 말하기로 한다면 북녘동포들을 만난 남녘동포들은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그렇습니다. 작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서거아시 북녘에서 김기남 단장등이 조문단으로 남녘에 왔을 때 청와대에서 ‘회합’을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의 ‘지령’을 받고 그 뒤에 중국 땅에 사람을 보내어 북녘과 논의 해 보도록 했습니다. 비록 성사는 안됐지만 당시 북녘의 제의를 받아 추진했던 일이므로 ‘지령수수’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 북녘조국순례사건’의 배후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5.18 열사들입니다. 5.18소명결단 이후 저는 더욱 깊이 기도 하다가 하나님의 뜻임을 거듭 확인 하였기에 드디어 6월 4일 베이징 북녘 대사관에 찾아 갔습니다.
뜻을 밝히자 북녘 동포들은 난색을 표하더군요. 저는 단호히 말했지요. 하나님의 명령이니 나는 압록강을 건너서라도 꼭 들어가리라고....
결국 6월12일 평양에 도착했고 저는 계속 몇가지를 요청했지요.
첫째, 북녘의 6.15 행사에 다 참석하겠다는 것이고
둘째, 8.15때 판문점을 통화하여 남녘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요
셋째, 그동안 북녘조국방방곡곡을을 다니며 동포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저의 요구를 수용하고 지극정성을 다하느라 북녘동포들이 엄청나게 고생하며 수고들 하였습니다. ‘지령. 수수’라 함은 결코 사실이 아니요 저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저는 ‘북녘조국 순례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저의 입장과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가)항에 보면 “ 문익환 목사를 추종하던 중 2003.8월 경 문익환 목사의 처 박용길로부터 문익환 목사가 입었던 두루마기를 받게 되자…….” “....평소다짐하고 있던 문익환 목사의 행적을 따르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밀입북 하기로 마음먹었다...”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마치 소위 “밀입북”하는 것이 (저의 표현으로는 북녘조국순례하는것) 문 목사님의 행적을 따르는 것의 전부인양 기술했더군요.
문 목사님의 인격과 정신을 본받을지언정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아도 좋은 사건이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저자신은 순안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6.15시대인데 21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홀로 이런 모습으로 오게 되다니 ... 참으로 쓰라렸습니다.
“...이로써 피고인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북한지역으로 탈출하였다”라고 했더군요.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로 위태로워 졌나요? 대한민국의 저력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다양성이 생명인 자유민주적 질서에 오히려 충실한 증거가 이번 사건이었습니다. 6.15시대에 더 이상 북녘은 반국가 단체가 아닙니다. 남녘조국을 탈출했다면 왜 돌아왔겠습니까. 남녘조국에 살고 있는 저자신 북녘 조국을 순례하고 이렇게 왔으므로 탈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나)항 ① '6.15 공동선언 발표 10돌 기념 중앙보고회‘에 참석하여 연설을 들은일은            있습니다.
      ② 6.15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의 6.15회고 모임에 참석하여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6.15 10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에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6.15           시대의 감동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편안한 자리였습니다. 또한 만경대           관람도 했습니다. 만경대는 북녘을 방문하는 남녘동포들만 아니라 세계각            국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다녀가는 곳입니다.
공소장에 보면 “이로써 피고인은 연방제 통일방안 지지등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점을 알면서…….”라고 되어있는데 이날 모임이나 관람할 때 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온바가 없는데 어떤 근거로 연방제를 지지했다고 하는지 참 궁금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6.15 회고담 모임이나 만경대 관람이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큰 문제임을 알았다면 제가 그렇게 했겠습니까?

다)항에 1) 조국통일 3대 헌장 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공소장에는 “... 조형물 자체가 북한의 대남 혁명통일을 상징하고 있다…….이로  써 피고인은 김일성 김정일 찬양, 연방제 통일 방안 지지 등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 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자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하였군요
 기념탑관람이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여기도 가지 않았겠지요. 
‘조국통일 3대헌장’에 대한 저의 견해를 명백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색안경을 벗고 선입관 없이 그내용을  제대로 본다면 오히려 무력남침적화통일론이 허상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조국통일 3대헌장은 ①조국통일 3대원칙
② 민족대단결 10대강령 ③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말하는데 각각 ① 통일을 추진하는데 지켜야 할 근본 입장과 방도 ② 통일을 촉진해갈 민족주체역량을 형성하기위한 강령 ③ 통일국가의 전보다 실천방도를 밝힌 설계도라 합니다.

‘조국통일 3대원칙’ (1972.7.4)은 외세의 간섭 없는 통일(자주),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는 통일(평화), 사상제도 이념을 초월한 통일(민족대단결)을 이루자는 것으로 남북이 합의한 7.4공동성명이며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명시된 온 겨레의 통일 대 원칙입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전 민족 대단결 10대강령’(1993.4.6)에 보면
공산주의자나 민족주의자나, 무산자와 유산자,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 단결할 것, 북침과 남침, 숭공과 적확에 대한 의구심을 풀고 신뢰하고 단합할 것, 서로 상대방을 위협하지 말고 침략하지 말며 상대방에게 자기의 제도를 강요하지도 흡수하지도 말것등을 주장하고 있는바, 결국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있다고 하여 반목과 대결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전 민족의 이익을 위하여 민족적 단합을 이룰 것을 주장하는 등 그 어디에도 적화통일의 방향을 암시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및 연방국가의 10대 시령 방침’(1980.10.10)에 보면
“... 해방 후 오늘까지 북과 남에는 오랜 기간 서로 다른 제도가 존재하여 왔으며 거기에서는 서로 다른 사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주적 단합을 이루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면 어느 한쪽의 사상과 제도를 절대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북과 남이 제각기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절대화 하거나 그것을 강요하려 한다면 불가피적으로 대결과 충돌을 가져오게 되며 그렇게 되면 도리어 분열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결코 남조선에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복종시킬 것입니다…….” 라고 하며 10가지 통일정부 시령방침을 제시하고 있는데, 남북쌍방이 고유의 제도를 침해하지 않는 상태에서 민족성원의 민주적 권리보장, 복리향상, 경제협력등을 추구하는 정책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총체적으로 살펴볼 때 북녘이 주장하는 3대헌장은 남녘을 타도하거나 배제해야할 대상이 아니요, 대등한 통일의 동반자요 당사자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명백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의 통일방아도 6.15공동선언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녘의 연합제도 아니요 북녘의 연방제도 아닙니다. 6.15공동선언 제2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고 명시하고 잇는데 더욱 깊이 대화와 방향을 찾아보면 합리적이요 더욱 좋은 제 3의 통일 방안이 창출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분명히 6.15에 근거한 제3의 통일 방안을 기대하며 모색하고 있습니다.
북녘순례중에 저는 헌장 탑만 간게 아닙니다.
애국열사릉도 다녀왔는데 공소장에서는 빠졌더군요. 아마 제가 묵비권을 행사 했고 다른 구체적 증거 자료가 없어서인 모양인데 자진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북녘동포들에게 이곳을 꼭 안내해 달라 했습니다. 여운형 선생님의 따님 여원구님의 묘앞에서 추모기도를 드리고 싶어서 였습니다. 지난 2002년 8.15 민족공동행사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저에게 각별한 동포의 정을 표현하였고 몇 차례 공동 행사 때 만나면서 친밀했던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으로 북녘에 가셨던 장기수 선생님들도 여러분이 돌아가셨더군요.
그런데 이곳도 금기장소 인가요?
지난 2005년 8.15 민족통일 축전차 서울에 왔던 김기남 단장을 비롯한 북녘대표단이 현충원을 찾아 참배 했던 일이 있었지요. 언론에서는 민족화해를 위한 획기적인 진일보라고 높이 평가 한것로 기억합니다. 남북기본 합의서 1조1항도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한 이상 6.15- 10.4 선언이 나온 이상 북녘의 어디를 가든 그것을 금기시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식물원에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도 보았고 김일성화 김정일화도 보았습니다. 동물원에 가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6.15-10.4 기념 선물한 진돗개랑 호랑이도 보았고 남과 북의 동물원끼리 서로 교류협력하고 있었음도 알았습니다.


2) 예배에 참여한 일마저 공소했네요.
 저는 그동안 북녘조국을 방문할 때마다 날마다 홀로 예배드리고 주일날에는 꼭 봉수교회나 칠골 교회를 찾아가 주일 예배드리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봉수교회에서 ‘한 몸 평화와 통일평화의 십자가’ 라는 제목으로 1번 칠골 교회에서는 “참평화” “한몸기도”라는 제목으로 2번 설교도 하였지요. 단순하게 그저 예배에 참여하거나 설교 때도 평화가 주제요 초점이었는데 어떻게 이것이 “....국가의 존립, 안정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 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자의 활동에 동조” 한일이 됩니까?
기가 막힌 일입니다. 예배드리는 것마저 상투적으로 국가 존립 운운을 남발하는 것은 좀 과도하고 너무나 파렴치한일 아닙니까?

1998년도 10월 3일 첫 북녘조국 방문이래 저는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북녘의 종교현실이 어떠한지 참 궁금했습니다. 과연 기독교의 신앙고백과 공산중의 사상이 한사람에게 함께 가능할 것인가? 등등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북녘동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대체적으로 이렇습니다.
“... 김일성 주석도 종교인들을 인정하고 존중했다. 예컨대 항일 투쟁시절 백두밀영을 찾아 온 천도교 박인진 도정과의 만남에서 ”청수“ 예식시간을 미리 기억하고 권하기도 했고 김성락 목사와 식사 할 때 먼저 기도 드리길 권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무슨 체면상이나 공산주의자의 아량을 과시 하고자 함도 아니요 당연히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깊은 배려였다...  김일성 주석은 인민을 하늘같이 섬기는 자기의 공산주의 사상과 인간의 세계의 구원과 평화를 추구하는 기독교 정신이 통하는 점이 많다고 하였다. 북녘기독교인 우리들도 창조주 하나님을 신앙 고백하면서도 얼마든지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밀고 구현하려한다면 초대교회의 원시 공산주의적 생활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이나 제도를 결코 우상화 절대화 할 수 없다. 지도자를 존중하는 것은 옳으니까 따른 것이지 우상화가 아니다…….”

왜 전도가 안 되는가 라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북녘 동포들에게는 기독교와 종교에 대한 나쁜 인식이 배어 있기도 하고 주체사상이 있기에 구태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전도하기가 무척 힘드나 사회 봉사 등을 통해 간접적인 선교를 통해 호감을 갖게 하고 있으며 조금씩이나마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잇다는 것입니다.
북녘예배에 참여해오면서 여하튼 비록 작지만 복음의 거름이 있다는 것이 크게 다행스런 일이요 소수일망정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희망으로 다가 왔습니다. 북녘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의 설교나 찬양이나 예배드리는 자세에서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비단 저 뿐일까요? 북녘교회는 엄연한 실체임을 증명할 남녘동포들의 많이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공소장에 “... 봉수교회는 북한이 마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인양 대회 홍보를 위해 건설한 체제 선전용 건물”이라 했는데 분명 이말은 취소를 요구합니다. 이번에 봉수교회에 가보니 크고 아름답게 새로 지었더군요. 한국교회의 어느 교단 어느 교회가 지원해서 건축했다며 감사하고 기뻐들 하다군요. 봉수교회가 ‘체제 선전용 건물’ 이라면 지원해주었던 그 교단은 그야말로 이적행위를 한 교단이 되고 만셈이군요.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체제 선전용’이라 왜곡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조선 그리스도 연맹과 연관을 맺고 남북교회가 하나 되길 기도해온 한국 기독교 전체를 모독하는 짓입니다. 이런 단어는 당장 삭제 할 것을 강력히 촉구 합니다.
저는 이번 북녘 순례동안 연설이나 발언 할 때 성경을 인용하거나 저의 신앙고백의 정체성을 명백하게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북녘 동포들에게서 “한 목사님이 이번엔 하나님 선교하러 맘먹고 오신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여러 번들을 정도였습니다. 북녘 기독교회 식구들은 북녘언론보도에 ”하나님“, ”십자가“ 라는 말이나 ”목사“ 라는 말이 나옴으로써 간접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기뻐들 하더군요.

3) 6월 22일 ‘저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 원문을 그대로 남녘에 보내달라고 북녘동포들에게 요청했고 이자료를 근거로 저의 발언을 문제시 삼고 있군요.
분명 저는 “남녘조국 남녘동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 겸손한 자세 풍부한 유모며 지혜화 결단력 밝은 웃음 등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이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기어이 분단 장벽을 넘어 어려운 길을 개척해낸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님의 통일 열망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온 세계가 우리민족공동선언을 축하하고 지지했습니다. 분단의 피눈물 나는 세월이 그 얼마였습니까? 그동안 우리민족은 분단의 상처를 안고 그 얼마나 고통하여 왔습니까? 그러나 새천년 2000년 남북 수뇌부의 화합으로 6.15 새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앞뒤 생략하고 김 위원장에 대한 것만 쏙 뽑아서 문제시 하고 있습니다. 초점은 그토록 기다려 왔던 6.15 시대가 열리게 되는 감격 속에 두 지도자의 큰 결단과 용기를 생각하며 발언한 것입니다. 김전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본 인상을 김대중 자서전에 기록해 놓았더군요.
“... 나는 평양에 54시간 머물렀다. 김 위원장과는 11시간 동안 자리를 함께 했다. 또 차량에 동승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은 임동원 원장이 전해준 인물평과 거의 일치했다. 그는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동양적인 관습에 따라 3년상을 치렀다. 연장자인 나에게 깍듯했다. 정상외교관례를 깨고 공항까지 영접을 나왔다. 창에 동승했고 내가 먼저 탈 때까지 기다리며 세심하게 배려했다.
고별 오찬장에서는 내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 주었다. 김 위원장은 이해력 판단력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다가도 나의 논리적인 설명에 이해가 되면 자신의 의견을 수정했다. 주한미군 민족자주문제 통일방안 논의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북측이 주장해왔던 문제도 이해가 되면 즉각 수정했다. 그 후에 김 위원장을 만난 사람들도 나의 이런 파악에 동의했다.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나 페르손 스웨덴 총리 그리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나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6.15 당시 남녘의 언론과 세계여론이 김 위원장에 대해 그동안에 은둔하다가 이제 나왔다고 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한 줄로 압니다.
6.15 이후 10월이던가요? 남녘언론인 사장단이 김 위원장 초청으로 북녘에 다녀와서 물론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의미 있는 평가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개인적인 관점만이 아니다 함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북녘도 주체사상을 기초로 핵위기 보다도 더 강한 3대 무기 즉 일심단결, 자력갱생, 혁명적 낙관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제 개인적 관점만이 아니요, 객관적인 현실로 여러 공식적인 통일자료에 다 나오는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꼭 유념해 주시면 좋은 일은 제가 이런 말을 한 초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북붕괴론은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북붕괴론은 불신과 긴장을 극대화 시켜 결국 전쟁위기로 치닫기 때문에 안 됩니다.
북붕괴론은 경제적으로도 결코 실용적이 아니요, 낭비ㅛ, 분단불화로 통일비용만 늘어 날뿐입니다. 결국 북붕괴론은 남과 북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며 남북을 함께 망하게 하는 일이기에 안됩니다. 북붕괴론은 그 무엇보다도 심대한 정신적 공황을 가져와 큰 혼란을 야기 할 것이기에 안됩니다. 사실상 북붕괴론은 현실성이 없는 허구이기에 더 이상 안됩니다.
최근 6월 북녘을 방문했던 재미 동포의사 (오인동님)의 책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에 이런 지적이 있더군요.
“.... 진정 여기가 북한이가? 바깥에서 조금만 더 조이면 금방 붕괴 단다고 하는 북한이 맞는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북한이 내일모래 망한다고 떠들어 대는 지도자나 내외 언론인들은 내가 못 보는 무슨 다른 것을 보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일까? 반면 오랜 세월을 걸쳐 북한을 연구하고 방문한 사람들이 북한은 곧 망할 거라고 말하는 것은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다. .... 망하기는커녕 앞으로 더 발전해 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더강하게”
‘북미관계 발전의 설계사’라고 불리는 박한식 조지아대학 석좌교수는 ‘민족21’ 광의 대담에서 ‘북체제 붕괴’ ‘급변사태’에 대해
“.... 한마디로 북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우리가 상상 못할 만큼 무거운 나라에서 ...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지요,. 김일성 주석의 권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 그의 사상과 업적계승을 표방하는 후계자가 등장하더라도 절대 북의 체제가 붕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미국의 네오콘에 끌려 다니며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그토록 못살게 굴었던 부시 전 미 대통령마저 임기 말에는 정책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북녘의 현실을 직시하고 ‘북붕괴론’의 환상을 버리고 6.15 정신을 사리며 오히려 북녘의 체제와 남녘의 체제가 올바르게 건재 하도록 서로 존중하고 상호교류협력 하는 것이 참평화와 통일에 길이라 생각합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한바 있습니다.
도올 김용옥님도 민관합동조사단의 천안함사건 첫조사결과를 두고 0.001%도 설득이 안 된다. 북한에 그 정도 기술이 있느냐. 서해에 미국해군군사력의 총집결인 이지스함이 두 대나 있었고 서해함대가 있었다는데 그것을 뚫고 (북한 잠수정이) 들어 왔다는 것은 웃기는 개그“ 라며 강한 불신을 표출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발언으로 고발당했는데 최근 무혐의 처리 되었더군요.
이번에 발표된 최종 보고서를 보면 오히려 의혹은 증폭시켰다고 볼 수 있기에 믿는 국민이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불신하거나 반신반의 한다고 합니다. 국민의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저 역시 의문을 제기하며 더욱 명백한 진상규명을 원하는 70%의 국민 중에 한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물론 이대통령에 대해서 엄중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반역사적인 행태를 일삼는것에대해 특히 6.15-10.4 선언을 외면하고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자고 10.4선언에 명시된 내용이 실현만 되었더라도 이번이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데 하는 아픔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부르지도 않았고 천안함사건의 도의적 전천적 책임자로 보았기에 험한 언어를 쓰며 다소 거칠게 규탄했었던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사랑과 자유로 거듭난 정의가 참 정의라고 중장해 왔고 사랑하기에 비판한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대로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봅니다. 사람 안에 사람과 함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기에 (   )님이라 부를 때는 물론 상대방에 대한 예의야 존칭으로 ‘님’이라 하면서도 더 나아가 바로 그분안에 함께하시는 ‘님’ - “주님”의 “님”을 생각하며 부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그 내용은 지금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돌이켜 보면 “살인원흉”등의 표현은 과도했음을 시안 합니다. 앞으로 이 장로님 혹은 이대통령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얼마 전 이대통령이 러시아 국영 티브이 인터뷰에서 “통일은 언제 올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통일을 북한이 어느 날 붕괴돼서 통일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며 “북한과 평화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그다음단계에서 평화적 통일을 기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북녘의 후계구도도 내부 사정이라고 이야기 했다고 언론보도를 통해 들었습니다. 지난날, 장차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하는 게 좋다“ 라고 했던 이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얼마 전 이대통령이 고생하였던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사진을 보며 그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그 진정성으로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정채그이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2년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루빨리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저자신 일찍부터 기도해온 바대로 6.15 와 10.4에 이어 제3의 선언을 내올 수 있기를 희망 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지난날 전민련 활동을 함께 했던 이재오 특임장관에게 촉구하고 싶습니다. 생명의 강을 죽이는 ‘운하의 전도사’는 이제 중단하고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도록 통큰 결단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최근 서울대 통일 연구소가 발표한 2009년도 ‘남북통합지수’는 19.9%라 하였습니다.
이대통령 집권기간에 다른 어느 때보다 남북 간 이질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객관적 지표입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와 신뢰도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불만족 60.5%,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72%나 되었다 합니다. 물론 여론 조사는 그저 참고 할 일이로되 다만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꼭 염두에 두길 바랍니다.

4) 6.23 ‘한상렬 목사 환영 군중집회’에서 한 연설을 다시금 내려 보았습니다.

일편단심 6.15
 사랑하는 북녘조국 그리운 북녘동포여러분께 한상렬목사가 뜨거운 심장으로 인사 올립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
 일편단심 6.15를 살리기 위하여 분단장벽을 뚫고 온 저의 이 당연한 일, 작은 일에 이토록 관심하시며 진정성을 깊이 이해해주시고 따뜻이 맞이하고 환영해주시는 북녘동포여러분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천년전도 아니요, 백년후도 아닌 바로 지금 바로 여기 만나고 있습니다. 이토록 숨쉬며 살아있음이 기적이요,우리의 만남은 신비입니다.
 우리 인연은 우연이 아니요, 필연입니다. 《인연》을 말하고 보니 《인연》과 《연인》의 차이점이 무엇일가 묻고싶습니다! …
 옷깃만 스쳐도 또 《인연》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연인》은? 옷속이 스치면 연인이래요.
 자! 이제 우리는 동포의 인연에서 통일의 연인으로 통일동이, 옥동녀, 옥동자를 함께 낳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부터 동포라는 말보다 통일연인, 통일동지라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통일연인, 통일동지 여러분!
 저는 먼저 어린이 수수께끼 하나 꼭 나누고 싶습니다. 어떤 엄마가 아기를 낳았는데 머리는 둘달렸고 몸뚱아리는 하나더랍니다. 그러면 이 아기는 한사람일까요, 두사람일까요,
 자! 머리가 둘이니 두사람 같기도 하고 몸통은 하나이니 한사람 같기도 하고 …
 하나인가 둘인가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지요. 한쪽 머리통을 때려봅니다. 아파서 《응아》하고 울때에 또 한쪽 머리통이《헤헤》웃고 있으면 둘이요, 또 《응아》울때 함께 《응아》운다면 하나라는것입니다. 아픔을 함께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내의 아픔이 남편의 아픔이요, 남편의 아픔이 아내의 아픔인가, 동지의 아픔이 과연 내 아픔인가, 북녘의 아픔이 남녘의 아픔이요, 남녘의 아픔이 북녘의 아픔인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민족분단의 아픔을 새기며 민족통일에의 꿈을 함께 나누고저 바로 여기 왔습니다.

사랑하는 통일연인 여러분!
 저는 어린이 수수께끼를 말씀드렸습니다.
 자! 함께 아파하느냐, 함께 안아파하느냐에 따라 둘인가 하나인가 알수 있다 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의 또 다른 해답은 없을가요. 저는 1995년 8.15일 분단50년이 넘어가는날 가슴아파 잠못이루며 이 수수께끼를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해답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자! 한쪽을 때려 《응아》할때 함께 《응아》한다면 확실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한쪽이 《응아》할때 한쪽이 《헤헤》웃고 있다면 둘인가요?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이미 몸뚱아리가 하나이잖아요. 한쪽 머리통이 깨져 피흘리게 되면 또 한쪽 자기자신도 곧 죽게되는걸 모르고 웃고 있는거지요.
 같이 아파하거나 안아파하거나 이미 한몸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미 한몸입니다. 북녘조국도 남녘조국도 우리 조국이요,   북녘동포도 남녘동포도 우리 민족, 우리 동포입니다. 둘이 되면 못살 이미 한몸 민족입니다.
 한몸이 바로 현실이요
 한몸이 생명이요
 한몸이 평화입니다.

 사랑하는 통일연인, 통일동지 여러분!
 저는 2010년 8월15일 판문점을 통해 남녘조국으로 갈것입니다. 왜 8.15인가. 8.15를 흔히 광복절, 해방절이라 부르는데 저는 광실절, 분단절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1945년 8월15일 바로 그날 미국이 쏘련에게 한반도를 3.8선으로 가르자고 제안한 날이기때문입니다. 8.15날 이미 우리 강토는 강대국손에 두동강나고 만것입니다. 아직 통일이 아니되었기에 진정한 해방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8.15날 통일념원을 안고 분단선을 넘고자하는것입니다. 또한 5.18을 거꾸로 하면 8.15이지요. 저의 소명결단이 5.18로 시작되었으니 8.15로 한 매듭짓고 당당하게 전진하고 싶습니다.
 저는 북녘땅에 머무는동안 《백두에서 한라까지 온 고을 방방곡곡 우리민족 통일평화 한몸평화 만세기원의 발걸음》을 시작하고저 합니다. 북녘조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북녘동포를 직접만나 뜨겁게 6.15를 노래하며 춤출것입니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자고 온몸으로 호소할것입니다. 우리민족 한몸평화와 함께 세계인류 한몸평화를 위해 기원하며 실현할수 있는 일을   의논할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길 바라며 노래하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보이네

1. 보이네 보이네 님이 보이네
   이제야 눈이 떠 님이 보이네
   언제나 여기에 계시는데
   눈멀어 예전엔 몰랐었네
   고마워라 님의 사랑 기~다림
   보이네 보이네 님이 보이네
   그립고 그리운 님이 보이네

2. 보이네 보이네 통일보이네
   이제야 눈이 떠 통일보이네
   6.15 만남과 공동선언
   자주와 평화와 대동단결
   조국하나 민족한몸 한~몸
   보이네 보이네 통일보이네
   통일삶 약속으로 통일보이네

 통일삶 약속으로 우리 하나되어 만세를 부릅시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만세!
 우리 민족 한몸평화 통일평화만세!
 저의 가난한 이야기를 끝까지 인내하며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토록 정성을 모아 뜨겁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다시 만납시다.
 통일연인 동지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하는 내용이나 북핵무기 보유를 옹호한다는 내용이 없던데 어디서 찾아 낸 것입니까?
다시 잘 살펴보고 있으면 저에게 알려 주시고 없으면 공소장 변경을 해주길 요구 합니다.

5) 저는 공장도 방문하여 북녘 노동자도 만나고 농장을 방문하여 농민 동포들도 만났습니다.
3.26전선 공장 노동자에게 한 연설에서 저는 1999년 남북 노동자들의 통일 축구대회의 감동을 나누기도 하고 전태일 열사 등 여러 애국 열사들과  항일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오늘날 남북노동자들이 6.15 통일 평화 기관차를 운행 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리원 미곡 농장에서는
예수님의 씨뿌리는자 이야기를 인용하여 옥토를 밭갈이를 하고 통일 평화 씨를 잘 심어 통일농사 잘 짓자고 하였습니다.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북녘농민 형제자매들과 춤추며 노래하며 즐거웠습니다.

우리조국농민만세!
 사, 사시사철 아름다운 금수강산 우리옥토
 리, 리치맞는 통일농법 대풍년을 노래하며
 원, 원대한 꿈을 꾸며 통일농사 지어보세
 미, 《미》는 쌀《미》 《쌀》은 《살》 《살》은 생명 쌀이 생명
 곡, 곡식마다 우주기운 농민피땀 어울리어
 농, 농자는 천상천하 대본이라 하였나니
 장, 장하도다 북녘남녘 우리조국 통일만세!


역시 연방제를 지지 한다는 말이 단골이로군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 저의 견해는 명백합니다. 반드시 철수해야 합니다. 30년 전 5.18 아픔의 경험을 통해 통일 자주 민주야 말로 우리 민족의 시대적 과제임을 깨달았습니다.
65년이 넘도록 아직도 미제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일제 외국군대때 부터는 100년이 넘게 외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안 됩니다. 더욱이 6.15 시대가 열린 이상 미군은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그동안 “반미”를 외쳐왓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반미”는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적 패쇄적인 “반미”가 아닙니다. “반미국정척”의 준말인 “반미”입니다. 미국의 세계 제패 제국주의적 정척이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미제는 가는 곳곳마다 세계 민중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미제는 스스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결국 미국자신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인류는 위해 미국 자신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미 제국주의 정책을 소멸하고 자주, 존중, 친선, 평화로 진보해야 합니다. 미제에 대한 환상은 금물입니다. 증오심은 버리되 철저히 미국이 회개 하도록 기도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모란봉 제 1중학교를 참관할 때 신효순 심미선 님을 명예 학생으로 함께 하고 있더군요. 책상위의 사진을 보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많이 울었습니다. 아픔 속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효순아, 미선아 !

효; 효순아,미선아!  북녘조국  모란봉중  와서보니
순; 순결한  통일학생으로  되살아나  빛나누나
아; 아프고아픈  거룩한피  헛되이  않으리니
미; 미군꼭  돌려보내고  자주통일  이루리라
선; 선열평화  길을따라  제국주의없는  세상에서
아; 아름다운  자주꽃으로  영원히  피어나라


조선 미술 박물관에 갔을 때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써보았습니다.


아름다울 미 되려거든
조; 조상님 삶   그자체가    한폭의       그림이라
선; 선열들의    멋진 솜씨   참미술로     빛나누나
미; 미국 그대   진정으로    아름다울 미  되려거든
술; 술책 리간질 그만두고    제국주의     내버려라
박; 박애독립    정신살려    겸손하게     회개하라
물; 물러가라    이땅에서    돌아가라     자기땅으로
관; 관대한      우리 민족   그대 널리    용서하리


6) 북녘 청년 학생들과의 만남에서도 연방제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없습니다.
“... 수염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저자신 1999년 10월 3일부터 12월 1일까지 53일간 단식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새천년 2000년이 다가 왔는데도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며 우리민족의 하나 됨을 위하여 분단장벽악질법인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의 일환으로 단식한 것입니다.
이 무렵에 ‘국가보안법철폐될때까지 수염 깍지 말자’라고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들과 몇분과함께 약속했던 것이지요. 비록 수염은 나있어도 젊게 예쁘게 봐주세요! “ 라고 이야기 한바 있습니다. 지난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과 지금 말하는 것과는 엄밀히 다른것일텐데 마치 이모임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한 것인 양 기술하고 있군요. 이와 이문제가 나왔으니 저의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자 합니다.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다 아는 일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이 만남의 초점은 사랑하는 북녘조국 북녘청년 학생들에게 저자신 오랜 세월 하나님의 역사 앞에 진살한가? 질문하며 몸부림쳐오면서 고민 했던 인생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한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꿈꾸는 자가 되기를 바라며 자기 변혁에 힘써 달라 했습니다. 진정한 역사 변혁은 자기 자신의 변화로부터 시작되기에 다섯 가지 잘못된 관념과 주의를 떨쳐 버리고 항상 새롭게 전진하는 청춘들이 되길 바랬습니다.
관성주의, 패배주의, 좌우극단주의, 물질주의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부단히 몸신, 믿은 신, 새로울 신, 신신신 혁명으로 자지가 자기다운 사람이 되어 새 시대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라고 청춘 그 자체를 고무찬양한것입니다. 서투르나마 노래도 불렀습니다.


이 노래의 배경은 어느 새장이야기입니다.
두마리가 갇혀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마리가 《나는 새야》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새야 저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던 새란 말이야. 이 새장의 철조망을 뚫고 날아야겠어》하면서 피나게 날아다니는 훈련을 합니다. 또 한마리는 《우리가 무슨 새냐, 주는거나 먹고 알이나 잘까면 되지 무슨 소리야, 이 놈은 맞아야 한다》면서 날고자 하는 새를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팹니다.
《이놈 좀 보소 이놈좀 보소 이놈 좀 보게 아! 지가 새라고 닭이 새라고 웃긴놈 보소》
맞았습니다. 쓰러졌습니다. 다시 일어나려 합니다. 또 짓밟습니다. 엎어졌습니다.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납니다. 또 사정없이 마구 찌르며 숨통을 끊으려 합니다. 꺼꾸러졌습니다.
때로는 그래 내가 무슨 새라고 그저 찍소리말고 주는거나 잘먹고 눈감고 살면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순 없습니다. 피토하면서도 다시 일어나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직도 나는 새란다.
아직도 우리는 새란다
수많은 핍박이 있어도
골천번 죽더라도
영원히 변칠않네
내가 새라는건
나는 새야 나는 새야
우리 모두다
닭이 아냐 닭이 아냐
새란말이다.
이 심장에 이 혈관에
흐르는 진실
언제 언제까지나
아직도 나는 새란다.
아직도 우리는 새란다.

청년학생여러분!
여러분은 새입니다. 6.15새요! 자주 새요! 민주 새요! 통일 새입니다.!


7) 7월 중순 경 저는 북녘조국의 개성, 판문점 일대를 순례한바있습니다. 공소장에 보면 “... 이로써 피고인은 김일성 찬양 연방제 통일 방안 지지등 국가의 존립 안정이나 ~ ” 로 되어 있더군요.
김일성 주석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준비하느라 과로 하다가 숨졌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통일 관련 문건에 서명했던 “1994. 7. 7 김일성 ” 이란 글자를 친필 비에 새겨 놓았더군요. 이 친필 비를 관람한 것이 어떻게 “김일성 찬양” 과 직결되는 것인지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방제 통일방안 지지는 시종일관 단골메뉴로군요. 13일 판문점 참관에 이어 14일 공민왕릉 등등 15일에는 박연폭포 등을 여러곳을 참관하느라고 한 번도 통일 방안을 이야기 한 기억이 없는데 어디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해 연방제를 지지 했다고 그러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분단의 아픔을 새기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6.15열쇠로 꼭 열리라

일천구백  사십오년  팔일오  바로그날
온겨레  독립만세  기뻐눈물  춤을출때
미제쏘련  제멋대로  38선을  그어버렸네   
해방인줄  알았더니  분단절이  되어버렸고
광복인줄  알았더니  광실절이  되었구나 
판문이  철문처럼  분단장벽  단단해도
6.15열쇠로  꼭열리라  다짐하며  노래하네

분단이라   65년  이 세월을
남과북이  갈리워  긴세월을
그얼마나  피눈물  흘려왔나
안돼안돼  이제는  그만
분단과  예속은  안돼
바꿔바꿔  이제는  바꿔
통일과  자주로  바꿔
가자  우리민족  한몸이니
가자  통일조국  새역사로
일편단심  6.15를  살려서
가자  통일조국  새역사로
우리민족끼리  힘을합쳐  한길로
만세  통일조국  평화만세
만세  민족한몸  평화만세!


8) 북녘종교인 만남에서 ‘연방제’를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의 통일 방안은 6.15 공동선언 제 2항에 기초한 저 3의 통일 방안입니다. 이만남의 초점도 저 자신의 각 종교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종교 혼합주의를 해서는 안되고 각기 고유한 신앙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공통점을 찾아 단결하여 참역사의 길에 동참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몸! 평화! 기도! 이 세 가지가 모든 종교의 공통성이 될 수 있으므로 더욱 정성을 다하여 6.15를 살려 통일 평화를 이루자고 했습니다.

9) 고성군 북녘 동포와의 만남에서도 ‘연방제’ 지지한 바 없습니다.
이만남의 초점은 금강산에 오는걸 단순히 관광이라기보다 통일의 순례길인데 하루빨리 남북이 금강산 문을 다시 열수 있기를 회의 하였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저의 작은 꿈 이야기도 나누며 노래도 불렀습니다.


하나아닌가!

1. 비우라  놓아라  내려  놓아라
 또다시  내려놓고  깨끗이  비우라
 인생은  길가는  나그네일  뿐뿐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
 삶과  죽음은  하나  아닌가
 비우라  놓아라  내려  놓아라

2. 사랑해  사랑해  더욱 사랑해
 또다시  사랑하고  열렬히 사랑해
 사람은  삶은  사랑일  뿐뿐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님의  심장과  하나  아닌가
 사랑해  사랑해  (님을)  사랑해

3. 야~하!  야~하!  우린  하나야
 영원히  태초부터  지금~  여~기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11월11일  하나의날  한몸평화  만세의꿈
 온인류  온생명  하나  아닌가
 금강산  삼일포  와우!  야하!


공소장에 언급된 만남 외에 저는 여성, 교육, 학술, 언론예술, 환경등 각계각층의 대표들을 만났고 광범위하게 북녘 동포들을 만났습니다.
각 만남의 초점이 있었습니다.
여성단체 대표들을 만났을 때는 이강실 목사 보고 싶다고 하기에 저와 이목사의 결혼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었고 남북 모든 여성들이 “물”의 속성처럼, 유연수용성, 단일연대성, 운동저력서, 순결정화성, 겸손끈기성, 생명평화성을 발현하여 여성성을 빛내고 6.15살림에 앞장서 달라고 했습니다.
교육단체대표들을 만났을 때는 <어린이>는 ‘얼인이’ 일진대 학생들이 얼을 지키며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 나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일진대 만나야 안다, 믿어야 안다, 알아야 안다, 뭉쳐야 안다, 죽어야 안다, 이런 내용을 나무를 비유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이 각 만남에는 촛점과 목적이 있었고 한결같이 6.15살려 평화통일로 함께하여 민족을 살리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공소장에서는 극히 일부 분량만을 뽑아 침소붕대하거나 또는 왜곡하거나 아예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 것처럼 뒤집어씌우거나 천편일률적으로 환치하여 공소권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검찰에게 질문하고자 합니다. 이미 공개적으로 되어 있기에 공식적으로 묻는 것입니다. 모 신문에 저에 관한 기사가 났다고 알려주기에 보았더니 <무단 방북했던 한상렬씨 “북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 이런 제목으로 써 있더군요. 경찰과 정보원의 합동조사과정이나 검찰에서도 내내 묵비권을 행사 했는데 언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요? 없었나요? 공개적으로 명백히 답변해 주길 바랍니다. 저는 그 기사를 보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치 북녘은 살만한 곳이 못되는 양 은근히 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결 관념을 부추기는 이런 발상은 6.15 시대에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저 안에는 이미 남녘북녘이 따로 없습니다. 다 하나인 우리의 조국 우리의 강산 우리 동포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북녘에서 살수도 있고 남녘에서 살수도 있습니다. 6.15 시대의 진전에 파괴 남녘북녘이 하나 되어 자유로이 오가며 어디에서든지 살 수 있는 때가 어서 속히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이말을 조작 제공했는지 아니면 기자가 추측 조작했는지 그 진상이 무엇인가 밝혀주기 바랍니다.

10) 8월 18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저는  인생의 3가지 질문 즉 당신에게 가장 귀중한 시간은 언제 입니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 입니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부터 함께 나누었습니다.
남녘의 기자회견과는 퍽 다른 양식으로 제가 하고픈 이야기를 마음껏 시간 구애 없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동안 경험했던 하나님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이웃 사람과의 관계, 이웃 자연과의 관계를 토론했습니다.
이대통령에게 7가지 공개 질문도 했지요

① 김대중 자서전에 보면 대통령 특보시절 김전 대통령을 찾아가 햇볕정책에 공감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거짓인가?
② 전식 작전 통제권을 연기 한 것이 과연 주권국의 위상과 이익에 맞는 일인가?
③ 한미 군사훈련은 방어적 훈련인가 전쟁을 부추기는 성격의 실전인가?
④ 그동안 북녘 동포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리 하려는가?
⑤ 여전히 흡수 통일을 하려고 하는 것 아니가?
⑥ 인도적 지원은 언제까지 묶어 두려는 것인가?
⑦ 금강산 관광 사업을 무조건 재개할 의향이 없는지?

그동안 몇 가지 답변은 간접적으로나마 들은 셈입니다. 그러나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해외동포, 남녘동포 들에게도 한 말씀 드렸습니다.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지요

양각도국제호텔에 있는 동안 대동강건너편에서 밤새도록 일하는 소리가 끊기질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평양에 지금 10만세대건설운동이 한창인데 그 현장의 소리였습니다.
 제가 처음 볼 때는 십몇층이었는데 요즈음보니 이제 28층까지 다 짓고 그 윗층을 마무리하고 있더군요.
길을 지나다보면 2개동 곳곳마다 군인기질, 군인본때, 결사관철 등등의 표어가 붙어있었습니다. 이 아파트를 군인들이 짓고 있었던것입니다.
 그동안에도 서해갑문이나 청년영웅도로나 북녘곳곳마다 군인들이 건설의 주역이였더군요.
 지금도 이 아파트짓기처럼 여기저기 많은 군인들이 건설사업에 투여되어있다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북녘의 군인은 방위뿐만아니라 건설노동자인셈입니다.
 남녘군인의 성격과는 많이 다름을 느꼈습니다. 아파트건설에 땀흘리는 군인들을 직접 목격하며 《선군》의 의미가 호전적인것이 아닌 평화적인것으로 깊이 다가왔습니다.
 북녘조국, 북녘동포들이 평화를 사랑하며 진정 평화를 원할수밖에 없음이 실제적으로 느껴져왔습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쟁당사자들 양쪽이 다 극심한 피해를 입을것이 뻔한데 이렇게 애써 건설되었던 모든것들이 파괴되는걸 그 누가 원한단말입니까…
 호전적이라고 오해를 받고있거니와 사실상 역설적으로 분쟁과 전쟁을 가장 싫어하는곳이 북녘조국임을 느꼈습니다.
 저는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고백하는 목사입니다.
 하나님앞에 북녘의 진실이 무엇인지 계속 찾고 질문할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관점이 있었다면 반성할것입니다.
 지금도 저로서 잘 이해가 안되고 더 깊이 알아볼 일들이 눈에 띕니다.
 어찌 잠깐 보고 북녘사회를 다 알았다 할수 있겠습니까만 현재의 상황을 직접 느낀걸 말씀드리고있습니다.


북녘 조국의 현실을 보고 들은바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 주체사상이나 선군정치 찬양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저는 친남 친북 연남 연북으로 뜨겁게 연애하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친북’은 맹목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있더라도 북녘을 깊이 이해하고 동포애로 함께 이내하며 나감으로써 친해지는 그런 ‘친북’입니다. 북녘 사회와 남녘사회의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장점은 서로 격려하고 장점은 서로 신뢰 가운데 극복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저는 북녘에서 우리말 사용을 더욱 잘하고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순례기간 동안 동무 등등 북녘 동포들이 일상적으로 잘 쓰는 언어를 함께 쓰며 친해지고자 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깨깨 풀리면 좋겠어요.” ‘깨깨’라는 말이 ‘말끔히’, ‘완전무결하게’ 그런 뜻이더군요. 참 좋은 말로 생각 됩니다.
과연 저는 고무찬양을 많이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의 초점은 6.15시대에 부합한 상호 인정과 존중하에 화해 화목하자는 "친북“ 이요 고무 찬양 인것입니다.
공소장처럼 ‘적화통일’을 인식하거나 역으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공소장 마지막 ‘라’ 항에 보면 “피고인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북한 지역으로부터 국내에 잠입하였다” 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는 건가요? ‘잠입이라 하면 몰래 들어온다는 뜻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공개적으로 8월 20일 판문점 통과를 예고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시간대인 오후 3시경 사랑하는 북녘 조국에서 사랑하는 남녘 조국으로 우리 땅에서 우리 땅으로 당당하게 걸오 온 것입니다. 그날 심정을 담아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저는 ‘북녘 조국 순례’의 총체적인 소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70일간 저는 북녘 조국 곳곳마다 다니며 북녘 동포들을 참 많이도 만났습니다. 동포들의 뜨거운 눈물을 보았습니다. 저로 인해 크게 위로 와 격려를 받는 듯 했습니다.
“6.15가 실종되는 줄 알았더니 한 목사님 오시니 숨통이 트인다“ 는 이야기들이 빈말이 아닌 듯싶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절절한 눈빛을 보았습니다.
저는 정성어린 환대를 받았습니다.


순박동네 다정동무들

우리민족 참해방은 통일이 아니던가
5.18을 거꾸로하면 8.15라 외쳐왔지

5.18의 아픔 중에 참8.15 꿈을 꾸며
8.15 분단절에 3.8선 분단선을
우리네땅 길을따라 뚫고전진 하고파서
사랑하는 북녘동포 더욱깊이 만나고파
사랑하는 북녘조국 더욱 잘 알고파서
8.15 바로그날 남녘가면 좋겠다했지!

6.12부터 8.20까지 70일간 하루하루
과분접대 지극정성 진솔하게 최선다한
북녘동포에 고마웁고 염치없어 한마디말
“‘오시니 반가워요’ 이렇게 맞이하고
‘가시니 더 반가워요’ 이런 심정이겠지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금새눈물 글썽이는
순박동네 북녘동포에 농담도 못하겠네
이내맘에 다정동무들 내어찌 잊으리오!


차를 타고 여기 저기 다닐때라도 끊임없이 손 흔들기로 북녘동포들과 교통하였습니다.


손들어 손 흔드네
손들어    손 흔드네  손 흔드네  또 흔드네
눈빛서로  스치면서   말없는 맘  오고가네
손들어    손 흔드네  또 흔드네  손 흔드네
팔이 저려 아파오네   아픔마저   사라졌네
손들어    손 흔드네  한번든     손 안내리네
모습서로  멀어져서   보이지     아니해도
손흔들때  통일바람   한몸바람   일어나며
미풍이    태풍되어   통일세상   몰려오니
우리 어찌 손흔들기   멈출수가   있을건가


결국 만나야 합니다. 만남에 길이 있습니다. 만남의 소중함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왔습니다. 자주 만남으로 오해와 불신과 긴장이 해소되고 이해와 신뢰와 평화관계가 이루어져 갈 수 있습니다. 이해와 신뢴 관계가 형성되면 수용과 경청과 변화가 생깁니다. 또한 수용과 경청과 변화가 일어날수록 이해와 신뢰가 더욱 깊어져 역사의 진보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지난날 ‘6자회담’ 논의가 막 시작 될 때 였습니다. 처음에 북에서는 미제의 술수나 농간으로 치부하고 거부 하였습니다. 그 무렵 마침 6.15 공동 행사 준비차 금강산에서 북녘 대표들을 만났을 때 저는 용기를 내어 6자 회담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좋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뜻밖의 소리를 들은 듯 놀라더니 나중엔 평양에 돌아가 깊이 상의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그 뒤에 6자회담이 성사되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물론 북녘의 치밀한 검토를 거친 외교적 과정 이었겠지만 신뢰가 통한다면 민간차원의 간접적인 역할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여러 가지 좋은 방향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6.15당시 남녘 동포로서는 유일하게 제가 북녘 조국에 있었다는 그자체가 이미 남북 통로가 이어진 셈이고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남북 관계에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더욱 절실히 느껴진 적은 남북 우리 민족의 역사의 뿌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남북 각 역사는 그 평가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견해가 크게 다름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8.15 이전엔 남녘 조국 북녘조국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한 뿌리였습니다. 함께 우리 민족역사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는 일 시급합니다. 남녘역사 북녘역사가 따로 없기에
애국애족애민열사 항일 열사로부터 함께 공유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무명열사 《진달래》

5.18  열사무덤  한분한분  기도하다
발걸음  멈춰지는곳  무명열사  묘앞이라!
오늘여기  항일열사  발자취를  더듬으며
이름도없이  빛도없이  민족제단  몸바치신
애국애족  선열님앞  무릎끓고  절드린다!
진달래  꽃잎처럼  붉은피  뿌린님은
참진자  진달래라  참인생에  도달하셨으니
무명열사  이름드려  《진달래》라  하리라
남북열사  따로없다  열사가  참역사니
참진달라!  진달래는  열사님께  진심으로
《절받으세요》  《저를 받으세요》  온전히  다드리며
진짜진짜  우리민족끼리  통일평화  이루자!


역사의 뿌리를 찾아 하나임을 확인하며 결국 6.15를 살려야 합니다.
6.15 가 열쇠입니다. 6.15가 평화요 통일입니다. 6.15살림이 애국이요 6.15 죽임이 매국입니다. 다시 6.15로 돌아와 6.15 - 10.4의 맥을 이어 제 3의 선언이 나오길 고대합니다. 나아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외세 공조보다 우리 민족 공조가 우선이요, 외세 공조를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외세 협조 차원 이어야 합니다. 남녘이 너무나 미국에 접근 하는것이 문제인것 처럼 북녘이 중국에 너무나 밀착되고 있음도 참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강대국에 기대어 좋을 일이 없습니다. 6.15 공동 선언대로 우리 민족 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 경제, 통일사회의 활로를 찾아가야 합니다. 결국 우리 민족내 일본, 우리 민족내 미국, 우리 민족내 중국 이런 정상적인 구도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북녘 조국 순례 70일간은 저의 생애 최고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날마다 체험하였습니다.
‘나의 나’ 됨을 충만 하였습니다.


축하하라!
한; 한상렬이  죽었다는  소식아직  못들었나
상; 상을당해  사라지니  슬퍼할까  기뻐할까
렬; 렬렬히  축하하라  나 없어져  나된나를!


‘분단병’ 치유가 은총으로 온전히 이루어 졌음을 확증 받았습니다.
‘꿈구는자’ 되기를 그토록 원했는데 비로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성군민과의 만남에서의 연설등 북녘 동포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8월 18일 내외신 기자회견 때에도 저는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꼭 함께 나누고 싶기에 다시 써 봅니다.


 내외신기자여러분!
 이제 저는 해외, 남녘, 북녘 모든 동포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용서를 구합니다.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중에서 또는 저를 아시는모든 분들중에서라도 저의 이번 이 일이 이해가 잘 안될수 있다면 저의 부족한 탓이니 널리 양찰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로 인해 비본질적이고 감정적인 갈등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부족하지만 저의 진정성을 함께 깊이 나눌 때가 오길 바랍니다.
 저를 아시는 분이나 모르시는 분이나 모든 분들에게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 한겨레 모든 동포여러분과 함께 꿈꾸길 원합니다.

꿈꾸는자

꿈꾸는자 위대한 동경과 약속에 사는 자
그 이름은 (      ) 이다
티끝속에 묻히면서도
새하늘과 새땅의 약속에 기뻐하며
병과 죽음에 시달리면서도
영광의 몸을 덧입는
희망에 사는자
그 불굴의 젊은 꿈이
이 강산에 타올라야 한다
 
 (    )안에 저도 여러분도 우리모두가 함께 들어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역사열사의 꿈이요, 바로 여러분의 꿈입니다.
 6.15합합합운동이 3.1만세운동처럼 이강산에 불타오르는 꿈입니다.
 정반합을 역사발전법칙이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6.15법칙은 합합합입니다.
 물이 합치고 합쳐지여 시내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다에 이르듯이 오직 합하여 나아가는것입니다.
 가위바위보(돌가보)놀이가 있습니다. 《가위》는 《바위》에겐 지고 《보》에겐 이깁니다.
 《바위》는 《보》에겐 지고 《가위》에겐 이깁니다. 《보》는 《가위》에겐 지고 《바위》에겐 이깁니다.
 이기고 지는 세계가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이기고 지고가 없는 세계도 있습니다.
 《가위》도 가만히 보면 손바닥한뿌리에서 나왔습니다. 《바위》도 뭉쳐서 하나임을 말해주고있습니다.
 《보자기》는 모든걸 감싸주고 안아주어 하나가 되게 합니다.
 가위바위보가 다 함께 한몸 하나임을 노래하는 세계를 우리는 지향합니다.
 6.15합합합정신이야말로 분단상처를 씻고 하나되게 하는 역사를 안아옵니다.
 3.1만세운동때처럼 온 고을 방방곡곡, 온 겨레가 사상과 이념, 각계각층, 남녀노소 모든 다양성을 넘어서서 애국애족의 한마음으로 통일과 평화를 지향하는 6.15합합합운동이 일어나길 꿈꿉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역사열사의 꿈이요, 바로 여러분의 꿈입니다.
 북녘의 강성대국과 남녘의 풍성대국이 하나이 되여 강성하고 풍성한 우리 민족이 되는 꿈입니다.
 다양성과 일치성이 보장되고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입니다.
 다양성과 일치성을 다 함께 가지면서도 북녘은 일치성이 좀 더 강조되고 남녘은 다양성이 좀 더 강조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북녘은 일치성에서 다양성으로, 남녘은 다양성에서 일치성으로 한걸음씩 진보하여 만나면 더욱 아름답고 민족의 역사가 일어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이상 남녘조국, 북녘조국이라는 말도, 북녘동포, 남녘동포라는 말도 사라질때가 곧 와야 합니다. 기필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강성풍성대국이 되어 통일평화를 노래하는 꿈을 꿉시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역사열사의 꿈이요, 바로 여러분의 꿈입니다.
 우리 민족의 분단과 통일의 경험을 살려 세계인류를 《한몸평화》, 《통일평화》정신으로 안내하는 꿈입니다.
온 인류는 사랑, 자유, 정의, 평화, 통일, 자주, 민주세상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희망하고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 열매맺은 《한몸평화》, 《통일평화》정신이야말로 인류의 생명의 양식이 될수 있습니다.
온 인류가 이 양식을 함께 기뻐하며 맛있게 먹고 나누며 한몸이 되는 꿈입니다.
 저에게 작디작은 꿈 하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포여러분!
 여러분의 생일은 몇월몇일인가요?
 여러분에게 일년 365일중 가장 잊지 못할 날이 몇월몇일인가요?
 이제 우리 모두가 기억하면 좋은 날이 어느날인가라고 묻는다면 뭐라 답하시겠나요?…
 그런데 달력을 가만히 보면 몇월몇일은 무슨 달, 무슨 날이라고 정해진 날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음력 1월1일은 설명절, 음력 8월15일은 추석명절, 양력 3월8일은 국제부녀절(국제여성의 날) 등등… 많은데요.
이러면 어떨가요. 《하나되는 날》 하나 있으면 어떨까요.
 《하나되는 날》을 정한다면 몇월몇일이 좋을까요?
 나라와 민족, 체제와 제도, 이념이나 사상이나 종교, 각계각층 남녀노소, 온 인류, 온 생명이 함께 공유할수 있는 날이려면 보편타당한 보통날이 되여야겠지요?
 이날은 어떨까요?
 《1》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날, 하나되고 하나되고 하나되고 하나되는 날, 11월11일!
 11월11일을 하나의 날, 하나되는 날로 삼으면 어떨까요?
 하나가 될 때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11월11일 하나의 날은 하나되는 날이요, 한몸평화의 날입니다.
 이날에 자기자신과의 관계, 이웃사람과의 관계, 이웃자연과의 관계, 진리(신)와의 관계를 돌이켜보며 그동안에 소원했던 관계가 있었으면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용서하며 화해하고 소통하며 올바른 관계로 회복하는 날!
 막혔던 담은 허물어버리고 맺혔던 한은 풀어버리고 진정 하나되길 기원하는 날!
 이 하루만이라도 하나되는 날의 뜻을 새기고 실천하며 나아가 일년 365일 한날한날 모든 날이 다 하나의 날, 하나되는 날, 한몸평화의 날이 되여 한몸평화만세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퍼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해외, 남녘, 북녘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세계인류에게 11월11일을 《하나의 날》로 삼자고 제안하며 온 인류, 온 생명이 다 함께 지키는 날이 되도록 했으면 합니다.
 우리 땅, 우리 겨레의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의 꿈의 경험속에서 온 세계, 온 인류를 향한 꿈 하나 일어나길 바라는것입니다.
 나아가 11월11일중에서도 11시11분에 한점찍고 같은 시각에 어디에서나 있는 현장에서 함께 한몸평화를 기원하면 좋겠지요.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원을 하고 삽니다.
 부모가 자녀 잘되길 간절히 바라는것이 기원이요, 우리의 소원 통일노래하며 통일을 소망하는것이 기원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해를 축하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축원기원합니다.
 이미 우리 민족 한몸이요, 나아가 온 인류, 온 생명이 한몸임을 깨달으며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기원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기원하는 내용은 기꺼이 자유로이 스스로가 알아서 할일이로되 다만 한점시각 11월11일 11시11분에 초점을 맞추어 기원하는것자체가 통일성을 찾는 귀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동포여러분!
 《11월11일 하나의 날  한몸평화 만세의 꿈》운동의 현장은 어디서나 꿈을 실현하는 바로 그곳입니다.
다만 지구땅 그 어디엔가 이 운동의 총본산지가 필요합니다.
 어디가 좋겠습니까?…
 금강산은 어떻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대로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하듯이 금강산이야말로 평화를 증거하는 산입니다.
 과연 금강산은 우리 민족이 이미 한몸임을 깨닫게 하는 한몸평화 산이요, 우리 조국이 하나임을 확인하는 통일평화산입니다.
 금강산에 오는건 단순한 《관광》이라기보다 《통일념원》의 순례길이라 볼수 있습니다.
 대결관념을 씻어내고 치유하는 금강산!
 세계적인 이 명산이야말로 가장 이 운동의 성격에 알맞는 한몸평화터입니다.
 금강산은 한몸평화를 기원하는 온 인류가 꼭 보고싶어하며 순례하는 거룩한 현장이 될것입니다. …
바로 이러한 꿈을 함께 나누고싶습니다.
 
 내외신기자여러분!
 이 작은 꿈에 함께 하시면 어떨까요 ?
 《11월11일 하나의 날 한몸평화 만세의 꿈》에 함께 하며 11월11일11시11분에 한몸평화만세를 기원하는 이 작은 평화운동에 동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몸평화 동산이라
억겁의    세월솜씨   기기묘묘   와우! 야하!
아름다운    보석같아   봄에는     금강산
신선이    즐겨찾아   여름에는   봉래산
붉은 단풍   열매가득   가을에는   풍악산
흰눈기암    괴석선명   겨울에는   개골산이라!
산이름    넷뿐인가   또 없을까  생각하네

일만이천    봉우리가   한몸임을   노래하며
백두한라    그 중간에  한점한몸   위치하고
남과 북    교류화해   통일평화   상징하며
온 인류가   한몸되어   순례하는   산이려니
그 이름    새로 하나  하나산이라 부르리라!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11월11일  하나의 날  한몸평화   만세의 꿈》
기원하며   만나는곳   바로 여기  삼일포니
한몸평화    동산이라   불러또한   좋으리라!


삼일포라  부르리라(三一)

옛날옛날  어느왕이  이곳경관  흠뻑취해
삼일간을  머물렀다고  삼일포라  하였다지
진정으로  미쳤다면  어디삼일  뿐이련가
석달삼년  삼십년을  여기있어  좋을시고!

정사는  어찌할까  물을필요  뭐가 있나
참된왕은  하늘땅사람  하나로(王)  꿰뚫는자
셋이하나  하나가셋  이치알면  다 된거지!

사람이면  그누구나  자주하는  왕이리니
삼일진실  깨달아서  진짜왕이  되고싶어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11월11일  하나의날   한몸평화  만세의꿈》
기원하며  인류순례  거룩한터  될지어니
날일자를  하나일자로  삼일포라  부르리라!

지금여기  감동오직  한마디로  와우!야하!
와우!섬도  야하!섬이라  고쳐불러도  좋으리라!


‘한몸평화 만세의 꿈; 을 확증하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돌멩이 하나를 주셨습니다. 금강산에서 저는 밤잠을 못 이루며 눈물로 기도 했습니다. 다시 금강산 길이 열리며 6.15 시대의 진보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삼일포를 순례 할 때 호숫가에서 무심코 돌 하나를 주웠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이 들어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저는 모두 진술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이번 북녘 순례가 오직 6.15 살리기에 초점이 있었기에 저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저의 연설이나 발언 내용을 공개 하였고 남녘에 보내 달라 하였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수고스럽더라도 그 모든 내용을 꼭 다 면밀히 읽어 주시고 저의 진서성과 초점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10여 차례 불구속 재판을 받아왔고 구속재판으로는 네 번째입니다.
5.18때 폭력을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도 폭도라 불리던 제가 지금은 5.18 유공자입니다. 1991년 구속 사건은 민주화 운동으로 공인되었습니다.
2008년 ‘촛불’ 사건은 계류 중이나 이미 위헌 판결이 있었기에 잘되리라 봅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라 하리라’ 이런 표현이 있는 줄 압니다. 저는 ‘역사가 나를 이미 무죄라 하였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 질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기는 미래형이 아니라 지금 여기 존경하는 재판부의 현명한 결정으로 현재형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하루인생’으로  하루를 천번 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생활하며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자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저와 지금여기 함께하신 모든 분들이 ‘나된나’가 되어 이렇게 노래 할 수 있기를 희원 합니다.
나는 나다 - 나는 야하!다 - 나는 한몸이다 - 나는 통일이다 - 나는 평화다!
저의 가난한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진실로!


“ 그러나 내가 나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 15:10)

[자료제공-한국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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