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반 동안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귀 막고 눈 가리고 제 갈 길만 향해 달려가던 이명박 정부가 지난 6.2 지방선거를 통해 민심의 철퇴를 맞았다. 4대강 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몇 달 동안 북풍몰이를 해오던 천안함 사태까지 모두 민심은 거절한 것이다. 반만년 아니 그보다도 더 기나긴 세월을 강은 흐르고 싶은 대로 흘렀고 우리 조상들은 조화롭게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그 강을 제 멋대로 다 뒤집어 엎겠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불행하게도 동족끼리 총질을 해대던 슬픈 역사가 있고 아직까지도 전쟁상태가 종료되지 않은 정전상태라지만, 이제 두 세대가 지나가니 그런대로 왕래도 하면서 적당히 웃으면서 전쟁 걱정 없이 사이좋게, 오히려 어려운 동포를 위해 구호물자를 지속적으로 보내기까지 하면서 잘 지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남북이 모두 전쟁이란 단어를 너무나도 쉽게 입에 올리면서 으르렁대고 국민과 인민들 모두 ‘이러다가 정말 전쟁 나는거 아닌가’ 하면서 마음 졸이는 신세가 돼버렸다. 왕래는 끊기고 배는 가라앉고 대화단절은 선언되고 유엔 안보리에다가 한 쪽을 죽여 달라고 고자질하는 형국이다. 이러니 제 정신 박힌 국민이라면 이명박 정권을 용납하겠는가!
한국정부는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6월 4일 조선(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누가 내 이름을 제 마음대로 바꾸어서 부른다면 기분이 좋겠는가!) 제재 건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민심이 드러났으니 이명박 정권이 좀 자제를 하고 남북관계의 복원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 천안함 사고조사에 대한 한국의 발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폭스TV나 월스트리트저널, 산케이신문 등 보수적인 언론들은 모우 입을 맞춰 조선을 성토하고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그런 것을 사고조사라고 내놓은 한국을 아주 우스운 나라로 보는 관점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긴 그것도 사고조사라고 했는가!
반공체제에서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을 보내고 이제 40대를 맞은 나도 전적으로 동의가 가지 않을 만큼 허술한 조사보고였다. 대학원 공부까지 마친 한 명의 지성인으로써 그 보고에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고 부끄러웠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설명해 내는 것도 없었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일 수도 있다’는 식이 거의 대부분이 추측이었다. 음각으로 파인 글씨도 아니고 누가 쓴 것인지도 모르는 유성펜으로 쓴 ‘1번’ 글씨를 놓고 이것이 북한의 글씨체라고 주장하는데 그걸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검열단(조선은 조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검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단다)을 파견하겠다는 조선의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하고 이례적으로 열린 조선당국의 기자회견을 놓고도 거짓말이라고 손가락질만 하고 있으니, 무슨 동네 애들이 싸움을 해도 그것보다는 덜 유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정부의 유엔안보리 회부이다. 이건 조선을 왕따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왕따 문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하긴 정부가 나서서 이런 일을 벌이니 그 국민들이야 오죽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현실적으로 세계의 주도권을 쥔 강대국들에게 조선의 소행을 알려서 본때를 보여주자는 얘기인데 다행히 미국과 제1세계권이 절대적으로 동조하는 것 같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 모두가 합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한쪽을 왕따시켜버리겠다는 발상이야말로 폭력이고 폭거이다.
개구리에게 돌을 던져서 재수 없게 한 개구리가 맞아 죽었다. 던진 사람은 재미로 던졌겠지만 맞은 죽은 개구리는 생명을 잃은 것이다. 만약 안보리에 상정하여 기적적으로 통과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훗날 정보가 공개되고 사고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지고 나서 보니 조선의 소행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난다면 그동안 안보리 재제로 인해 고통을 당했던 조선인민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KAL기 폭파사건을 통해 그런 역사의 실수(?)를 목도했다. 이 사건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본다면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설명해내지 못하는 점에서 천안함과 매우 유사하다.
한국의 정치인들과 검찰이 잘 쓰는 수법 중 하나가 ‘~카더라, 아니면 말고’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에 몰아넣을 정도로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보도 명쾌하게 공개하지 않고 설명도 어리숙하고 증거라고 내놓은 것들도 반쪽짜리이지만 언론플레이만은 확실해서 죄 없는 사람도 죄인으로 둔갑이 되고 낙인이 찍혀버린다.
천안함 관련 조사보고도 이 공식을 답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여 제재가 결정된다면 그것을 요구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이나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 나라의 정부나 지도자가 미운 것이야 이해가 가지만 그 국민 모두를 심각한 고통 속에 밀어 넣는 선택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설명도 제대로 붙이지 못한 어정쩡한 몇 개의 증거물들로 한 나라를 제재하려는 발상은 위험하다. 그만큼 안보리의 위치가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안보리는 한 나라를 죽이고 살리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흥왕하게 하서나 쇠퇴하게 할 능력이 있다. 그런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라로 보면 한 나라이지만 그 나라에 몸 붙여 사는 사람은 수천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원성은 반드시 복수의 칼날이 되어 돌아와 피를 뿌리게 돼있다.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국제적 제재에 익숙한 나라 중 하나이다. 그들의 말처럼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라도 제재로부터 자유로웠던 날은 없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제재를 국제사회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지난 10년 동안 가졌던 한국과의 밀월 때문이었는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야 태생이 그렇다 쳐도 안보리는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안보리는 국가들이 합의해서 말 그대로 국제적 안전을 보장하라고 권력을 준 것이지 깡패짓이나 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깡패짓이 아니려면 반드시 상식적인 조사와 재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피고조차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증거와 논리를 갖추어야만 그 권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무책임한 깡패짓은 결국 유엔이라는 최소한의 국제적 연대 합의마저 파탄낼 우려가 있음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가 국내에서조차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는 상태에서 국제문제로 비화되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우리 자신이 우습게 되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안보리는 추호라도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수천만의 인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참으로 난감하다. 전쟁이나 도발 걱정 없는 하늘 아래에서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