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1.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고난주간으로 지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 고난과 죽음, 부활의 과정에 믿음으로 경건하게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는 성금요일(19일)에는 한 끼 이상 금식하시고 이웃을 위한 겨자씨 헌금으로 봉헌해 주십시오. 다음주일은 부활주일로 예배하겠습니다.
2. 오늘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일 오후에는 각 위원회 회의를 해주십시오.
3. 이번주 수요성서대학은 [예수 성경 동성애]의 5장으로 독서 토론하겠습니다. 책을 읽고 준비해 오시기 바랍니다.
4. 내일(15일) 안주영 성도 가정이 구로구 항동 새 보금자리로 이사합니다. 임수현 전도사님의 출산일이 다가옵니다.기도 부탁드립니다.
5. 서울연회가 23(화)~24일(수)에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립니다. 우리교회 연회대표는 목사 네 분과 평신도 대표 임정희 집사님입니다.
6. 친교문화위원회에서 올해 봄 야외예배를 27(토)~28일(주일)에 진행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일정을 확인해 주십시오.
[4월 생일 축하] 남규현 어린이(12일), 박성중 목사님(18일), 정지수 집사님, 임정희 집사님(21일), 한효균 부장님(26일/음3.22)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이 시대, 고난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느덧 고난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고난주간이다 보니 그냥 '때가 됐구나' 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반성적으로 생각해봅니다. 부활주일이 교회의 가장 큰 축일인데 고난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축제인 것입니다. 고난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무엇일까요? 감사하게도 우리는 종교 문제로 억압과 핍박을 받지는 않습니다. 고난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부활주일도 종교행사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회에는 고난과 아픔을 당하는 수많은 이웃들이 오늘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단순하게 종교라는 틀 안에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사는 세상 모든 곳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고난의 의미는 아프고 슬퍼하는 이웃과의 연대,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눈물을 씻어주는 작은 실천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즐거움들과 여가, 흥미에 몰두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패가 붙어있고 고난이 없으면 부활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웃의 고난을 외면하면 결국 그 고난이 우리 자신에게까지 닥친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4월! 제암리 학살, 제주 4.3사건, 4.19 혁명, 4.16 세월호 사고, 인혁당 사건, 성소수자 육우당 사망 등 억울하고 아픈 사건 사고로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을 기억하고 공감하며 함께하는 것으로 고난주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비록 작더라도 공감과 연대는 우리를 참된 고난의 과정을 겪은 부활의 기쁨으로 안내해줄 줄로 믿습니다.
“올봄 야외예배는 삼봉산 자연휴양림에서!”
3월 마지막 주일 오후에 친교문화위원이신 박순용 집사님이 올봄 야외예배를 자영휴양림에서 1박2일로 보내자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원래 계획된 5월은 아무래도 상춘객(賞春客)들이 많아 복잡하니 조금 한가할 때 야외예배를 가자는 생각이십니다. 다들 좋게 여기셔서 그 자리에서 휴양림을 몇 군데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평창의 두타산 휴양림이 좋겠다고 하고 예약을 하였는데... 아뿔사!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아 결제를 하지 못하여 예약이 취소되었고 남은 숙박시설이 없다는 것을 지난주에 발견하였습니다. 서둘러 다시 알아본 결과 홍천군 내면의 삼봉산 휴양림에 12인실과 4인실 두 채가 남아있어 그곳에 예약을 하고 결제까지 마쳤습니다.
삼봉산은 오대산국립공원 인근의 천연림으로 아름드리 전나무, 분비나무, 주목 등의 침엽수와 박달나무 등 활엽수가 조화를 이룬 울창한 산입니다.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도 하는, 한국 명수 100선에 선정된 삼봉약수를 마시고 가칠봉 정상에 올라 오대산과 설악산의 경관을 감상하는 왕복 5킬로미터의 등산 코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오대산 월정사를 둘러보고 오는 것도 좋겠구요.
아무쪼록 교우 여러분들의 개인 일정을 미리미리 조정하셔서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원도 산불이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4일 저녁 일곱시 경, 강원도 고성군 한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 시내와 인근 산지로 번져 엄청난 피해가 났습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 산불로 사망과 부상 각 1명, 이재민 829명, 산림 530ha와 주택 478채가 불탔고, 창고, 비닐하우스, 농업시설, 상가와 숙박 등 근린생활시설, 공공시설 등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한우 13두를 포함 수만 마리의 가축도 화마에 희생되었는데,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2017년, 지역 구분 없이 대형 산불에 대응하도록 소방청 조직이 개편되어 전국에서 820대의 소방차가 현장에 동원되었고 군대도 합세해 조기에 진압할 수 있었으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번 화재로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시키라는 국민적 청원운동이 시작되었고 열악한 장비로 최전선에서 화마와 싸운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10개월짜리 비정규직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또 산불 발생 당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이석 요청을 묵살하고 국회에 묶어둔 자유한국당이 산불을 정쟁에 이용하는 것을 두고 국민적 비판이 높아졌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거대한 재난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되새깁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재난 가운데에서 구해주시고, 상처 입은 이재민의 육신과 마음, 그을린 땅을 치유해 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화마에 맞선 소방관, 특수진화대, 이웃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고통을 정쟁에 이용하는 삯꾼 정치인들이 쫓겨나게 하십시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마태복음?10:26-31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마태복음 10:26-31(새번역)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 번에 걸쳐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예수공동체는 여러 가지 위협 속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 일행이 가는 곳곳 마다, 치유와 기적 사건이 벌어지고,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과정을 당시의 기존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당국이 가만 두고 보고만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온갖 비방과 협박으로 예수 공동체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의 선한 뜻이 바리새파에 의해 왜곡되고, 저잣거리에 자신들을 향한 온갖 비방과 유언비어가 넘쳐나는 분위기 속에서 한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내 단념하고 두려움 속에서 마음이 움츠러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진실’에 대해 이야기 하십니다. 이는 제자들과 거짓을 일삼는 무리를 향해 동시에 하신 말씀입니다.
‘진실은 절대 감추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 움츠러든 제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위로의 메세지입니다. 이는 온갖 비방과 유언비어 그리고 거짓선전이 난무하는 상황일지라도 결단코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세상 만방에 드러내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거짓을 일삼는 무리들에게는 도리어 경고의 메시지가 됩니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호도하고, 사실을 왜곡할지라도 결국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고, 거짓의 무리들의 거짓은 사람들에게 탄로가 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핵심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찮은 머리카락 갯수까지도 세심하게 알고 계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진실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마태복음 10:28
▷ 오늘의 기도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합니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의 진실은 차가운 바닷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습니다. 성서는 진실이 절대 감춰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현실은 거짓투성이 입니다.
하루 속히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나게 하소서. 참사 5주기를 맞이하여 세월은 속절 없이 흘러가지만, 진실의 길은 더욱 더 멀어보이기만 합니다. 하나님 이 땅에 진실을 보여주소서.
진실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세상에서 결국 부활의 소식을 전하며 스스로 진실이?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 성도가 공원 의자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무슨 책을 읽고 있어요?”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성경책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성경책이요? 무슨 내용이지요? 재미있어요?” 그는 성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재미있다며 다음에도 또 성경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 성도는 지나가던 사람과 성경읽기를 3개월 정도 했다.
이 성도는 이제 이 정도면 ‘전도’를 해도 될 것 같아서 예수를 믿어볼 생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성경의 내용이 참 좋군요. 그러나 내용이 좋은 책은 얼마든지 있어요. 나는 지금부터 성경을 믿는 당신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얼마나 사는지 세 달 동안 확인해 보고 그때 결정하겠습니다.” 그때 성도는 문득 깨달았다. “전도는 성경의 내용을 전하는 것보다 성경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로구나.”
몇 명을 교회로 데리고 왔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느냐 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을 향하여 ‘너무 배타적이다’ 혹은 ‘너무 경박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모습을 보여준 결과입니다. ‘너무 배타적이다’는 것은 유일신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너무 경박스럽다는 평가는 신앙의 양적 증가에만 매달리다 보니 더욱 중요한 신앙의 질적인 부분을 소홀히 한 결과 때문인 것입니다.
진정한 전도는 내가 믿는 성경대로 사는 삶입니다. 내 삶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걸어다니는 전도지이며 그리스도인의 대표선수입니다. 우리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과 삶을 지켜보면서 예수를 믿을까 말까를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말 보다는 삶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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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종말 I (6)
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 그리고 의의 최후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3. 몸의 부활과 영생 (3)
우리는...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 믿습니다.
웨슬리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자이신 대심판/최후의 심판에서 선고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악인은 영벌(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고, 의인들은 영생(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다. 생명도 형벌도 모두 영원한 것이다.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즐거움의 강물을 마실 것이다. 반대로 악인들, 즉 하나님을 외면한 모든 사람들은 지옥으로 간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나 영원한 형벌을 받고, 유황불이 붙어 있는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고 거기에서 그들은 아픔과 고뇌로 자기들의 혀를 깨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할 것이다. 이와 같이 웨슬리에 따르면, 영생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영적예배”라는 설교에서 영생의 시작은 우리가 성령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를 때라고 얘기한다.
이 영생은 아버지가 기쁘신 가운데 우리의 심열에 아버지의 아들을 계시할 때 시작됩니다. 그때란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를 알아, 성령에 의하여 그를 주라고 부르게 될 수 있을 때이며,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우리의 양심이 증거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때 행복, 즉 참되고 견고하며 본질적인 행복이 시작됩니다.
콜린스에 따르면, 웨슬리에게 있어서 영원한 세계는 죽음과 더불어 시작할 뿐만 아니라 신생에서 시작한다. 전술하였듯이 웨슬리의 구원론은 선행은총-칭의-신생-성화-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이어진다. 이 구원론의 단계에서 영생은 신생의 단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온전한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되는 최후의 심판 이후에 이루어진다. 사도신경에서도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감리회 신앙고백의 “몸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고백과 상응한다. 감리교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고 분명하게 고백한다.?
제17장
종말 II (1)
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 그리고 의의 최후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1. 의의 최후승리 (1)
우리는... 의의 최후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감리교는 의(義)의 최후승리를 고백한다. 이와 같은 고백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고백에 근거한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이사야 30:18)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신다.(이사야 5:16)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시며(시편 37:28),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고(시편 48:10),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신다.(예레미야 33:15) 반면에 인간은 의롭지 못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존재다.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로마서 8:33) 인간의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의가 최후에 승리할 것이라는 고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에 근거한다.(계속)
제3장 성경 해석의 획기적 진전
주류교회의 백인 남성들은 자신들의 편견을 '상식'으로 간주하였으나 미국 남북전쟁과 다윈의 진화론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다. 성경은 인류 진화의 경험이며 신조는 인간의 종교적 경험 표현이라는 현대주의자들이 등장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포함한 것이라는 근본주의자들과 첨예하게 대립하였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무오성, 예수의 처녀 탄생, 십자가의 대속, 육체의 부활, 기적의 능력의 다섯 조항을 안수를위한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교리로 규정하려 했으나 변화된 세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성경을 문화적 상황 속에서, 전체적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성경의 중심 주제는 구원과 봉사이고 그리스도가 삶과 사역의 해석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방법론은 인종차별, 여성의 역할, 이혼과 재혼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였고 엄격한 율법주의가 아니라 섬세하고 영적인 통찰로 접근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미국 장로교회는 1967년, "그분의 화해시키는 사랑 안에서, 그분은 형제들 간의 장벽을 극복하셨고, 실제이건 가상이건 인종간의 혹은 종족간의 차이에 기초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철폐하셨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인종적 차별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그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을 보살핀다."는 내용이 담긴 신앙고백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물론 평탄치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신앙고백적 수정을 통해 여성들이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장식적'인 존재라고 규정했던 여성의 지위는 1991년 '개혁주의 신앙의 짧은 선언'을 통해 남성과 동등하다고 선포되었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지칭할 때 여성적 언어로도 사용하여 놀라운 혁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성애 문제에 직면하여서는 많은 교회들이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으며 현상 유지를 위해 본능적으로 방어적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