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9.06.08 17:08

2019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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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주일 및 환경선교주일입니다. 항상 성령의 인도와 지도에 따라 동행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빌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아름답게 보존하는 일에도 많은 관심과 노력을 부탁합니다. 다음 주일은 청소년주일로 지키겠습니다.

2. 오늘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로 모입니다. 흩어지는 예배의 경험도 함께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3. 묵상기도회 후 안주영 성도님이 새로 이사하신 곳으로 심방을 가겠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동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넷째 주일(23일) 오후에는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좋은 영화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 6월 교회학교 모임은 3주(16일)와 5주(30일)에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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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규정과 기독교의 미래에 대한 단상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여 게임중독 부작용에 대한 효과적 치유와 체계적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정부 기관도 이에 발맞춰 규제를 고려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는 중독 기준이 모호하고 관련 산업에 큰 지장을 줄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이 연예계의 한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효자 산업인 것을 생각하면 업계의 반발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게임중독에 빠져 자녀 양육도 내팽개치고 게임에 몰두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하니 그냥 묵과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아들이 게임개발자가 되겠다고 특성화고에 진학해 다니고 있는 형편이다 보니 저 역시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미래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잠시도 손에서 떼지 않으니 중독 걱정에 단속하고 압수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라고 있으며 앞으로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세대도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때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텔레비전에 빠져 자랐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핸드폰, 게임, 컴퓨터 사용이 일상이 되어 중독이 아니라 디지털로 가득한 미래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기성세대가 발맞추기에는 속도가 너무 빨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의 가치관과 관습이 옳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정책이나 사회 기준을 규정하는 것이 기성세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미래에 아무 역할도 할 수 없고 아무도 찾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새로운 언어와 고백의 방식을 찾지 못한다면 교회의 미래도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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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학기 수요성서대학을 종강하였습니다.”

 

색다른 시도를 했던 올해 봄학기 수요성서대학을 지난 5월 29일에 종강하였습니다. 그동안은 강의식으로 성서대학을 진행하였었는데 이번 학기는 함께 20190529_150307_HDR.jpg [예수 성경 동성애](잭 로저스 저)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며 능동적인 참여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종강을 하며 미뤘던 야외수업 시간을 강화도에서 가졌습니다. 요즘 핫!하다는 씨싸이드 리조트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 멋진 경치도 보고 꼬불꼬불 내리막길에서 스릴만점 루지도 탔고 방직공장을 개조하여 카페로 운영하는 조양방직에도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시간은 강화관광플랫폼을 통해 전문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돌아본 역사탐방이었습니다. 플랫폼에 들러 강화도 역사 이야기를 듣고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해설사 선생님을 따라 걸으며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궐터 등 강화읍내의 사적지들을 돌아보고 재미있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또 전통한옥에서 친절한 선생님께 향기 좋은 차를 얻어 마시고 소창 체험을 한 것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날은 더웠지만 다들 즐겁게 참여하셨습니다.

수요일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점점 줄어 수요성서대학은 이번 학기로 마치고 주일오후 성서대학으로 변경하여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방학을 보내고 9월부터는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내용과 방식으로 다시 만나겠습니다. 한 학기 동안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기독교 목사의 탈을 쓰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민심을 미혹하는 전광훈이라는 자가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 대한 그의 망언으로 전체 개신교와 성도들이 큰 부끄러움을 당하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악한 극우주의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시고 회개하게 하여 주십시오.

 

 

(17) 학생인권조례

 

1

 

학생인권조례. 2010년 경기도 교육청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가, 2013년에는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공포하였습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는 그 목적을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정하고 있습니다. 학생 인권의 내용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교육에 관한 권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정보의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 등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4일 경상남도 교육청은 ‘인권 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경상남도 학생인권조례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논란에 대한 조항 수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쁜학생인권조례제정반대경남도민연합’과 같은 모임은 추진 중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하는 학생, 학생의 성관계 허용, 동성애 조장, 생활지도의 어려움, 교권 추락 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에 대한 생각,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2

 

학교에서 사용하는 인권교육 자료에는 “‘인권(human rights)’은 단순히 인간의 권리를 넘어 인간이 되기 위한 권리, 인간이 가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세계인권선언의 제1조가 뿌려졌습니다.

 

제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모든 인간이 자유로우며, 동등하다. 동의하니?”

신이 났습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단어가 있구나. ‘천부적으로 … 부여받았으며.’ 이 두 단어는 사실 한 단어란다. 영어 endow를 번역한 건데, 라틴어 ‘안으로’, in과 ‘부여附與함’, dotare가 어원이구나. 우리말 번역은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구체적으로 ‘천부적으로’를 넣기까지. 재미있지 않니? 우리 모두가 ‘천부적으로 인권을 부여받았다’, 하늘로부터 왔으니 하늘 이상이 아닌 다음에야 침해당할 수 없다! 참 좋구나.” 

정말 혼자 신이 났습니다.

“너희는 학생 인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네? 글쎄요.”

 

정말,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3

 

몇 가지만. 정말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추락했을까? 좀 사실을 들춰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교원총회가 만든 『2017년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교권침해 상담 사례 건수는 2006년 179건, 2015년 488건, 2016년 572건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조례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러한 원인을 교권 추락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교권침해의 구체적 원인을 부모, 처분권자, 교직원 등에 의한 것으로 분석합니다. 통계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제15조(차별받지 않을 권리) ① 학생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년, 나이,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종교,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학교,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의 소득수준, 가족의 형태 또는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질병 이력, 징계, 학교의 종류나 설립주체, 교육과정 선호도 또는 학업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

- 경상남도 학생인권조례안

 

여기서 정치하는 학생, 학생의 성관계 허용, 동성애 조장을 읽어내는 건 과도합니다.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차라리 그냥 싫다고 하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당장 저랑 상관도 없고,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행평가도 바쁜데.” 곤경에 빠졌습니다. 태어남의 잘못에 대한 문제입니다.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주체적 참여가 없었다는 태생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하고 만든 것도 아닌 학생인권의 필요성을 말하는 어른에 의해 주어진, 그래 처음부터 아이들의 관심 밖입니다.

또 한 아이는 학습화된 무기력감을 지적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계속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바뀌지 않아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학생인권조례를 자세히 읽어 보지 못한 그리고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지 못한 아이들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일부를 제외하고 그 길을 알려 주지도 지지하지도 않았습니다. 변화를 주저하며 질서가 유지되길 원합니다. 때로 아이들의 작은 요구 그리고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좌절되었고 자주 그래 왔습니다. 무기력함이 학습되었습니다.

 

4

 

학생인권, 과장된 해석, 이해하기 힘든 비판과 부정의 벽이 있습니다. 무관심과 무기력으로 물러서기에는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나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정해 주었을 뿐입니다. 무엇을 할 수 없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서로 잘 모르고 있습니다.

“프랑스 아나키스트(무강권주의자)가 우리에게 말하는구나.” 

 

진실한 것으로 느껴지는 무언가에 매달려라 거기부터가 시작이다

- 보이지 않는 위원회, 『반란의 조짐』 (여름언덕, 211), 97.

 

스마트폰을 꺼낸 아이가 칠판을 담더니 검색창에 ‘인권’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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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질긴 잡초’(Ironweed)에서  잭 니콜슨과 메릴 스트립이 길을 가다가 술에 취해 쓰러진 늙은 에스키모 여자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이 여자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니콜슨이 물었다. “술에 취했나, 아니면 부랑자인가?” 스트립이 대답했다. “부랑자예요. 평생 그렇게 살았죠.” 니콜슨이 다시 물었다. “그 전에는?” 스트립이 말했다. “알래스카 창녀였어요.” 니콜슨이 고개를 갸웃대며 물었다. “평생 창녀는 아니었겠지. 그 전에는?” 스트립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 한 부모의 어린 아이였겠죠.” 

니콜슨이 말했다. “그럼 됐어요. 부랑자도 아니고 창녀도 아니고, 어린 아이였다면. 우리가 집으로 데리고 갑시다.” 그리고 눈 밭에 너부러진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은혜의 렌즈로 그 여인을 보고 구해줍니다. 은혜의 렌즈로 보니 그의 모습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보인 것입니다. 이 땅에 어떤 사람도 버림받아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겉 모양은 세파에 망가졌다 할지라도 그 속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바라 보는 것을 은혜라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자비란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기를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처음 의도하시는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한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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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세존이 식사하실 때가 되어 옷을 입으시고 바리때를 드시고 사위대성에 들어가시어 빌어 잡숫는데 성 안에서 차례로 구걸을 마치시고 본디 계시는 곳으로 돌아오시어 음식을 드시고 옷과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닦으시고 자리를 펴시고 앉으셨다.

 

(爾時에 世尊이 食時가 되어 着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시어 乞食하시는데 於其城中에서 次第로 乞食하시고 還至處하시어 飯食訖하시고 收衣鉢하시고 洗足己하시고 敷座하시고 而坐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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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삼계三界(欲界·色界·無色界, 곧 중생이 사는 세계)의 지존至尊이시다. 그래서 세존世尊이라 부른다.

 

성인聖人은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라, 말없는 가르침을 베푼다고 했다. 때가 되어 옷을 갖추어 입고 그릇을 챙겨 들고 음식을 구걸하되 차례로(있어 보이는 집만 골라서 가지 않고) 빌어다가 본디 자리로 돌아와서 다 먹고는 설저리르 하고 옷을 벗어 놓고 발을 씻고 자리를 깔고 앉는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아 본연本然의 자리로 돌아왔다.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보려면 하루하루 앉고 서고 눕고 걷고 움직이고 가만 있음을 살피라 했거니와, 때가 되어 고요함을 깨고 일어나 잠시 움직임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때가 되어 움직임을 그치고 고요함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있거늘 이보다 자세하고 친절한 가르침이 어디 있으랴?

 

밥 먹을 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심은 무슨 일이든지 때를 당기지도 말고 미루지도 말라는 가르침이요, 옷을 입으심은 유화인욕柔和忍辱의 옷을 걸친 것이요(李文會), 바리때를 챙기심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용품을 잘 쓰라는 가르침이요, 금륜왕자金輪王子의 신분으로 손수 음식을 구걸하심은 중생을 교화敎化하여 교만을 버리게 하려는 것이요(僧 若訥), 한 끼니 먹을 만큼만 얻으심은 훗날 비구들로 하여금 재보財寶를 쌓아두지 못하게 하려 함이요(李文會), 차례로 집을 돌면서 구걸하심은 큰 자비는 평등이라 부잣집 가난한 집을 선택 아니하심이요(僧 若訥), 본디 자리로 돌아오심은 무슨 일이든지 제자리를 찾아서 하라는 가르침이요, 옷과 바리때를 거두심은 다 쓴 물건이라 하여 함부로 버리지 말고 잘 모시라는 가르침이요, 발을 닦으심은 신업身業(몸으로 지은 업)을 모두 닦아 냄이요(李文會), 자리를 펴고 앉으심은 모든 것이 공空임을 그렇게 보이신 것이다.

 

이토록 친절히 가르쳐 보이셨는데도 알아듣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을 대신하여 장로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여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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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성애 문제와 한국교회 |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2015년에는 성전환자 병역면제취소처분 효력정지 판결, 성소수자 관련 학교 교육 원천 차단, 대전시 성평등 관련조항 삭제 등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각종 보고서는 군대와 직장, 학교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자행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공안정국, 비정규직 등 노동자 탄압, 사회적 약자에 대한 희생 강요와 더불어 성소수자 반대 운동의 중심에는 개신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몇몇 단체와 교회가 주도하던 성소수자 반대 운동은 이제 교단이 나서 강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는 동성애가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와 연관돼 있으며 그 끝은 적화통일이기에 결국 성경과 기독교 신앙의 불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개신교단들은 동성애 합법화 반대를 결의하였고 특히 감리교회는 동성애를 부적절한 결혼 및 성관계, 음주, 흡연, 마약법위반, 도박과 함께 언급하며 동성애에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까지 치리할 수 있도록 교회법을 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흐름은 한국과는 다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21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고 일본의 일부 지역도 그렇습니다. 유엔 시민적정치적권리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한국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촉구하였습니다. 한국의 20대는 47.4%가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2014년) 하며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차별에 앞장 서 성소수자에 대해 노골적 집단 폭력을 가하는 개신교에 반감을 갖고, 특히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식민지배, 전쟁, 분단과 독재의 역사에서 침묵한 과거를 반성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기희생의 '환대와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의의 관점에서 성소수자도 응당 교회의 환대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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