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20.01.25 22:42

2020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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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역사'의 달]

역사란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입니다. 듣기만 해도 어깨가 으쓱할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지만 우리 잘못도 아닌데 낯 뜨거워지는 부끄러운 역사도 있습니다. 역사를 되돌아 보며 우리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1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주현 후 제3주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리는 주현절기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이 깊어지기를 빕니다.

2. 설 연휴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연휴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3. 다음주일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4. 공동식사로 섬겨 주실 일정을 적어주세요.

5. 기부금 영수증을 신청하신 분들은 꼭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필요하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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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한 가수의 삶이 준 감동

 

설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무심코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가 세 시간이 순(간)삭(제)되었습니다. 한 종편방송사에서 하는 잊힌 가수 소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가수에 관한 관심이 높아서 특별 다큐 프로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잠깐 본다는 것이 결국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두 편을 봤는데 아직 완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와 동갑내기인 가수의 이름은 양준일. 스물의 청년이 50이 돼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90년대 초반에 등장하여 몇 곡 히트했지만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진 가수입니다. '리베카'라는 노래로 등장했는데 옷차림이나 댄스, 노랫말이 너무! 과하게! 독특해서 저도 '뜬금없는 이 가수는 뭔가?'하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의 평은 '90년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 가수', '탑골공원의 지드래곤', '시간 여행자'랍니다.

20200126-003.jpg혼자 앉아 이 프로를 보면서 계속 눈물을 닦았습니다. 우선 이 가수가 당했던 당시의 편견과 오해, 미움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잘 못 하는 재미교포, 당시 남자들이 하지 않던 장신구, 모델이나 소화할 듯한 의상 등등.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는데 심사관에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너는 절대 비자를 받을 수 없다'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시대적 미움을 받았고 방송국에서도 푸대접을 넘어 출연정지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편견과 증오 속에서도 자기의 꿈을 잃지 않으려고 7년 후 다른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였습니다. 미움을 너무 받게 된 자기 이름 대신 V2(양준일의 두 번째 버전이라는 의미)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냈고 히트를 했지만 결국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영어 강사 등을 하며 전전하다가 그냥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참 안타까운 과거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 심금을 울린 것은 이 가수가 신세 한탄을 하고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을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겸손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고 합니다. 인기를 잃은 연예인이 우울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고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에 젖어 옛날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준일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하나하나 내려놓는 것을 배웠고 결국 20대의 꿈을 내려놓는 순간 진정한 꿈을 이루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가수 소환 프로그램 이후 30년 만에 난생처음 팬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공연 티켓이 3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오랜 팬들은 그의 출연에 환호와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연신 아무것도 아닌 자기를 이렇게 사랑해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고 팬들에게 먼저 다가갈 생각을 더 일찍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가수 양준일을 보면서 성서와 종교가 주는 감동 못지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증오와 절망보다는 겸손하게 현재를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 여전히 자기를 기다리고 기억해준 사람들에 대한 진솔한 감사, 받아들이기 어려운 삶의 현실 속에서도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은 성실성, 그리고 그를 잊지 않고 믿고 기다려준 팬들까지… 이런 사람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자문합니다. 나에게 이 가수보다 나은 점이 있는가? 우리의 신앙은 이런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우리 존재에 대한 질문을 품고 살고 있는가? 이 팬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감동이 싹 가시는 것 같습니다. 직업병입니다. 아무튼 가수 양준일과 그 팬들이 준 감동을 통해 삶과 신앙,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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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스젠더 군인 전역조치, 이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새로은 인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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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중 휴가를 내 외국에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돌아와 계속 군인으로 복무하고 싶다고 밝혔던 하사관이 결국 군 당국으로부터 심신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에 변희수 하사는 22일, 군인권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얼굴을 공개하고 '선천적 성별에 대한 불쾌감으로 인한 우울증세가 복무하는 동안에도 심각해져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성전환 이유를 밝히고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해 아직은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트렌스젠더의 군 복무는 많은 찬반 논쟁을 낳고 있으며 국제사회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진중권씨는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무성애자든, 트렌스젠더든, 그들이 어떤 성적 취향, 어떤 성적 정체성을 가졌든, 국가 공동체의 한 성원이 국가에 바치려는 충성은 장려되어야지 결코 금지되어선 안 됩니다'라고 SNS를 통해 의견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수천년 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과 탄압을 받던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지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일방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그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고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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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기선교(1)

 

“모든 완벽한 여행자는 항상 자신이 여행하는 나라를 창조하는 법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난 1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일정으로 인도네시아 바탐섬에 다녀왔다. 이번 여정은 선교사가 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감신대 선교훈련원(GMTC)을 수료하기 위한 코스웍이어서 일종의 단기선교 형식을 띄고 있었다. 앞으로 10년, 선교사로써의 삶을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겨우 열흘간의 단기선교가 뭐 대수일까 생각했지만, 역시 단기선교는 일정과 내용면에서 그리 만만치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단기선교의 경험과 기억들이 새록 새록하다. 특히 내 생애 첫 번째 해외 나들이 역시 단기선교로 시작했었다. 2003년 1월 군대에 갔다가 전역한지 얼마 안 된 신학생이 처음으로 당도한 바다 건너 이역만리의 땅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였다. 당시 내 눈에 비친 말레이시아는 밀레니엄 빌딩이라고 불리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우뚝 서있는 정말 발전된 나라였으며, 동시에 제대로 된 옷도 걸치지 않고 남루한 원두막 집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원주민들이 공존하는 이상한 나라였다. 특히 이상한 향신료 냄새와 두리안의 썩은내 때문에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곳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현지인의 피부를 장착한 선교사님이 그저 대단해 보일 뿐이었다. 당시의 단기선교는 그저 미리 준비한 말레이시아어로 된 찬양과 워쉽댄스를 선보이고, 피부색이 다른 그들과 악수를 하며 뭔가를 쉴세 없이 나눠주는 일을 반복했었는데, 중간 중간 교회를 다니지 않던 현지인들이 현장에서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을 했고, 우리들은 놀라워했는데 나중에 돌이켜 보니 뭔가 계획된 ‘퍼포먼스’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 단기선교는 그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중국 연변이었다. 선교단원이라기 보다는 신학생 스탭으로 카메라를 들고 함께 했었는데, 말레이시아와 필적할 만큼의 향신료 냄새는 여전했지만, 우리말과 글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특별했다. 당시 연변의 중요한 이슈는 북에서 넘어온 ‘꽃제비’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빈곤’에 대한 고민을 심도 깊게 해볼 수 있었고, 백두산을 다녀오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가 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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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의 ‘단기 선교’를 다녀오면서 ‘해외선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선입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들에게 억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전해야 하는가?’ 혈기왕성했던 20대 초중반의 신학생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당위는 그저 제국주의적인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만 들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복음전도라는 목적을 너무나 명확하게 부여하고선 그 과정은 간단한 노래 공연과 물품 나누기라는 단순하거나 유치한 작업의 반복이었는데 그 복음전도라는 단순한 맹목성 때문에 목적의 순수성도, 과정의 구체성도 의심이 되었다. 

 재작년부터 ‘평화선교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이러한 경험들이 바탕이 되었다. ‘목적’을 명확하게 하지 않기. 더불어 과정은 단순하거나 유치하게 하지 않게 하리라는 것이 나와 아내의 계획이 되었다. 과정은 조금 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사유과 영성적 묵상을 바탕으로 복잡하고, 세련되며, 구체적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그 목적은 ‘복음전도’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뜻에 따라 자유롭고, 넓은 범주를 향해 열어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좀 복잡하지만 ‘선교’라는 총체적인 신앙행위가 단순히 제국주의 언어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본래 뜻을 담기 위해서는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를 조금 더 날선 경계의 눈빛으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이것이 평화선교사로써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하며 그 동안 준비해 왔다고 생각된다. 

                  

 이번 인도네시아 바탐섬 단기선교를 통해 두 가지를 점검할 수 있었다. ‘선교’를 제대로 실현하고자 하는 현지 선교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 또 우리가 준비한 ‘평화선교’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다. 이번에 인도네시아 일정으로 이끌어주신 주성웅 선교사님은 말씀하셨다. 

‘단기선교’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이다. ‘선교’와 ‘단기’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고, ‘선교’에 관한 오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기사역’, ‘비전트립’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신다. 과연 25년 넘게 인도네시아 선교를 꾸준하게 이어오신 선교사님의 말은 열흘의 일정을 함께하면서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주선교사님이 가장 강조하신 말은 결국 ‘문화와 언어’였는데 말은 문화의 집이기 때문이고, 로고스는 결국 복음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이번 인도네시아 일정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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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모셔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기를, 이 경은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니 너희는 마땅히 이 이름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수보리여. 부처가 말한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爾時에 須菩提가 自佛言하기를, 世尊이시여 當何名此經이며 我等이 云何奉持리이까. 佛이 告須菩提하시기를 是經은 名爲金剛般若波羅蜜이니 以是名字로 汝黨奉持니라. 所以者何오. 須菩提여. 佛設般若波羅蜜이 卽非般若波羅蜜이요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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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수보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방법)에 대하여 부처님께 배울 만큼 배웠다.

 

"수보리는 이 가르침을 듣기 전에는 그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까닭에, 맨 먼저 마음 다스리는 법을 물었다. 그가 알고 그가 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바깥 대상뿐이어서 중생과 부처가 둘로 크게 나뉘고 오염과 청정이 둘로 대립하고 집착과 집착하지 않음이 서로 차이가 났다. 따라서 그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 다스리기 어려워 다만 갖가지 의아심으로 들끓었던 것이다.

먼저 중생 제도의 어려움을 의문으로 제기하자 부처님은 중생이 원래 공空하다고 말씀했다. 또 부처의 과보를 구하기 어렵다고 의심을 일으키자 부처님은 과보도 구하려 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다. 또한 보시를 널리 행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되는 물건 세 가지가 모두 공적空寂하다고 일러 주셨다. 이어서 불국토 장엄의 어려움을 제기하자 마음의 청정이 곧 장엄이라고 말씀했다.… 이렇게 일으키는 의심마다 부처님이 낱낱이 해소시키자 수보리는 기량이 다하여 온갖 의심이 얼음 녹듯 소진되었고 부처님의 마음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어느 하나라도 감춰진 게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들은 수보리의 마음은 편안해졌고 저절로 다스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김산 지음, <금강경풀이>, 오진탁 옮김)

 

수보리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은 대답이면서 길(徑)이다. 그것이 인간의 말(글)로 이루어진 길이기에 경經(책)이라고 부른다. 길은 그리로 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중생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경經 곧 길(徑)이 된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의 심오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그대로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들(我等)’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수보리가 경의 이름을 물은 것은 그것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알고자 해서였으리라. 무엇이 있으면 그것의 이름도 있는 게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러나 무엇의 이름이 곧 무엇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경經을 잘 받들어 모시는 길은, 책을 가슴에 안고 소중히 여기는 데 있지 않고 거기 적혀 있는 대로 살아가는 데 있다. 거기 적혀 있는 대로 살려면 먼저 거기 적혀 있는 내용을 틀림없는 것으로 믿어야 한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경의 이름을 밝혀 주신 것은 수보리로 하여금 당신의 가르침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앞에서 말한 바 있거니와 산스크리트어를 음역한 것이다. 뜻은 건너편 언덕에 이르게 하는 지혜다. 앞에 금강金剛을 붙인 것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서 모든 망념을 부수고 곧장 불보살佛菩薩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지혜라는 뜻이다.

 

“이는 지혜도피안智慧到彼岸을 설한 것이다. 진성眞性 가운데 어찌 무엇이 따로 있겠는가? 그래서 말하기를 이는 지혜도피안이 아니라고 했다. 실實은 없고 단지 그렇게 이름 지어 부른 것뿐이다. 그렇게 해야 중생의 귀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王日休)

 

실체는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억지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 까닭은 그렇게 해야 시·공의 제약 아래 살아가는 중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道를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하고는 곧이어 말해진 도는 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고는 곧이어 말해진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한다.

 

길을 떠나서는 길을 갈 수 없다. 그러나 길에 붙잡혀 있어도 길을 갈 수 없다. 경을 읽지 않고서는 가르침대로 살 수 없다. 그러나 경에 사로잡혀 있어도 가르침대로 살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내가 가르친 대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다. 

거듭 말하거니와, 길을 따라서 걷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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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꼭 움켜쥔 돈 10,000원을 들고서 동네 모퉁이에 있는 구멍 가게로 분유를 사러 갔다. 분유 한통을 계산대로 가져가니, 가게 주인은 16,000원이라고 했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엄마 뒤에서 가게 주인은 진열장에 올려 놓으려고 하던 분유통을 슬며시 떨어뜨렸다. 그리고 문을 나서는 아이 엄마를 불러 세우고, ‘찌그러진 분유는 반값’ 이라고 알려 주었다. 가게 주인은 아이 엄마가 내놓은 10,000원을 받고서 분유통과 함께 거스름 돈 2,000원을 건네주었다. 

아이 엄마는 감사한 마음으로 분유를 얻었고, 가게 주인은 8,000원에 행복을 얻었다.

 

아이 엄마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주인의 마음에서 작은 천국을 봅니다. 천국은 저 멀리 따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부자는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스스로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작은 천국에 사는 사람들에 속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배려라는 마음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배려는 사소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자리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배려는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일입니다. 내 관심보다 상대방의 관심에 마음을 쓰는 일입니다. 내가 앉을 자리를 찾기보다는 상대방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내에 놓는 일입니다. 논리로 설득하기보다는 감정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배려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은 예의를 지키는 일입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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