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20.02.01 23:30

2020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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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평등의 달]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이 선택되었다는 편견과 차별을 깨고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자녀로 용납되었음을 삶과 죽음을 통해 보여주셨지만 여전히 우리는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별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편견과 차별이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극복되기를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주현 후 제4주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리는 주현절기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이 깊어지기를 빕니다.

2.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3. 해외 여행 중인 교우들이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려가 큰 상황인데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입니다. 어디서나 위생과 방역에 만전을 기울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발열,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있으신 분은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1339로 연락하십시오.

5. 민지애 사모님이 조부상을 당하시고 어제 장례를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구합니다.

6. 셋째 주일(16일) 오후 2시 30분부터 은현교회에서 은평동지방회가 열립니다. 우리교회 지방회 대표는 목회자들과 박순용 집사님, 민지애 사모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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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깨어 있는 기도로 2월을 살아갑시다.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시간의 속도가 활 시위를 떠나 날아가는 쏜살 같습니다. 연말연시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더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는 교역자회의 와 신년하례회, 사경회도 했고 장로 과정교육도 있었습니다. 또 작은교회 담임자들이 감리사님 교회에 모여 구역회를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친 어깨를 회복하기 위한 수술을 했고 사랑하는 큰아들을 군대에 보냈으며 명절이라 처가와 본가에 다녀왔습니다. 교회적으로는 군산으로 겨울놀이를 다녀왔고 수술 받는 교우를 심방하였으며 교회 승합차가 리콜되어 수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2월도 그리 녹록치 않을 것 같습니다. 지방 장로 과정심사로 시작하는 2월에는 작은아들이 네델란드로 게임관련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일주일간 다녀오고 큰아들도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합니다. 17일부터 사흘동안 한국기독교연구소의 예수목회세미나가 '예수목회와 정치참여'라는 주제로 열리고 월말에는 감리교회 평화통일위원회에게 주최하는 '평화통일정책 수립을 위한 심포지엄'과 개혁적 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의 총회도 열립니다.

바쁜 일정만큼 삶에는 어떤 변화와 성장이 있었는지 되돌아봅니다. 성장보다는 일에 쫓기고 행사에 치이고 그냥 정신 없이 지낸 한 달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고요하게 침잠하며 명상하는 시간이 없는 우리 삶은 그저 거대한 사회의 한 톱니바퀴로 전락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잠자리에 누워 일기를 씁니다. 시대가 바뀌어 일기장에 쓰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 메모장에 씁니다. 문득 떠올랐던 생각과 느낌들을 되새기며 오롯이 내 자신과 대면해보곤 하는 시간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았던 오늘 하루를 심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바쁘게 살았다 해도 매 순간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이 없으면 그것은 온전한 자신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자기정체성을 갖고 호흡 한 번, 선택과 결정, 동작 하나하나를 모두 깨어 있는 상태로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습관과 지시에 따라 저절로 살아지는 생활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시고 또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가 바로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노력이고 투쟁일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20년 2월, 아직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간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교우 여러분들도 다 마찬가지로 바쁘시겠지만, 처음 살아보는 이 설레고 두려운 시간들을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며 노력하는 기도로 하나님 나라에 한 걸음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월도 힘냅시다!

 

교우들의 개인정보 보호에 조금 더 민감해야겠습니다.

 

며칠전 한 교우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주보에 실리는 것과 그 주보가 인터넷 SNS에 실리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해주셨습니다. 여기저기 소문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어떤 민감한 정보들이 과하게 오픈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 혹은 미묘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악의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우들 간에 보다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우려가 마땅히 진작에 고민했어야 하는 부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저의 일거수 일투족이 완전히 까발려지는 것에 대한 현실적 부담과 염려가 있음에도 다른 분들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고려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사과드리며 앞으로는 주보에 실을 때 좀 더 신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로의 이야기가 제3자의 글로 전달되는 것보다는 당사자의 말로 나누어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는 매월 한 번씩 생활을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이 있으니 이 시간을 잘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린 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교회가, 주보가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보다 섬세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신 교우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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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배려로 극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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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하여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의하여 중국에서는 170여명이 사망하였고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독일과 프랑스의 유럽과 캐나다와 미국의 북미까지 8천여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하였습니다.(1월 30일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위 확산을 두고 중국의 생화학무기 실험실에서 유출되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중국 당국의 강압적이고 폐쇄적인 대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시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국내로 운송하는 문제에도 이들을 격리하여 검사하게 될 지역의 반발이 극렬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중국인들의 한국 입국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50만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주는 공포심보다 그로 인해 생산되는 공포심과 혐오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배려하여 넉넉히 극복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공포보다 인간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더 큰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희망을 구합니다. 어려울수록 서로를 배려하고 용기를 북돋는 마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도와주십시오.

 

 

(29) 핀란드 종교교육을 듣다

 

1

 

2019년 12월 4일 교육부는 ‘OECD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 연구(PISA 2018) 결과 발표’, 조간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국제 학업성취도(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이하 ‘PISA’)는 만 15세 학생의 읽기, 수학, 과학 소양의 성취와 추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하고, 교육맥락변인과 성취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3년 주기로 시행되는 국제 비교 연구입니다. 그리고 핀란드입니다. 2019년 발표에서는 그 순위가 조금 떨어졌지만, 그간 PISA에서 3연속으로 종합평가 1위를 받았고, 학습 효율화 지수(학습시간에 따른 학습 결과)도 세계 1위였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우리와 다른 아니 거의 정반대의 교육 철학으로 순위를 만들어 낸다는 점입니다. 부연하면 핀란드의 교육 철학이 ‘협동’이라면 우리의 교육 철학은 ‘경쟁’입니다. 협동과 경쟁이라는 철학으로 높은 PISA의 성적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질문으로 핀란드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려고 합니다.

 

2

 

구체적인 방문 연수의 목적이 있습니다. ‘종교 교육’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 교육’은 다종교 상황과 입시 교육 속에서 일반적으로 거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강의석 사건이 말하듯 다종교 상황에서 그간의 특정 종교 중심 교육은 반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또한, 보다 근본적 문제로 우리나라의 입시 교육입니다. 종교 교육은 입시 교육에서 한참을 밀려난 과목 중 하나입니다. 수능을 보지 않는 과목이며 내신 평가가 없는 과목입니다. 한마디로 대학과 관계가 없는 과목입니다.

반면에 핀란드는 우리나라의 중학교까지 실시되고 있는 의무 교육 과정 모두에서 종교 교육을 편성하여 실시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 종교 수업을 편성하고 그 수업 시간까지 결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핀란드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가 종교 교육을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라 공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가 의문과 부러움, 배움의 지점입니다.

 

3

 

하지만 배움 이전에 우리 종교 수업 상황에 대한 진단이 먼저입니다. 정치나 문화와 마찬가지로 교육 역시도 구체적 상황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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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는, 다종교 상황 속 개신교 종교 교육의 내용입니다. 핀란드는 거칠게 그리스도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대다수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적 배경이 유교적인 것처럼 핀란드는 그리스도교가 그 배경을 이룹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종교 교육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이제 핀란드는 다종교 사회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종교 교육에 다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종교 교육의 필요성 측면에서 상황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개신교 종교 교육은 여전히 특정 종교 중심인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 교육의 목표는 대 사회적으로는 다종교 상황의 종교 교육을 말하지만 대 교회적으로는 설립 목적을 바탕한 선교 중심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내용 역시 선교 중심입니다. 이러한 종교 교육 내용을 고집하며, 핀란드 종교 교육을 적용하는 것은 근본적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역시 입시 중심의 교육 상황에 대한 이해입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 교육 가치가 ‘협동’인 핀란드와 ‘경쟁’인 우리나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말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핀란드와 대학을 졸업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종교 교육의 가치는 비교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협동의 가치를 담으려는 핀란드의 종교 교육과 달리, 경쟁적 대학 입시의 상황에서 종교 교육은 가치 평가 이전에 불필요하다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인문학적 가치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 인류학과 같은 분야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종교 교육이 가진 가치를 설명하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역시 종교 교육의 상황은 사회와 분리되지 않은 현실적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4

 

개신교 종교 교육의 담당자로서 종교 교육이 필수로 인정되고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솔직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연수를 통해 필수로 실시하는 것만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 상황과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핀란드와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육은 사회적 배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꾸어야 합니다. 종교 교육의 내용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교적 목적을 위한 내용이었다면 현재의 요구인 다종교 상황과 문화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사회적 인식 개혁과 함께 가야 합니다. 아마도 종교 교육의 내용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내용일 것입니다. 종교 수업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의 가치를 담아야 합니다. 사회가 그렇다고 포기할 문제가 아니라 종교 속에 내포하고 있는 함께함의 의미가 보다 강조되어야 합니다.

 

2019년 PISA 결과를 평가하며, ‘핀란드 교육의 추락’이라 서술하는 모습이 씁쓸했습니다. 결국, PISA를 경쟁적 가치로 평가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로 핀란드와 우리나라의 교육을 비교하고 그 경쟁적 가치로 우위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로는 배움도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핀란드 교육의 철학과 우리나라 교육의 철학을 비교하고 우리나라에 적절한 교육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 교육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철학 없는 모방은 상황이 가져오는 어려움에 쉬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교육 역시 부러움 이전에 근본적인 교육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쓰디쓴 변화가 필요합니다. 시대의 변화가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핀란드 교육 탐방이 주는 가장 큰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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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설한 바 있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한 바가 없으십니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所說法不아. 須菩提가 自佛言하기를 世尊이시여. 如來가 無所說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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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듯, 말은 뜻을 가리킨다. 손가락을 보면 달을 보지 못하듯, 말에 사로잡히면 뜻을 놓친다.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붙잡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까 하여, 시방 부처님은 시치미를 떼신다. 나는 한마디도 말한 바 없다고.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고자 할 무렵 문수文殊가 청하기를, 다시 한 번 법륜法輪을 굴려 달라고(다시 설법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세존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49년 세상에 머무는 동안 일찍이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는데(吾住世四十九年, 未嘗說着一字) 그대가 다시 법륜 굴리기를 청하니 이는 내가 그동안 법륜을 굴렸다는 말인가 하셨다. 다시 부처님께서 게偈로 이르시기를, 처음 도道를 이룬 뒤 오늘 이곳 跋提河에 이르도록 그 중간에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노라(始從成道後,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嘗說一字) 하셨다.”(顔丙)

 

그러면 과연 부처님은 한마디도 법을 설하지 않으셨는가? 아니다. 그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씀으로 중생을 가르치셨다. “49년 동안 한마디도 법을 설하지 않았다”는 이 말씀 또한 기막힌 설법 아닌가?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신다. 내 말에 붙잡히지 말라고. 이 말은, 내 말을 붙잡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붙잡으면 붙잡힌다. 잡지 않으면 잡히지 않는다.

말을 듣되 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말에도 빠지지 않고 침묵에도 빠지지 않는다(語默雙亡)고 한다.

 

“말에도 침묵에도 빠지지 않으면 곧 자성自性의 청정淸淨함을 본다. 그렇게 되면 비록 종일 말을 해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것 같고 종일 설해도 설하지 않은 것 같다.”(慈受禪師)

 

“본디 마음이 본디 맑고 모든 법이 본디 공이다. 다시금 무슨 법을 설할 수 있으랴? 두 수레를 탄 사람들(二乘之人)이 사람과 법이 따로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법을 설한다고 하는 것이다.

보살은 사람과 법이 모두 공임을 깨달았으므로 설하는 바가 없다. 그래서 경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설한 바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부처님을 헐뜯는 것(謗佛)이라고 했다.”(李文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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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의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라는 사람의 방랑과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을 향해 배를 띄우는 오디세우스에게 ‘사이렌’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내렸다. 사이렌은 아름다운 처녀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날아다니며 달콤한 노래로 선원들의 넋을 빼앗아 파멸시키는 요괴다.  하지만 경고에도 불구하고 함께 탄 선원들은 사이렌의 노래에 빠져들어 하나씩 죽어갔다. 오디세우스마저 거의 죽음에 다다랐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이 사이렌을 물리친 이가 있었다. 산천초목을 아름다운 노래로 매혹시켰다는 하프의 명인 오르페우스다. 오르페우스가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달콤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사이렌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 선원들은 넋이 나가 차례로 바다에 빠졌다. 그때 오르페우스는 자기의 하프를 들고 배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이렌의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이렌의 노래에 정신이 나가있던 선원들이 그의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죽음으로 이끄는 달콤한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생명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노래에 힘입어 그들이 탄 배는 사이렌이 지배하는 죽음의 바다를 무사히 빠져나갔다. 처음으로 싸움에서 진 사이렌은 그 자리에서 돌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절망과 싸우는 것보다 희망을 유지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말로 자신과 남의 인생을 저주하기보다는 희망의 말로 자신과 남을 축복해야 합니다. 질병과 싸울 때 중요한 것은 몸 밖의 세균을 죽이는 것만큼 내 안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일입니다. 사이렌의 죽음의 노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도 오르페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이렌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생명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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