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절 제5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17주일입니다. 공평과 정의, 사랑과 자비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 땅 위에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코로나19 감염확산으로 인하여 주일 오전 예배를 비대면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수도권 교회에 대한 고강도 집합금지도 해제되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다음주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하겠습니다.
3. 민족 명절 추석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족 모임을 위해 장거리 이동하시는 분들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녀오시기 바라며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4. 교우와 가정의 평화와 건강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 다음주일(10월 4일 . 왕국절 제6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목회기도
봉헌위원 : 민지애 사모 / 성찬보좌 : 정지수 집사 / 안내 : 고남곤 권사

목회서신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신앙의 모색
코로나로 예배당이 텅 비었습니다. 대면예배를 드려도 참여 인원이 전 같지 않습니다. 물론 혹시나 모를 코로나 바이러스를 염려해서 그런 것이지만 목회자들의 걱정은 생각보다 크고 심각합니다. 연로하신 분들의 출석률은 큰 차이가 없지만 젊은 세대는 이번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교회의 빈자리는 더 많아지게 될 텐데 코로나로 그 시기가 좀 앞당겨진 것이겠죠. 교회의 문화를 젊은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어려운 시기일지라도 믿음을 잃지 말고 힘내고 곧 다시 모일 날을 기다리자는 말을 하면서도 코로나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을 알기에 스스로도 좀 공허하게 들립니다. 그래도 목사니까 뭔가 마음을 붙들어 맬 수 있는 쌈빡한(!) 설교를 준비해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던 급진적 신학자 돈 큐핏의 '문명의 위기와 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한국기독교연구소)'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현재를 문화와 과학의 발달로 더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어진, 철학자 니체의 말로 하면 신이 죽은 시대라고 정의하며 그동안 교회가 전해왔던 교리와 가르침들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매우 발칙하고 불경한 주장입니다만 반박하지 못하겠습니다. 인간의 과학과 문명이 그동안 하나님이 하셨던 일을 대신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그 틈새에서 하나님의 역할을 찾으려고 애쓰거나 과학과 문화를 반신앙적인 것으로 매도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신학과 신앙의 대전환을 피할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40) 파우스트와 자기소개서
1. 하느님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내기

대학에 가는 방법을 거칠게 구분하면 수시와 정시입니다. 그리고 수시는 학생생활기록부 전체를 바탕으로 하는 학생부종합전형과 학생부의 교과 성적을 반영하는 학생부교과전형이 있습니다. 정시는 물론 수학능력평가 중심입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입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대학은 자소서를 요구합니다. 자소서의 내용은 대학 공통의 3개 영역과 자율 1개 영역, 총 4개 영역입니다. 공통 영역의 질문은 ‘1. 고등학교 재학 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에 대해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술하세요.(1,000자 이내)’, ‘2. 고등학교 재학 기간 중 자신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을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3개 이내로 기술하세요. 단, 교외 활동 중 학교장의 허락을 받고 참여한 활동은 포함됩니다.(1,500자 이내)’ 그리고 ‘3. 학교 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하세요.(1,000자 이내)입니다.
하느님 : 지금 아직은 그 녀석의 섬기는 방식이 갈팡질이지만,
멀지 않아 맑고 밝은 지경으로 이끌어 주겠다.
정원사도 나무들이 푸르르면,
꽃과 열매가, 닥쳐올 계절을 장식하리라는 것을 아는 법이다.
메피스토펠레스 : 무엇을 내기에 거시겠습니까? 그 녀석을 슬금슬금 저의 길로 끌어들이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그 녀석이 배반하도록 해보이겠습니다!
하느님 : 그 녀석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동안은,
네가 그런 짓 하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
인간이라는 것은 노력하고 있는 동안은 시험을 받는 법이다.
- 괴테, 「파우스트」, 『다이아몬드세계문학대전집』 7, 정주영 역 (청화, 1985), 19-20.
2. 들이킨 약
이제 갈등입니다. 아이들은 자소서의 이 질문을 통해 무언가 창의적이고 진취적이며 하여간 당신 대학이 뽑아야 할 이유를 가진 학생이라는 것을 보여 내야 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할 이유로 몰리게 됩니다.
아이의 자소서입니다.
“저는 사회 과학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며 교내 사회문제 토론대회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이런 동아리 활동은 주어진 환경에 머물지 않고 잘하고 또 관심이 있는 분야를 개척해 제가 가진 능력을 높이기 위해 자기주도적 학습의 한 예입니다.”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이제 아이에게 약이 필요합니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저희 학교에는 사회 과학를 다루는 동아리가 개설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또 자율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니 담당 선생님을 모시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환경의 어려움으로 제 열정을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관심이 비슷한 같은 학년 친구들 몇 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부터 하버마스까지 구체적 연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깊은 연구를 위해 사회 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졸업한 선배들을 수소문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힘든 과정이었지만 수업 시간만으로 채울 수 없었던 사회 과학 분야의 지식을 넓힐 수 있었으며 교내 사회문제 토론대회까지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 : 자, 쭉 들이키시오! 자, 어서!
곧 마음이 즐거워질 거요.
악마하고 너나하는 사이인데,
불길을 두려워한단 말이오?
- 괴테, 「파우스트」, 100.
3. 미인 갖기

사회 과학 연구 동아리는 물론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친구를 모으지도 않았고, 졸업한 선배들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열정을 말하려고 하다 선생님은 의문의 일 패, 아이들의 열정에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와 하버마스가 문제입니다. 3학년 1학기 독서활동에 마르크스와 하버마스가 기록됩니다. 운이 없으면 자소서에 기입된 마르크스와 하버마스가 질문될 수 있습니다. 자소서 마감과 면접 사이 긴 시간 《나무 위키》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자소서는 만들어집니다.
사실은 무엇일까? ‘사회 과학 토론 대회 참가’뿐입니다. 나머지가 약입니다. 이 약을 잘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 약을 잘 제공해 대학을 조금 더 가까이 보여 주는 선생님이 훌륭한(?) 분입니다.
파우스트 : 저 거울을 또 한 번 슬쩍 보게 해주오!
저 미인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메피스토펠레스: 안 되오! 안 돼!
이제 곧 온갖 여인의 견본을 산 채로 보여드리겠소
(낮은 소리로)
그 약이 몸에 들어간 이상 모든 여인이 헬렌처럼 보일 거다.
- 괴테, 「파우스트」, 100-101.
4. 구원
“자기소개서 왜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이건 진짜 자기소개서가 아니잖아요. 대학도 가기 전에 우리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교육적이지 않아요.”
복도에서 만난 한 학생이 길을 막아서 말합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말에 무언가 뜨끔해 다시 써 오라고 했습니다. 정말 거짓 없이 사실을 바탕으로.
천사들의 합창 : 신성한 불이여!
이 불에 휩싸이는 이는
이 세상에서, 착한 이들과 함께
천국의 복을 맛볼 것이다.
모두 한몸이 되어,
일어나서, 찬양하라.
공기는 깨끗함을 얻었다.
영혼이여, 호흡하라!
(천사들은 날아올라,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간다.)
메피스토펠레스 : (중략) 그래서 그놈들이 무덤을 엿봤구나!
하나밖에 없는 큰 보물을 뺏겼다.
담보로 잡아둔 그 고상한 영혼을
놈들이 엉큼하게 제어가 버렸구나.
- 괴테, 「파우스트」, 416-417.
다시 써 온 자소서. 파우스트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대학에 가는 것만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습니다. ‘나’는 쉽지 않습니다.
* 인용은 독일의 작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1832)의 희곡, 『파우스트』[Faust]입니다.
22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심은 얻은 바가 없으신 것입니까? 부처님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러하다., 수보리여. 나는 아누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 아주 작은 법도 얻은 바 없고, 그것을 이름하여 아누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것이다.
須菩提가 白佛言하기를, 世尊이시여, 佛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爲無所得耶니이까. 佛言하시되 如是如是로다, 須菩提여.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乃至無有少法可得이요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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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양인 줄로만 알고 양 무리에 섞여 살던 사자가 어느 날 다른 사자를 만나 자기가 사자임을 깨닫고서 산천이 떠나가라 으르렁거리며 밀림으로 들어갔다. 그는 사자를 만나서 사자로 된 것인가, 사자를 만나 사자로 된 바 없는 것인가?
세존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얻었다고 말해도 되고 얻은 바 없다고 말해도 된다. 다만 어느 한쪽만을 말해서는 안 된다.
사자가 자신이 양인 줄 알고 있는 한, 그는 사자이면서 사자가 아니다. 중생이란 자기가 사자인 줄 모르고 양 무리에 섞여 양처럼 살아가는 사자와 같다.
예수님은 무엇하러 세상에 오셨는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아들(딸)이라는 진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하고 일러주셨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 주신 말씀을 전하였다.”(요한복음 20:17~18)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나 가까이 있던 유다인들에게나 다 같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베소서 2:17~19)
인생이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이다. 인간뿐 아니라 만유萬有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고 있다. ‘돌아감’이 길(道)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라고 했다.[老子, 40장] “자기를 끝까지 텅 비우고 착실하게 고요함을 지키면 만물이 더불어 일어나지만 그것들이 돌아감을 나는 본다. 만물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많고 많으나 저마다 뿌리로 돌아간다.”[老子, 16장]
있는 듯하나 없는 개아個我가 없는 듯하나 있는 진아眞我로 돌아가 하나로 되는 것, 그것이 곧 성불成佛이다.
“[단경壇經]에 이르기를, 묘성妙性은 본디 공空하여 한 법法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일진대 어찌 그것을 지혜(菩提)로서 깨달을 수 있겠는가? 우리 부처님은 얻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분이요 이름을 붙여 드릴 수도 없는 분이다. 다만 이를 억지로 이름하여 아누보리라고 한 것이다.”(陣雄)
“안으로 몸과 마음이 공임을 깨닫고 밖으로 만사가 공임을 깨달아 모든 상相을 깨뜨리고 나면 저절로 집착하지 않게 되고 다투지 않게 되니 이를 일컬어 선열禪悅(禪定에 든 기쁨)이라 한다. 이른바 크게 깨우친 사람이 추호秋毫의 장애도 허용하지 않고 미진도 몸에 묻지 못하게 하여 오래도록 변함이 없으면 그가 곧 위없는 선비(無上士)요 흔들리지 않는 존자(不動尊)인 것이다.”
(逍遙翁)
부싯돌 쳐서 불을 내는데
한번 번쩍 하면 그만이요
푸른 못 깊이를 알 수 없지만
파란 하늘 곧장 드러내도다.(草堂淸和尙)

하루는 어느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신실한 집사 부부가 서로 대판 싸우고 이혼을 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담임목사는 부목사를 불러 심방을 가게했다.
부목사는 부랴부랴 심방을 가서 부부를 앉혀 놓고 싸운 이유를 듣고 보니 어이가 없었다. 부부집사가 싸운 이유가 찐 감자에다가 무엇을 찍어서 먹어야 하느냐는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편 집사는 전라도 사람이라서 설탕을 찍어 먹어야 한다고 했고 부인 집사는 경상도 사람이라서 소금을 찍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탕 가져와라, 그냥 소금 찍어먹어라 하다가 결국 대판 싸움으로 커진 것이다.
간식을 먹으면서 사이좋은 시간을 가져본다는 것이 뜻밖의 복병을 만나서 이혼하자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부목사가 말했다.
“나는 강원도 사람이라 찐 감자는 고추장 찍어 먹습니다.”
그것으로 간단하게 싸움이 끝났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이해와 인정이 바탕에 깔려 있지 못하면 아무리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도 우리에게 다툼과 싸움이 독사처럼 또아리 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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