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20.11.22 00:02

2020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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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주일입니다. 공평과 정의, 사랑과 자비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 땅 위에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코로나19 방역 사회적 거리두기가 1.5단계(정규행사 30% 인원제한, 식사·모임 금지)로 상향되었습니다. 예배당에서의 대면예배와 줌 온라인 비대면 예배를 병행하여 드립니다. 예배당에 오시는 분들은 방역수칙을 잘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3. 교우와 가정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  다음주일(11월 29일, 강림절 제1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정지수 집사
봉헌위원 : 박순용 집사 / 성찬보좌 : 송윤혁 집사 / 안내 : 오호숙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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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농촌생태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배를 마치고 강화 이필완 목사님 댁으로 농촌생태활동을 다녀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고춧대, 지주대 뽑기와 비닐막 정리, 콩대 뽑기, 땔감 운반 등 꽤 많은 일을 했는데 주어진 과업에 몰두하는 분들 때문인지, 아무튼 다들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순식간에 다 마쳤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 별악봉으로 트래킹 같은 등산을 갔습니다. 쉬운 코스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운동을 안 하시는 분들이다 보니 '목사에게 속았다, 다시는 목사 말을 듣지 않겠다'고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역시 우리 교우들은 등산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등산하고 돌아오니 이 목사님이 숯불에 고기를 정성스럽게 구워놓으셨습니다. 등산으로 허기져서 그런지 더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다윗교회 임성호 목사님도 다른 일로 오셨다가 한 자리 차지하고 함께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모닥불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소분마켓(^^)'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교회 이야기꾼 한효균 부장님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마지막까지 흥을 돋아주셨고요. 그나저나 다들 밤새 몸이 좀 뻐근하셨을겁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야외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는데 오랜만에 땀흘려 노동하고 산길도 걷고 맛난 음식을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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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평화선교를 위해 함께 동행해주시는 좋은만남교회 교우 여러분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모든 순간 가운데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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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유난히 많은 비가 왔습니다. 마치 동남아의 우기 때나 마주할 법한 기나긴 장마가 2달가량 계속되었는데요. 라오스에서 우기를 어떻게 나야하나 고민하고 염려하던 것이 무색하게 한국에서 우기를 맞이하게 되었네요. 끊이지 않고 내린 비 때문인지 최근 몇 년 안정기를 보였던 허리통증이 다시 도져서 저는 지난여름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헬스도 하고 수영도 해보고 있지만 좀처럼 낫질 않고 있습니다.) 
지난한 빗소리가 때로는 지겨웠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쑤셔오는 허리통증 때문에 쉽지 않은 여름을 나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한국의 여름이 반가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매번 다가오는 여름이지만 이번 여름은 유독 순간순간이 신기하고, 선물같이 느껴졌습니다. 뜻밖의 풍경과 뜻밖의 시간이 주는 신비로움과 감사함이 얼마나 놀라운지 새삼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가을은 환상적일만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얼마 전 태백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동하는 중에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리는 산사의 고즈넉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유명한 문구가 있어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산등성이 있는 무량수전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서 펼쳐진 가을 풍경은 흡사 따뜻한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고, 그 끄트머리에 위치한 무량수전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처럼 세상을 품고 있는 듯 하늘과 땅 사이를 중재하며 우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은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과 같은 공법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약간 기운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바라봤을 때는 정확히 일직선으로 보이게끔 기둥의 각도를 조정한 고차원적인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 오래전 동서양의 멀고 먼 땅에서 같은 기술을 가지고 신과 인간의 만남의 주선하고 있다니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와 아내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살며시 기대어 보았습니다.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장차 오신다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는 무량수전,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가을 풍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뭔가를 이야기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이제 얼마 뒤에 녹색의 여름나라, 라오스의 생경하고 낯선 풍경으로 바뀐다니 조금 비현실적이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같은 삶이 아닐까.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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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이관택 정유은 선교사)는 뜻하지 않은 코로나19의 여파로 하늘 길이 막힌 채 국내에서 대기 중에 있습니다. 당초 지난 2월에 감리교 선교사로 인준을 받았고, 4월 서울연회에서 파송 받은 후 바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반년 넘게 국내에 머물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여름 지나 가을, 그리고 찬바람이 혹혹 불어오는 겨울의 초입에 이르기까지 하늘길이 열리지 않고, 비자를 받을 길이 없는 상황이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시간들을 열심히 누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라오스는커녕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주저되는 시기이지만 우리는 가만히 멈춰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평화선교를 향한 발걸음을 열심히 내딛고 있습니다.  4월 2일부터 시작한 라오스 언어 수업은 벌써 34회가 진행되었고, 10월 중순 부터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라오스인의 커뮤니티 예배공동체(나마사깐 숨솜라오)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대여섯명의 라오스인들과 함께 드리는 작은 공동체이지만 유학생과 이주노동자의 생생한 삶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또 좋은만남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 공동체에서 ‘작지만 커다란’ 평화선교의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멀게는 경북 의성, 강원도 동해까지 달려가서 낯선 교우들과 함께 얼굴을 대면하는 일은 비대면 시대에 우리에게 열어주신 소중한 기회이기에 더욱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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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더욱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반년을 기다리며 나름의 발걸음을 걸었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 조금 암담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만남공동체 교우님들의 기도가 더욱 절실합니다. 국내에서도 평화선교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겠지만 부디 이관택 정유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래 ‘2020년 평화선교사의 달력’이라는 제목으로 방구석에 있으면서도 분주하게 움직였던 우리의 활동사항과 기도제목을 첨부합니다. 쉽지 않은 시기,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의 건강과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2020 평화선교사의 달력]
 
1월 6-15일 감리교 선교사 과정
           | 현지적응훈련- 인도네시아 바탐(인도: 장성배 교수, 주성웅 선교사)
2월 6일 감리교 선교사 최종 심사 및 인준 
4월 2일 라오스 언어 공부 시작
           | 교사  솜위라이 뿌이(한양대 대학원 한국어교육학과 유학중)
5월 12일 감리교 라오스 선교사로  파송 | 서울연회 
5월 17일 문수산성교회 선교비전 나눔 
6월 1일 라오스평화선교회 창립총회 | 신내교회(선교회 회장: 김광년 목사)
6월 28일 평지교회 선교비전 나눔 
7월 5일 초록교회 선교비전 나눔 
7월 19일 의성서문교회 선교비전 나눔 
7월 26일 좋은만남교회 선교비전 나눔
8월 13일 <불발탄 숟가락이 보여준 라오스의 희망> 기독교타임즈 기사 게재 
8월 30일 신반포교회 선교비전 나눔 
10월 18일 라오스인 예배(나마사깐 숨솜라오) 시작
11월 21일 현재까지 총 34회의 라오스 언어 수업 진행 
 
[함께 마음모아 주세요]
 
- 코로나19의 위험과 공포로 부터 전세계 모든 사람을 지켜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경험케 하소서
- 감염병과 홍수, 댕기열 그리고 빈곤과 불발탄의 피해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의 삶을 평화롭게 하소서
- 두 선교사가 라오스로 출국할 수 있도록 비자와 비행기편 문제 등 다양한 난관 가운데에서 길을 열어 인도하소서
- 국내에 거주하는 라오스 유학생, 노동자들의 영육을 강건하게 하시고 특별히 라오스인 커뮤니티 예배공동체(나마사깐 숨솜라오)를 축복하시고 부흥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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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만약에 보살이 갠지스 강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에 가득 찬 보물을 가지고 널리 베푼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어서 모든 법에 ‘나’가 없음을 알아 인忍을 이루면 이쪽 보살이 먼저 보살의 얻은 바 공덕을 이긴다.
 
須菩提여,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라도 若後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여 得成於忍이면 比菩薩이 勝前菩薩所得功德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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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나(我)’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달으면 그 사람은 보살이다. ‘나’가 없다는 말은 ‘남(人)’이 없다는 말이다. 
‘인忍’을 이룬다는 말은 도리에 평안히 머물러 이리저리 헤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는다.
 
“모든 법에 두루 통달하면 주와 객을 나누는 마음(能所心)이 없어진다. 이를 이름하여 인忍을 이룬다고 한다.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앞사람이 칠보로 보시를 하여 얻는 복보다 크다.”(六祖)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여, 모든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어째서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수보리여, 보살이 지은 바 복덕을 탐착貪著하지 않는지라, 그래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何以故오. 須菩提여, 以諸菩薩이 不受福德故니라. 須菩提가 白佛言하기를, 世尊이이여, 云何菩薩이 不受福德이니이까. 須菩提여, 菩薩이 所作福德을 不應貪著이라 是故로 說不受福德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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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니 복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살은 세간의 부귀를 스스로 누리지 않고 그것을 허공에 쌓아둘 뿐이다. 그래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허공에 쌓아 두면 아무리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또한 곧장 성불成佛에 이르니 그래서 성불하여 얻는 복덕이 천지처럼 광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보살은 본디 복덕을 쌓으려고 중생을 제도하는 게 아니다. 그 복덕이 저절로 따를 뿐이다. 이는 마치 사람이 대낮에 길을 가는데 일부러 그림자를 만들고자 하지 않아도 그림자가 그를 따라오는 것과 같다. 만약에 복덕을 짓고자 중생을 제도한다면 이는 복덕에 탐착하여 그것을 누리고자 함이다.”(王日休)
 
누가 무엇을 주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다. 참된 보시는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주고받는 물건도 모두 공임을 아는 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누가 무엇을 다시 받아들이겠는가?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 쓰게 되면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 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복음 6:19~20)”
 
복을 짓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것을 탐내어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다. 아니, 보살은 그러지를 않는다는 얘기다.
 
많은 보물로 널리 베풀어 복덕을 얻지만 깨달음을 얻는 공덕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꿈에 산해진미로 배부른 것과 깨어나 보리밥으로 배부른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도대체 서로 견주어 말할 상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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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은행에서 경비 모집광고를 냈는데 응시를 했다가 떨어졌다.  그는 예배당에 달려가 엎드려  신세타령을 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지지리 못나게 복도 없어 글도 못 배우고 경비 시험에도 떨어져야 합니까?” 그 때 그는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다. 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어찌 어찌 하여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처음에는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엇보다도 자식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못 먹은 가난보다 못 배운 무식을 더 통탄해 하면서 자녀교육에 열과 성을 다 쏟았다. 옆도 보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행해 줄곧 달려나갔다. 그러다가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세계 금융가인 뉴욕 월가의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60회 회갑연은 저명한 사람들로 대 성황을 이루었다. 그때 기자가 달려와 말했다. “선생님, 자서전을 한 권 내지 그러세요.” 그는 기자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저는 제 이름 석 자외에는 아무 글도 모릅니다.” 기자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참 애석하군요. 회장님이 글을 조금만 알았더라면 아주 위대하게 되었을 텐데요.” 그러자 그는 기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오. 내가 만약 글을 알았더라면 지금 은행 경비원쯤 하고 있을 것입니다.”
 
살아온 인생에 가정은 없습니다. 따박따박 걸어온 길은 다른 사람이 걸은 길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해 걸어온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껄" 혹은 "이랬더라면"라는 말은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뒤를 돌아보고 후회는 잠깐할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먼 훗날 다시 지금의 순간을 후회할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합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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