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절 제9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21주일입니다. 공평과 정의, 사랑과 자비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 땅 위에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코로나10 확산과 교회 사정을 고려하여 이번 주일부터 예배를 오전 11시에 예배당에서 드립니다. 그러나 예배 참여가 어려우신 분은 온라인 비대면 예배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3. 다음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예배하겠습니다. 한 해의 결실로 감사하는 주일이 되도록 정성껏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 월동준비는 8일에 할 예정입니다.
4. 우리교회 스마트폰(안드로이드 OS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으니 설치하시고 유용하게 활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 헌금을 입금하신 분들은 한효균 재정부장님께 헌금내역을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6. 교우들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 다음주일(11월 1일 . 추수감사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목회기도
봉헌위원 : 박순용 집사 / 성찬보좌 : 송윤혁 집사 / 안내 : 오호숙 권사

목회서신
옛 생각이 떠올라 오늘을 걱정합니다.
요즘 온라인 영상 예배를 병행하느라 이것저것 설비를 하느라고 노트북도 사고 배선도 사다가 새로 깔고, 구식이 된 모니터며 장비를 활용하느라고 컨버터도 주문하면서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목회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무슨 바람이 들었을까? 교인이 많지도 않았을 때인데(물론 지금도 많지는 않습니다만 ^^) 문득 영상시설을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당시로써는 고가였던 3백만 원대 빔프로젝터를 사고 노트북도 장만했습니다. 취향이 독특해서인지 노트북은 좀 비싸고 희귀한 작은 노트북을 구매했습니다. 사실 돈이 없어서 대리운전을 시작했었지요. 한 달 정도 다니니 노트북 한 대 살 정도의 돈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석 달 정도 다니다 그만두었습니다. 대리운전 사무실에서 어떻게나 갑질을 하든지, 더러워서 그만두었지요. 아무튼, 그렇게 설치하고 영상을 띄워 가며 예배를 드리니 뭔가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고 뭔가 대단한 목회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작은 교회지만 영상 설비도 갖춘 교회다?! 뭐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옛 생각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 같지는 않습니다. 한때는 지방 목회자들에게 컴퓨터 교육도 해주고 조립도 했었는데 이제는 좀 뒤처져가고 있다고나 할까, 늙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또 굳이 작은 교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진작부터 이런 설비들을 이용해왔던 터라 교우들 눈높이가 높아져서 어느 정도 수준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이 느낄 거라는 압박감도 조금 있었습니다. 괜히 이렇게 수준을 높여놨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관심을 끌기 위해서 별의별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욱 다양한 장비와 기술, 심리학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욕망과 오감을 자극하고 더 쉽게 호주머니를 열고 지불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요. 그러나 교회는 가장 잘 나가던 8~90년대에 멈춰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여전히 대부분 교회의 예배당에 자리 잡아 앉아 있고 그때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생각도 그 시절에 멈춰있겠지요. 그래서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며 변화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교회와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눕니다. 늙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왕이면 좀 깊이 있게 늙어가면 좋으련만 고집스럽게 늙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내용이 화석처럼 굳어진 상태로 기술과 장비로 겉모양이나마 새로워질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 번 높아진 눈높이는 다시 낮출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은 한없이 높아졌건만 교회 안에서는 눈높이를 낮추려니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기술과 과학의 품에서 나고 자란 세대가 교회를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웬만한 보수는 씹어먹을 정도로 '왕보수'입니다. 보수라기보다는 완고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개혁적인 생각을 하셨고 당대의 기준을 과격하게 비판하셨던 분입니다. 2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선도적인 분이었지요. 그런데 그분 이름으로 모인 교회는 사람들이 고개를 저을 정도로 꽉 막혀가고 있으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저도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ㅠㅠ 아무튼 교회는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생명은 계속 새로워집니다.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좀 어렵고 힘들더라도 세상과 발맞추어 갱신과 변혁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겁니다. 우리 교회도 새롭게 되기 위해서 코로나19로 맞이한 새로운 국면을 잘 대처해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응원해 주세요.

택배노동자들의 죽음, 이제는 막아야 합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클릭 몇 번으로 다음날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택배 서비스,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배송비 2,500원은 매우 저렴합니다. 그러나 쇼핑몰에서 백마진을 떼고 택배사도 수수료를 떼면 택배기사에게는 개당 7~800원이 돌아옵니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로 특수고용직인 기사들이 차량비, 유류비, 보험료 등을 직접 부담해야 합니다. 주택 비밀집 지역은 유류 비용와 배송 시간도 늘어 월수입이 겨우 200만 원 남짓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택배기사들이 오전 7시경에 출근하여 직접 물품 분류 작업(일명 까대기)까지 하고 8~9시까지 배송을 하면 최소 12시간 이상(주당 평균 71시간)을 근무하니 극한직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택배 노동자가 10월에만 다섯 명이 세상을 떠났고 올해 들어 모두 열세 명이 과로, 스트레스,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업계 1위 CJ대한통운은 분류인력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하였지만 지난 추석 때 한 약속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이 누리는 효용에 비해 배송료도 과하게 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더 이상 택배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우리가 물건을 빠르고 값싸게 받아 기뻐하는 웃음 뒤에는 과도한 노동으로 일그러진 택배 노동자의 피곤한 얼굴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편리를 위해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 사회는 부도덕한 착취 사회입니다. 기업은 적정이윤을 남기고 소비자들은 부담을 좀 더 나누는 사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4화 인간 개조의 용광로에서 재탄생하다.(1)
오늘은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매번 듣는 이야기, 지겨운 이야기,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바로 군대 이야기이다. 조금 듣기 거북할 지라도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 주길 부탁드린다. 오늘 제목 ‘인간 개조의 용광로’라는 말은 해병대 교육단(훈련소) 앞에 크게 쓰여진 문구이다. 너무 강한 어조라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군대라는 집단은 뭐든 그런 식이다.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수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군대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이를 지긋이 잡수신 분도 군 생활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일들을 어제 일처럼 떠올린다. 나 또한 군을 제대한지 언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다들 하는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누구나 자신의 군생활(군대생활)은 특별하다고 생각을 한다. 각자마다 경험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 나 또한 나의 특별한 군생활을 했다. 군대의 훈련이야 다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그런 비슷한 생활 말고, 군대에서의 신앙생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21살 10월 25일 해병대에 입대를 했다. 인생의 목표도 없고, 갈 바를 알지 못하여 헤매고 있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은 군대였다. 다들 그 나이 때 쯤 비슷한 고민을 한다. 내가 해병대에 입대할 거라고 나 자신도 상상하지 않았었다. 최대한 편한 곳, 최대한 가지 않기를 바라던 내가 해병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대학을 재수하고, 떨어지고, 다시 삼수를 하려고 학원에 들어갔으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삼수를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 선배(당시 나를 선도하던)가 몹시 화난 목소리로 “그럴 바에는 군대나 가!”라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여 “해병대나 가!”라고 나를 나무라며 혼을 냈고, 나는 그 다음 날 바로 해병대에 입대 원서를 냈다.
그해 8월 해병대 신체검사를 대방동 해군본부에서 받았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왜 해병대가 해군본부에가서 신체검사를 하는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해군 대빵은 별4개, 해병대 대빵은 별3개란다. 다시 말해 해병대에도 사령관이 있으나 짬밥 역사 상 해군 밑에 있는 군대라는 사실을 알고 몹시 실망을 했다. 어쨌든 8월에 신체검사를 받고, 두 달이 지나고 입대영장이 왔다. 그리고 2주 만에 입대를 해야 했다. 친구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허겁지겁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대 당일 당시 여자친구와 둘이서만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포항공항으로 갔다. 당시 너무 웃긴 상황이 생각난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표를 끊는 것이라 공항에서는 못 끊고, 여행사에서만 끊는 줄로만 알고 업무시간이 종료된 여행사 문을 두드리며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던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창피하고 그렇다.
내 인생 처음 비행기를 타는 날이 군 입대 날이 되었다. 입대의 두려움 보단 비행기를 타는 것이 한편으로 떨리고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여자 친구도 처음 비행기를 타는 것이라 내가 군대가는 것 보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에 대해서 설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도 안 되는 비행을 하고 포항공항에 내려왔다. 그 먼 거리를 한 시간도 걸리지 않고 도착한 것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병대 제1사단 앞에 도착하니 군복들이 많이 보였다. 이제 정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 ‘이등병의 편지’가 입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정말 시작인가? 나는 두렵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이 묘하게 이상했다. 서문(해병대 1사단 정문)을 조금 걸어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 곳이 집합장소인 듯하여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비좁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갔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 때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던 것 같다. 이제 들어가면 못나오는 건가? 이제 정말 끝인가? 모든 걸 포기하는 마음으로 여자친구의 손을 놓고 몰려있는 사람들 틈으로 동렬하였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 틈에 껴있던 나는 존재감 없이 그 무리 중에 한 사람으로 느껴졌고, 오롯이 나의 시선은 나를 바래다준 사람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고 따뜻했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험한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쯤 나의 시선은 함께 입대한 동료의 뒤통수가 되었다.
그렇게 6주간의 기초 훈련을 마치고, 병과(직무)를 행정병으로 받게 되어 진해에 있는 해군기지에서 후방교육을 받게 되었다. 후방교육을 받은 후 다시 포항에 있는 해병대 상륙지원단(군수종합창고)에 배치를 받게 되었다. 난 그 곳에서 군용 자동차에 관한 부품을 관리하는 보급병이 되었다. 전혀 나와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었고, 사회에서도 일을 많이 했는데 군대까지 와서 일복을 터지게 많이 받았다.
이렇게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군 생활은 녹록치 못하다. 작은 문제에도 가슴 떨리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짬밥 좀 먹어야 모든 익숙하고 능숙해 진다. 쫄병일 때는 바닥 닦는 걸레 하나에도 가슴을 졸린다. 사회생활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넘길 수 있는 일이 군 부대 안에서는 큰 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최대한 단순해지려고 노력했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는 순간 주먹과 발이 날아왔다. 최대한 단순하게 새로이 모든 것을 입력해야 했다(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군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군 생활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단순한 사람일 것이다. 시키는 것만 하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면 된다. 사회에서 뭘 했건 중요하지 않다. 현재가 중요하다. 합리적인 것을 찾으면 안 된다. 군대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여래가 말하기를 내가 있다고 했지만 내가 있는 게 아니요 보통 사람들이 내가 있다고 한다. 수보리여, 여래가 보통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요 그 이름이 보통 사람이다.
須菩提여, 如來가 說有我者나 卽非有我요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니라. 須菩提여, 凡夫者도 如來說이나 卽非凡夫요 是名凡夫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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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사람이 바로 보통 사람(凡夫)이다. 내가 없으면 있는 고슬 따라 주인이 되고 응하여 쓰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말하기를, 보통 사람은 부처의 씨앗이요 부처는 보통사람의 열매(凡是佛因, 佛是凡果)라 하였다.”(李文會)
말을 해 놓고서는 금방 같은 혀로 그 말을 지워 버린다. 씨앗이 열매라고 말하면서 씨앗은 열매가 아니라고 말한다. 두 말 모두 맞고 두 말 모두 틀렸다.
이렇게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배는 강을 건너고 우리는 말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말에 얽매이지 말고 말을 타야(乘) 한다.
“부처님이 다시 수보리를 불러, 당신이 방금 범부라고 말했지만 진짜로 범부가 있는 게 아니라 허명으로 범부라 부른 것일 따름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이른바 수거수소隨擧隨掃(금방 들어 보이고 금방 지워버림)다. 위에서 범부라고 말한 것은 들어 올림이요 아래에서 진짜 범부가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 것은 지워 버림이다. 무엇을 지우려면 먼저 들어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개 들어 올리지 않으면 이치가 밝혀지지 않으니 이는 뗏목을 타지 않고서는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과 같고, 지워 버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 설說의 진흙 구덩이에 빠질까 두려우니 이는 강 건너 기슭에 닿았으면서도 뭍에 오르지 않고 뗏목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반드시 들어 올리고는 또한 반드시 그것을 지워야 하는 것이다.”(王日休)

부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가를 보여주려고 시골로 갔다. 둘은 시골의 가난한 사람 집에서 사흘을 지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었냐?” 아들은 즉시 대답했다. “아빠! 아주 좋았어요, 그리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어요.”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알았지. 그런데 무엇을 느꼈니?”
아들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우린 개가 한 마리뿐인데, 그들은 네 마리더라고요. 우린 수영장이 마당에 있는데 그들은 끝없는 개울이 쫙 놓여 있더라고요. 우리 정원에는 수입 전등이 있는데 그들은 밤에 별이 총총이 빛을 내더라고요. 우리는 작은 땅 안에서 사는데 그들은 들이 한이 없더라고요. 우린 하인이 우리를 도와주는데 그들은 남을 도와 주더라고요. 우린 음식을 사 먹는데 그들은 직접 길러 먹더라고요. 우리 집은 담장으로 둘려 싸여 있는데 그들은 친구들에게 싸여 있더라고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망연자실했다. 이런 아버지에게 아들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빠, 고마워,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가를 알게 해주어서.”
같은 것을 보고도 어떻게 느끼는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과 부유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소유가 의미가 없어집니다. 여유로운 마음은 비어 있어 가득 채울 수 있는 마음입니다. 있는 것을 감사하면 항상 좋은 일이 생깁니다.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원망하지 말고 가진 것을 여유롭게 만드십시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이 아닌지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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