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형제를 죽이다 (2)
(창세기 4:1-8)
* “낳았다” 함은
가인을 낳고 난 뒤 아담과 하와는 아벨을 얻게 됩니다. “낳았다”라고 하는 이 표현은 성서 전반에 걸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의 첫 장은 “낳고, 낳고, 낳고”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러하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마태복음 1:1-2)
이 대목을 그냥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 자손으로 이어지는 계보의 순서를 적어놓은 것으로만 읽으면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이미 늙었고 그의 아내 사라는 더군다나 불임이라 자식을 낳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라는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닫혀 있던 생명의 역사가 기적처럼 열리고 이어지는 놀라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삭은 또한 야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 두 자식을 낳았는데 에서가 장자였기에 “이삭은 에서를 낳고”가 타당한 계보 서술 방식이 됩니다. 게다가 야곱은 형 에서와 적대했기에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운명이라 이삭에서 야곱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절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릴 뻔했던 아들 야곱이 이삭을 잇는 주체가 됩니다. 따라서 “이삭은 야곱을 낳고”라는 대목 역시 불연속이 될 역사가 새로운 미래로 연결되는 감격을 보여줍니다.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고 이들은 훗날 히브리 종족의 열두 지파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들도 오랜 기근으로 말미암아 죽게 생긴 현실과 마주해서 앞날을 기대할 수 없었는데, 요셉이 우여곡절 끝에 식량이 풍부한 이집트 제국의 총리대신이 되는 사건을 통해서 살아남게 됩니다. “야곱이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고” 라는 대목은 그런 역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이 “낳고, 낳고, 낳고”는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는 현실을 돌파하는 거대한 흐름을 일깨우고 있는 셈입니다. 불임의 현실을 이겨내고 희망과 기쁨, 목표와 의지가 이어지는 역사가 마태복음 첫 장에 나와 있는 족보의 진정한 의미입니다.